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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43화 (4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3화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혼자서 블록을 쌓으며 놀던 서준이 귀를 쫑긋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을 마무리하던 선생님이 물었다.

“왜, 서준아?”

“엄마 온 것 같아서요!”

“그래? 나가볼까?”

선생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니, 서준의 말대로 엄마가 있었다.

그저 아이의 투정이라고 생각했던 선생님이 깜짝 놀라 서준을 보았지만 서준은 이미 엄마에게로 달려가 안겨 있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퇴근하셔야 하는데.”

“괜찮아요. 저도 일이 남아서.”

서은혜가 종이 가방을 선생님께 건넸다. 공항에서 사 온 간식거리였다.

“이거 드세요. 공항에 맛있는 게 많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서준이도 인사해야지.”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아, 잠시만요. 서준이 어머님.”

선생님이 서준의 가방에서 유인물을 꺼내 보여주었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유인물은 어린이집다웠다.

빨간 옷의 환하게 웃고 있는 산타할아버지와 빨간 코 루돌프의 그림이 가득했다.

* * *

“축제?”

간장게장의 살을 발라 서준의 숟가락 위에 얹어주고 있던 이민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은혜는 유인물의 내용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이브, 어린이 대축제래. 먹을 것도 팔고, 장난감도 있고, 놀이시설도 있고.”

“재미있겠네. 서준아, 갈래?”

달달 짭짤한 간장게장과 새하얀 쌀밥을 꼭꼭 씹어 삼킨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니, 아니. 잠깐. 안 되지. 서준이는!”

저녁 시간에 불쑥 찾아와서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내민 서은찬이 부부와 서준의 이야기를 듣다 손을 내저었다.

열심히 간장게장을 흡입하던 서준과 부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은찬이 이마를 짚었다.

“서준이는 아직 어리다 쳐도 매형하고 누나는 서준이가 얼마나 유명한지 몰라?”

서은찬의 말에 서은혜와 이민준의 눈이 마주쳤다. 어깨를 으쓱한 서은혜가 대답했다.

“알지. 유치원 처음 갔던 날에도 아주 난리가 났었어. 선생님들은 입만 벌리고 있지, 부모님들도 어쩔 줄 몰라 하고, 애들은 그런 엄마 아빠 모습에 울고불고.”

게딱지를 내려놓은 서은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가 올려주는 게살을 맛나게 먹었다. 간장게장 처음 먹는데, 너무 맛있다.

“뉴스도 엄청 나왔어. 악령이 600만 관객 넘었다고. 미국에서 윌리엄역에 서준이가 나올 것 같다는 뉴스도 뜨고, 지금은 좀 잠잠하기는 한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며칠에 한 번은 서준이 이야기가 TV에 나왔어.”

이민준이 양념게장 줄까? 하고 물어보았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념게장은 또 무슨 맛일까? 부적을 만드느라 사흘 동안 쓸 수 없었던 [슬라임의 소화 능력]이 힘차게 움직였다.

“근데 서준이랑 어린이 대축제를 가겠다고?”

“이제는 좀 잠잠하지 않아? 유치원 선생님들도 익숙해진 것 같고, 다른 애들이랑 대하는 것도 똑같고. 애들 부모님들도 그냥저냥 인사하고 가시던데?”

서은찬이 답답함에 물을 들이마셨다.

“그건 계속 봐왔으니까 그렇지. 어린이 대축제에는 전부 서준이 처음 보는 사람들뿐일걸? 그러니까, 유치원 첫날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는 거지.”

첫날. 양념게장 맛에 눈이 둥그렇게 변해서 열심히 먹던 서준과 부부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시간이 지나서 하하 호호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지, 또 하라면 못한다.

서은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다. 더 심하지. 어린이 대축제지만 진짜 서준이만 한 애들만 오겠어? 친척들도 오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겠지. 그걸 기대하고 가게들도 엄청 있을 거 아니야? 광고도 엄청 하고. 그러면 학생들도 오고 대학생들도 오고 결국엔 그냥 크리스마스이브 대축제가 될걸?”

서준과 부부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 한가운데 서준이랑 매형이랑 누나가 있다고 생각해 봐. 완전, 뱀 소굴에 빠진 생쥐가족 아니야?”

