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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51화 (5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51화

옷을 갈아입고 화장까지 끝낸 서준이 나타났다. 이미 준비를 끝내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에반 블록이 서준을 반겼다.

“준. 방금 전보다 조금 큰 것 같은데?”

에반 블록의 물음에 서준이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어 보여주었다. 일반 운동화보다 조금 굽이 있는 운동화였다.

“팔도 다리도 길쭉길쭉하고 비율도 좋은데 키만 좀 더 키우자고 하셔서요. 4㎝래요. 폭신폭신해서 착용감도 좋아요.”

“키도 크고 앞머리도 넘기니까, 어린 모습이 많이 사라졌어.”

연파랑 색의 옷을 입고 볼 터치까지 해서 한껏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윌리엄때와는 달리 새까만 옷에 조금 창백한 듯한 화장까지 하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아버지는?”

“일하고 계세요.”

에반 블록의 매니저 옆에 앉은 이민준은 통화하고 있었다. 간간이 서준과 눈을 마주치면 손을 흔들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잊지 말라고 외치는 희상이 삼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아 서준은 웃고 말았다.

“에반! 준!”

여전히 라이언 윌의 촬영에 도움을 주고 있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 조나단이 두 사람을 찾았다.

조나단 형, 학교 공부는 아예 안 하는 걸까? 달려오는 조나단을 보며 서준이 의문을 가졌다.

“이제 곧 리허설 들어간대요.”

“그래?”

“갈게요.”

에반 블록과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구경하던 사람들 입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앉아 있을 때와는 달리 일어선 두 배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서준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센트럴파크에서 쉐도우맨과 윌리엄 봄. 쉐도우맨2 기대!

-성장한 윌리엄! 도대체 몇 년이 지난 거야?

-윌리엄 엄청 컸는데? 뭘 먹으면 저렇게 커?

미국에서의 소식이 한국까지 전해졌다. 기사까지 뜰 정도였다.

[쉐도우맨2 센트럴파크에서 촬영 시작!]

[훌쩍 자란 이서준 배우의 키는 과연?]

[우리 아이는 평균? 아니면 미만? 키 크는 방법!]

-와. 이제 찍는가 보다!

-천사 사진 보면 딱 히어로던데.

-진짜 많이 컸다ㅋ 하긴 아기 먹방만 봐도 뭐든 잘 먹고 잘 클 것 같더라

본 촬영이 시작되었다.

서준은 도서관을 뒤졌다. 악성향의 도서관에는 많은 삶이 있었다.

좋다 싶으면 불운이 붙는 능력도 있었고 적당하다 싶으면 종일 누군가 바라보는 기분이 드는, 정신병 걸리기 좋은 능력도 있었다.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능력들이었다. 그 안에서도 서준은 적당히 나쁘면서도 저주는 없는 능력을 찾아 헤맸다.

‘그래도 적당한 걸 찾아서 다행이야.’

하지만 이번 촬영에는 [(악)홀로 핀 꽃의 우울한 향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선)고양이 남작의 우아한 발걸음-하급]

우아한 발걸음, 품격있는 자세가 몸에 배어듭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바른 자세가 됩니다.

비슷한 동물들이 매력을 느낍니다.

고양이 남작은 고양이로서 처음 남작 작위를 받았다.

예절 교육을 하던 귀족 부인의 애완동물이었는데, 장난삼아 가르쳤더니 그 누구보다도 우아한 모습에 왕비마저 감탄의 박수를 보냈다.

그에 고양이는 왕비의 재량으로 남작이라는 작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서준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대본으로 본 윌리엄의 인생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착하디착한 아이.

지금은 라이언 윌 감독이 말했던 착한 냄새를 풀풀 풍겨야 할 때였다.

[엘프의 기초 호흡이 발동됩니다.]

서준의 근원에 있던 선기가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기차게 움직였다. 마기는 그 움직임에 치여 숨을 죽이고 있었다.

-레디,

라이언 윌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 듯, 가까운 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준은 발로 땅을 두 번 찼다.

[(선)고양이 남작의 우아한 발걸음이 발동됩니다.]

그리고 감독의 신호에 맞추어,

-액션!

몰입했다.

