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8화 (2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8화

“오디션 보는 아이겠지?”

서은혜의 말에 나라가 간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면서 대답했다.

“그렇겠지. 시나리오 보니까, 아이한테는 무섭긴 하겠더라.”

“서준이는 괜찮겠어?”

“응!”

완전 괜찮다. 오히려 다가올 촬영에 신이 났다.

서준은 대답하며 아역 배우들을 위해 가져다 놓은 작은 의자에 앉았다.

오디션을 볼 아역 배우들을 위한 대기실인지 간이 천막 안에는 간이침대 두 개와 커다란 테이블 하나, 작은 탁자 하나, 거울, 어른용 의자, 아이용 의자가 여러 개 있었다.

과자와 샌드위치, 주스 같은 간편식도 있었다.

서은혜도 천막 안을 둘러보았다. 미국 영화 촬영장이라니 신기했다. 한국 영화 촬영장도 가 본 적이 없는데.

나라가 서은혜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마린사 영화라니 부담돼?”

“삼 일 내내 죽는 줄 알았어.”

서은혜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우편으로 보내온 오디션&촬영 동의서에 사인할 때는 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마린사!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사 이름을 말하라면 탑 3에는 들어가는 영화제작사였다.

마린사의 만화, 슈퍼 히어로들의 실사화를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제일 인기가 많은 영화는 레드본이었다.

아무도 관심 없었던 레드본1 은 개봉 후, 전 세계를 뒤집어 놓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레드본들의 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금은 레드본2를 촬영 중이었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어마어마했다.

“나라 이모. 레드본 나와?”

“아니, 마린사 영화지, 레드본 영화는 아니야.”

“에이!”

레드본을 재미있게 본 서준이 입술을 삐죽였다. 하긴 레드본 영화라고 해도 서준이 찍을 장면은 아주 짧은 장면이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1초 만에 잊을 아주 짧은 신.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서은혜를 보며 나라가 작게 웃었다.

“이건 비밀인데. 레드본2 촬영이 사고로 늦어지면서 마린사에서 그전에 두 개의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기로 했대. 그래서 촬영 일정이 급한 거고.”

“두 개?”

서준의 물음에 나라가 대답하려던 찰나, 천막 밖에서 기침 소리가 들리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천막 안으로 두 남녀가 들어왔다. 애써 미소 짓고 있는 여자와 두꺼운 겉옷을 입은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윌리엄의 엄마 역을 맡은 멜리사예요.”

“안녕하세요. 촬영을 도울 배런입니다.”

서준이 의자에서 내려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역 배우 서준 리입니다.”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아역 배우의 나이가 제일 어린 4살 10개월이라고 들었는데 제법 똑똑하고 말도 잘했다. 멜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촬영 전에 친해지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같이 왔어요.”

이 말을 하며 아역 배우 대기실에 온 게 벌써 다섯 번째였다. 멜리사의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경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갑자기 뒤에서 들어 올리면 무서울 테니까요.”

물론 배런도 마찬가지였다.

“아, 앉으세요. 전 서준이 엄마, 은혜 서예요.”

“반가워요. 나라 킴이에요.”

인사를 나누고 대기실 안이 조용해졌지만 어색하던 분위기도 곧 풀렸다. 사교성 좋은 나라 킴이 적극적으로 영화 촬영 현장에 대해서 물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연기를 반복하시느라 힘들겠어요.”

멜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연기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너무 울어서 문제에요.”

“앞에서는 처음 보는 여자가 엄청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지, 뒤에서는 낯선 남자가 잡아 들지.”

배런이 씁쓸하게 웃었다.

“애들 나이도 어려서 많이 무서운가 봐요.”

“저희는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데 스태프분들이 고생이죠.”

멜리사와 배런은 험악한 인상의 스태프 중 유일하게 나이가 적고 덩치도 작아,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은 조나단 윌을 떠올렸다.

조나단 윌은 오늘 온종일, 우는 아이를 달래고 돌보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멜리사와 배런은 천막에 들어온 목적을 이루기로 했다.

