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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7화 (2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7화

“준비는 다 됐어?”

짧은 단발머리의 나라 킴이 까만 선글라스를 들어 서준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서준이 두 주먹을 번쩍 들며 대답했다.

“응!”

“그럼 출발할까?”

“서준아, 가방 챙겨야지.”

서은혜가 서준의 가방을 가지고 왔다. 서준이 가방끈에 팔을 집어넣었다.

한 손에는 엄마 손, 한 손에는 나라 이모의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오. 준!”

“안녕. 에릭!”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던 옆집 남자, 에릭 스미스와 만난 서준이 반갑게 인사했다. 에릭이 웃으며 물었다.

“오늘은 무슨 가방이야?”

“좀비!”

서준이 두 손을 놓고 빙글 돌았다. 여기저기 바느질한 자국이 드러난 좀비 인형이 달린 가방이 에릭의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의 빨간 핏자국이며 창백한 피부색의 좀비는 실감 나면서도 제법 귀여웠다.

“멋진걸! 상이 만들어준 거야?”

“응. 희상이 삼촌이 만들어준 거야. 잭은 어디 갔어?”

“잭은 할머니 집에 놀러 갔어. 나중에 잭이 보면 또 갖고 싶다고 울겠군. 상에게 주문할 게 늘었구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릭이 주먹을 내밀자 서준도 주먹을 내밀어 콩! 맞대었다.

에릭이 뒤에 서 있던 서은혜와 나라에게도 인사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희상 씨 인형이 인기가 많네.”

“회사까지 그만두고 시작했으니까 인기가 없으면 큰일이지.”

서은혜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나라가 웃었다.

“다 너희 너튜브 때문이잖아.”

미국에 온 후, 서은혜와 이민준은 아주 바빴다.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려니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 아동학대 등의 아동 범죄를 공부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

한국에서는 그냥 넘어갈 일들이 미국에서는 아동학대가 되어버리고는 했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했다.

나라 킴이 준비해 준 자료가 아니었다면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바빴던 부부가 LA의 생활도 익숙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참견해대는 사람들 때문에 부부는 여기도 한국과 별다를 것 없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극복하고자 마음먹으니, 반쯤 해결된 것 같았다.

서은혜는 너튜브에 미국 생활의 브이로그를 조금씩 올리면서 서준의 인형을 노출했다.

그쯤 김희상은 부부와 서준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형 디자인을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는 댓글이 많았지만, 점점 꽤 잘 만들었다는 의견이 생기고 곧 어디서 파는 제품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은혜는 김희상에게 물어보고 주문 방법을 너튜브에 올렸다. 그리고 밀려드는 주문에 김희상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신나게 사직서를 던졌다.

“작년 핼러윈에 이 근방 애들은 거의 다 희상 씨 인형을 매달고 다녔을 거야.”

그 유행의 선두자가 바로 서준이었다. 조그마한 아이가 엄마 아빠와 외출할 때마다 달고 다니는 여러 몬스터 인형들은 처음에는 그 특이함에 어른들의 눈길만 사로잡았지만, 곧 아이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옆집에 살면서 서준과 아주 친하게 지내는 잭은 서준의 인형이 새로 생길 때마다 울음을 터뜨리고는 해서 스미스 부부와 서은혜 이민준 부부를 곤란하게 했다. 대인배 서준은 덜 좋아하는 인형을 하나씩 주고는 했다.

“이모! 얼른 가자!”

서준이 나라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서준의 재촉에 서은혜와 나라가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라와 서은혜가 안전벨트를 매고 서준은 카시트에 앉았다. 좀비 가방은 서준의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준이. 연습은 했어?”

“응!”

나라의 물음에 서준은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서준이가 연기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괜찮을까?”

서은혜의 말에 서준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엘리펀트 분유 광고를 찍을 때도 엄청 열심히 귀여운 척했는데. 엄마한테 보이지 않게 입술만 삐죽거렸다.

“너는 걱정이 많다니까.”

“아니.”

태평한 나라의 말에 서은혜가 이마를 짚었다.

