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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8화 (3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8화

서준이 쭈그려 앉았다.

구덩이였다.

거의 3M 정도 깊이의 구덩이 안에 눈을 감고 있는 흙투성이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한쪽 다리가 꺾여져 있었다.

서준이 고개를 쭉 내밀어 소년을 관찰하려는데 김희상이 얼른 서준의 눈을 가렸다. 죽었나? 입술을 깨물었다.

“서준아, 저 형이 지금…….”

“형, 배 움직여. 다리만 아파.”

서준의 눈에 숨을 쉬듯 위아래로 움직이는 소년의 가슴이 보였다. 그 말에 김희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19!”

“그래, 잠시만.”

서준의 재촉에 김희상이 얼른 휴대폰을 들어 119에 전화를 하고 바로 조감독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2번도 울리지 않았는데 조감독이 받았다.

“아, 조감독님. 여기 아이가 한 명 사고를 당해서요. 아뇨. 서준이는 아니고요. 마을 아이 같은데, 구덩이에 빠져서……. 지금 기절한 것 같습니다. 다리가 한쪽 꺾였어요. 얼른 마을 사람들도 부르고, 구급차도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가 어디냐면, 서낭당 뒤쪽 오솔길에서 풀숲 쪽으로 좀 더 들어와서…….”

김희상이 길을 알려주는 사이 서준은 입술이 시퍼렇게 변한 소년의 위로 도깨비의 기운을 이불처럼 덮여주었다.

남은 기운으로 찬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구덩이에 뚜껑을 덮었다. 이러면 춥지는 않겠지.

나름 온기가 도는지 소년의 안색이 나아졌다. 좀 더 힘이 있었더라면 여러 가지 조치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워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준아. 너도 빠지겠다.”

김희상이 바닥에 엎어질 듯 구덩이 가까이에 다가가는 서준을 얼른 안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대만 감독과 함께 사람들이 나타났다. 다들 구덩이 안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얼른 들어가서 꺼내야지!”

“함부로 건드리면 다른 데 충격이 가서 더 큰 일 날지도 몰라!”

“저, 저기. 제가 의사입니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헉헉거리며 연신 숨을 몰아쉬는 외지인에게로 향했다. 사고가 생겼다고 해서 열심히 따라왔는데 체력이 달려서 너무 힘들었다.

“한옥 주인 아들입니다. 영화 촬영 구경하러 왔답니다.”

조감독의 말에 최대만 감독과 사람들이 얼른 부탁했다. 의사의 도움으로 소년은 안전하게 구조되어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촬영팀은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서준은 또 밤 촬영이라 낮잠을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좀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힘들면 오늘내일 나눠서 찍을 거야.”

최대만의 말에 조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오시네요. 배우분들.”

이지석과 서준은 분장을 하고 촬영 장소에 나타났다. 조감독과 최대만 감독이 두 배우를 반겼다.

‘악령’의 대미를 장식할, 악령 퇴치 장면은 한옥 마당에서 촬영했다. 아기 무당과 악령의 힘을 보여줄 장비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최대만 감독이 두 배우를 데리고 차근차근 설치된 장비와 작동되는 순서에 관해 설명했다. 바람 나오는 기계. 불붙는 장치. 대본에는 있던 것들을 온갖 장치로 구현해 내는 것을 보니 신기해 서준은 열심히 질문했다.

불이 들어올 부적 모양의 장치들을 점검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이런 데서 연기하려면 좀 그렇겠다.”

“하긴 레드본1도 죄다 초록색 크로마키에 옷에도 센서를 붙이고 연기하잖아. 공격도 거의 다 CG라서 그냥 팔만 뻗고. 그런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하는 게 대단한 거지.”

“그건 그래.”

악령과 신의 싸움.

장치들을 설치하고 있던 스태프들은 화려한 CG가 들어간 영화와는 달리, 아무 효과도 들어가지 않는 두 배우의 연기가 조금 민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할 때는 어색할 수도 있지만 CG 작업과 편집을 하면 아주 멋지게 나올 겁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기 부탁합니다. 그럼, 먼저 풀샷부터 찍겠습니다.”

다들 자신의 자리로 향할 때 최대만 감독이 서준을 불렀다.

“서준이는 대사할 때, ‘내면의 신’의 대사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줘야 해.”

“네!”

서준이 최대만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섰다.

카메라들과 조명이 보였고, 이지석도 보였다. 서준이 조용히 속삭였다.

“김 서방, 놀자.”

[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가 발동됩니다.]

몸속의 기운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사람 같이 생긴 기운이 장난기를 못 참고 흐느적흐느적 춤을 췄다.

-레디,

이제 이 기운을 마음껏 풀어낼 때였다. 김 서방을 놀리던 그때처럼!

-액션!

바람이 불었다.

아기 무당이 입은 새빨간 무복이 살랑살랑 움직이고 아기 무당이 들고 있던 무당 방울이 조용히 흔들렸다.

짤랑짤랑.

아기 무당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랜만이다. 아가야.]

