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5화
“제니. 그게 뭐야?”
“어? 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진. 귀엽지?”
“진짜 완전 천사 같다.”
제니의 휴대폰 배경화면은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었다. 제니의 친구도 그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한테도 보내줘.”
“알았어.”
천사 복장을 한 서준의 사진들이 SNS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영국.
엠마는 소파에 늘어져 켜지지 않은, 까만 텔레비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숨 쉬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어쩌다 이런 상태까지 됐는지 모르겠다. 그냥 안개 낀 영국 날씨도 싫고 좁고 더러운 집도 싫고 일하는 것도 싫고, 그렇게 싫은 게 늘어가다 보니, 어느 날 좋아하는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띠링-
엠마는 두 눈을 끔벅거렸다. 모든 지인과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연락해 올 사람은 부모님뿐이었다.
슬픈 눈으로 제발 연락만 잘 받아달라는 부모님의 모습이 엠마의 뇌리를 스쳤다. 움직이기는 싫지만, 그게 마음에 걸렸다.
엠마는 손을 뻗어 탁자 위의 휴대폰을 잡았다.
“하아.”
엄마도, 아빠도 아니었다. 제일 친한 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 그녀의 집에 와서 청소도 도와주고 그녀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친구였다.
>엄청 귀엽지? 너 귀여운 거 좋아하잖아.
어떤 꼬마의 사진이 있었다. 날개가 달린 케이프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엠마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기 천사의 날갯깃이 발동됩니다.]
순간 제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우울함과 좌절감으로 새까맣게 물들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하아!”
저도 모르게 숨을 내쉰 제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쓰레기와 먼지로 가득 찬 집이 보였다. 전에는 더러운 집만 보면 숨이 턱 막힐 뿐이었는데, 지금은 얼른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었다.
엠마는 아주 오랜만에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할 시간이었다.
이서준의 사진은 아주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그중 라이언 윌도 있었다.
“이거 준 맞죠?”
조나단이 친구에게서 받은 사진을 라이언에게 보여주었다.
마침 라이언은 적긴 했지만, 미국 영화관에서도 개봉한 악령을 보고 온 참이었다.
어쩐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이언에게 조나단은 우물쭈물하며 사진을 건넸다. 라이언이 말없이 사진을 보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사진 보고 나서 우울증이 나아진 것 같아요.]
[사진 보고 온종일 좋은 일만 있었어.]
[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진이야.]
라이언이 마른세수를 하고 방으로 향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짐을 쌌다. 방문 앞에서 조나단이 물었다.
“어디 가게요?”
“그래. 한국.”
“한국요?”
“같이 갈 거면 가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해외여행이었다. 조나단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갈래요! 언제 가요?”
“내일. 여권은 있어?”
“네. 삼촌! 있어요. 가지고 왔어요!”
“근데, 뭐 하러 가요?”
“서준 리 만나러.”
굳은 얼굴의 라이언 윌이 말했다.
* * *
라이언 윌의 입국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린사에서 기사를 내지 않으면, 또 할리우드에서도 몇 번 대작을 낸 영화감독이 아닌 이상, 영화감독의 이름까지 외울 사람들은 없었다.
두 사람은 호텔에 짐을 풀고 서준과 부부에게 연락했다. 한국에 온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라 깜짝 놀란 부부가 집 주소를 불러 주었다.
서준이 라이언 윌과 악수를 하였다. 여전히 큰 키다. 뒤에서 뻘쭘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조나단도 보였다.
잠시 대화를 나눈 라이언 윌이 본론을 꺼냈다.
“잠시 준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 그럼 자리를 비켜드릴까요?”
이민준과 서은혜가 자리를 뜨려고 했다. 조나단도 눈치를 보며 일어났다. 라이언 윌은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습니다.”
“나도!”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세 사람은 라이언 윌과 서준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라이언 윌이 제 앞에 앉은 서준을 보았다. 서준도 라이언이 왜 왔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어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라이언 감독이 입을 열었다.
“악령을 봤다. 준.”
“한국영화를요?”
“상영관이 적긴 했지만,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개봉했구나! 서준이 환한 얼굴에 라이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잘하더구나.”
“감사합니다.”
서준이 긴장한 듯 말했다. 라이언 윌의 표정을 굳어서 풀릴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부부도 조나단도 그런 두 사람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서준은 침을 꼴깍 삼켰다. 글쎄. 칭찬하려고 한국까지 온 건 아닐 터였다.
“근데.”
“네.”
“우리 오디션 했던 거 기억하니?”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상이 삼촌과 미국에 계약하러 갔을 때, 마린사에서 만난 라이언 윌 감독은 말했다.
