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4화
영화관에서 나온 최대만은 휴대폰으로 쉐도우맨 윌리엄을 검색했다. 다들 검색해 본 모양인지 자동검색어에 떠 있었다.
[쉐도우맨 윌리엄]
[쉐도우맨 윌리엄 아역]
[쉐도우맨 윌리엄 이서준]
스치듯 지나가는 글자를 보았다.
이서준.
순간 벼락처럼 그 옛날 귀여웠던 아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대만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서준? 이서준!?”
최대만의 손가락이 검색 버튼을 눌렀다.
인물정보창.
동명이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뜨는 정보창에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보였다.
4년 전 봤을 때보다 확실히 커졌지만, 또랑또랑한 눈 하면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진짜 서준이네!?”
최대만과 함께 엘리펀트 분유 광고를 찍은 이서준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천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좀 더 큰 다음 활동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미국에 가서 마린사의 영화까지 출연할 줄이야.
“역시 천재야.”
최대만은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쉐도우맨과 이서준에 대해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엘리펀트 분유 광고는 물론이고 최대만도 서준이가 나온다고 해서 봤던 [브라운블랙과 준의 48시간], 그리고 [쉐도우맨]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WNET에서는 물들어올 때 노 젓는다며, [할리우드 아역 배우 이서준의 48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재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또 ‘최연소 한국인 할리우드 아역 배우!’, ‘마린사가 선택한 한국인!’이라는 클릭을 유발하는 가득한 기사가 가득했다.
‘그래 봤자 겨우 엑스트라’라는 악의적인 댓글도 있었지만 대단하다는 댓글들도 많았다.
열심히 화면을 읽어 내려가던 최대만이 이내 전화를 걸었다.
“아, 오랜만입니다. 강소라 팀장님.”
수신인은 엘리펀트사의 강소라 팀장이었다.
* * *
“그래서 찾아뵙고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어요.”
서준이 오렌지 주스를 빨아 마셨다. 으, 셔.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앞에 앉아 있던 강소라 팀장이 가볍게 웃었다.
“법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죠.”
“정말 죄송합니다.”
서은혜가 손을 저었다. 법이 그렇게 정해졌다는데 강소라 팀장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매년 설과 추석 때 선물을 보내고 서준의 생일에도 선물을 보냈다. 직접 찾아와 설명을 해준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그러면 이제 분유 광고는 아예 안 나오는 건가요?”
“아뇨. 다들 꼼수를 생각해 내겠죠. 하지만 저희는 아예 광고를 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렇군요.”
분유 광고가 금지되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WHO에 가입한 120여 개 국가에서 분유 광고를 금지하는 국제규정이 정해졌다. 분유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서준이 촬영했던 분유 CF도 끝나게 되었다.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TV 화질에 엄청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광고 효과는 좋았지만 아기 부모 이외의 미래의 고객들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광고였다. 4년 전 찍었던 CF를 4년 내내 내보내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씁쓸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강소라가 입을 열었다.
“아, 서준이 영화 나온 거 봤어요. 엄청 잘하던데요.”
“서준이가 연기하는 걸 좋아해서요. 요즘은 연기 학원에 보낼까 생각 중이에요.”
강소라 팀장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연기 학원요? 마린사 영화까지 촬영한 서준이가 연기 학원에 가면…….”
난리가 날 터였다. 연기 학원 벽에 플래카드가 붙고 학원 원장은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서준의 이름으로 홍보를 해댈 터였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겠지만 거의 좋은 일이 아닐 터였다.
강소라 팀장이 말끝을 흐리자, 그녀가 걱정하는 바를 짐작하고 있던 서은혜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고민 중이에요. 연기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나 서준이 아빠는 연기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어색하게 상대역을 해주는 게 다거든요.”
서은혜가 오렌지 주스를 먹으며 휴대폰으로 영화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상대역을 할 친구나 연기를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그렇군요.”