수많은 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긴 혀가 날름거렸다. 새하얀 송곳니에 생쥐가족이 서로를 껴안고 덜덜 떨었다.

서준은 순간 떠올린 이미지에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나 안 갈래.”

“아빠도 찬성.”

“엄마도.”

서준과 부부가 손을 들었다. 서은찬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세 사람의 머릿속으로 며칠 전 봤던 좀비 영화가 떠올랐다.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 하지만 이미 유명해진 서준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축제를 나가면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반딧불이의 비껴가는 불운]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닐까?’

서준은 자신이 쓸 부적을 하나 그려놓을까, 고민했다.

서은혜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서준이는 이제 그런 축제는 못 가겠네? 아쉽다. 그런 곳 가서 추억도 많이 쌓고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마스크 쓸까?”

“겨울이니까, 모자랑 목도리를 하면 가릴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막상 못 간다니 아쉬워 부부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냈다. 서은찬이 흠흠, 헛기침했다.

“그래서 좋은 제안이 있는데…….”

“어쩐지. 간장게장에 양념게장까지 사 왔다고 생각했는데 뇌물이었구나?”

“어째 은찬이 넌 레퍼토리가 바뀌질 않는다?”

“그러게!”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과 부부에 서은찬이 민망한 듯 웃었다. 다들 너무 날카로웠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애들 야외에서 음악 방송하거든. 거기에 게스트로 나오면 어떨까? 특별출연!”

“형들이랑?”

“응. 브라운블랙 애들이랑. 노래 부르거나 아니면 그냥 나와서 인사만 해도 좋고. 애들 춤이 격해서 춤은 안 되겠다.”

“음.”

서준이 생각에 잠겼다. 서은찬이 살며시 웃으며 서준을 살살 꼬셨다.

“서준이 생방송은 찍어본 적 없지? 이거 지상파에 전국적으로 나가는 생방송이다? 게다가 관객도 엄청 많아.”

“할래!”

생방송!

내가 또 언제 생방송에 나가보겠어!

서은찬이 속으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서준이가 보고 싶다고 쨍알쨍알거리는 브라운블랙 애들과 서준이의 출연은 안 되냐며 꼭 한 번만, 딱 한 번만 부탁해 달라던 방송국 PD들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었다.

“노래할래? 아니면 인사만 할래?”

“노래할래!”

서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다 모로 꼬았다. 노래를 제안한 서은찬도 문뜩 생각이 들었다. 서준이가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나?

다음 날.

서준은 서은찬의 손을 잡고 코코아엔터로 향했다.

서준은 3층짜리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게 현 아이돌그룹 중 최고라고 불리는 브라운블랙의 소속사라고? 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작아.”

“아하하하.”

맞는 말이었다. 브라운블랙이 데뷔한 지 벌써 5년. 5년 내내 1위를 차지한 아이돌의 회사라기에는 너무 작았다.

서준은 애써 좋게 생각했다. 3층 건물일 수도 있지. 겉만 그렇고 건물 안은 잘 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서준의 기대와는 달리, 건물의 1층은 음식점, 2층은 태권도 학원이었다.

하나! 둘! 하는 기합 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서준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코코아엔터는 3층만 쓰고 있었다. 아니, 뭐야. 왜 이래? 서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은찬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긴 하는데…….

코코아엔터의 정문을 보며 서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삼촌, 월급은 제대로 받아?”

“응. 잘 나오고 있어.”

“형들도 잘 받아?”

“계약서대로 잘 받고 있지.”

유난히 ‘계약서’라는 단어가 크게 들린 건 착각일까? 서준의 질문에 결국 밖으로 한숨을 내뱉어버린 서은찬이 입을 열었다.

“서준아. 우리 회사에서 새 아이돌 그룹 나온다는 이야기 들은 거 기억나?”

“응. 예준이 형이 후배 생긴다면서 엄청 좋아했어.”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황예준이 엄청 흥분한 얼굴로 전화통화 내내 소리를 질렀다. 서준은 조금 듣다가 귀가 아파서 그냥 끊어버렸다.

“그 아이돌 그룹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얼마 안 가서 망해버렸거든.”

