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30화
그래서 서준은 만들었다. 단서는 곰 인형, 엄마, 미소.
멀리서 라이언 윌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디, 액션!
덩치에 맞지 않게 작은 소리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윌리엄’은 이제 4살이 되었다. 4살 생일선물로 받은 것이 손에 든 곰 인형이었다. 어느 선물보다도 아빠가 준 이 곰 인형이 가장 좋았다. 마당에서 이 곰 인형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윌리엄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늘 아침밥이 맛있었다, 간식은 역시 쿠키지. 오늘은 이걸 하고 놀까? 저걸 하고 놀까?
오늘도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서 엄마가 옷을 두껍게 입혀주었다. 겨드랑이에 곰 인형을 끼고 매일 놀던 마당에 앉아 곰 인형과 놀았다.
“윌리엄!”
엄마가 불렀다. 엄마의 목소리에 윌리엄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문을 열고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윌리엄은 엄마가 좋았다. 엄마의 부름이 너무 좋아서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윌리엄!!”
엄마가 달려왔다. 두 팔을 뻗고 달려오는 엄마의 모습에 윌리엄도 포근한 엄마의 품에 안기려고 곰 인형을 든 두 손을 쭉 내밀었다.
윌리엄은 엄마가 안아주는 것이, 맛있는 쿠키보다 더 좋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웃었다.
그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온몸이 차가웠다.
“컷! OK!”
윌 라이언의 고함과도 같은 목소리가 서준의 귀에 꽂혔다. 서준이 눈을 번쩍 떴다.
“으엉?”
뭐야? 뭐지? 언제 촬영이 시작됐지?
멍한 얼굴로 있으니 시야에 배런의 걱정 가득한 얼굴이 들어왔다.
“놀랐어? 너무 빨리 잡아당겼나?”
배런이 서준을 안고 둥기둥기했다. 서준이 멜리사를 향해 두 팔을 뻗길래 좋은 타이밍 같아서 얼른 서준의 옆구리를 잡고 크로마키 천 안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곧바로 서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전 촬영에서 다른 아역 배우들은 멜리사가 비명을 지르면 그 목소리에 놀라 울기 시작했다.
겨우 그 장면을 통과해도 배런이 아역 배우의 옆구리를 잡으려고 하면 기겁을 하며 울어대기도 했다.
하지만 서준은 울지도 않고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입술이 약간 파랗기는 했다.
추운가? 그렇다기엔 배런의 품에 안긴 서준의 몸은 충분히 따뜻했다.
그 차이에 걱정이 된 배런이 다시 물었다.
“괜찮아? 준?”
“무슨 일이야, 배런?”
“아니, 준…….”
“괜찮아요!”
라이언 감독의 목소리에 서준이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서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던 배런이 땅 위에 서준을 내려주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라이언 쪽으로 향했다.
“안 무서웠어?”
“아뇨. 재밌었어요!”
사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서준은 그저 윌리엄에 대해서 생각했다. 행복, 엄마, 그리고 끌어당기는 웜홀. 차갑고, 어두웠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라이언과 카메라 감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멜리사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배런이 그런 멜리사를 보고 놀랐다.
열심히 하는 건 알았지만 눈물을 흘릴 정도로 몰입해 있을 줄 몰랐다. 게다가 오늘 온종일 반복한 연기였다. 그런 힘이 남아 있을 줄이야.
“그렇게 몰입했었어?”
“아, 그게…….”
배런의 질문에 대답하려던 멜리사가 배런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서준을 보더니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배런과 서준이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왜 울어요?”
“멜리사, 왜 울어?!”
“으허헝. 윌리엄이 너무 불쌍해서…….”
결국 다른 스태프들이 멜리사를 대리고 대기 장소로 데리고 갔다. 멜리사를 데려가는 스태프들의 표정은 밝았다.
드디어 라이언 윌 감독 입에서 OK 사인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다들 한 번씩 서준을 보며 대견한 눈빛을 보내고는 했다.
스태프들에게 기대 대기실로 가는 멜리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배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메소드 연기도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메소드요?”
“준은 모르니?”
“네.”
