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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9화 (2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9화

눈을 떴다.

서준이 간이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자 포켓북을 읽고 있던 서은혜가 시계를 보았다.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진짜 안 잤네?”

“명상이야!”

엄마만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 같았다. 서준이 얼굴에 힘을 주었다. 웃으면 안 돼. 큰일 나.

“서준 리. 이제 곧 촬영이에요.”

아이들 울음소리를 온종일 듣고 있는 조나단이 거의 해탈한 표정으로 천막 밖에서 말을 걸었다.

“네. 갈게요. 가자, 서준아.”

“응.”

무심결에 미소를 짓지 않게 얼굴에 힘을 팍 준 서준이 엄마 손을 잡고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으허허헝! 버섯이 불쌍해!”

커다란 덩치의 용병이 테이블에 얼굴을 박은 채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덩치의 동료들은 고개만 절레절레 젓고는 술을 들이마셨다.

“왜 저래?”

제법 얼굴을 알고 지내는 다른 용병단의 용병이 지나가다 물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용병대장이 쯧,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에 산에 의뢰를 하러 갔는데, 거기 울음버섯이 있었어. 쟤가 우리 중에 가장 앞에 있었거든. 쟤가 울음버섯의 영역에 들어가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우리는 안 당했지만…….”

“쟤가 몸빵을 못 해주니까 의뢰도 못 나가고 이러고 있는 거야.”

용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울음버섯이라면……. 다 자란 버섯이었다고 해도, 저렇게 울면 내일 저녁쯤에는 괜찮아지겠군.”

“저 녀석이 걸렸으면 반나절 울고 끝났을 텐데…….”

테이블 한쪽에서 머리도 들지 않고 음식을 퍼먹고 있는 먹보를 보며 용병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았는지 먹보가 고개를 들었다.

“대장! 울음버섯 엄청 맛있다고 하던데요! 어제 채집할 걸 그랬어요!”

“채집은커녕 영역에 발만 들어가면, 우느라 채집을 할 방도가 없지. 그래도 공급은 되는지 엄청 비싸더라고.”

“거기.”

용병들의 대화에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얼굴을 갈색 천으로 두르고 커다란 짐을 메고 있는 행색을 보아하니 약초용병인 모양이었다. 약초용병의 옆에는 제자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버섯이 있는 산이 어디지?”

약초용병을 흘낏 본 용병대장이 손가락 하나를 들자, 약초용병이 금화 하나를 던져주었다.

약초용병과 제자는 용병대장이 알려준 산속을 천천히 올라갔다. 여기저기 구멍이 파여 있고 나무는 높게 솟았다.

커다란 바위와 나무뿌리가 엉켜 있을 정도로 험한 산이었다.

“스승님! 그렇게 함부로 금화를 주면 안 된다니까요! 진짜 울음버섯인지 어떻게 알고 줘요!”

“울음버섯이 아니라…….”

“네네. 약초용병은 정확한 공식 명칭을 사용해야 된다구요! 알았어요. 웃는 얼굴 버섯!”

“그 덩치는 확실히 환상 마법에 걸려 있었어. 마법사도 볼 수 없는 이런 변방에서 환상 마법에 걸릴 방법은 하나뿐이야.”

“저도 알긴 알죠. 그래도 은화 하나로도 충분했을 텐데!”

앞서 걸어가던 약초용병이 멈추자 제자도 입을 다물었다. 용병대장이 말한 대로 세 개의 바위가 보였다.

“이 근처군.”

“찾아봐요.”

두 사람은 바위 근처를 아주 크게 돌며 웃는 얼굴 버섯을 찾았다. 경력이 경력인지라 약초용병의 눈에 작고 하얀 점이 보였다.

웃는 얼굴 버섯이었다.

“찾았다.”

“준비할게요!”

제자는 등짐을 내리고 석궁을 꺼냈다. 화살 끝에 튼튼한 밧줄을 묶었다.

그사이 약초용병은 천천히 웃는 얼굴 버섯의 영역을 살피며 나무를 골랐다.

제자가 석궁을 건네주자 튼튼한 나무를 찾은 약초용병이 석궁을 쐈다.

