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42화 (4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42화

서준은 희상이 삼촌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인들에게서 받은 선물이 한가득 든 서준의 가방에는 라이언 윌 감독에게 받은 시놉시스도 있었다.

쉐도우맨2.

시놉시스를 보고, 라이언 윌 감독에게서 앞으로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 들은 서준은 출연하기로 했다.

어쩐지 자신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는 마린사의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걸리긴 했지만, 어깨를 으쓱하고 얼른 계약서에 사인했다.

“근데…….”

서준은 시놉시스의 내용을 떠올렸다. 단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라이언 윌 감독 앞에서 펼쳤던 연기가 조금 찜찜했다.

지금까지 했던 연기와는 다르게, 시원하지가 않았다. 미국에 있을 때도, 한국에 들어와서도 틈틈이 문제가 뭘까 고민했지만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감독님이 합격이라고 말했으니 큰 문제는 아닐 것 같긴 한데……. 역시, 모르겠다.”

자신의 방에 있던 서준이 쉐도우맨2의 시놉시스를 덮고 나라 이모가 구해주는 영어로 된 시나리오들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의 옆에 꽂아 넣었다.

3개의 책꽂이 중 겨우 2개, 이제는 3개가 꽂힌 이 책장은 앞으로 서준이 출연할 영화 대본을 넣어 놓는 곳으로 결정했다.

일명 현실판, 생의 책꽂이!

앞으로 이 책꽂이가 가득 찰 만큼 많은 연기를 하고 싶었다.

“서준아, 포도 먹자.”

“응!”

희상이 삼촌 회사로 이직한 아빠도, 한국어 과외 학생을 모집하는 엄마도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

악령의 홍보를 위해 이지석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서준이는 저런 거 안 하려나?”

“아직 인터뷰하기에는 어리지 않나?”

“할 수 있어!”

시켜만 주면 할 수 있지만, 어째선지 쉐도우맨2 예고편이 나간 후로는 시나리오와 시놉시스, 광고 제안이 끊겨 버렸다.

이상 현상에 서준과 부부가 당황하는 것과는 달리 서은찬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돈 때문이지. 쉐도우맨2까지 찍는다고 확정된 배우에게 얼마나 줘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지는 중일걸? 게다가 할리우드 배우라는 이름값이 있지만 서준이가 나온다고 홍보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예측도 못 하고.”

다행히 악령의 흥행으로 조금씩 시나리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연료는 비싸겠지만 그만큼 값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작사들의 결론이었다.

“뭐,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 있어?”

“아니. 없어!”

아빠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출연료가 비싸지고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지금 들어오는 역할은 꼭 자신이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역할들이었다.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 엉엉 우는 아이. 이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역할은 역시 고만고만한가 보다. 확실히 악령의 아기 무당 역할이 독특하기는 했다.

[이서준 배우는 어떤 배우던가요?]

리포터의 질문에 가족들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서준은 이지석의 얼굴을 보았다.

처음으로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이 흥행하고 있었다. 이지석의 연기를 다시 봤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지석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이서준 배우는 엄청나죠. 처음에는 그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천재 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6살에 할리우드 영화라니. 마린사에서 공식적으로 공표한 사실은 아니지만, 그 정도의 힌트를 주면 알 사람은 다 알았다. 이서준은 쉐도우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게 천재가 아니면 뭘까.

[근데, 이서준 배우의 대본을 보니 아니더군요.]

[대본이 어땠길래?]

[본인 대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사를 공부했더군요. 아직 모르는 단어가 많은지…….]

이지석이 웃었다. 도깨비처럼 생긴 가방에서 빼꼼 튀어나왔던 대본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궁금해서 서준에게 보여달라고 하니,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었다.

이지석의 인터뷰를 보고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도 웃었다.

서준이 입술을 삐죽였다. 아니, 뭐! 한국어 배우는 거 처음이라고! 아니, 완전히 처음은 아니지만, 기억도 안 나는걸.

[알록달록한 펜으로 열심히 뜻을 적어놓고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참. 귀엽네요.]

[네. 귀엽죠.]

리포터도 이지석도, 인터뷰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미소를 지었다.

