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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9화 (3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9화

“레디, 액션!”

바람이 나오는 기계가 작동했다. 서준이 입은 빨간색 무복이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움직였다.

“오랜만이다, 아가야. 네가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자랐는지, 역시 그때 먹어버릴 걸 그랬어.”

이지석이 거친 목소리로 말하고는 낄낄 웃었다.

“근데, 네 안에 든 것은 뭐냐! 이 내가, 노리던 것이었는데! 더 맛있게 자라기를 기다렸는데!”

서준이 들고 있던 무당 방울이 크게 흔들리며 째랑째랑 소리를 냈다. 이지석이 더더욱 거친 목소리를 냈다. 한쪽에 있던 스태프들이 그 목소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나보다 먼저 너를 차지한 그놈은 무어냐!!”

서준의 대사는 없었기 때문에 이지석은 알아서 타이밍을 맞춰야 했다.

‘아기 무당’과 ‘신’이 대화를 나눌 시간. 그런데 어쩐지 이지석은 서준의 표정을 통해 그들의 대화를 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서준의 표정이 조금 머뭇거리는 지금!

“크헥!”

이지석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크허허헉!”

여기서 악령의 목소리가 나오고, 서준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지석을 보았다.

또다.

그저 표정 연기뿐이었는데도 이지석은 서준과 신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모두 숨을 죽였다. 스태프 중 하나가 들고 있던 대본을 보았다. 옆에 있던 스태프들이 슬쩍 대본을 읽었다.

신 : 기다려. 기다려야 해.

아기 무당 :하지만. 저 형. 다쳤어. 치료해 줘야 해.

신 :(웃으며) 넌 너무 마음이 여려. 그래서 내가 선택했지만. 그래도 기다려.

“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서준의 표정 연기에서 신과 아기 무당의 대사가 그대로 들리는 것 같았다.

“빌어라, 빌란 말이다! 저 애는 여려서 네가 부탁만 한다면 바로 널 편안하게 해줄 것이야! 이렇게! 편안해지고 싶지?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지?!”

표정 연기로 저기까지 할 수 있다니, 이지석은 더욱 불타올랐다. 그도 손끝 발끝 하나하나까지 배역에 빠져들었다.

짤랑!

무당 방울이 흔들리고, 악령 연기에 빠져 있던 이지석은, 모니터를 뚫어지라 보고 있던 최대만 감독은, 그리고 일부 스태프들은 그것을 보았다.

한옥을 뒤로하고 서 있는 작은 아이의 몸에서 금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의 힘이 밖으로 드러났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뜨거운 열기처럼 하늘거리던 금색의 그것이 이서준을 감쌌다.

“어어…….”

그것을 본 한 스태프가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이서준을 가리켰지만, 아우라를 보지 못한 스태프들도 이서준과 이지석의 열연에 푹 빠져 있어 눈치채지 못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침만 꼴깍꼴깍 삼켜댔다.

드디어 서준이 입을 열었다. 첫 대사였다.

“천지신명께 비옵나이다.”

서준의 목소리에 이지석이 정신을 차리고 연기를 이어갔다.

“미천한 존재가 비옵나이다.”

“[email protected]^&%&@!!!!”

이지석은 자신이 정말로 악령이 되어 겁을 먹은 양 소리를 질렀다. 그 어마어마한 소리에 한발 물러서는 스태프도 있었다.

헛것인가? 이서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금색의 아우라와 함께, 이지석의 몸에서도 검은색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최대만 감독이 눈을 비볐다. 다시 보니, 금색의 아우라만 팔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위대한 혼을 이 몸에 강림하사,”

서준이 왼손에 있던 부적을 촥 날렸다. 연습 때처럼 도깨비의 기운은 멋있게 부적을 날려주었다. 넋을 놓고 두 배우를 구경하던 담당 스태프가 다행히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스위치를 눌렀다.

화르르!

둥그렇게 불이 붙자 이서준과 이지석이 서 있는 그곳만 다른 세계 같았다. 다 알고 있었는데도 스태프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무지몽매한 악을 불태울 힘을!”

서준의 목소리와 함께 금색의 아우라가 이지석에게로 달려들었다.

“?!”

진심으로 놀란 이지석이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우라를 볼 수 없는 스태프도 이지석의 연기에 숨을 삼켰다. 진짜로 불타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짤랑! 서준이 두 손으로 방울을 흔들었다. 저렇게 큰 소리가 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한옥 집 마당을 울리는 소리였다.