“네가 바로 삼 일 전에 전화해서, 영화 촬영하자고 말했잖아. 그거 권유도 아니었어.”

“아하하하.”

* * *

삼 일 전, 나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은혜는 스피커폰으로 서준과 같이 전화통화를 했다.

-서준아. 우리 영화 촬영하자!

“영ㅎ……?”

“할래!”

서은혜가 되묻기도 전에 서준이 대답했다.

영화! 영화라니! 미국에 온 뒤로는 브이로그 촬영밖에 하지 않았던 서준은 애가 탔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평생 슈퍼스타가 못 될 것 같았다.

서준이 만세를 부르며 거실을 뛰어다녔다.

“할래! 서준이 할래!”

-그래! 대본 보낼게!

“아니, 잠깐! 나라야!”

서은혜의 부름에 전화를 끊으려던 나라가 되물었다.

-왜?

“갑자기 영화라니 무슨 소리야?”

-저번에 서준이가 영화 관련 다큐를 보고 있길래, 배우 하고 싶냐고 물어보니까 하고 싶다더라고.

“그랬어?”

-응. 그래서 그동안 서준이가 찍은 광고랑 너튜브 영상을 아역 배우 구하는 곳에 보냈는데 오디션 보러 오라고 답장이 왔어.

“오디션?”

서은혜의 말에 서준이 달려와 휴대폰에 대고 물었다.

“영화 촬영 아니야? 오디션이야?”

-오디션 겸 영화 촬영이래. 아마 서준이 말고도 다른 아역 배우들도 올 거야. 그 애들이 찍은 영상 중에 가장 좋은 영상을 영화에 넣을 거래.

“그럼 서준이가 영화에 안 나올 수도 있겠네?”

-그래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해봐. 서준이는 어때?

“할래!”

누가 나와도 내가 이길 자신이 있었다. 서준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불타오르는 서준의 모습에 서은혜도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알았어.”

-그럼 대본 보낼게!

그리고 행동력 빠른 나라 이모에게서 메일이 왔다. 퇴근하고 돌아온 이민준도 글자도 모르면서 프린트한 대본을 뚫어지게 보는 아들의 모습에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아들 첫 촬영인데, 못 가 보겠네.”

“사진 찍어올게.”

이민준이 히히 웃고 있는 서준의 뺨을 쭉쭉 늘리며 하는 말에 서은혜가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아. 깜빡했는데. 그거 마린사 영화야.

“……마린사?!”

나라의 메시지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서은혜와 이민준이었다.

* * *

창문 밖의 집들이 휙휙 지나갔다. 서준은 고민했다. 차도에는 적정 속도가 있다던데, 이모는 지키고 있는 걸까?

“근데 너튜브에 영상 있는 거랑 광고 찍은 건 어떻게 안 거야?”

“만세한테서 올라온 보고서 봤어. 서준이는 7개월부터 카메라에 찍혔다며? 광고도 찍고.”

만세는 케빈 킴의 본명이었다.

장남 우리, 장녀 나라, 막내 만세.

우리 나라 만세.

서은혜와 이민준, 서준은 나라에게서 그 이름을 듣고 한참이나 웃었다.

어느새 브라운블랙의 팬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는지 팬클럽에서는 만세가 들어간 닉네임을 먼저 선점하느라 한바탕 소동도 있었다.

“보고서?”

“할아버지가 우리 남매 어렸을 때부터 일기나 편지 대신 보고서를 써 올리라고 했거든.”

나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콧물이나 질질 흘리는 꼬마들에게 보고서를 올리라는 할아버지도 그렇고 회사 일이 싫다며 잠적한 오빠며 랩이 좋다고 집 나갔다가 결국 한국까지 간 남동생까지.

우리 집에 정상인은 없는 걸까?

“우리 남매는 편지 같은 것보다 그런 게 더 익숙해서 말이야. 너희 가족 잘 부탁한다면서 보고서를 보냈지 뭐야. 4년 전에. 물론 그때 읽고 까먹고 있었지만.”