이 4살 반짜리 아기에게 어떻게 알려주나? 배런은 잠시 고민했지만 똑똑한 서준을 믿어보기로 했다. 천천히 쉽게 쉽게 설명해 주었다.
“메소드 연기는 배우가 맡은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거야. 예를 들어 멜리사는 보통 때는 멜리사지만 촬영 때는 본인을 잊고 윌리엄의 엄마가 되는 거지.”
“윌리엄 엄마…….”
서준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까 내 상황도 똑같지 않을까?
서준은 자신이 서준이라는 것을 잊고 윌리엄이 되었다. 분명 웜홀에 끌려 들어간다는 걸 알았는데도, 사전에 그게 웜홀이 아니라 배런이라는 걸 알았는데도 그 안은 춥고 어두웠다.
이런 게 메소드 연기인 걸까?
“메소드 연기는 연기할 때는 좋지만 촬영이 끝나면 멜리사처럼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더라고.”
“빠져나와요?”
“멜리사가 윌리엄의 엄마를 잊고 다시 멜리사가 되는 거지.”
그건 또 달랐다. 라이언의 ‘컷’ 소리를 듣자마자 빠져나온 서준과는 달랐다.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메소드 연기는 어떻게 해요?”
서준의 질문에 배런이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답지 않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연기의 기초는 이해야. 캐릭터의 역…….”
“사를 이해하는 겁니다!”
“사를 이해……?”
“스왈린 애넘!”
서준의 말에 배런의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준도 봤어?”
“CAN채널 ‘영화를 사랑한 사람들’!”
“……봤구나.”
“스왈린 애넘 짱 좋아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배런이 말했다.
“나도 제일 좋아하는 배우야.”
그에 서준도 이히히 웃었…….
짝!
서준이 양손으로 아주 세게 양 뺨을 쳤다. 아직 안 웃었어! 짝! 짝! 안 웃었다고! 다행히도 서준의 외침을 들었는지 능력이 발동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다가 갑자기 자신의 볼을 때리는 서준의 모습에 배런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괜찮아, 준?”
“네. 괜찮아요.”
“정말?”
“진짜요!”
볼때기가 아팠지만, 괜찮았다. 정말로. 서준이 따가운 양 뺨에 찔끔 눈물을 흘렸다.
‘촬영 끝나자마자 자야지.’
* * *
“레디!”
라이언 감독이 크게 소리쳤다. 모니터 화면 위로 굳게 닫힌 문이 나타났다. 다른 화면에는 바닥에 앉는 서준이 보였다.
“액션!”
벌컥! 문이 열리고 멜리사가 나타났다. 카메라가 멜리사의 얼굴을 비추었다.
라이언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절절해 보이긴 했지만, 그의 눈에는 약간 부족한 연기였다.
긴급뉴스를 보며 뛰쳐나온 엄마였다. 많은 이들 중에서 내 아들이 사라질 리가 없다는 믿음과 설마, 설마, 하는 불안이 가득해야 했지만, 멜리사의 얼굴에는 아들을 찾는 급박함밖에는 없었다.
너무 많이 촬영해서 그런가. 온종일 시달렸을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알았기에 NG를 외치려던 라이언 감독은 일단 서준의 연기까지 보기로 했다. 이 아이도 형편없다면, 그냥 이 장면을 삭제하자고 생각했다.
“윌리엄!”
멜리사의 비명이 들리고 화면 속에서 서준이 일어났다. 아니,
“저건…….”
윌리엄이 일어났다. 작은 아이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멜리사를 반겼다.
[웃는 얼굴 버섯의 환상이 발동됩니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연기에 빠져 있던 서준도 들을 수 없었던 소리가 울렸다.
서준의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모니터를 하고 있던 라이언 윌 감독과 직접 촬영하고 있던 제임스 랜던 카메라 감독은 숨을 삼켰다.
연기를 하고 있던 멜리사도 턱 막히는 숨에 입만 벌리고 있었다. 키 큰 스태프들 사이에 있던 조나단이 입을 쩍 벌렸다.
환하게 웃는 아이의 미소였는데, 행복해 보이는데 숨이 막히고 심장이 떨렸다. 속이 꽉 막힌 것처럼 아려왔다. 곧 웜홀 속으로 사라질 아이가 참을 수 없이 안타까웠다.
