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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6화 (3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6화

모두 사인을 받고 다시 자기 일을 시작했다. 조감독과 함께 김희상과 서준은 촬영할 동안 머물기로 한 파란 대문집으로 향했다.

조감독이 여러 문 중 하나를 열었다. 할머니 취향이 듬뿍 들어간 꽃무늬 이불과 베개가 잘 개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밭일하러 가셨네요. 이 방이에요. 이불이랑 베개도 있고 화장실은 저쪽이고. 배고프면 부엌 냉장고에서 뭐든지 꺼내 드셔도 된대요. 이건 스태프들 연락처고 필요한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서준이가 나오는 장면은 해가 져야 찍을 수 있으니, 그전에 푹 쉬어두세요.”

“알겠습니다.”

“서준이도 촬영 때 안 졸리게 푹 자둬.”

“네!”

조감독이 방을 나서고 김희상이 이불을 폈다.

“자동차 오래 타서 힘들지 않아?”

“음. 조금?”

“그럼 낮잠 잘까? 푹 자고 일어나서 저녁 먹고 촬영하러 가자.”

“응!”

서준이 꽃무늬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갔다. 포근포근한 이불을 덮고 베개에 머리를 대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여름 곰의 겨울잠이 발동됩니다.]

“서준아?”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김희상의 부름에도 서준은 색색거리며 잘도 잤다.

“많이 피곤했나?”

김희상이 피식 웃으면서 서준의 짐을 정리했다.

* * *

해가 졌다.

이제 촬영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서준은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을 먹었다. 조그마한 아기가 맛있게 먹으니 할머니가 자꾸자꾸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서 김희상은 거절하느라 바빴다.

“맛있어?”

“응!”

아주 푹 자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서준이 입 한가득 밥과 반찬을 넣었고 꼭꼭 씹어 먹었다.

8개월 때부터 먹방을 찍더니 아주 먹방 장인이 되어버렸다. 아주 복스럽게 먹는 서준의 모습에 김희상도 할머니도 숟가락 가득 쌀밥을 펐다.

저녁도 다 먹고 스태프가 호출할 때까지 김희상과 서준은 서준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몬스터 그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건 이것보다 진한 색인데, 크레파스가 24색이라서 이렇게 색칠했어.”

“그러면 이 정도 색이면 돼?”

김희상이 휴대폰에서 색상표 중 하나의 색을 보여주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음은, 이건데. 이게 뭐야? 털?”

“이건 더듬이야.”

서준이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김희상은 경청하며 노트에 써 내려갔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모자를 쓴 스태프가 조용히 문을 열다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고 있던 서준과 눈을 마주쳤다.

“벌써 일어났어요?”

“네!”

“딱 좋네요. 이제 촬영할 시간이에요. 저기 뒤에 한옥으로 오시면 돼요.”

스태프가 가고 김희상과 서준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7월, 서울은 밤까지 더웠지만, 오계리는 시원했다.

“더 늦어지면 추울지도 모르겠다.”

김희상이 방으로 들어가 담요와 손난로를 들고 왔다. 서준과 김희상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슬레이트 지붕이 가득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한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한옥의 담장을 따라 걸으니, 집이 엄청 큰 것 같았다.

“서준이가 자는 동안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이 집 주인 가족이 엄청 똑똑한 사람들이래. 전부 유명한 의사에, 판사에, 변호사에. 터가 좋을 걸까?”

“터가 뭐야?”

“음. 저기 산이 있지? 요 앞에는 강이 있고. 그 산이 주는 힘하고 강이 주는 힘이 이 한옥으로 모여서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거야. 그게 돈을 많이 벌게 해주는 힘일 수도 있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똑똑해지게 하는 힘일 수도 있지.”

서준의 시선이 김희상의 손가락을 따라 산을 보았다가 강을 보았다.

“신기하네!”

“그렇지?”

한옥의 구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희상이 잡다한 지식이 많아 신기한 이야기를 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니, 어느새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이지석과 이야기를 나누던 최대만 감독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어때? 시간이 늦었는데 잠은 안 오고?”