[이서준 배우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노력까지 하는 멋진 배우입니다. 같이 연기해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죠. 수혁과 아기 무당이 처음 만날 때, 저는, 진짜로 수혁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이서준 배우가 표현하는 신에게 압도당했죠.]

악령의 비하인드 이야기에 악령을 보았던 사람 중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화면 속 조명이 어두워지고 리포터가 조용히 물었다.

[악령 스태프 중 몇몇 분이 촬영 당시, 귀신을 봤다고 하던데요. 지석 씨는 보셨나요?]

귀신? 부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게 나왔다면 오컬트 마니아인 김희상에서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서준아. 귀신 봤어?”

“아니?”

서준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짐작은 간다.

그거다. 도깨비의 기운.

놋쇠로 만들어져서 노랗던 기운이 어두워서 황금색처럼 보였을 거다.

편집까지 끝난 악령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눈에 보였던 장면이 스크린에 그대로 나왔다.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지 상상도 못 했다.

“난 못 봤어.”

서준은 시치미를 뗐다.

[이번에 CG로 난리가 난 장면 있지 않습니까?]

[네. 진짜로 신이 무당의 몸에 강림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후기가 많았죠. 한국 CG가 이만큼 발전했다고. 소문으로는 악령 CG팀을 알려달라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요?]

리포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귀신이 야기를 하다가 CG라니? 이지석이 웃었다.

[CG로 봤던 황금색 불길 기억하세요? 이서준 배우의 몸을 감싸고 늑대처럼 제 곁을 뛰어다니고 제 몸에 불처럼 달라붙던.]

[당연하죠. 악령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인데, 그런 명장면을 기억 못 할 리가 없죠.]

[그게 귀신이었습니다.]

[……네?]

포도를 먹던 아빠가 컥- 소리를 내며 포도알을 뱉어냈다.

악령을 볼 때, CG가 참 멋있다며 좋아하던 이민준이었다. 그리고 그는 귀신을 무서워했다. 이민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민준뿐만이 아니라 인터뷰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리포터처럼 할 말을 잃었다.

이지석이 환하게 웃었다.

[저만 본 줄 알았는데, 최대만 감독님도 귀신을 보셨더라고요. 그래서 그 장면을 그대로 쓰면 좋겠다 싶어서 CG 담당자하고 같이 열심히 작업하셨답니다. CG 담당자분도 어쩜 그렇게 확실한 이미지를 가졌는지, 감독님을 대단하게 생각하셨답니다. 설마 그게 직접 본, 진짜 귀신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셨겠죠.]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CG 담당자가 입을 떠억 벌렸다.

[시사회 때 편집에 CG 작업까지 완료된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본 거랑 똑같이, 그대로 재연돼서요. 그것 때문에 감독님도, 다른 스태프분들도 다 그 귀신을 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유난히 ‘똑같이’라는 단어가 크게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감독이나 이지석만이라면 모르겠는데, 다른 스태프들도 똑같은 귀신을 봤다고 하니, 소름이 돋았다. 리포터가 겨우 말을 이었다.

[그럼 그…… CG가 전부?]

[풀샷만요. 풀샷 찍을 때만 보고, 그 뒤에는 못 봤습니다.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다른 촬영 때도 나와줬으면 제 연기가 더 실감 났을 텐데. 그래도 영화가 흥행하니, 역시 촬영 때 귀신을 봐야 성공한다는 게 거짓말을 아닌 것 같습니다.]

악령이 흥행하고 언제 피했느냐는 듯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는 주연 시나리오들 덕분에, 사는 게 행복해진 이지석이 아하하하 웃었다.

흥미로운 악령의 비하인드에 인터뷰 프로그램 게시판에 댓글들이 쌓여갔다.

-ㅋㅋㅋ이지석 진짜 아쉽다는 얼굴ㅋㅋ

-저런 거 재연하면 저주 안 받으려나? 감독도 배우도 제정신이 아닌 듯.