그것도 다섯 명 중 두 멤버의 범죄사실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밝혀지고 사장은 코코아엔터의 유일한 수입원인 브라운블랙마저 싸잡아 욕하기 전에 얼른 해체해 버렸다. 실력의 문제였다면 몇 년 더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그리고 1년 뒤에, 또 아이돌 그룹 만든다고 했는데, 하아.”

이번에는 멤버 중 하나가 자작곡이라고 내밀던 곡이 표절곡이었다.

뮤직비디오까지 찍고 음원까지 내고 데뷔 무대를 하려던 찰나, 표절 의혹이 떴다.

해외의 무명 인디 그룹의 곡이었는데, 그 그룹이 너튜브로 뜨면서 한국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브라운블랙도 황예준과 박서진의 자작곡으로 활동하고 있는 터라, 또 엮이기 전에 해체해 버렸다.

그 이후로 사장과 직원들은 새로운 아이돌그룹을 만드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서은찬은 그게 불만이었다. 투자는 계속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브라운블랙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벌었던 돈을 계속 쓰니까 남는 돈이 없어서 회사가 이래.”

“형들 연습은 어디서 해?”

“여기도 연습실이 있긴 한데, 그건 데뷔전에 쓰던 거야. 시설이 별로라서 형들이 그동안 번 돈으로 숙소랑 가까운 곳으로 마련했지.”

서은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수 사비로 연습실까지 만들게 하다니, 회사의 상황에 한숨만 나왔다.

“그럼, 여긴 왜 왔어?”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연습실이 따로 있다면 거기에 가는 게 좋지 않나?

“카메라 가지러. 형들이 연습할 때 쓰는 카메라는 고장 났거든. 하나 사야 하는데, 좋은 거 산다고 열심히 검색하고 있더라.”

“내가 연습하는 거 너튜브에 올리게?”

“응. 나중에 음악방송 끝나고. 지금 올리면 서프라이즈! 못하잖아?”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널 [JUN]에 새 영상이 올라가겠네.

“서준아!”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네!”

“엄청 컸다.”

10층 건물 안의 깨끗한 연습실에는 브라운블랙이 있었다. 서준이 단숨에 달려가서 안기자 케빈이 달랑 들어 높이높이 올려주었다. 서준이 아하하하 웃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차례차례 서준을 들어 올려주었다.

활기찬 인사를 마치고 다들 본론에 들어갔다.

“서준이는 어떤 노래가 좋아?”

“서준이가 노래도 부르려면 잔잔한 노래가 좋으려나?”

“확실히 빠른 노래는 힘들 것 같네.”

그동안 너튜브에 올라간 브라운블랙의 노래를 들으며 서준과 브라운블랙은 하나하나 제외해 나갔다.

결국, 노래 하나를 찾았다. 두 번째 미니앨범. TODAY였다.

“잔잔해서 크리스마스 때 듣기도 좋고.”

“가사도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딱이네.”

“그럼 연습 시작할까?”

리드 보컬인 박서진이 서준에게 노래를 하나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서준도 열심히 따라 불렀다.

“여기서 높게.”

“좀 더 천천히.”

“가사는 좀 더 정확하게 발음해야지.”

서준은 박서진의 말대로 노래를 불렀다. 흐르는 MR에 열심히 소리를 높여 불렀다.

어때? 나 잘했어? 그 뿌듯함이 가득한 얼굴에 박서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푸흡.

서준이 휙 하고 고개를 돌리자 연습실 구석, 찬이 삼촌이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주위를 보니 다른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입은 가렸지만, 눈이 휘어져 있었다.

저건. 서준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푸하하하!”

먼저 서은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연달아 브라운블랙도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서준이 발을 동동 굴렀다.

“웃지 마! 삼촌! 처음이라서 그런 거야!”

“아하하. 누나한테 보여줘야 하는데!”

“그래. 서준아. 처음이라서 그런 거야. 연습하면 괜찮을 거야. 너희도 그만 웃어!”

박서진이 열심히 서준을 위로했지만 서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쉽지 않은지 끅끅거리는 삼촌과 형들을 보며 서준이 눈꼬리를 날카롭게 세웠다.

이래 봬도 슈퍼스타가 될 몸이다. 노래? 못할 게 뭐야!

“서진이 형. 음악 틀어줘.”

서준이 기합이 바짝 들어간 얼굴로 말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생방송까지 앞으로 일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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