“어떤 인종의 배우든 내 영화에 나오는 건 상관없지만, 연기를 못하는 배우는 절대 나올 수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서준에게 짧은 대본을 주고 오디션을 보았다. 서준은 예상대로 합격했고 계약서까지 썼다.
“난 그때 너의 연기에서 느꼈던 이질적인 분위기가 악역의 아우라라고 생각했다.”
서준은 라이언 윌 감독의 눈을 보았다.
첫 번째 악역. ‘윌리엄’이 악역이라는 말에 서준은 오디션을 뒤로 미루고 도서관을 뒤졌다.
하지만 첫 번째 문에서도, 두 번째 문에서도 그 이상의 능력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 열린 세 번째 문에서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서준은 오디션에서 [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를 사용했다.
선 성향인 서준에게 ‘악’이라고 해봤자, 그저 장난. 당하는 사람까지 웃을 수 있는 재치 넘치는 장난.
그래서 서준은 오디션 때, 그나마 가장 그럴듯한 분위기를 뽑아내는 도깨비의 기운을 몸속에 품고 연기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악령을 보니, 그게 아니더군.”
서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상이 갔다. 오디션이 끝났을 때부터 찜찜한 기분. 단 하나, 걸리던 문제. 라이언 윌은 지금 그걸 지적하러 온 거였다.
심각한 분위기에 부부도 조나단도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부부는 생각했다. 조금 이르긴 했다. 아니, 이제 7살이 다 돼가는 아이에게는 너무 이르긴 했다.
하지만 부부는 서준의 재능이, 능력이, 그리고 노력이.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련은 이겨낼 아들이었다. 믿고 있었다.
오디션 때도, 악령도 보았던 조나단은 입술을 깨물었다. 삼촌도 알고 아직 어린 준도 아는 그 잘못된 점을 조나단은 깨닫지 못했다. 지금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분석하고 공부해야 했다.
“네가 그 악역 연기로 단 한 장면만 나온다면 사람들은 모를 거다. 나처럼 그저 이질적인 기분을 악당의 분위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윌리엄’은 한 장면만 나오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틈틈이 나올 거고, 시리즈라서 영화가 몇 개가 나올지도 몰라. 그러면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 네가 연기하는 ‘윌리엄’이 악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라이언 윌은 영화관에서 본 악령을 떠올렸다. 황금색의 CG 너머로 느꼈던 서준의 아우라.
“악령을 보았을 때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은 점점 따뜻하고 위대하게 변해갔지. 그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이질적이었지만, 분명 선이었다.”
서준은 할 말이 없었다. 라이언 윌 감독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포장해도 [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는 선 성향의 스킬이었다.
“이제 악령을 보았던 사람들이 네가 연기하는 ‘윌리엄’을 보면 그 느낌을 그대로 받을 거다. 악역인데, 착하게. 그리고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그건 내가 바라는 ‘윌리엄’이 아니야.”
라이언 윌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거기까지였다면, 악령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쩌면 서준의 ‘윌리엄’ 연기가 악역처럼 느껴질지도 몰랐다.
이제 곧 촬영해야 하는 쉐도우맨2에서는 어찌어찌 넘어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역할을 경험하고, 좀 더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연기의 폭이 다양해진다면, 그 이후 나오는 쉐도우맨 시리즈에서 완벽한 악역을 연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라이언 윌 감독의 계획은 그랬었다.
아직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나이 어린아이를 ‘윌리엄’역으로 생각한 것도, 그답지 않게 쉐도우맨2에 나올 윌리엄의 연기에 대한 기준치를 낮춘 것도 그런 계획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네가 나온 방송이 문제가 됐다.”
“방송요?”
뜬금없는 소리에 모두 라이언 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천사 옷을 입고 나온 방송 말이다. 그 방송이 캡처되고 네 사진이 전 세계에 퍼져 버렸어.”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문제라고? 얼굴이 알려지면 더 좋은 게 아닌가?
“2시간이나 붙들려 있어야 하는 악령 같은 영화와는 달리, 사진은 그저 1초만으로도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박혀버리지. 그리고 그 확장성은 영화와 비교할 것이 못 돼. 영화관이 없는 곳에서도 악령이 번역되지 않는 곳에서도 휴대폰과 컴퓨터, 그리고 누군가는 출력한 사진으로, 그 사진은 여기저기 퍼지겠지. 게다가 언제든지 다시 보고 또다시 볼 수 있다.”
조나단이 들고 온 사진을 보고 라이언 윌은 한눈에 문제를 파악했다.
