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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5화 (3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5화

영화 ‘악령’의 촬영장 근처 삼겹살집.

주인공 김수혁 역을 맡은 이지석이 한턱내기로 했다. 모레부터 지방촬영이 있어서 내일은 촬영이 없었다. 모두 신이 나서 술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최대만과 조감독은 주연배우 이지석과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촬영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회식에서까지 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들은 슬금슬금 그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분위기가 좋네요.”

이지석이 말했다. 한참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세 사람이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리는 스태프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드물어요.”

최대만 감독도 웃었다.

“오랜만의 주연이라서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합니다.”

“아뇨. 저야말로. 첫 장편 영화라서 지석 씨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지석이 씨익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최대만과 조감독도 술잔을 들었다.

짠!

“그러고 보니 아역 배우는 언제 만나는 겁니까?”

“다음 촬영 때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아이인지 궁금하네요.”

옆에서 조감독이 입이 근질근질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어! 하지만 바로 옆자리에서 쳐다보는 최대만 감독 때문에 조용히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 아역 배우 오디션은 어땠습니까?”

“잘했어요! 엄청!”

정체만 말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결국, 참지 못한 조감독이 입을 열었다. 최대만 감독도 두 달이면 많이 참았지 하고 무언으로 허락했다. 신이 난 조감독이 다른 스태프들도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와! 속 터져 죽는 줄! 감독님. 정체만 말 안 할게요! 오디션만요!”

할아버지에게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처럼 스태프들의 시선이 모두 조감독에게로 모였다.

“처음 딱 봤을 때도 엄청 잘생겼더라고요. 꼬만데 나이답지 않게 말도 잘하고 대본도 다 외워오고. 뭐, 그 정도는 그전 오디션에서도 몇 명 있었죠.”

신이 난 조감독이 시간을 끌자 스태프들이 야유를 보냈다.

“감독님이 연기를 보고 싶다고 하니까. 딱 일어서는 거예요. 그러고는 그때부터 완전, 소름. 뭔가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인간이 아닌 것 같고 그 작은 몸에서 아우라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 같달까.”

다들 침을 꼴깍 삼켰다. 아기 무당의 상대역이 될 이지석도 집중해서 들었다.

조감독은 그때만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다. 진짜 최대만 감독이 말한, ‘내면의 신’이라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감독님의 눈을 딱 보고 고개를 올렸다가 내리는데, 막 속을 꿰뚫어 보는 진짜 무당 같았어요. 그 눈빛에 감독님이 ‘합격!’ 하고 외쳤는데, 솔직히 그 오디션을 봤던 사람들은 당연히 합격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전 진짜 일주일 사이에 신내림 받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 아역 배우가 누군데요?”

누군가 물었다. 조감독이 씨익 웃었다.

“다들 진짜 상상도 못 할 거예요. 우리 영화 대박 날 겁니다!”

* * *

“삼촌이랑만 다니는 건 처음인가?”

“응!”

김희상이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뒷좌석 카시트에 서준이 앉아 있었다. 품에는 도깨비 인형 모양의 가방을 안고 있었다.

“서준이가 그려준 도깨비 인형도 엄청 인기가 많아. 주문도 엄청 들어와서 삼촌이랑 서준이 부자 되겠다.”

“다음에도 또 그려줄게!”

두 사람은 지금 영화 촬영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서은혜가 갈 생각이었지만 이틀 전 외할머니가 넘어지셨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병원에 며칠 입원하게 되어 서은혜가 간호하기로 했다.

촬영은 어쩌지? 고민하는 서은혜와 서준의 머릿속에, 그 전날.

-나 공장이랑 계약했어! 잘 만들어줄 공장 찾는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밀렸던 인형 주문도 다 처리했고! 이제 난 자유다!!

이라고 말하며 자랑하던 김희상이 떠올랐다. 이민준도 김희상이라면 괜찮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만화책이나 보며 시시덕대려던 김희상은 서준의 보호자 겸 매니저로 같이 시골로 내려오게 되었다.