“명중!”

버섯의 영역을 피해 달려간 제자가 얼른 나무에 밧줄을 꽈악 묶었다. 약초용병도 가까이에 있던 나무에 밧줄을 묶었다.

그리고 빨랫줄처럼 높게 묶인 밧줄에 또 다른 밧줄을 연결해 자신의 몸에 묶었다.

“조심하세요. 스승님.”

“그래.”

‘웃는 얼굴 버섯의 환상 마법’은 버섯의 영역 안에 들어가 버섯의 웃는 얼굴을 보면 걸리는 마법이었다.

버섯을 보면 겨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거나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 것이 전부인 이 환상 마법이 웃는 얼굴 버섯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웃는 얼굴 버섯은 버섯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채집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버섯의 동서남북 4면이 모두 얼굴이었다. 어디로 가도 버섯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약초용병은 전대 스승에게 한 가지 방법을 배웠다.

약초용병은 두꺼운 천을 꺼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천천히 나무에 묶은 밧줄에 의지하며 웃는 얼굴 버섯을 향해 나아갔다.

한 달 뒤, 제국 황제의 식탁에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의 웃는 얼굴 버섯 요리가 올라갔다.

“새끼 버섯도 있을 줄은 몰랐어요! 두 배로 받다니! 이걸로 스승님 빚도 모두 청산이에요!”

상인에게서 받은 반짝반짝 빛나는 금화 주머니 안을 본 제자가 환하게 웃었다.

제자의 미소에 약초용병은 제 주머니 안으로, 새롭게 생긴 빚 독촉 용지를 쑤셔 넣었다.

* * *

조나단 윌은 서준과 서은혜를 촬영 장소로 안내했다.

조나단이 계속 어깨에 메고 다니던 가방에서 작은 곰 인형을 꺼내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건네주는 것도 벌써 다섯 번째였다.

이제 좀 촬영이 끝났으면 좋겠다. 솔직히 서준 리라는 이 아이에게도 별 기대가 없었다. 이 아이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애들도 촬영에 들어가면 울어 재끼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딴생각을 하는 머리와는 달리 조나단의 입이 알아서 움직였다.

“이거 촬영 때 쓰는 거니까, 가지고 있어요.”

“네!”

한 손에 곰 인형을 들고 세 사람은 스태프들이 둥글게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온종일 이어지는 촬영에 스태프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성과가 있으면 몰라도 허탕만 네 번째였다.

서준과 서은혜의 눈에 미국의 평범한 가정집과 마당 한쪽에 설치된 크로마키 장치를 둘러싸고 있는 스태프들이 보였다.

“보호자분은 여기서 기다려 주시면 되고요. 배우분은 감독님께 가죠.”

조나단의 말에 서은혜가 서준에게 살짝 손을 흔들었다.

“잘하고 와.”

“응!”

조나단이 서준을 손을 잡고 모니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라이언 윌에게로 향했다.

벌써 몇 번이나 체크하는지 모르겠지만 허투루 할 수는 없었다. 화면과 본인이 생각했던 이미지를 비교해 보고 있던 라이언이 조나단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감독님. 서준 리 배우 도착했습니다.”

“왔군. 잘해보자.”

“네!”

라이언 윌은 의자에서 일어나 서준과 함께 마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CG로 웜홀이 될 크로마키 구조물 앞에 서준을 세웠다.

테이프로 표시된 바닥과 주변을 살피던 서준이 고개를 들어 멜리사가 뛰쳐나올 문을 바라보았다. 아주 잘 보였다.

[웃는 얼굴 버섯의 영역을 확인합니다.]

멜리사가 뛰쳐나올 문과 설치된 카메라, 그리고 라이언의 의자와 일부 스태프가 위치한 곳까지.

서준의 시야가 닿는 곳들이 파랗게 물들었다. 고개를 돌리면 파랗던 영역이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사람은 얼굴이 하나뿐이라서 영역도 이만큼뿐이구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카메라는 서준의 얼굴을 찍을 테니, 상관없었다.

“여기서 조나단이 준 곰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멜리사가 부르면 고개를 드는 거야.”

