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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7화 (4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7화

라이언 윌 감독에게서 문제점을 들은 서준은, 몇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첫 번째 방법.

라이언 윌 감독의 말대로 연습, 연습. 또 연습하기.

하지만 몇 달 동안 연습을 하면 할수록 이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다.

서준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선 성향의 마나(선기)를 한쪽으로 치우고 [마인의 기초 호흡]을 시작했다.

두 번째 방법.

선 성향의 도서관, 새 문이 열리길 기다리기.

생일 선물처럼 세 번째 문이 활짝 열렸지만, 그 안에도 역시 적당한 능력은 없었다.

어쩐지 더 착해 보인다는 평가를 들어, 서준은 이제 도서관 문도 열지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백색의 마나(선기)가 서준의 근원에서 찌그러졌다. 서준은 흑색의 마나(마기)가 근원에 스며들길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7개월. 8개월.

세 번째 방법.

악 성향의 도서관 문 열기.

악 성향의 도서관 문을 열기 위해서는 악 선향의 마나(마기)가 필요했다.

서준은 조급함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했지만,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 마기에 신경질이 날 것 같았다.

보통 그는 선향을 결정하면 그 선향의 능력을 얻으며 살아간다. 선이면 선, 악이면 악. 두 개의 선향을 함께 가져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오직 단 삶.

비슷한 삶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하나의 삶. 머릿속에 경고문처럼 남아 있는 삶이 있었다.

인간들에게 사냥당한 부족의 복수를 위해 살았던 엘프의 삶이었다.

선 선향의 엘프도 서준과 같은 방법으로 악 선향의 도서관을 문을 열려고 노력했다.

선의 근원을 가지고 있지만, 마기를 얻고 도서관의 문을 열어 복수하려고 했다.

엘프의 삶은 길었고, 엘프에게는 그만한 인내심이 있었다.

그러나 엘프가 마기를 얻기 전, 복수의 대상이었던 엘프 사냥꾼 중 하나가 병에 들어 죽어버렸다.

엘프는 깨달았다. 수명이 긴 자신과는 달리 복수의 대상인 인간은 너무나 쉽게 죽고 일찍 죽었다.

‘지금의 방법이라면, 언젠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10년일까, 100년일까.’

엘프는 눈을 감았다. 포기했다.

그리고 리치들의 뼈와 마족의 피, 몬스터의 살을 이용해,

마왕이 되었다.

서준이 떠오르는 삶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삶의 끝은 파멸이었다.

마왕이 된 엘프는 인간들을 죽이고 인간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마기가 결국 머릿속까지 잠식해, 결국 동족인 엘프들의 나라까지 파괴했다.

그리고 그 후 태어난, 이전 생을 기억하고 악 성향의 도서관을 열어 엘프의 생을 읽었던 수준 높은 흑마법사가 다음 생을 위해, 엘프의 삶을 경고문처럼 서준의 머릿속에 박아두었다.

“후우.”

서준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 엘프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도서관 앞에서 노력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기나긴 시간을 사는 엘프와는 달리 인간의 삶은 짧고 쉐도우맨2의 촬영까지는 더 짧았다.

서준은 다시금 [마인의 기초 호흡]을 실행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마기는 오늘도 답하지 않았다. 서준은 한숨을 쉬며 깨어날 준비를 했다.

“일단, 쉐도우맨2는 [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를 사용하자.”

아쉬운 눈길로 굳게 닫히고 검은 사슬로 꽁꽁 묶인 악 성향의 도서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속 연습하고 연습하고, 호흡하고 또 호흡해서. 꼭 열고 말 거야.”

언제나처럼 깨어나기 직전, 서준의 눈앞이 흐려졌다.

“그전까지는 다른 영화는 출연 안 할 거야. 드라마도 안 할 거야!”

경고처럼, 다짐처럼.

서준의 단호한 말에 순간 도서관이 살짝 흔들린 것도 같았다.

* * *

다음 날.

평소처럼 유치원에 다녀와 열심히 연습하고 잠자리에 든 서준은 도서관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익숙하게 악 성향의 도서관 앞에 앉아 천천히 심호흡을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끌어당기듯, 온몸으로 빨아당겼다.

그러면 근원의 한구석에 꾸깃꾸깃 쑤셔둔 선기가 움직인다. 침입자를 물리치듯 활발히 활동하는 선기에 서준은 인상을 쓰며 선기를 제어한다.

하지만 기세등등한 선기에 기가 죽은 마기는 서준의 몸 주위를 맴돌 뿐 몸 안으로는 들어오진 않았다.

“하아. 진짜.”

‘두 마나는 공존하기 불가능할까?’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은 서준이 다시 바르게 앉아 심호흡을 시작했다.

‘악 성향의 도서관 문은 평생 열리지 않는 걸까?’

마기와 선기가 몸 밖과 몸 안에서 대치했다.

‘그럼, 평생 영화를 못 찍는 걸까?’

도서관이 살짝 흔들렸다.

두 눈을 꾹 감고 [마인의 기초 호흡]에 집중하던 서준은 보지 못했다.

‘악역 연기도 못하는 내가 슈퍼스타가 될 수 있을까?’

서준이 깊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그때였다.

생의 도서관이 움직였다.

선기를 토닥이고 마기의 용기를 북돋웠다. 두 마나의 사이를 중재하고 협력을 요구했다.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협박하고. 끝내 말 안 듣는 두 마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도서관의 행동에 두 마나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못마땅한 표정으로 손을 잡았다.

금방이라도 손을 놓아버릴 듯, 손가락 하나만 약하게 이어졌다.

서준이 두 눈을 꼬옥 감고 오직 호흡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어?!