“게다가 서준이한테 대본들이 들어오는데, 어떤 게 좋은 건지도 모르겠고.”
서준과 브라운블랙의 인연이 알려지자, 브라운블랙의 매니저인 서은찬의 쪽으로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회사가 광고를 만들다니 신기할 정도였다.
게다가 드라마와 영화 쪽에서도 많은 시나리오와 시놉시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어떤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분간도 되지 않아 전부 거절하고 있는 상태였다. 서준이도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잉지잉-
핸드백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강소라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편하게 통화하고 오세요.”
카페 구석에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던 강소라가 미묘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서준이 어머님.”
“네?”
“저……. 저번에 CF 찍었던 감독님 기억하세요?”
“네. 기억해요.”
서은혜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애 첫 CF 촬영이었다. 한순간 한순간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서준을 천재라고 말하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겠다며 전화번호를 건네준 친절했던 감독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대만 감독님이 꼭 한번 뵙고 싶다는데 어쩌죠?”
“감독님이 갑자기 왜?”
“감독님이 영화를 찍는데 시나리오 한 번만 봐달라 하시네.”
강소라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할리우드에서도 시나리오가 날아온다는 글이 가득한, 이미 엄청 유명한 아역 배우였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볼래요!”
“시나리오라면 거의 다 읽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시나리오라는 말에 서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
쉐도우맨에서 대사 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는지, 아니면 아직 6살인 서준의 대사 능력을 믿지 못하는지, 서은찬 편으로 들어오는 대본들은 거의 다 가만히 서서 웃고 있는 역할밖에 없었다. 그게 뭐야. 재미없게. 그래서 전부 거절했다.
서은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인연을 이용해서 대책 없이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를 보고 판단해 달라는 부탁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 게다가 인연이 있는 영화감독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마음이 갔다.
“그럼 감독님 전화번호 알려드릴까요? 아니면 제가 메일로 받아서 드릴까요?”
“감독님 전화번호 알려주시겠어요?”
4년 전, 서준의 미래를 위해 소중하게 간직해 두었던 최대만 감독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가 아직 수첩 사이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4년 사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서은혜는 강소라가 알려주는 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했다.
서은혜는 일단 문자로 통화 가능한 시간을 최대만에게 알렸다. 이민준도 서준도 함께 있을 때 통화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최대만은 언제든지 좋다고 답장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가족 모두 휴대폰 앞으로 모였다. 서은혜가 대표로 전화를 걸었다.
“아, 미스터리 영화요.”
서준과 이민준이 최대만 감독과 통화를 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미스터리 영화래.”
“미스터리?”
서준은 아빠와 함께 미스터리 장르 영화를 검색해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장르가 있었다. 귀신이 나오는 영화부터, 초능력이 나오거나 추리물도 있었다.
“공포 영화도 들어가는구나. 공포 영화면, 귀신으로 나오는 건가? 서준이 할 수 있겠어?”
“응! 나, 귀신역이야?”
“그럴 수도 있지. 일본 영화에도 어린애가 귀신으로 나온 적도 있고. 아니면. 추리물 같은 영화면 피해자 역인가?”
“피해자?”
“음. 악당에게 당하는 사람?”
검색된 영화들을 보며 두 사람이 열심히 맡을 것 같은 배역에 관해 이야기했다. 워낙 다양한 장르에 서준이 맡을 것 같은 배역도 여러 가지였다.
“서준이는 무슨 역할을 맡게 되나요?”
서은혜의 물음에 최대만이 무어라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서은혜가 애매한 표정으로 겨우 인사를 하고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최대만 감독과의 통화 내용이 궁금했던 이민준과 서준이 서은혜의 앞에서 기웃기웃했다. 서은혜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엄마, 나 무슨 역할인데?”
“귀신 아니야? 미스터리 영화라며?”
그게 그렇게 놀랄 정도인가? 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서은혜가 입을 열었다.