-내 친구 악령팀 스태프였는데, 퇴마씬 풀샷 찍을 때 박수 나왔대. 다들 넋 놓고 구경하다가ㅋㅋ 그중에 몇 명은 귀신 봤다더라ㄷㄷ

-어쩐지……. 이서준 연기. 처음에는 이질적이라서 귀신 본 것 같고 무서웠는데 악령이랑 싸울 때는 진짜 위대한 신 같더라. 착한 신이라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진짜 귀신이었다니. 소름.

어두운 조명에 아하하 웃고 있는 이지석. 누군가 보고 있는 듯, 싸한 느낌을 받은 리포터가 얼른 말을 돌렸다.

[이서준 배우가 아주 큰 일을 하셨다고요?]

리포터의 말과 함께 텔레비전 화면에 한 게시글이 떴다. 별생각 없이 인터뷰를 보고 있던 서준과 부부는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목 : 와. 나 이서준 봤는데 못 봤다.

글쓴이 : 준법질서

[이전 글 링크]

이거 읽고 와주라. 여기서 촬영했던 영화가 ‘악령’이고 날 구해준 아역 배우가 ‘이서준’임. 나는 기절하고 있느라 못 봤어…… 진짜…… 구해줘서 고맙다고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는데, 나보다 돈이 더 많더라.

짧은 글이 지나가고, 깁스한 다리가 나왔다. 얼굴은 나오지 않고 소년의 목소리만 들렸다. 소년은 쑥스러운 듯, 민망한 듯 말했다.

-멧돼지 잡는 구멍에 빠졌다가…… 진짜 이서준 배우가 안 구해줬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이서준 배우. 정말 고마워요!

“저 형이 서준이가 구해준 형이구나.”

“이제 괜찮나 봐!”

살짝살짝 움직이던 가슴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던 그때와는 달리 뚜렷한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역시, 반성문을 쓰더라도 구하는 게 옳은 일이었다. 서준이 활짝 웃었다.

그 후 한 달, ‘그게 귀신이었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남긴 악령은 흥행을 이어갔고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은 600만 관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적은 수였긴 했지만, 미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개봉했다.

* * *

날씨가 쌀쌀해져도 체온이 높은 아이들은 씩씩했다.

“안녕. 서준아!”

“잘 가! 나중에 놀자!”

서준이 유치원 친구들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대부분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지만, 엄마가 직접 유치원까지 데리러 온 아이들도 있었다.

엄마 손을 잡은 친구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유치원을 떠났다.

이제는 제법 할리우드 배우가 있는 유치원의 풍경에 익숙해졌는지 보호자들도 의연하게 서준에게 인사했다.

처음 서준이 유치원에 왔을 때를 생각해 보면 많이 나아진 상황이었다.

그때를 떠올린 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힘들었어. 아이들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데 보호자들이 들떠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결국, 이런 상황을 예측한 유치원 원장이 아이들 편으로 서준의 사인을 보호자들에게 보내기로 하자, 다들 진정했다.

“서준아. 춥지? 들어가서 기다릴까?”

서준이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매일 정확한 시간에 서준을 데리러 오는 서은혜는 오늘 늦게 온다. 왜냐하면, 해외여행을 가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를 배웅하러 갔기 때문이었다.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의 출발 시각이 애매해서 어쩔 수 없이 서준을 좀 더 유치원에 맡겨야 했다.

다들 해외여행이 처음이라서 패키지여행으로 가이드가 있었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서준은 새로 개방된 도서관에서 찾은 능력을 사용해 부적을 만들었다. 하루에 하나씩밖에 만들 수가 없어서 삼 일이나 걸렸다.

부적을 만드는 동안에는 다른 능력은 쓰지 못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도 [슬라임의 소화 능력]도. 사흘 동안 먹는 양이 적어져서 부부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서준은 아침에 서은혜의 집에 온 세 사람에게 부적을 건네주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손주가 준 반딧불이가 그려진 부적을 아주 소중하게 가방에 넣었다.

[(제작)반딧불이의 비껴가는 불운-하급]

찾아오는 불운이 비껴갑니다.

자세히 그리면 그릴수록 능력이 향상됩니다.

하루 한 번 사용 가능합니다.

사용법: 반딧불이를 그린 종이를 소유합니다.

사용기한: 2주(1인 1회-재사용 1년)

“이거면 큰일은 없겠지!”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