남자가, 아니, 악령이 입을 열었다.

[네가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자랐는지, 역시 그때 먹어버릴 걸 그랬어.]

남자의 몸을 차지한 악령이 낄낄 웃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힘이 어찌나 강한지, 아기 무당은 태어났을 때부터 온갖 귀신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 귀신들을 막아주던 것이 엄마 아빠였다.

아기 무당이 흐릿한 기억 속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항상 웃고 있던 두 사람은 악령의 힘에 당해 그대로 영영 떠나버렸다.

[근데, 네 안에 든 것은 뭐냐!]

바람이 휙 불었다. 그 말 한마디로도 아기 무당의 무복을 거칠게 흔들 힘을 가진 악령이었다. 악령이 날뛰었다.

[이 내가, 노리던 것이었는데! 더 맛있게 자라기를 기다렸는데!]

아기 무당의 무당 방울이 크게 흔들리며 째랑째랑 소리를 냈다.

[나보다 먼저 너를 차지한 그놈은 무어냐!!]

악령이 입이 찢어질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기 무당은 가만히 있었다. 그저 때를 기다렸다. 속 안의 신이 속삭였다. 좀 더 기다려. 좀 더. 좀 더.

아직 아니야.

아기 무당도 그렇게 생각했다.

악령이 날뛰었다. 저 악령도 알고 있었다. 저 아기의 입을 열어 힘을 쓰게 만들어야 했다. 악령은 생각했다. 내가 안 된다면.

“크헥!”

네가!

“크허허헉!”

악령이 힘을 거두자 수혁이 다시 자신의 몸을 차지했다. 악령에게 조종당한 몸이 끈 잘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겨우 숨만 내쉬고 있는 수혁에게 악령이 속삭였다.

[저 애뿐이다. 날 떼어낼 수 있는 건. 빌어라! 빌고 또 빌어! 얼른 날 없애라고 빌란 말이다!]

수혁은 천천히 숨을 진정시켰다.

아기 무당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러나 안쓰러운 눈빛으로 수혁을 보았다.

저 남자도 엄마와 아빠처럼 악령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신이 말했다.

기다려. 기다려야 해.

하지만. 저 형. 다쳤어. 치료해 줘야 해.

넌 너무 마음이 여려. 그래서 내가 선택했지만.

신이 웃었다. 아기 무당이 수혁을 처음 봤을 때 얼른 문을 닫았던 건 더 보고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다려.

주저하던 아기 무당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저를 자식처럼 돌봐주던 신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아기 무당을 보았다. 몸은 고통스럽고 영혼은 괴로워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기 무당을 보았다.

[빌어라, 빌란 말이다! 저 애는 여려서 네가 부탁만 한다면 바로 널 편안하게 해줄 것이야! 이렇게!]

수혁의 몸에 한순간 편안함이 찾아왔다. 그래. 악령에게 빙의당하기 전의 몸 상태였다.

[편안해지고 싶지?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지?!]

악령이 소리쳤다.

[그럼 빌어!]

폭풍처럼 거세게 부는 바람에 아기 무당이 들고 있던 무당 방울이 미친 듯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째랑째랑 들리는 방울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 누구도 귀를 막지 않았다.

수혁이 피식 웃었다. 더 참지 못하고 낄낄 웃다가 입을 열었다.

“꼬마야.”

수혁의 부름에 아기 무당이 입을 벙긋 열었다 닫았다. 수혁이 아기 무당을 보았다. 그 눈빛이, 아빠를 닮아 아기 무당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네가 할 일을 해.”

지금이다.

신이 속삭였다.

달이 떴어.

아기 무당이 하늘을 보았다. 샛노란 보름달이 짐승의 눈처럼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름달이야.

아기 무당이 고개를 내려 수혁과 그 안의 악령을 보았다. 신이 말했다.

그리고 네 생일이지.

3년 전 오늘, 엄마 아빠가 죽었다.

아기 무당이 두 손을 들었다. 오른손에는 엄마가 사용하던 금색의 무당 방울이, 왼손에는 아빠가 쓰던 붉은 글씨의 부적이. 두 사람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는 물건들.

그동안 무언 수행하느라 고생했어.

[안 돼에에!]

신의 말과 동시에 다시 수혁의 몸을 차지한 악령이 소리쳤다. 아기 무당에게 달려나가려는 몸을 수혁의 영혼이 붙잡았다. 온몸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젠장! 저 꼬마는 3년 동안 말도 못 하고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고! 이제 겨우 7살인 애가! 웃고 우는 게 일인 꼬맹이가!”

[꺼져라! 인간!!]

“가려면, 죽이고 가라! 이 새끼야아!!”

짤랑.

바람이 불었다. 악령의 힘으로 아주 거세게 불었다. 하지만 아기 무당의 방울은 조용히 짧게 울었다.

짤랑.

아기 무당은 신의 도움으로 3년 동안 모아온 힘을 부적과 방울에 불어넣었다.