“윌리엄!!”
웜홀을 본 멜리사가, 아니, 윌리엄의 엄마가 소리쳤다.
아아, 내 아이가! 내 소중한 아이가!! 엄마가 소리쳤다. 안 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불덩이를 먹은 듯 속이 뜨거웠다. 목구멍이 막힌 듯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윌리엄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웜홀 속으로 사라졌다. 겨우 신발 한 짝 남기고.
감정이 격해졌던 엄마가 마당에 주저앉았다. 엄마는 웜홀이 사라진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숨 막히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라이언 윌 감독이었다.
감독은 꽉 막힌 듯한 목구멍을 억지로 뚫으며 크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 안에 숨겨진 물기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컷! OK!”
그게 숨구멍이 되었는지 숨까지 멈추고 서준과 멜리사의 연기를 보던 모두가 숨을 들이마셨다.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 멜리사를 향해 다가갔다.
그사이, 라이언 윌 감독과 제임스 카메라 감독은 저도 모르게 떨어지고 있는 눈물을 남몰래 닦아냈고 조나단은 구석으로 가서 엉엉 울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현장을 정리하는 사이 두 감독은 찍은 장면을 다시 한번 보았다.
“너무…….”
“잘했네.”
처음 단편 영화를 찍을 때부터 같이 해온 카메라 감독, 제임스 랜던의 말에 라이언 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온종일 촬영했다. 마지막 최연소 아역 배우만 남겨두고,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에 이 신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그것만은 싫었는데, 다행히도 마지막 아이가 잘 해주었다. 아니, 잘 이 아니다. 깜짝 놀랄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라이언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 작은 꼬마의 연기가 자신을 울게 만들다니, 1시간 전의 라이언 윌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처음에 바닥에 앉을 때는 다리가 아픈가 했는데…….”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더 엄마를 반기는 것 같았어.”
“……우연인가?”
“천재일 수도 있지.”
다시 봐도 가슴이 아려오는,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서준의 미소였다.
불타는 속에 오히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제임스 카메라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역까지 배역에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5살 배우라니. 누가 들으면 농담인 줄 알 거야.”
“5살 아닌데?”
윌 라이언이 웃었다. 제임스가 되물었다.
“뭐? 몇 살인데?”
“이제 58개월. 4살 하고도 10개월 지났어.”
“뭐. 2달만 지나면 다섯 살이네, 뭐.”
* * *
“한 번에 OK라고?”
“준이 잘하긴 했어. 나도 울컥했잖아.”
“멜리사 씨 연기도 대단했어. 마지막 표정까지!”
“난 전에 멜리사 씨가 나온 영화 봤는데, 그때랑 완전히 달라. 비슷한 역할이었는데 오늘은 뭔가, 껍데기를 깨고 나온 것 같달까?”
“근데, 그거 봤어?”
한 스태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짐을 옮기던 스태프들의 귀가 쫑긋 섰다.
“뭐?”
“윌 감독님하고 랜던 카메라 감독님하고 우는 거.”
“……멜리사 씨 연기가 그 정도였어?”
“아니, 준의 연기를 보고 우는 것 같았어.”
스태프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잘하는 것 같긴 했지만, 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조나단도 우는 것 같던데?”
스태프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조나단 윌은 라이언 윌 감독의 조카로 지금 삼촌의 밑에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공부 중이었다. 중학생 대상의 영화제에서 입상도 했던 미래가 기대되는 소년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아역 배우의 대기실로 사용하고 있는 간이 천막은 방음이 약했다. 바로 밖에서 들려오는 스태프들의 대화 내용에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촬영 당시 자신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수를 떠올렸다. 대략 30명. 그리고 [웃는 얼굴 버섯의 환상]에 당한 것 같은 사람은.
멜리사, 라이언 감독, 카메라 감독, 조나단 윌. 이 네 사람.
‘[웃는 얼굴 버섯의 환상]이 하급이라서, 이 정도의 사람들밖에 효과가 없구나.’
타깃이 된 사람 모두에게 효과를 발휘한 최상급 스킬, [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은 [웃는 얼굴 버섯의 환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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