“넌 너무 선해.”
칭찬이라기에는 라이언 윌의 표정이 심각해서, 다들 그만 바라보았다.
“이미지가 그렇게 박혀 버렸어. 웬만한 압도적인 연기가 아니라면, 다들 너의 연기를 보면서 그 사진 속 이미지에서 벗어나질 못할 거다.”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서 서준의 사진을 보고 새 인생을 살게 됐다던 여자의 사연이 떠올랐다.
아, 그렇구나.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직 서준의 연기를 지켜봐 온 라이언 윌 감독만이 그 심각성을 깨달았다.
“괜히 전작의 작품 캐릭터가 다음 작품까지 영향을 주는 게 아니야. 작품 속의 이미지가 곧 광고의 이미지가 되지. 사람들은 한 번 그렇게 생각하면,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아.”
“……그럼 영화 못해요?”
서준의 질문에 라이언 윌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악역 연기를 공부하겠다고는 하지 않지? 넌 천재야. 배우면 뭐든 할 수 있어. 선한 이미지? 네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눌러 버려!”
서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라이언 윌을 보았다.
자아 비슷한 것이 생겼을 때부터 했던 [엘프의 기초 호흡]이 서준의 근원을 만들었다.
서준의 영혼과 같은 그 근원은 오로지 선을 향하며, 선 선향의 능력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능력을 쓰지 않고 연기를 한다고 해도 이미 선기(선의 마나)로 가득 찬 서준의 근원이 악역을 연기할 때도 그 ‘선함’을 뿜어낼 터였다.
이제 와서 [엘프의 기초 호흡]을 멈춘다 해도 서준의 성향은 이미 선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공부해도 안 되면 어떻게 해요?”
안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서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평생 비슷한 역만 하게 되겠지.”
라이언 윌 감독은 6살 꼬마에게도 냉정했다.
“으음.”
그건 싫었다. 슈퍼스타는 어떤 역이라도 완벽히 소화해야 했다. 30대가 10대를 연기하는 것처럼 겉모습 때문에 맡지 못하면 몰라도. 서준은 무슨 역이든 완벽히 해내고 싶었다.
서준이 고민에 잠기자 라이언 윌이 말했다.
“연습하자.”
“연습?”
“네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마. 나는 너의 윌리엄을 볼 때부터 네가 맡아줬으면 했어. 겨우 여기서 포기할 거라면 지금까지 쉐도우맨을 만들 생각도 안 했을 거다.”
아버지에게서 라이언 윌의 끈질김을 들었던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아버지는 진저리를 치며 말하고는 했다. 영화에 미친 놈!
“으음.”
고맙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 주저하는 서준에게 라이언 윌이 화난 얼굴로 물었다.
“안 할 건가? 이 정도로 포기할 건가?”
포기.
그 단어가 화살처럼 서준의 가슴에 꽂혔다. 많은 생을 살면서도 서준은 한 번도 삶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태어나 겨우 3일 만에 죽을지언정, 열심히 살았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
서준이 눈을 빛냈다.
“……할 거예요. 할래요.”
“좋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라이언 윌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영어로 빽빽이 적힌 대본이었다.
“일인극이다. 네 또래의 악역으로 내가 썼지. 그것부터 차근차근해보자.”
서준이 대본을 받아 들었다.
“걱정 마라. 내 생각에는 너라면 몇 달도 되지 않아 해낼 수 있을 거다.”
가라앉아 있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방에서 라이언 윌과 서준, 둘만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준과 서은혜는 문밖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조나단은 라이언 윌 감독의 날카로운 조언들을 종이에 받아적으며 공부했다.
* * *
도서관에서 눈을 뜬 서준은 선 성향의 도서관.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준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라이언 윌 앞에서 내내 연기했지만 [엘프의 기초 호흡]의 효과는 대단했다. 한순간도 ‘악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활짝 열린 두 개의 문을 바라보았다. 이미 전부 뒤져 본 도서관.
“없을 거야.”
서준은 낙담했다.
서준은 오랜만에 제일 첫 생의 책을 보았다. 책은 여전히 낡았고 곧 바스러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읽을 수 있었다.
다시 읽어도 답답할 정도로 꽉 막혀 있는 인생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선한 역만 맡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도 슈퍼스타는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포기하는 거였다. 피하는 거였다. 서준은 책을 덮었다.
“나도 포기할 생각 없어.”
하지만 어쩌지? 첫 생의 책과 도서관의 문을 바라만 보던 서준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생의 도서관 문의 반대쪽, 컴컴한 어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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