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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9화 (4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9화

“어어?”

무대가 끝났다. 서은찬은 정신을 못 차리는 서준을 데리고 무대 뒤로 향했다.

오늘은 어쩐지 서준이 이상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서준아! 진짜 왔네?!”

“형. 얘 왜 이래요? 넋이 나갔는데?”

“몰라. 아침부터 그랬대.”

넋을 놓고 있던 서준이 정신을 차리고 땀을 닦고 있는 브라운블랙을 불렀다.

“형. 방금 무대 어땠어요?!”

“방금 무대?”

제일 가까이에 있던 케빈이 고개를 갸웃하고 대답했다.

“좋았지. 어쩐지 평소보다 더 좋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

“그러게요. 춤도 더 잘 춰졌어요.”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최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마시고 있던 박서진과 황예준도 동의했다.

“목소리도 잘 나오고 괜찮았어.”

“응. 응!”

서준이 입을 떠억 벌렸다. 서준이 생각하기에도 브라운블랙의 무대는 멋졌기 때문이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도 없었는데! 왜지?

“크리스마스이브 때랑은 비교해 보면 어때요?”

“이브면 반년 넘게 지났는데 기억이 날까?”

서은찬이 팔짱을 끼며 되물었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브라운블랙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기억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이브면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슬럼프를 극복했던 때였으니까. 상상도 못 했던 무대를 했을 때였으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박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때도 엄청났어. 마치 누군가가 가운데서 이렇게 하라고 지휘를 해주는 느낌이었달까? 그러면 나는 그 지휘를 느끼면서 아, 얘가 다음엔 이렇게 부르겠구나. 난 좀 더 높여야겠구나. 그렇게 판단하고 노래를 불렀지.”

“저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가르쳐 준 것처럼 다들 무대 어디에 서 있겠구나. 이 정도면 독무를 춰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팍 들어왔어요.”

네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개를 모로 꼰 황예준이 말했다.

“완벽한 무대랄까? 그게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것만 따르면 된다는 느낌? 그때랑 비교해 보면, 방금 무대는 그런 생각은 안 들었는데 조금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어.”

“이제는 그런 느낌이 안 들어도 너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짐작이 가. 예준이 말도 맞아. 그동안은 몰랐는데 너희를 계속 생각하면서 무대를 하니까, 조금 답답한 느낌도 있었던 것 같다.”

케빈의 말에 브라운블랙은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함. 그동안은 멋진 무대, 상상 이상의 무대에 익숙해져 있어서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 무대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굳은 표정의 서준이 물었다.

“그럼 예전이 좋아요. 지금이 좋아요?”

“그거야 당연히, 지금이지.”

브라운블랙의 대답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스태프가 때마침 2부의 시작을 알렸다. 브라운블랙이 다시 무대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최시윤이 서준에게 물었다.

“그럼 2부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여기 근처에 엄청 맛있는 양념갈비 집 있어.”

“응! 갈래. 형들. 무대 잘해!”

서준은 다시 서은찬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앉아 있던 이민준이 두 사람을 반겼다. 서준은 아빠의 환대도 보지 못하고 폭신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왤까? 능력의 유용함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이 좋다고 하다니. 왜지?

서준의 양옆에 앉은 서은찬과 이민준이 눈을 마주쳤다. 이민준이 물었다. 애 왜 이래? 몰라요. 서은찬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때 서준의 귀로, 한목소리가 들렸다. 서준과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브라운블랙 팬의 대화였다.

“난 오늘 무대 엄청 좋은 거 같아.”

이미연의 말에 박성아가 물었다.

“난 저번에 봤던 무대랑 별 차이가 없던데?”

이미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 무대는 뭐랄까. 하나의 빈틈도 없이 만들어진 완벽한 무대였다면 오늘 무대는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무대였어. 브라운블랙 무대가 원래 애드리브도 없었는데 오늘은 꽤 많았잖아.”

“그건 그러네?”