며칠 전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웃는 얼굴이 예쁜 남자아이 배우를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나라는 곧바로 서준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만세가 그런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던 것 같은데. 서재의 책장들을 뒤져보니 4년 전 한 번 읽고 넣어 놓았던 만세의 보고서가 있었다.

“서준이가 찍은 분유 광고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광곤데 유독 아기들을 가진 부모들에게 잘 먹히는 광고라고 하더라고. 서준이가 찍은 먹방도 20개월 이하의 아기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발휘하고.”

보고서를 읽은 나라도 영상을 찾아보았다.

확실히 그녀의 눈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광고였는데 부모들과 아이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나라 킴은 백미러를 통해 서준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에 서준이 움찔했다.

“알고 보니, 옆집 에릭 씨도 서준이 영상 봤다더라. 잭 키우는 데 엄청 도움이 됐대.”

거기다 서준의 영상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그건 알고 있어.”

첫날,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인사를 하려고 문을 두드리자 나왔던 스미스 부부가 서은혜의 품에 안긴 서준을 보고 깜짝 놀란 얼굴로 ‘오, 준!’이라고 외쳤다.

그에 부부와 서준도 깜짝 놀랐다. 그 이후 제법 친해진 두 가족이었다.

“게다가 서준이가 줄곧 들고 다니는 희상 씨 인형도 잘 팔리고. 홍보만 했다면 완판이라니, 그 정도면 서준이한테 뭔가 있다는 거지.”

나라는 후에 서준을 킹즈마켓의 모델로 쓸까 고민 중이었다. 지금은 아무런 유명세도 없어서 다들 반대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서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서준은 능력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희상이 삼촌 인형은 그냥 인기가 많은 거였다. 영상통화로 일거리에 치여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희상이 삼촌이 떠올랐다.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나라의 차가 멈추었다. 안전벨트를 푼 나라가 뒷좌석에 앉은 서은혜와 서준을 보며 말했다.

“걱정할 거 없어. 그냥 가볍게 연습이다 하고 찍어. 전화로 말했던 대로 진짜 잠깐 나오는 엑스트라 역이고 그냥 안 떨고 카메라 보면서 활짝 웃기만 하면 돼. 대본 읽어 봤지?”

“응.”

마린사……. 서은혜는 잊으려고 노력했던 이름을 떠올렸다.

아……. 부담감에 이마를 짚은 엄마와는 달리 서준은 신이 났다.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회사의 영화를 찍게 되다니!

“엄마가 읽어줬어! 나도 연습했어!”

“그래. 잘했어!”

나라가 차에서 서준을 내려주었다. 좀비 가방도 잊지 않고 서준의 등에 메어주었다.

“이쪽이야.”

나라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나라가 향하는 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박스들을 옮기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라가 보안요원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보안요원은 무전으로 무어라고 말했다.

곧 멀리서 한 사람이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스태프 조나단 윌입니다. 오늘 오디션 보러 오신 분인가요?”

주근깨가 박힌 중학생쯤 보이는 소년, 조나단 윌이 한 손에 종이를 들고 물었다. 종이에는 빨간 선이 가득했다.

“네. 서준 리예요.”

“네. 잠시만요. 지금 다른 아역 배우가 오디션 중이라서요.”

조나단이 땀을 닦으며 세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오른쪽에서는 촬영하고 있는지 소리 없이 북적북적했다.

“이쪽입니다.”

소리를 죽인 조나단이 간이 천막의 입구를 열었다.

그때였다.

“윌리엄!”

여성의 비명 소리와.

“으아아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조나단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정을 모르는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영 멎지를 않자, 아주 큰 목소리가 들렸다.

“조나단 윌!!”

“네! 감독님! 금방 갑니다!”

핼쑥한 표정의 조나단이 빠르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분장사가 의상을 가져올 거예요. 그 옷으로 갈아입고 기다리시다가 호명하면 나오시면 됩니다. 제가 못 올 수도 있거든요.”

“조나단 윌!”

“예, 예!”

굵직한 감독의 목소리에 창백해진 조나단이 얼른 아직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촬영장 쪽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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