“낮잠 잤어요!”

“그래. 잘했어.”

“분장실은 이쪽이니까 같이 갈까?”

이지석이 서준과 함께 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가지 옷이 걸려 있고 커다란 거울과 의자가 있었다. 이지석과 서준이 스태프의 안내대로 의자에 앉았다.

“말하면 안 돼요.”

“음!”

입을 다물고 대답하는 서준에 스태프들은 너무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서준의 분장을 맡은 스태프는 조심스럽게 붓을 움직였다. 이지석은 왠지 찬밥신세가 된 것 같았다.

“잘 어울리는데?”

서준이 옷을 입고 나왔다. 아기 무당이 잘 때 입는 새하얀 소복이었다.

서준이 소복을 매만졌다. 설날이나 추석 때 한복을 입기는 했지만, 이렇게 색이 하얀 옷은 처음 입어봤다. 김희상이 소복을 천을 만져보았다. 조금 얇은가?

“추워?”

“아니!”

“추우면 말해.”

“응!”

이지석이 분장을 마치고 나왔다. 서울에서, 그리고 이 마을에 올 때까지 악령에게 공격당한 수혁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와!”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피가 묻고, 먼지투성이가 된 모습이었다. 얼굴도 상처투성이였고 한쪽 눈도 진짜 부은 듯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옷도 걸레 짝이 된 듯 너덜너덜했다. 김희상도 실제로 보는 영화 특수 분장에 놀랐다.

“와. 진짜 같네요.”

“우리 팀 실력이 이 정돕니다.”

어느새 온 조감독이 자랑했다. 그러고는 두 배우와 김희상을 촬영 장소로 안내했다.

“리허설은 동선만 확인할 거예요. 두 배우분 다 아주 연기력이 뛰어나셔서 감정 소모가 심할 것 같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거든요. 게다가, 풀샷에 바스트 샷에 클로즈업 샷까지 찍으려면, 리허설 때 힘 빼는 건 안 좋죠.”

첫 촬영 장소는 한옥의 커다란 나무 대문 앞이었다. 이미 여러 대의 카메라와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고, 모니터로 배경을 확인하던 최대만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서준이도 지석 씨도 참 잘 어울리네요. 그럼 동선 확인부터 할까요?”

최대만 감독은 자세히 알려주었다. 서준과 이지석은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주의 깊게 들었다.

그사이 김희상은 대문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갔다. 이쪽도 서준을 찍기 위해 카메라와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촬영 시작합니다!”

간단히 리허설이 끝나고 본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모두 자신의 위치에 섰다.

새하얀 소복을 입은 서준이 커다란 나무 대문 앞에 섰다.

서준이 맡은 역은 무시무시한 신을 내면에 품고 있는 아기 무당.

대사는 아주 적었지만, 반대로 몸으로 표현할 것이 많았다.

감독의 신호가 나오기 전, 서준이 나무문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김 서방, 놀자.”

[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하급-이 발동됩니다.]

* * *

[방울 도깨비의 김 서방 놀리기-하급]

방울 도깨비의 기운이 뿜어져 나옵니다.

기운의 형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무당 방울의 힘으로 아주 드물게 김 서방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발동 : 김 서방, 놀자

취소 : 김 서방 놀리기 끝

* * *

방울 도깨비는 오래된 무당의 방울에서 태어난 꼬마 도깨비였다.

방울 도깨비는 지나가는 김 서방들을 놀리는 재미로 살았다.

이질적인 기운을 내뿜어 몸집을 두 배, 세 배로 크게 만들거나 놋쇠로 만들어져 노란색을 띠는 기운을 새까맣게 만들어 어둑서니 흉내를 내기도 했다.

방울 도깨비가 사는 산에 자주 드나들던 김 서방 하나가 있었는데, 몇 번을 만나도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 친근감이 들었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김 서방?’

‘너 같으면 익숙해지겠느냐!?’