관객석이 조용해졌다. 다들 귀를 쫑긋거렸다. 예전 무대와 오늘 무대의 다름을 느낀 팬들이었다. 왜 다를까? 생각했는데, 여기 그 의문점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미연은 그것도 모르고 환하게 웃으며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서준도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예전 무대가 자신을 숨기고 다른 악기들과 어울려야 하는 ‘완벽한 지휘자’가 있는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오늘 무대는 독주를 할 수도 있는 가지각색의 악기들이 제 실력과 개성을 뽐내면서도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지며 연주하는 무대였던 것 같아. 난 브라운블랙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잘 드러나서, 오늘 무대가 더 좋아.”

서준은 깨달았다.

답답함.

그건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조그마한 악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말한 건 아니었을까? 제 마음대로 연주할 수도 없고 지휘자의 정해진 손짓에 움직여야 하는.

서준은 왼손 손바닥을 보았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의 무늬가 반짝였다.

‘오케스트라’라는 제한을 스킬이 최하급일 때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었다. 스킬도 약했고 브라운블랙의 실력도 낮았을 테니까.

하지만 하급으로 등급이 상승하면서 스킬이 강해졌다. 그리고 브라운블랙의 실력도 몇 년 사이 눈이 부시게 발전했다.

거기에 잠깐 능력이 발동되지 않았던 ‘시간’이 열쇠가 되었다.

분명 자신을 죽이고 어떤 자유도 없이, 연주해야 하는 무대가 있을 것이었다.

반대로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무대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무대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브라운블랙의 무대는, 후자일 것이었다.

‘이건 이제 필요 없겠다. 집에 가면 도서관에 넣어둬야지.’

팬미팅장까지 오는 동안, 형들 뺨을 쳐야 하는데 괜찮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두 달 후, 화려한 퍼포먼스와 서로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새 앨범으로 브라운블랙이 컴백했다.

* * *

기다리고 기다리던, 9월이 되었다.

이번에는 서은혜 대신 이민준이 매니저 겸 보호자로 서준을 따라가기로 했다.

김희상은 약속대로 이민준의 스케줄을 바꾸어주었다. 물론 미국에서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은 한가득 이민준의 손에 쥐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국을 떠난 비행기는 많은 시간을 하늘에서 보내고 미국에 도착했다.

“안녕! 서준아!”

“나라 이모!”

“넌 어째, 올 때마다 놀고 있는 거 같아.”

공항까지 마중 나온 나라가 크게 두 팔을 휘두르며 두 사람을 반겼다.

여전히 칼 같이 자른 단발머리에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나라 킴이었다. 서준이 달려가 나라와 포옹했다.

“서준이 엄청 컸네!”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은 아하하하 웃으며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왠지 행복해 보이는 광경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짝짝 박수를 쳐주었다. 얼굴이 달아오른 이민준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진정한 두 사람이 이민준의 앞으로 걸어왔다.

“이래 봬도 너희 마중 나오려고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그렇다면 고맙고.”

“고마워, 이모!”

이민준과 서준은 나라의 차에 짐을 싣고 올라탔다. 세 사람은 안전띠를 꽉 매고 공항을 떠나 목적지로 향했다.

처음 와보는 도시에 서준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얼마쯤 지나, 커다란 빌딩들이 보였다. 사람들도 많았다. 현지인은 물론이고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나라는 그중 한 빌딩을 가리켰다.

“저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야. 옛날에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대.”

“와아.”

서준의 눈이 반짝거렸다.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쉐도우맨2의 촬영 장소였다.

호텔 앞에 서준과 이민준을 내려준 나라는 서준에게 잔뜩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냥 쇼핑 나갈 때마다 서준이 생각나면 샀다고 했는데, 거의 1년 만에 만난 탓인지 양이 어마어마했다.

캐리어 옆에 착착 쌓아두니 서준의 키보다 높게 쌓였다. 이민준은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한국에 들고 가지?

“그럼 난 이만 갈게.”

차에 올라탄 나라에게 서준이 물었다.

“이모. 일하러 가?”

“아니? 집에 가야지. 그럼 촬영 잘해.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하고.”

손을 휘휘 저은 나라가 눈 깜짝할 사이 출발했다. 턱밑까지 선물 상자를 든 이민준은 허탈하게 웃었다.