“그 근원까지 멸할 힘을!”

금색의 불길이 거세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 없이 불타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헛것이 열심히 불처럼 움직였다.

“네 덕분에 영혼 다루는 법을 좀 알 것 같다!”

이지석은 대사를 하고 제 주위를 날뛰는 금색 아우라를 질린 눈으로 보았다.

이거 진짜 헛것인가? 대박 날 영화에서나 보인다는 귀신? 도깨비불? 얼떨결에 정답을 맞힌 이지석이 헛것이 타이밍 좋게 사라지자 바닥으로 쓰러졌다. 서준이 주저앉았다.

끝이었다.

“컷.”

두 손을 꽉 쥐고 모니터와 현장을 번갈아 보기만 하던 최대만 감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OK!”

이서준과 이지석이 대화를 나누려던 찰나, 조감독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쳤다.

짝-

짝짝-

짝짝짝!

“와아아!”

스태프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일단, 좀 쉴까요?”

“네. 감사합니다.”

“아니요. 그렇게 엄청난 연기는 처음 봤습니다.”

서준과 이지석은 흙먼지를 대충 닦아내고 모니터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최대만 감독과 조감독도 의자에 앉았다.

“일단 보시고 이야기하죠.”

최대만 감독이 두 배우에게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악령의 목소리와 신의 목소리는 고려하고 보셔야 합니다.”

최대만의 말대로 연기 중간중간이 대사 없이 텅 비었지만, 두 배우의 목소리와 몸짓만으로도 화면이 꽉 채워져 어색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지석은 화면을 열심히 보았지만, 귀신의 기역 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헛것이었나 보네.

영상이 끝나고 이지석이 웃으며 말했다.

“대사가 없어도 되겠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두 분 다 너무 잘하셔서. 나중에 이 영상을 내보낼 기회가 있으면 꼭 내보내고 싶습니다.”

“서준이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서준이 자니?”

“……네에?”

서준이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어른들이 웃었다. 아직 6살이었다. 저런 엄청난 연기를 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최대만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만 가서 자렴.”

“바스트……. 찍어야 하는데…….”

“한 번에 오케이 나와서, 내일 찍어도 돼. 어차피 모레까지는 여기서 촬영하는걸.”

“그래. 나도 오늘은 너무 열심히 했나 봐. 피곤해서 일찍 자야겠어.”

감독님에 이지석 배우까지 그런 말을 하니, 서준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잘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푹 쉬어!”

서준의 뒤에 앉아 있던 김희상은 서준을 들어 올렸다. 김희상의 품에 안긴 서준은 금세 잠이 들었다.

“와, 감독님. 이거 보세요. 손이 떨려요.”

아역 배우 앞에서 여유 있는 척하고 있던 이지석이 서준이 사라지자마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손을 들어 보였다.

처음부터 이지석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던 최대만 감독이 웃었다. 조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촬영이 끝났다고 알리러 갔다.

“진짜 서준이한테 먹히는 줄 알았어요.”

“거의 대등하던데요.”

“대등요? 서준이랑 제가 대등하면, 그게 큰일이죠.”

큰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치고는 얼굴색이 밝았다. 이지석이 즐겁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촬영은 오랜만입니다. 진짜 아무 생각 안 하고 연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악령이 되고, 수혁이 되고. 신에게 겁먹고. 그리고…… 불타고.”

불이라니까, 아까 아우라가 떠올랐다. 그건 진짜 헛것이었을까. 이지석은 그때,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던 자신의 발목을 매만졌다.

“저도…….”

최대만 감독이 저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매만졌다.

“저도 어떻게 편집을 해야 할지, 기대되고 가슴이 뛰네요.”

아까 보았던 그대로, 금색의 아우라를 재연하면, 어쩌면 예상했던 것보다 멋진 화면이 나올지도 몰랐다.

자신만 그 아우라를 봤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 하하 웃었다.

“그렇네요. 감독님이 제일 먼저 완성본을 보시죠? 아, 진짜. 제가 출연하는데도 상상이 안 가네요. 어떤 영화가 될지.”

“지석 씨도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은 바스트하고 클로즈업까지 찍을 겁니다.”

“근데, 내일도 이 정도로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생각해도 온 힘을 쏟아낸 촬영이었다. 풀샷 촬영이라서 카메라가 시야에 없었다. 그래서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또 찍는다고? 그것도 바로 앞에 카메라를 두고? 이지석의 걱정에 최대만 감독이 웃었다.