아이는 길을 잃었다. 생전 처음 와본 곳에서 갈 곳을 잃은 아이는 당황한 얼굴로 오나시스 저수지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센트럴파크에서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맥이었다.

안내원 조끼를 입은 맥이 주위를 살펴보다가 아이에게로 향했다.

“꼬마야.”

가까이 들리는 목소리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미아를 발견하면 보호센터로 데려오라던 팀장의 말을 떠올린 맥은 허리를 굽혀 아이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절대 울리지 말고!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집에 있어요.”

“맨해튼에 집이 있니?”

“아니요.”

아이의 짧은 대답에 맥은 볼을 긁적거렸다.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맥을 보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창백한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떴다.

“가족이 오기로 했어요. 그냥 가셔도 돼요.”

“언제쯤 오기로 했어?”

아이는 기억을 더듬었다. 해가 지면 데리러 갈게.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여자의, 가볍게 이야기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생각을 더듬고 있는 아이의 행동에서 맥은 ‘귀족적’이라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품위가 있었다.

“해가 지면…….”

“오.”

맥이 휴대폰을 켜 기상청 사이트에 들어갔다. 9월, 오후 7시는 돼야 해가 졌고 지금은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는 오후 1시였다.

“앞으로 6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아이의 얼굴 위로 곤란함이 보였다. 6시간. 너무 긴데. 맥은 웃으며 무전기를 켜고 팀장에게 연락했다.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게 조용히 말했다.

“여기 미아가 있는데요.”

-미아? 센터로 데리고 와.

“센터보다는……. 제가 같이 놀아줘도 될까요? 센트럴파크는 벗어나지 않을게요.”

-네가? 왜?

“가족이 7시에 데리러 온다는데 6시간 동안 계속 센터에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저도 이제 알바 끝날 시간이고.”

-7시? 그래. 알았다. 조끼랑 무전기는 미아 돌려보내고 반납해.

“감사합니다!”

맥이 싱글벙글 아이의 앞으로 뛰어왔다.

“그럼 7시까지 형이랑 놀래?”

잠시 생각에 빠졌던 아이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컷! OK!

라이언 윌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메라가 멈추자 선기의 낭비를 막기 위해 서준은 얼른 발로 바닥을 두 번 찼다. 날뛰던 선기도 잠잠해졌다.

착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평범해졌다.

그 차이를 바로 앞에서 보던 에반 블록은 눈을 크게 떴다. 조그마한 행동과 버릇이 그 사람의 분위기를 만든다고 믿는 에반 블록이었다. 그래서 더욱 사람을 분석하고 연기에 디테일을 추가하고는 했다.

그런데 서준 리는 달랐다. 그저 똑같이 서 있는 모습인데도 스위치를 켰다 끈 것처럼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게 재능이라는 건가. 서준을 분석한 노트에 쓰일 것이 또 하나 생겼다. 에반 블록이 히죽 웃었다.

두 배우의 촬영을 보던 관광객 중 하나가 촬영에 방해되지 않게 친구에게 속닥거렸다.

“……저 아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러게…….”

기억을 되살리려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엠마의 머릿속에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네가 보내준 사진!”

“뭐?”

엠마의 친구가 기억을 더듬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진이라서 사진 속 아이가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서준을 쳐다보던 친구도 곧 알아차렸다. 사진과 똑같이 다정하고 상냥한 느낌.

“맞는 것 같은데?”

“와.”

엠마가 두 손을 꼭 잡았다.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꼭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제 아이와 맥이 센트럴파크 내부를 돌아다니고 구경하면서 친해지는 장면들을 찍을 차례였다.

“이거 한번 쳐볼래?”

“좋아요.”

센트럴 파크 내에 있는 야구장에서 맥이 공을 던지자 아이가 야구 배트로 가볍게 안타를 쳤다.

맥, 아니, 에반 블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야구광인 스태프들은 촬영이 끝나고 진심으로 박수를 치며 ‘완벽한 안타였다, 힘만 좀 있었으면 홈런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이건 뭐예요?”

“눈표범이야.”

아이는 종종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얼굴로 세상에 대해, 상식에 대해 알아갔다.

핫도그를 처음 먹어보는 듯했고 탄산음료에는 몸을 떨었다.