“서준이한테 선물 주려고 LA에서 뉴욕까지 왔다는 거네. 나라 진짜 대단해.”

“이모 멋져!”

“그래. 멋져.”

서준과 이민준은 웃으며 캐리어와 선물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시차 적응 겸 촬영 전까지 쉴 겸 호텔에서 뒹굴뒹굴거리고 있던 서준과 이민준은 라이언 윌 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이민준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라이언 윌은 아빠에게서 전화기를 건네받은 서준에게 물었다.

-그동안 연습한다고 다른 배우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다들 인사나 나누는 건 어때?

서준의 시선이 이민준에게로 향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민준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근데 누가 와요?”

-에반 블록하고 리첼 힐. 너랑 합을 맞출 배우는 두 사람뿐이니까.

“와!”

-장소하고 시간은 문자로 보내지. 대본은 다 외웠나?

“당연하죠.”

서준은 라이언 감독이 보지도 않는데 전화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똑똑한 서준은 제가 나올 부분은 전부 암기했다.

게다가 쉐도우맨2에서 서준이 맡은 역의 감정 연기는 8개월 동안 연습했던 일인극과 비슷한 느낌이라서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알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네.”

전화를 끊은 서준은 곧 도착한 문자에 신이 나서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가방에서 쉐도우맨2의 대본을 꺼냈다.

자신의 대사를 연습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곧 만날 두 배우의 대사를 읽으면서도 간간이 시계를 보았다. 영 시침과 분침이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느리게 가는 시계에 서준은 애꿎은 아빠만 재촉했다.

“아빠, 아빠. 얼마나 지났어?”

“음. 5분?”

이렇게 시간을 물어보는 것도 벌써 3번째. 시계도 볼 줄 아는 서준이 계속 물어보는 모습이 두 배우와 만나는 게 정말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이민준이 노트북을 펼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대본을 읽다 시계를 보다 다시 대본을 읽는 서준을 불렀다.

“심심하면 그때까지 두 사람이 나온 영화 찾아서 볼까?”

“응!”

서준이 벌떡 일어나 아빠 옆에 앉았다. 배우들의 이름을 검색하니 그들이 출연한 영화들이 나왔다.

쉐도우맨 역의 에반 블록과 쉐도우맨2에 처음 출연하는 리첼 힐.

두 사람은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다가 재밌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출연한 영화도 있네.”

“이거 보자!”

“그럴까?”

이민준과 서준은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한 하이틴 영화 ‘위드’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여기,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눈 뜨고도 못 볼 하이틴영화 ‘위드’를 인연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두 사람은 팝콘을 씹어먹으며 영화를 보았다.

“난 여기가 제일 좋더라.”

짤랑! 방울 소리가 들렸다. 리첼 힐이 연신 감탄한 표정으로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았다.

“CG도 장난 아니지만, 연기가 대단하잖아.”

리첼 힐의 말에 에반 블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신과 내면의 대화는 나중에 삽입된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편집을 잘해도, 저렇게까지 자연스러울 수가 있는 걸까?

“작년에 네가 서준 리가 나온 차기작을 봤다고 연락해서 겨우 상영관 찾아서 봤는데. 감독님까지 영상을 보내줄 줄은 몰랐는걸. 너도 참 징하다. 어떻게 찾았대?”

“상대역이 어떤 연기를 하는지는 알아야지.”

리첼 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반 블록은 자신의 가방에서 [서준 리] 노트를 펼쳤다. 노트 가득 빽빽이 쓰여 있는 새까만 글씨에 리첼 힐이 혀를 찼다.

‘저기 내 이름이 붙여진 노트도 있겠지.’

어떤 평가를 했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떤 악평이 있을지 겁이 나기도 했다. 리첼 힐은 팝콘을 씹어 먹었다.

“또 분석 타임이야? 그래서, 어때? 준의 연기는? 사람들 말로는 메소드 연기라던데?”

“글쎄.”

에반 블록이 턱을 매만지며 화면을 보았다. 금색 짐승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빛을 뚫어지라 보는 에반 블록의 파란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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