아기 무당의 뒤로 거대한 아우라가 생겼다. 노란 달빛을 닮은 신의 힘이 아기 무당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금색의 바람과 함께 아기 무당의 무복이 흔들렸다. 커다란 무언가가 아기 무당을 감싸 안았다.

어마어마한 신의 힘에 몸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했다.

아기 무당이 부적을 들었다. 아무 힘없이 바람에 흔들리던 부적이 뻣뻣하게 섰다.

부적에 쓰인 붉은 주문이 반짝였다. 아기 무당은 신이 가르쳐 준 주문을, 3년 내내 속으로만 중얼거렸던 주문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천지신명께 비옵나이다.”

[안 돼에에!]

“못 간다니까!!”

수혁의 몸이 혼자서 발광했다. 악령의 힘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가면 수혁의 힘으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 틈에 몸의 오른쪽 눈을 차지한 수혁이 조금씩 눈물을 흘리는 아기 무당을 바라보았다. 수혁의 눈빛은 따스했다.

“미천한 존재가 비옵나이다.”

[[email protected]^&%&@!!!!]

자, 마지막이다.

신이 속삭였다.

모든 것을 아는 신이 몸속에 들어오는 바람에, 아기 무당은 뭐든지 알고 있었다.

아기 무당은 악령을 막아내며 상처투성이가 되는 수혁을 보았다.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악령의 말대로 수혁이 부탁했다면, 아기 무당은 수혁의 부탁을 들어주고 악령에게 잡아먹혔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그러지 않았다.

아기 무당이 악령이 물리치면 수혁도 죽는다. 수혁은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죽으면 안 돼.

역시 넌 너무 여려.

한숨을 쉰 신이 아기 무당에게 다른 미래를 보여주었다. 눈물로 흐릿하던 아기 무당의 눈이 반짝였다.

어때?

좋아!

내가 사라지는데?

안 보여도 넌 내 곁에 있을 거잖아!

신이 두 손을 들었다. 역시 못 이겨.

아기 무당의 목소리에 이질적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위대한 혼을 이 몸에 강림하사.”

아기 무당의 왼손에 있던 부적이 촤르르 날아가 악령을 둘러쌌다. 그리고 화르르 불이 붙었다. 아기 무당은 두 손으로 방울을 잡았다.

[!#$^#!!!!!]

“잘했어.”

어쩌면 수혁도 자신이 죽을 것을 예상했을지도 몰랐다. 아기 무당이 있는 힘껏 방울을 흔들었다.

짤랑!

“무지몽매한 악을 불태울 힘을!”

달빛을 받은 금색의 아우라가 금색 짐승처럼 악령에게 달려들었다. 금색의 불에 타오르듯, 수혁이 불꽃 안에서 온몸을 비틀었다.

악령이 소리쳤다. 비명을 질렀다. 수혁도 뜨거운 불길에 타들어 가는 영혼에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다.

짤랑!

“그 근원까지 멸할 힘을!”

마치 황금으로 만든 것 같은 불이 점점 거세졌다. 사라져가는 힘에 검은 악령이 수혁의 몸을 탈출하려고 발버둥 쳤다. 이곳을 벗어나려는 악령을 수혁의 영혼이 낚아챘다.

“네 덕분에 영혼 다루는 법을 좀 알 것 같다!”

[!#%#$&@!!!!]

수혁의 손에서도 신의 손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악령은 비명을 지르다 사그라들었다.

불태울 악령을 발견하지 못한 금색 불꽃도 먹이를 찾는 짐승처럼 수혁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곧 잠잠해졌다.

비명으로 가득했던 마당이 조용해졌다.

결국,

사라진 것이다.

고통이 끝나자 수혁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아기 무당도 주저앉았다.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쓰러진 수혁을 바라보았다.

-컷, OK!

최대만 감독의 목소리와 함께 정신이 돌아왔다.

서준이 자신의 손을 보았다. 얼마나 세게 방울의 손잡이를 잡았는지 붉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집에서 연습했을 때보다 몰입한 것 같았다.

서준이 조심히 가슴에 손을 올렸다. 쿵쿵 심장이 뛰었다.

[웃는 얼굴 버섯의 환상]은 자동으로 발동되었기 때문에 서준이 연기에 빠져 있어도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가만히 몸 안에 넣고 있어도 되는 첫 촬영 때와는 달리, 온몸으로 기운을 내뿜고 사라지게 만들어야 했다. 도깨비의 기운까지 연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서준은 메소드 연기에 몰입해서 [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를 사용하는 걸 까먹을까 봐, 몸에 익을 정도로 도깨비의 기운을 내뿜는 연습을 했다.

“근데, 생각보다 잘 됐어.”

서준이 이히히 웃었다.

“헉!”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지석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다.

앗. 서준이 흙투성이가 된 이지석을 발견했다. 지석이 형도 엄청 연기 잘했지. 진짜 악령에 빙의당한 것 같았다.

서준이 이지석에게 다가와서 괜찮냐고 물으려던 순간,

짝-

짝짝-

짝짝짝!

“와아아!”

스태프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대만 감독과 조감독도 두 배우에게 감탄의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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