맥은 그저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난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바위 위에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눈표범이 동물원에서의 촬영이 막 끝난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킁킁-. 고개를 갸웃한 눈표범이 어슬렁어슬렁 서준의 앞으로 걸어왔다. 커다란 유리 벽이 막고 있었지만, 서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표범이 준 엄청 좋아하나 보네?”

에반 블록의 말에 서준은 오른쪽으로 움직여봤다. 눈표범도 함께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왼쪽으로 움직이자, 눈표범이 따라왔다. 그 신기한 광경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음. 고양이 남작 때문인가?’

고개를 끄덕인 서준은 [(선)고양이 남작의 우아한 발걸음]을 해제했다. 몇 번 킁킁거리던 눈표범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하품을 했다.

센트럴파크 내에서의 촬영 내내 두 배우는 정말로 열심히 구경하고 대화하고 관광을 즐겼다.

그 즐거움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는지, 영화 촬영이 아니라 센트럴파크 홍보 영상을 만드는 느낌마저 들었다. 촬영팀을 안내하던 센트럴파크 직원마저도 나중에 개봉 후에 홍보 영상으로 써도 되겠느냐며 물어봤을 정도였다.

촬영이 진행되는 사이 인터넷에 서준 리의 배역이 히어로지 않을까? 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인 두 배우의 사진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준과 에반 블록이 촬영하고 쉬는 시간, 중간중간 조나단은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게시글을 요약해 라이언 윌 감독에게 알려주었다.

“준이 히어로 같다는 글이 많이 올라와요. 어째서 이상 웜홀로 사라진 윌리엄이 센트럴파크에 있냐는 이야기도 많고. 키도 많이 자랐는데 쉐도우맨 1이랑은 너무 차이 나지 않나? 하는 글도 있어요.”

“그래.”

라이언 윌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센트럴파크에서의 촬영은 쉐도우맨2의 홍보의 일환이기도 했다. 쉐도우맨2의 중요한 장면들은 보안을 위해 세트장에서 촬영될 계획이었다. 센트럴파크에서의 촬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났다.

“준. 이거.”

조나단이 화장을 지우고 있는 서준에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네 팬이라는 사람이 주고 갔는데, 위험물은 아닌 것 같아. 검사 다 해봤거든. 안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니까, 우리가 보고 줘도 될까?”

조심스럽게 말하는 조나단에게 서준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조나단과 스태프들은 얼른 다른 천막으로 향했다.

이민준이 미소를 지었다. 다들 서준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모습에 부모로서 기뻤다.

검사는 금세 끝났다. 조나단이 깨끗하게 열린 편지봉투를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눈가가 조금 빨갰다.

“여기 편지. 진짜 네 팬인가 봐.”

서준이 편지를 펼쳤다. 편지에는 급하게 쓰인, 그렇지만 단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엠마라는 사람으로 우울증에 빠져 있다가 서준의 사진을 보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한 번에 치료되지는 않았지만 한 번 느꼈던 맑은 정신이, 희망이 되어주어 치료도 잘 받고 이제는 해외여행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를 찍어달라는 말로 편지는 끝났다.

“잘됐다!”

서준은 팬레터를 소중히 가방 속에 넣었다. 고생하긴 했어도 그 사진으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됐다면 잘된 일이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멘 서준과 이민준이 밖으로 나왔다.

“근데 정말로 알아보네. 아빠. 나 이미지 엄청 다르지 않았어?”

이민준은 곰곰이 생각했다. 새하얀 천사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던 서준과 새까만 옷을 입고 조금 창백해 보이는 서준. 센트럴파크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촬영할 때도 간간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르긴 했는데 몇몇은 금방 알아보더라. 사진 보면서 이 아이 아니냐고 서로 물어보고.”

“에휴. 그렇구나.”

키가 이렇게 크고, 머리 스타일도 다른데 알아보다니. 라이언 감독님의 말대로 크리스마스이브 때 찍힌 사진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래도.”

서준이 히죽 웃었다. 근원에서 꿈틀거리는 듬직한 마기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영화 끝까지 보면 금세 다 잊어버릴걸!”

그렇게 될 수 있게 열심히 찍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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