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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31화 (3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31화

오늘은 아빠가 먼저 집에 도착해 있었다. 오랜만에 아빠가 만든 감자와 고기가 큼직하게 들어간 카레를 먹으며 가족은 영화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민준은 아들의 생애 첫 영화 촬영이었는데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쉬움이 들어 연신 질문했다.

“촬영은 어땠어?”

“재밌었어!”

“감독님한테 칭찬도 듣고 서준이 엄청 잘했지?”

“응!”

촬영이 다 끝나고 잠시 천막에 들른 라이언 감독이 잘했다며 서준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서준이 헤헤 웃었다.

“사진도 찍어 왔어. 나중에 딸기 먹으면서 같이 보자.”

저녁을 먹고 세 사람은 텔레비전으로 서은혜가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며 후식을 먹었다.

제일 처음 나타난 사진은 의자에 앉은 서준과 바닥에 앉은 라이언 윌이 악수를 하는 사진이었다. 커다란 덩치의 라이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서준이 더욱더 조그맣게 보였다.

서준이 딸기를 먹다 말했다.

“감독님이야!”

“엄청 크시네.”

“나라 말로는 키가 190이 넘는대.”

“와……. 운동 선수 했어도 엄청 잘했을 것 같네.”

그 뒤로 옷을 갈아입은 서준과 멜리사, 배런이 함께 찍은 사진. 서준이 윌 라이언과 크로마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진. 그리고.

“이건 유출하면 안 된대. 그래도 서준이가 촬영한 게 처음이니까 멀리서 찍는 건 허락해 주셨어.”

서준이 연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라이언 윌 감독이 배우라면 촬영 후 모니터도 꼭 해야 한다며 보여줬던 영상과 달리 멀리서 찍은 엄마의 영상은 색달라 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했다. 바닥에 앉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두 팔을 뻗는 것도. 꼭 다른 사람이 몸 속에 들어가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이민준도 희미하지만 날카롭게 들리는 멜리사의 목소리와 크로마키 속으로 사라지는 서준의 모습을 보며 손뼉을 쳤다. 특히 멜리사의 연기는 아들이 있는 이민준의 마음마저 애절하게 만들었다.

“멜리사라는 배우, 연기 엄청난데?”

“나도 그랬어. 지금까지 무명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나는?”

멜리사만 칭찬하는 엄마 아빠에 고개를 휙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본 서준이 물었다. 뾰로통한 아들의 얼굴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엄마 아빠가 활짝 웃었다.

“서준이도 잘했어!”

“단번에 OK를 받다니! 정말 잘했어!”

서준이 이히히 웃으며 빨갛게 잘 익은 딸기를 한입 먹었다.

“근데 언제 개봉한대?”

“좀 더 촬영을 하고 CG 같은 뒷작업도 해야 한다고……. 나라 말로는 3월 말이나 4월 초에 개봉한다더라.”

“꼭 영화관에서 봐야겠다.”

아들이 처음 출연하는 영화를 본다는 기대감에 일정을 체크하고 있던 이민준에게 서은혜는 조금 주저하다가 찬물을 부었다.

“근데 오디션 겸 촬영이었으니까, 확실히 서준이가 나오는 장면을 쓸지 안 쓸지도 모르겠어.”

본의 아니게 옆에서 맛나게 딸기를 먹고 있던 서준도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찍었는데, 온종일 안 웃는다고 고생했는데?!

“어째서?!”

“그래. 어째서? OK도 받았다며?”

서준과 이민준이 서은혜에게 물었다.

“원래 영화라는 게 찍는 걸 다 활용하는 게 아니래. 편집되는 장면도 많고. 쓸데없는 부분도 잘라내고, 영화 시간도 적당해야 하고.”

매번 [OO영화 삭제 장면], [OO영화 감독 편]이 인터넷에 뜨는 이유일 것이다.

잔뜩 기대했다가 영화 보고 실망할 것 같다며 나라가 미리 말해주었다. 서은혜의 말에 서준이 카펫 위에 드러누웠다.

“나, 열심히 했는데!”

좀비 인형과 같이 서준이 카펫 위를 뒹굴뒹굴 굴렀다. 진짜 열심히 했는데에! 서은혜와 이민준을 그런 서준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 * *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두 남자의 손에는 가벼운 파인패드가 들려 있었다.

“쉐도우맨이라…….”

수많은 히어로 캐릭터를 보유한 마린사. 부사장 리처드 보윈이 파인 패드를 두드렸다. 마린사의 수많은 파트 중 영화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페일런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죠. 레드본을 다른 배우로 바꿨다가는 난리가 날 겁니다.”

“그래. 그건 그렇지.”

레드본은 마린사에서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제작한 슈퍼 히어로 영화였다. 물론 그에 따른 수익도 어마어마했다.

1편에서 얻었던 인기를 그대로 끌고 가기 위해 레드본의 주연 배우들을 그대로 캐스팅했다. 1편보다도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었고 많은 인력과 최신형 장비들을 구했다. 게다가 해외 동시개봉과 더불어 어마어마한 홍보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 지원을 바탕으로 레드본2 의 촬영도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망할 파파라치.”

리처드 보윈이 미간을 찌푸렸다.

레드본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파파라치에게 쫓기다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연기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나으려면 시간이 걸렸다.

레드본2만을 위해 기획했던 일정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버렸다.

이대로면 장비도 인력도 쓰임 없이 돈만 나갈 상황이었다.

리처드 보윈과 페일런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정 속에 2개의 신인 감독의 영화를 넣기로 했다.