“서준이가 그려준 그림으로 인형도 만들고, 서준이가 너튜브로 번 돈도 삼촌 회사에 투자해 줬으니까 이런 거라도 해줘야지.”

디자인비도, 수익금도 잘 챙겨줄 생각이지만 마음이라는 게 그랬다. 서준의 광고 아닌 광고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더 크면 엄마 아빠 대신 매니저랑 같이 다녀야 하니까 이렇게 천천히 익숙해지자.”

서은혜와 이민준도 지금부터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고, 김희상은 자신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나 생각해 보았다.

역시 이런 건 은찬이가 잘 알려나? 브라운블랙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을 서은찬을 떠올렸다.

운전하던 김희상이 차를 멈추었다. 목적지, 오계리에 도착했다. 까마귀 계곡이라는 그 이름 그대로 마을 입구부터 까마귀들이 까악까악 울어대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리자. 서준아.”

“응!”

서준이 차에서 내렸다. 도깨비 가방을 등 뒤에 매고 희상이 삼촌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장소로 향했다.

짐을 옮기던 스태프 중 하나가 아역 배우로 보이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조감독에게로 달려갔다. 조감독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조감독, 박재민입니다.”

“서준이 보호자, 김희상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준이 또 보네? 안 힘들었어?”

“괜찮아요!”

드디어 등장한 아역 배우에 짐을 정리하고 있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누구? 누구야? 누군지 알아? 어디서 봤는데?

조감독은 입이 찢어질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아주 크게 외쳤다.

“감독님! 마린사 영화, 쉐도우맨에 윌리엄역으로 출연했던 할리우드 아역 배우, 이서준 군! 왔습니다!!!”

‘다아-’ ‘다아-’

메아리처럼 울리는 조감독의 목소리에 인사를 하러 걸어오던 최대만이 이마를 짚었다. 저 자식이?

김희상과 서준은 얼떨떨한 얼굴로 조감독을 보았다. 그렇게까지 소개할 일인가?

조감독은 제가 할리우드에라도 간 듯 뿌듯한 얼굴이었다. 조감독의 말을 들은 스태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간 답답함을 쏟아내듯 조감독이 말했다.

“이서준 군입니다! 지금 가장 핫한! 아역 배우! 할리우드에서도 시놉시스를 보낸다던! 캐스팅했다는 소식만 알려도 우리 영화는 대박 날 거예요! 다들 기다리는 이서준의 차기작이 바로 우리 영화! 악령입니다!”

“그만해! 이 자식아!”

결국 최대만이 조감독의 등을 내려쳤다. 등이 아팠지만 속은 시원했다. 으하하하! 조감독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마어마한 수식어에 스태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뭐야? 진짜야? 몰래카메라 아니야?

소란스러워진 스태프들을 본 최대만 감독이 헛기침하고 서준을 소개했다.

“악령에서 아기 무당역을 맡은 이서준 군입니다. 모두 잘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서준이 배꼽 인사를 하자.

“으아아악!!”

“꺄아아악!”

현실을 직시한 스태프들의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나, 쉐도우맨 3번 봤는데!”

“3번!? 난 10번 봤다고!”

다들 서준의 주위에 둥그렇게 몰려들었다. 다들 손만 움찔움찔할 뿐, 김희상과 최대만 감독이 서준의 옆에 서 있어서 더는 다가오지 못했다.

다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서준을 보았다. 그 마린사의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가 우리 영화에 나오다니! 뭔가, 신기한 기분이었다.

서준도 자신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신이 났다. 그동안 집이랑 어린이집만 다녀서 몰랐는데 이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알고 좋아해 주고 있었다.

이제야 제대로 스타의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실감이 났다.

그때, 서준은 많은 스태프 중 무언가를 들고 있는 스태프들을 발견했다. 급하게 종이를 찾느라 대본의 뒷장, 하얀 휴짓조각, 구겨진 종이도 있었다.