정체를 드러낸 방울 도깨비는 때때로 김 서방에게 도토리묵을 받기도 하고 선물을 주기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갓인데…….’

‘이히히히.’

‘내 것이잖아!?’

어느 날, 아주 드물게 방울 도깨비가 김 서방의 앞날을 보았다. 방울 도깨비는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 서방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안 방울 도깨비는 친구인 김 서방 대신 사지로 뛰어들었다.

‘야! 네가 왜!’

‘김 서방보다 내가 오래 살았으니까!’

김 서방은 자신 대신 목숨을 바친 도깨비 친구를 위해, 깨진 무당의 방울을 오래된 나무 속에 넣고 제사를 지냈다.

‘다음에 만나면 아주, 혼쭐을 내주마.’

* * *

가슴 가운데서 무언가 움직였다. 서준은 한 달 반 동안 연습했던 것을 꺼내놓았다.

도깨비의 기운을 사람의 형태로 만들어 몸속에 넣었다. 정말로 내면에 무언가가 있는 듯이.

이 형태를 만드느라 고생했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사람이 아니어야 했고 내면에 있지만, 밖으로도 그 기운이 어느 정도 나타나야 했다.

찰흙을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형태를 만들었는데 어쩐지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고 눈빛이 무서운 ‘것’이 만들어졌다.

-레디.

쉐도우맨을 촬영했던 그때처럼 최대만 감독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조금 자란 탓인지 자각도 없이 빨려 들어갔던 그때와는 달리 조금은 생각할 수 있었다.

‘아, 이제 시작하겠구나.’

겨우 이 정도였지만.

-액션!

아기 무당의 신은 매우 대단하고, 무시무시한 신이었다. 이름도 밝히지 않았지만, 그 정도로도 아주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아기 무당의 소문은 마을 내부만을 떠돌았다. 그 위대한 신의 힘이 그렇게 만들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신의 힘이 아기 무당의 몸속에 자꾸만 쌓였다.

쿵쿵!

그래서 알았다.

쿵쿵!

아기 무당이 나무 대문을 열었다. 눈앞에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남자. 남자는 상처투성이였다. 한쪽 다리를 절고 눈은 부어 있었다. 아기 무당은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저것.

남자의 안에 있는 것.

악한 것.

“여기 용한 무당이 있다던데…….”

말을 하던 남자가 멈칫했다.

아기 무당은 고개를 들어 남자의 머리끝부터, 고개를 내려 발끝까지 보았다.

악한 것.

저것이다. 저것이 너의 부모를 죽였다.

남자의 몸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 아기 무당의 눈에는 다 보였다.

시꺼먼 악령은 춤추는 불꽃처럼 저를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끝내 아기가 놀랄까 봐 숨을 죽이며 조용히 죽어가던 부모의 모습이 보였다.

쿵!

모든 것을 아는 아기 무당이 나무 대문을 닫았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컷! OK!”

뒤를 돌아선 서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 중얼거렸다.

“김 서방, 놀리기 끝.”

카메라 밖에 있던 희상이 얼른 달려와 담요를 둘러주고 손난로를 서준의 손에 가져다 댔다.

“괜찮아, 서준아?”

“괜찮아! 쉐도우맨 때도 끝나면 조금 힘이 빠졌어.”

다행히 6개월이 지나는 사이 ‘몸’이 많이 자라 이제는 제법 힘이 남아 있었다.

“그 정도로 집중했구나. 잘했어.”

김희상은 서준의 머리를 토닥이고 서준을 안아 최대만 감독에게로 향했다. OK가 나면 찍었던 장면을 모니터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사전에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김희상이 나무 대문을 밀었다. 음? 생각보다 빡빡했다. 조금 더 힘을 주자 문이 열렸다.

“꽤 힘이 들어가는걸. 서준이가 힘이 센가? 쉽게 밀던데.”

“아닌데. 엄청 쉽던데.”

서준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서 문을 여닫는 시늉을 했다. 그런가? 김희상이 손을 몇 번 쥐었다 펴며 나무 대문을 보았다. 제법 큰 나무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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