돈이야 본전, 아니, 손해를 봐도 괜찮았다. 전부터 눈여겨본, 차세대 마린사의 감독들을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마린사는 유망한 두 감독에게 러브콜을 날렸다.

한 명은 라이언 윌.

인종차별 등의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다루었던 단편 영화 감독이었다. 그는 연출 실력도 좋았지만, 특히 배우를 보는 눈이 좋았는데 그가 캐스팅했던 배우들은 그의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였고 그 생생함은 관람객들의 인상에 깊게 남고는 했다.

“그 캐스팅 실력이 마린 캐릭터를 맡을 배우를 선택하는 데 발휘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

“쉐도우맨에 나오는 배우들도 거의 무명 배우입니다. 포트폴리오 사진만 봐서는, 글쎄요. 어울릴까요?”

파인패드 화면 위로 라이언 윌의 이력서와 그가 쉐도우맨에 캐스팅한 배우들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페일런의 손가락 하나에 넘겨졌다.

연기는 잘했지만 매력이 없는 배우. 아주 잠깐 나온 엑스트라.

라이언 윌 감독은 이런 배우들에게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패일런의 표정도 좋지는 않았다.

페일런의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리처드 보윈은 자신의 파인패드 화면 위로 떠오른 라이언 윌의 이력서를 손가락을 두드리기만 했다. 리처드 보윈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애초에 쉐도우맨을 선택한 것도 마음에 안 들어.”

“하긴. 쉐도우맨은 인기가 없으니까요.”

페일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본은 마린사의 만화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영화로 제작했고 전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에 반해 쉐도우맨은, 솔직히 말해 라이언 윌에게 듣지 못했다면 있는 줄도 몰랐을 터였다.

포트폴리오를 훑어보던 페일런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라이언 윌 감독과 이 배우들 사이에서 어떤 영화가 나올지.

“사라 로트는 어떤가?”

리처드가 고개를 저으며 새로 떠오른 이력서를 보았다. 페일런이 파인패드 안의 사라 로트 폴더를 열었다.

또 한 명의 감독. 사라 로트.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과 어우러지는 액션신으로 단편 영화제의 대상을 석권하고 있는 감독이었다.

특히나 음악과 잘 맞아떨어지는 액션이 음악 게임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있었다.

호쾌한 액션신이 특징인 슈퍼 히어로 영화에 꼭 필요한 감독이었다. 그녀 또한 이번 영화가 첫 장편 상업 영화였다.

“사라 로트가 캐스팅한 배우들은 제법 알려진 배우들이네요. 연기력도 좋은 평가를 받고. 사라 로트의 그린윙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그린윙.

엄청나게 빠른 속도가 특징인 캐릭터로 마린사의 히어로 중에서 제법 인기가 있는 캐릭터였다. 마린사에서도 추천하기도 했고 사라 로트 본인도 단번에 승낙했다. 그녀가 연출할 속도의 세상이 기대되었다.

두 남자가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페일런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커다란 문이 천천히 열리고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앙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과 자리에 앉은 사람들.

마린사 내부에서 시행하는, 영화들의 가편집 시사회였다.

리처드와 페일런이 자신들의 자리에 앉았다. 곧 사회자가 올라와 두 영화와 두 감독에 관해 설명하고 내려갔다.

회의실 내부가 어두워졌다. 곧 스크린 위로 마린사의 로고가 나타나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명의 슈퍼 히어로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린윙 VS 쉐도우맨]

“다른 건 몰라도 홍보 문구는 정해졌군.”

이런 대결이라면 분명 대중들은 흥미를 느끼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 이제 라이언 윌 감독님의 쉐도우맨을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박수 소리가 들리고 라이언이 몇십 번이나 봤던 화면이 나타났다.

자리에 앉은 라이언은 마린사 직원이지만, 관객들에게 처음 보여주는 자신의 영화에도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에 빠졌다.

라이언의 꿈은 히어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세상의 악을 처치하는 정의.

투자해 줄 사람이 없어서 처음에는 단편을 만들었다. 인종차별, 빈부 격차 등의 사회문제를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단편 영화였다.

그 뒤 겨우 기회가 찾아왔다. 그에게 마린사의 제안이 왔다.

[쉐도우맨]

라이언 윌의 첫 장편 히어로 영화였다.

주인공, 맥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아이였다. 같이 불시착한 외계인은 금세 죽어버리고 걷지도 못하는 아기는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사회로 나왔다.

고아에게 차가운 사회였지만 자신을 사랑해 주는 지인들 덕분에 이 나라, 이 세상을 좋아했다. 어느 날, 맥의 손에 한 목걸이가 들어왔다.

그 목걸이를 찾아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했다. 목걸이를 목에 건 맥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지구를 지켰다. 그러나 맥이 외계인들과 싸우는 도중 일부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때 행방불명된 사람 중에 쉐도우맨의 대적 상대가 한 명 있었다.

‘그게 윌리엄이지.’

라이언 윌은 쉐도우맨을 시리즈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복선으로 쓸 이 장면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넣기로 했다. 왜냐하면 라이언의 슈퍼 히어로, 쉐도우맨의 대적자는 ‘윌리엄’뿐이니까.

라이언은 한 소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검은 머리의 검은 가진 소년은 냉정한 표정으로 까만 복면을 쓴 쉐도우맨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영화를 찍기 전까지 ‘윌리엄’의 모습은 검은 머리의 백인이었지만 준의 모습을 본 후에는 준이 자란 모습만이 떠올랐다.

‘이번 영화가 성공해야 다음 영화도 찍을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이성적인 라이언이라도 이번 영화의 성공을 낙관할 수밖에 없었다.

“으허허헝.”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부사장, 리처드 보윈이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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