마기가 서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금방이라도 뛰쳐 나갈듯하면서도 꿈지럭대며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근원에 있던 선기도 금방이라도 마기를 물리치러 달려나갈 것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뛰쳐나가지는 않고 그저 근원 안을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제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서준은 저절로 입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두 마나의 실랑이를 바라보기만 하던 서준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일단 원인을 찾는 건 나중에 하고, 서준은 행운을, 기회를 단숨에 잡기로 했다.

집중. 집중. 집중!

우물쭈물 대는 마기를 열심히 응원하고, 으르렁대는 선기를 말렸다. 어린아이 같은 두 마나를 달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기가 근원에 스며들었다. 싸울 듯 말 듯, 두 마나가 서로를 경계하며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리고 점점, 잠잠해졌다.

그때, 축복 같은 알림이 들려왔다.

[마인의 기초 호흡이 발동됩니다!]

근원 안에서 별 탈 없이 머무는 두 마나에 서준의 기분이 좋은 탓인지, 알림도 기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인의 기초 호흡]

악(어둠)의 존재가 마나를 품게 합니다.

다른 호흡법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선(빛) 제외)

보유자의 신체를 조화롭게 만듭니다.

“으아아아!”

서준이 두 팔을 높게 들며 소리를 질렀다.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드디어!”

너무 신이 나서 도서관 내부를 뛰어다녔다.

“으하하하!”

7살 평생. 이렇게 신이 난 적이 있는지!! 배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을 터뜨리며 뛰어다녔다.

뎅그렁. 뎅그렁. 뎅그렁.

“어?”

자신밖에 없을 도서관 안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의아한 얼굴의 서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구슬 3개가 바닥에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뭐지?”

서준이 구슬 세 개를 주웠다. 하나하나 무늬가 있었다. 기다란 막대기의 무늬가 있는 구슬과 슬라임 무늬가 있는 구슬, 그리고 곰 문양이 있는 구슬이었다.

“……엑?!”

구슬을 바닥에 가지런히 둔 서준은 얼른 제 오른손 손바닥을 보고 배와 뒤통수를 매만졌다. 없다. 없어! 서준이 사색이 된 얼굴로 매만졌다. 능력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았다.

지금 서준의 몸에 있는 건, 구슬 형태가 아닌 [엘프의 기초 호흡]과 [마인의 기초 호흡]뿐이었다.

“왜 떨어졌지!?”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당황하던 서준은 곧 정신을 차렸다. 마기와 선기가 한 근원을 이루기 시작한 것부터가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두 마나가 같이 있는 건 처음이라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 일단, 넣어 보자.”

서준은 구슬을 잡았다. [슬라임의 소화 능력]이었다. 그리고 항상 하던 대로 배 속에 집어넣었다.

배 위에 슬라임 무늬가 생겼다. 그리고 뒤통수에 [여름 곰의 겨울잠]을 오른쪽 손바닥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넣었다.

다행히 전부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갑자기 마기가 생겨서 튕긴 거였나?”

한참 몸을 살피던 서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다.

“이럴 줄을 몰랐는데…….”

지금까지 자유롭게 사용했던 선기의 양이 반쯤 줄어들었다. 그러니까 100이었던 선기가 50으로 줄어들었고 나머지 50을 마기가 차지했다.

100의 선기를 이용해 온종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50밖에 없어서 반나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서 자연히 커질 근원이었다.

“마기가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촬영 때만 능력을 조절해 사용한다면 될 일이었다. 8개월 동안 라이언 윌과의 연기 연습은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매번 같은 역을 연습하면서 메소드 연기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제법 조절도 가능했다.

“이제 조금이야.”

서준이 몸을 돌려 굳게 닫혀 있는 악 선향의 도서관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시선에, 서준의 몸속에 있는 마기를 감지한 검은색 사슬이 차르르르 소리를 내며 풀리기 시작했다. 검은 문을 꽁꽁 묶고 있던 사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서준이 터벅터벅 걸어가 오른손을 휘저었다.

선 성향의 도서관처럼 커다랗던 문이 왼쪽으로 사라지고 오른쪽에서 그보다 작은 문이 나타났다. 서준의 손길에 문은 점점 작아져 갔다.

굳게 닫힌 마지막 문이 나타났다.

“이제 다시 시작이야.”

서준이 오른손을 검은색 문에 대었다.

삐걱하고,

문이 열렸다.

* * *

라이언 윌 감독은 다음 달에 시작할 쉐도우맨2 촬영을 위해 대본을 살펴보았다.

수정, 수정, 수정. 처음 만족스럽던 대본이 8개월 동안 점점 너덜너덜해졌다.

서준 리의 분량은 점점 적어지고 인과관계를 맞추고 빈 시간에 넣을 다른 에피소드를 짜내느라 머리가 아팠지만, 그는 끝내 완성했다.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흥행은 되겠지.’

그때, 알림이 울렸다. 휴대폰을 살펴보니 서준이었다. 영상을 보냈다는 메시지에 라이언 윌은 익숙하게 영상을 틀었다.

마침 그제 영상이 왔었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영상을 보내왔다. 라이언 윌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끈기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래서 더 아쉽기도 했다. 어째서 악역 연기만은 안 되는 거지?

라이언 윌은 팔짱을 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요즘은 매력적인 악역도 인기가 있는 시대였다. 악역 연기를 못한다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배역의 절반을 날려 버리는 일이었다.

약간의 사심을 덧붙이자면, 라이언 윌은 엄청난 연기를 선보였던 서준 리가 하는 악역 연기를 꼭 보고 싶었다. 그 작은 몸으로 어떤 아우라를 내뿜을지, 어떤 연기를 펼칠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올 것 같은 한숨을 간신히 참으며 라이언 윌은 동영상을 틀었다.

“……!”

거기에는,

활짝 웃고 있지만 서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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