“잘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풀샷만 영화에 넣어도 완벽할 테 까요. 걱정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는 못하고, 최선을 다해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농담을 나누며 웃었다.

다음 날.

온몸에 마나가 가득 차, 팔팔하게 생기가 도는 서준 덕분에, 바스트 샷도 클로즈업 샷도 풀샷 이상으로 찍혀 버렸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결과에 최대만 감독의 입은 귀에 걸려 버렸고 이지석은 뻗어버렸다.

“난 이제 못해. 진짜 못해.”

아우라는 보이지 않았지만, 풀샷 때보다 더 압도적인 서준의 연기력 탓에 그에 지지 않으려고 어제보다 더 노력한 이지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불 위에 드러누웠다.

서준이 할머니가 준 만두를 들고 왔다. 지석이 형은 이불도 덮지 않고 축 늘어져 있었다. 며칠 동안 빙의된 연기를 하려니 많이 힘든 것 같았다.

“지석이 형, 할머니가 만두 먹으래요.”

“난 못 먹어. 서준아. 형은 너무 힘들어. 늙었나 봐.”

“만두 맛있는데.”

서준이 한입 가득 만두를 물고 우물거렸다.

이불 위에 누운 이지석이 서준을 보았다. 어제는 하나만 찍어도 꾸벅꾸벅 졸더니, 오늘은 두 번을 찍었는데 왜 이렇게 팔팔하냐?

그거야 도깨비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으며 박쥐 흉내를 낸 탓이었으나, 이지석이 알 리가 없었다.

서준이 열심히 만두를 먹었다. 고기만두 맛있어! 할머니가 만든 손반죽 피에 서준이 만두소를 가득 넣어 만든 수제 만두였다. 냠냠 맛있게 먹는 서준의 모습에 이지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힘이 들기는 하는데, 만두가 참 맛있어 보였다.

“형도 하나만 주라.”

“여기 있어요. 이건 김치만두, 이건 고기만두.”

“고기만두로 줘.”

이지석도 만두를 한입 물었다.

“와. 진짜 맛있네?”

“할머니가 만든 손칼국수도 엄청 맛있어요.”

“그래?”

이지석과 서준은 만두를 먹으면서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 ‘악령’의 마지막 촬영 날.

오늘만 찍으면 영화 촬영이 모두 끝이 났다. 오늘 찍을 신도 영화에서 마지막을 장식할 장면이었다.

“그게 멧돼지 잡는 구덩이였대.”

“멧돼지?”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옷 입고 분장을 받던 서준이 되물었다. 서준의 옆에서 어디론가 바나나톡을 보내고 있던 김희상이 입을 열었다.

“요즘 밭에 멧돼지가 나타나서 그거 잡으려고 멧돼지가 잘 다니는 길에 구덩이를 파놓았대. 마을 사람들에게는 일주일 전에 다 알려줬는데, 마침 그 아이가 나흘 전에 할아버지 집에 놀러 왔다더라고.”

“저도 들었어요.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라 주변 지리도 잘 아는 아이였대요. 아침 일찍 나가서 여기저기서 밥도 얻어먹고 밤늦게 들어온 적도 많아서 어제도 별걱정 하지 않았다는데. 더 늦게 발견됐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어제 의식 돌아왔대. 서준이 덕분에 빨리 발견돼서 다리만 나으면 문제없다더라.”

“이히히.”

“혼자 뛰어간 거 엄마랑 아빠한테 다 보고했어. 앞으로는 딱 삼촌 옆에 붙어 있어야 해.”

“으응.”

김희상이 휴대폰 화면을 서준에게 보여주었다.

>형 구한 건 잘했지만, 삼촌이랑 같이 갔어야지!

>돌아오면 반성문이야!

>삼촌 손 잡고 다녀!

서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축 늘어진 서준의 어깨에 김희상이 이마를 긁적거렸다. 김희상이 기운이 빠진 서준을 위로하려고 할 때.

“리허설 준비할게요!”

“네!”

축 늘어져 있던 서준이 어느새 기운을 차리고 반짝반짝 웃으며 촬영장으로 향했다.

반성문은 나중에 걱정하고 얼른 촬영하러 가야지!

거의 날아갈 듯 나가는 서준을 보며 김희상이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엄청 좋은가 보네. 연기.”

이번 촬영을 마지막으로 영화 ‘악령’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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