멜리사와 배런, 서준. 세 배우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옆집 친구, 잭과 노는 이야기부터 지금 촬영하는 다른 영화의 이야기까지 이어나갔다.

즐겁게 이야기하는 서준의 모습에 서은혜도 나라도 대견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멜리사가 물었다.

“준, 대본 읽어봤어?”

“엄마가 읽어줬어요.”

“어땠어? 윌리엄이 무슨 기분일 것 같아?”

“엄청 행복했을 거예요.”

벌써 여러 번 찍었던 내용을 떠올렸던 멜리사와 배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행복? 그럴 리가 없는데?

“왜?”

“엄마가 이름을 불러줘서.”

서준이 엄마가 읽어주었던 대본을 떠올렸다.

서준이 나오는 장면은 짧았다. 지구를 침략한 적들이 지구 곳곳에 웜홀을 만들었다. 서준이 나오는 장면은 그런 피해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였다.

정원에서 혼자 놀고 있던 아기는 긴급뉴스를 보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엄마를 바라본다.

‘윌리엄!’

엄마가 비명처럼 이름을 부르자 아기가 가지고 놀던 곰 인형을 안고 환하게 웃는다.

그때, 아기의 뒤로 무서울 정도로 새까만 웜홀이 생긴다. 절망한 엄마가 부른다.

‘윌리엄!!’

그러나 아기는 엄마의 비명에도 더욱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웜홀 안으로 아기가 사라진다. 신발 한 짝만 남기고.

“윌리엄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엄마가 불러서 행복했어요.”

“좋은 해석이야.”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아까 들은 것하고 비슷한데.

서준이 고개를 드니, 천막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있던 서준이 고개를 아플 정도로 들어 남자를 보았다.

엄청 크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키와 덩치가 컸다. 서은혜와 나라의 눈도 커졌다. 영화감독을 하지 않았다면 운동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감독님!”

서준의 곁에 앉아 있던 멜리사와 배런이 벌떡 일어났다.

이번 영화의 감독, 라이언 윌이었다.

라이언 윌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감독의 옆에는 화장품 박스를 든 분장사와 서준이 입을 옷을 들고 있는 스타일리스트가 서 있었다.

라이언 윌은 서준의 앞에 앉았다. 서준과 라이언 윌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라이언의 파란 눈동자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서준을 살폈다. 아이는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컸다.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화면에 잘 나올 것 같고. 키도 적당해 보였다. 인상을 팍 써도 무서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게다가 겨우 엑스트라 신에 불과한데도 제 나름대로 대본에 대해 해석해 왔다. 보호자의 말대로 움직이기만 하던 다른 아역 배우들과는 달랐다.

라이언 윌이 사납게 웃으며 서준의 얼굴만 한 손을 내밀었다.

“날 안 무서워하는 거 보니, 담력도 좋은 것 같고. 만나서 반갑다. 윌 라이언이다.”

“안녕하세요. 아역 배우 서준 리입니다.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라이언 윌의 커다란 손과 서준의 조그마한 손이 맞닿았다.

“그래. 아무리 주변 상황이 슬프고 심각하다고 해도, 윌리엄은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까 행복하게 웃어야 해. 준.”

“네!”

라이언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내가 비장의 무기도 준비했다고!

서은혜와 나라 킴하고도 인사를 나눈 라이언 윌은 다음 촬영 준비를 위해 천막을 나섰다.

“그럼 일단 옷부터 갈아입을까요?”

시계를 보던 스타일리스트가 말했다. 서준은 옷을 갈아입었다. 다행히도 영화 속 계절이 가을이었기 때문에 서준은 제법 따뜻하게 옷을 입었다.

“날씨가 좀 쌀쌀하기는 한데, 옷감도 두껍고 안에 따뜻한 손난로도 붙여 놨으니 괜찮을 거예요.”

“화장도 많이 할 필요는 없네요.”

할 일을 끝낸 두 사람은 얼른 다른 일을 찾아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럼 우리도 가 볼게요. 준. 화이팅!”