“무당이래.”
“……뭐?”
이민준의 의문 섞인 물음에, 서은혜가 다시 말했다.
“귀신 퇴치하는 아기 무당 역할이래.”
무당?
“무당이 뭐야?”
서준이 자신을 보며 무당? 아기 무당? 복잡한 표정을 짓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이서준 6살. 이번 생에서 텔레비전에서도 신문에서도 동화책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무당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무당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서은혜는 최대만에게서 받은 대본을 프린트했다. 전체 대본은 아니고 서준이 나올 분량의 대본이었다. 또 최대만이 설정한 아기 무당의 이야기가 쓰인 파일도 프린트했다.
“무당은 이런 옷 입어?”
“응. 알록달록하지?”
“왜 입어?”
“……글쎄? 아빠도 모르겠는걸?”
그사이 이민준이 서준에게 무당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무당의 모습을 검색하니 색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팔을 활짝 벌리는 사진이 가득했다. 서준이 잔뜩 인상을 쓰며 사진을 보았다.
“이건 뭐 하는 거야?”
“그건…….”
‘작두를 타는 거야’라고는 말할 수는 없어서 이민준이 얼른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이건 서준이가 안 할 거야.”
대본을 보지 않아도 알았다. 이제 6살인 아이에게 누가 작두를 타게 한단 말인가.
다음 사진도 만만치 않았다. 봉두난발의 무당이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찍혔는지 어지러운 잔상이 가득했다. 이민준이 한숨을 쉬었다.
“이건 춤추는 거야?”
“이건……. 굿하는 거야.”
“굿?”
“사람 몸에 들어간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이야. 안 좋은 것들은 다 사라지게 하는 춤인 거지.”
이민준은 최대한 자신이 아는 선에서 설명했다. 서준이 두 눈을 깜빡였다.
“무당은 어떻게 되는 거야?”
“엄청 강한 신이 무당의 몸에 들어가는 거야. 그 힘을 빌려서 무당이 점을 치는 거지.”
“몸에 들어가면 나쁜 귀신 아니야?”
“……헬프!”
이민준이 백기를 들었다. 아빠는 놀리는 재미가 있어, 서준이 이히히 웃었다. ‘무당’이라는 단어는 몰랐지만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니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신관이나 사제 같은 거였다. 아니면 대천사 같은.
“자. 서준아. 대본 읽어볼까?”
“응!”
다들 소파 위에 앉자, 서은혜가 천천히 대본을 읽어주었다. 아기 무당이 나오는 분량은 길지 않았지만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다.
자기 전에 읽는 동화책처럼 잔잔하게 이어지던 서은혜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집중해서 듣던 서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할래?”
“응!”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시나리오들과는 달리 대사도 있었고 멍하게 웃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알았어. 그럼 감독님께 연락할게.”
서은혜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최대만 감독이었다.
서준은 옆에 앉아 있던 아빠에게 대본이 프린트된 A4용지를 건넸다. 그러고는 얼떨결에 받아 든 이민준의 무릎 위로 올라가 앉았다.
“왜?”
“같이 읽어줘. 대사 외워야 해!”
크게 눈을 떴던 이민준이 웃으며 서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벌써 연습하는 거야? 알았어. 아빠가 도와줄게.”
서준은 이민준의 배에 등을 기대고 앉아 아빠가 든 대본을 보았다. 앞에 있는 신 넘버나 배경 묘사는 생략하고 지문, 대사 같이 자신이 알아야 할 부분만 읽었다.
“수혁이 문을 두드린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며…….”
“몇 번.”
“몇 번을 두드렸을까, 끼익 문이 열리고 아직 어린 아기가 나온다. 수혁, 여기 용?”
“용한.”
“용한 무당이 있다던데…….”
받침이 있는 부분이나 어려운 단어는 이민준이 알려주었다. 서준이 천천히 대본을 읽어 내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