“알아요!”

서준이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자 라이언이 웃었다. 제가 설명만 하면 주눅이 들어 울망울망하던 다른 아역 배우들과는 달리 맹랑한 꼬마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충고를 멈추지는 않았다.

“배런이 널 잡아당길 거니까 놀라지 말고.”

“안녕, 준.”

크로마키 천 틈 사이에서 초록색 옷을 입은 배런이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가락까지도 초록색 천으로 뒤덮여 있었다. 서준도 손을 흔들었다.

서준의 여유로운 모습에 배런은 이번에는 기대해도 될까? 생각했다. 라이언이 바닥에 붙어 있던 테이프를 떼고 일어났다.

“얼마든지 실수해도 되니까, 부담, 아니, 걱정하지 말고. 추우면 말해.”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실소한 라이언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모니터 앞에 자리 잡은 라이언 윌이 손을 들자 스태프들이 조용해졌다.

순식간에 적막해진 촬영장에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인 서은혜는 준비된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서준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천막에서 나올 때부터 웃지 않는 아들이 걱정되었다.

‘긴장해서 그런 걸까?’

서은혜 그녀도 영화 촬영은 처음 겪는 일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초조해 보이는 서은혜의 어깨를 어느새 통화를 끝내고 온 나라가 토닥여주었다. ‘잘할 거야’, ‘응’ 조용히 속삭였다.

버섯의 영역을 살펴보던 서준이 고개를 돌려 나란히 서 있는 엄마와 나라 이모를 보았다.

초조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엄마를 보니, 안심하라고 웃어주고 싶었지만, 음. 안 되지. 안 돼. 서준은 두 손을 들어 저도 모르게 올라갈 것 같은 입가를 매만졌다.

카메라 감독이 라이언을 바라보자 라이언도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언이 크게 소리쳤다.

“레디!”

가정집 안에서 문손잡이를 꼭 잡고 있던 멜리사가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르는 대사였다.

대사는 겨우 한마디. ‘윌리엄!’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초조함과 괴로움을 표현해야 했다.

크로마키 천 뒤에 있던 배런도 숨을 몰아쉬었다. 타이밍. 그가 맞춰야 할 것은 타이밍이었다.

서준은 곰 인형을 들었다.

* * *

몇 달 전, 서준은 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명연기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 스왈린 애넘이 새하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이야기했다.

[제가 생각하는 연기의 기초는, 이해입니다. 캐릭터의 역사를 이해하는 겁니다.]

‘역사?’

아빠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보며 연기에 관해 공부하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민준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커다란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지렁이를 그리고 있는 서준을 보며 숨을 죽이고 웃었다.

그 지렁이 같은 그림이 몬스터 글자와 한글, 알파벳을 섞어서 서준만이 알아볼 수 있는 글자라는 것은 몰랐다.

[역사라니 어려워 보이지만 간단합니다. 캐릭터가 어떻게 태어나 자라왔는지, 그 성장 과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출연한 ‘솔저’의 주인공인, 벤터는…….]

스왈린 애넘은 벤터의 부모와 성장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영화에 나온 행동의 바탕이 되는 동기에 대해서 말했다.

[하지만 역사를 만들기 곤란한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바로 엑스트라입니다.]

[대사도 없이 주연 캐릭터들의 곁을 스쳐 지나는 엑스트라 캐릭터들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엑스트라의 역사까지 시나리오 작가들이 만들 이유가 없죠. 바쁘니까요. 쓸모없으니까요.]

가볍게 웃던 스왈린 애넘이 얼굴을 굳혔다. 진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얼굴을 굳히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진중해졌다.

[배우는 그 엑스트라의 없는 역사마저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떻게?’

어느새 크레파스를 손에서 떨어뜨린 서준이 텔레비전의 앞으로 기어가 앉으려다 아빠에게 저지당했다. 아빠 품에 안겨서도 스왈린 애넘의 진지한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드세요.]

[단서는 많습니다. 모두 대본 안에 있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단서라도 분석하고 이해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준은 만들었다. 단서는 곰 인형, 엄마,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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