윌리엄의 엄마역을 맡은 멜리사와 서준의 등 뒤에서 서준을 들어 올려 크로마키 속으로 사라지게 도와줄 일명, 웜홀 역 배런도 촬영 준비를 하러 나갔다.

나라도 잠시 전화통화를 하기 위해 천막 밖으로 나갔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자리를 비웠고 천막 안에는 서은혜와 서준만이 남아 있었다.

“서준이는 뭐 할래?”

“명상!”

서준이 좀비 가방에서 납작한 슬라임 베개를 꺼냈다. 김희상이 만들어준 베개로 서준이 항상 들고 다니는 최애템이었다.

“자는 게 아니라?”

“아냐. 명상이야.”

서은혜가 웃었다. 명상이라는 단어는 또 어디서 들었는지. 아들의 또래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언어 발달에 놀라기도 지쳤다.

“알았어. 엄마는 여기서 책 읽고 있을게.”

“응!”

서준이 천막 구석에 놓인 간이침대에 올라갔다. 그리고 슬라임 베개를 베고 누웠다. 엄마가 한쪽에 있던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럼 촬영 시간 되면 깨워줄게.”

“명상이야.”

입을 삐죽인 서준이 눈을 감았다.

서준의 뒷통수에 새겨진 [여름 곰의 겨울잠-최하급]은 아주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뒷통수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들었다.

[여름 곰의 겨울잠-최하급]

무더운 여름에만 활동하는 여름 곰에게는 가을도 겨울도 봄도 너무 추워, 잠만 잡니다.

하루 30분 동안 어디에서든 닿자마자 잠이 듭니다.

수면 도중 회복력을 아주 조금 높입니다.

* * *

생의 도서관이 눈앞에 있었다. 파란색 문밖에 열리지 않았던 문이, 어느새 하나 더 열려 있었다. 노란색 문이었다.

서준은 얼른 삼 일 전 노란색 문 도서관에서 찾아놓았던, 능력이 담긴 구슬을 얼굴 가까이에 댔다.

구슬이 반짝이면서 서준의 양쪽 뺨에 스마일 문양이 생겼다.

[웃는 얼굴 버섯의 환상-하급]

웃는 표정을 지으면 사용자의 얼굴을 본 대상자에게 환상 마법이 펼쳐집니다.

대상자는 사용자에게 일정 기간 연민의 마음이 생깁니다.

대상자에 따라 효과와 기간이 변동됩니다.

“이건 웃으면 자동으로 사용이 되어버려서 큰일이었어.”

약간 따뜻해진 것 같은 양 볼을 비비며 서준은 일주일 전을 떠올렸다.

엄마가 읽어주는 대본을 듣고 밤새 찾은 능력이었다. 딱 적당한 능력을 찾아 기뻤던 나머지 얼른 등록시켜버렸다.

다음 날 아침, 엄마 아빠를 보며 평소처럼 웃는데.

[웃는 얼굴 버섯의 환상이 발동됩니다.]

네?

갑자기 엄마 아빠가 서준을 끌어안았다. 평소보다 꼬옥! 그러고는 가슴 속에서 벅찬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는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우리 서준이!”

“우리 귀여운 서준이!”

라고 서준을 불러댔다. 대상자에 따라서 효과가 변한다. 두 사람의 자식이라서 더욱 격한 감정을 일으킨 것 같았다.

다행히 두 사람의 감정은 곧 가라앉았다. 하지만 서준은 스킬의 영향으로 반나절 내내 엄마 아빠의 시야 안에 있어야 했다. 그날 저녁에는 모든 효과가 사라졌다.

생각보다 좋은 능력에 서준이 이히히 웃다가 놀라 얼굴을 굳히고 얼른 잠을 청했다. 평상시에는 못 쓰겠다. 오늘은 얼른 취소해야지, 이 스킬은.

그런 스킬이라서 서준은 어쩔 수 없이 촬영장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도 문제야.”

절대 웃으면 안 된다. 서준이 양쪽 볼을 짝짝 두드리고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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