종이도 있고 펜도 있었지만 다들 최대만 감독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마음을 눈치챈 최대만 감독은 이서준의 보호자인 김희상의 눈치를 보았다. 스태프들이 적다고는 하지만 전부 사인하기엔 힘들지 않을까?

정작, 김희상은 별생각이 없었다. 서준이가 알아서 하겠지.

서준은 열심히 엄마 아빠와 연습했던 것을 떠올렸다.

-서준이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꼭 해주자!

-응!

“어.”

서준이 입을 열자 모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사인해 드릴까요?”

“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대답했다. 스태프 중 하나가 박스들 사이로 뛰어가 깨끗한 종이 더미와 두꺼운 펜을 들고 왔다. 또 다른 스태프가 책상과 의자도 들고 왔다.

오디션 때, 감독의 부리부리한 눈빛에 차마 사인을 받지 못했던 조감독과 ‘악령’의 주연배우, 이지석도 줄을 섰다. 다들 서준을 사인을 받고 기뻐했다. 최대만 감독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일단 모두 이서준 군이 이번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주세요.”

“왜요? 홍보 엄청 될 텐데요!”

홍보할 자신 있다는 스태프들의 말에 최대만이 고개를 저었다.

쉐도우맨이 영화관에서 내려간 지 1달. 서준에 관한 이슈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차기작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뜰 것이 뻔했다. 제목도 예상이 갔다.

[할리우드 배우가 선택한 한국영화!]

“지금 알려지면, 촬영장에 기자들이 몰려들어서 촬영이 늦어질 겁니다. 다들 일정이 늦어져서 밤샘촬영 하는 건 싫죠? 이제 몇 신만 찍으면 끝인데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영화 홍보는 제작사에서 준비하고 있으니, 꼭 비밀 엄수 부탁합니다. 다들 비밀 엄수 계약서 쓰셨죠?”

그러고 보니 한 달 전에 계약서를 쓴 기억이 있었다. 그냥 영화 내용에 관한 내용인 줄 알았더니, 이서준에 대한 이야기였나 보다. SNS에 올리려던 스태프들은 순순히 포기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면 안 됩니다. 비밀 엄수 잘 지키시면, 영화가 개봉하고 보너스도 있습니다!”

“와아아!”

역시, 보너스. 계약서는 완벽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며 조감독은 보너스를 제안했다. 조감독의 말대로 스태프들은 각자 입에 지퍼를 거는 시늉을 했다.

그사이에도 서준은 계속 사인했다. 조그마한 손으로 까만색 펜을 잡고 열심히 이름을 썼다. 드디어 마지막이었다.

“안녕. 서준아. 나는 이지석이라고 해.”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서준이에요.”

서은혜와 이민준은 호칭에 대해 고민했다. 서준이 너무 어려서, 만나는 연기자들이 전부 연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형이나 누나라고 부르면 못마땅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 같고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기에는 버릇이 없는 것 같고.

부부는 서은찬에게 조언을 구했다. 서은찬은 ‘선배님’이 가장 편하다고 했다.

나이보다는 경력을 따지는 곳이었다. 괜히 형 아우 했다가 나중에 나이를 알게 되면 복잡해진다면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주었다. 아마, 케빈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한 부부와 서준이 웃었다.

그래서 서준은 보통은 ‘선배님’, 나이가 많으면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지석이 웃었다. 조그마한 녀석이 선배님이라고 부르니 웃겼다.

“그냥 형이라고 불러.”

“네! 지석이 형! 사인, 한글로 할까요, 영어로 할까요?”

“벌써 영어도 할 수 있어? 여섯 살인데?”

“대본도 아빠랑 엄마가 도와주면 읽을 수 있어요.”

“장하네! 그럼, 한글로 부탁할게.”

“네. 잠시만요.”

서준이 조막만 한 손으로 제법 그럴듯하게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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