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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6화 (2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6화

모든 일정이 끝난 브라운블랙과 서은찬은 서준의 집으로 향했다. 뜻밖의 박수갈채와 퇴근길의 플래시 세례에 깜짝 놀라 정신이 없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펑! 펑! 폭죽을 터뜨리는 서은혜와 이민준을 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터뜨렸다. 또 브라운블랙 사이에 끼인 서준은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약간 심술이 난 것도 있어서 자꾸 달라붙는 형들의 얼굴을 밀어댔다.

“오늘따라 서준이가 냉랭한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얼른 씻고 나온 브라운블랙이 서준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서준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브라운블랙은 얼른 인형들을 들었다.

“헉. 서준이한테 이런 인형이 있었어요?”

“와, 이건 완전히 해골인데?”

몬스터 인형을 처음 본 브라운블랙이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곧 축하 파티에 참석한 김희상이 넘겨준 ‘서준이와 놀아주는 시나리오’를 읽으며 열심히 서준과 놀았다. 서준의 기분도 금세 풀렸다.

거실 탁자 위에는 어느새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실시간 검색에 올라간 걸 보여주고 싱글벙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민준이 입을 열었다.

“우리 미국 가.”

“네?”

“미국 간다고. 아마 한 달 뒤에.”

“미국이요?!”

브라운블랙이 놀라 소리쳤다. 한 달 동안 브라운블랙과 친해진 김희상과 매니저인 서은찬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맥주만 마셨다.

“응. 민준이가 미국 지사로 발령이 나서. 한 2, 3년 있다가 올 것 같아.”

“혼자 가면 쓸쓸하니까 다 같이 가기로 했어.”

브라운블랙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리치왕의 손을 우물우물 빨고 있는 서준을 보았다. 2, 3년.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근데 미국 어디로 가세요?”

“LA. 로스앤젤레스.”

조용한 가운데 케빈이 묻자 이민준이 대답했다.

“LA라면 우리 집이 있어요. 다들 다른 곳에 가셔서 지금은 누나밖에 안 사는데…….”

케빈이 휴대폰으로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가족사진이었다. 지금보다 어려 보이는 케빈의 모습과 두 남녀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 사람은 저희 형이고 이 사람이 누나예요.”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과 호쾌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민준과 서은혜가 사진을 보았다.

“제가 저희 누나한테 연락할 테니까, 힘든 일 있으시거나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전화하세요. 여기 연락처.”

“우리야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만, 이런 거 함부로 줘도 돼?”

“아하하하.”

이민준의 물음에 케빈이 웃었다.

“괜찮아요. 우리 누나 엄청 마당발? 그거예요. 아는 사람이 늘었다고 엄청 좋아할걸요. 진짜 심심해서 전화 걸어도 얼른 나와서 같이 놀아줄 거예요. 아, 물론 회사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말이에요.”

“그래? 고마워. 꼭 연락할게.”

서은혜가 연락처를 꼬옥 쥐었다.

눈치 볼 사람들이 없어서 가기로 결정은 했지만, 역설적으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 생활에 관해 물어볼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 * *

서은혜가 잠이 든 서준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이민준도 조용히 서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꿈속에서 무얼 먹고 있는지 서준이 입만 우물거렸다.

“내가 참. 편견 같은 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책하는 듯한 서은혜의 말에 이민준이 웃었다. 그도 그랬다.

“어쩔 수 없지. 부모니까.”

“그래도 좀 그렇더라.”

서은혜는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몬스터 인형들을 일일이 안아주는 서준을 보고 순간 마음이 아렸다. 게다가 영상으로 본 [48시간] 속에서도 서준은 도통 인형을 만지지 않았다.

서은찬에게 물어보니, 편집본뿐만 아니라 48시간 내내, 처음 빼고는 만지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서준이는 너무 착하고 똑똑해서. 엄마 아빠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아.”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거겠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서은혜는 자라는 내내, 그리고 지금도 가끔 무신경한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왔다.

그런 편견을 이겨내고 자라온 그녀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눈치 보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서준은 듣지 못했을, 예전에 들었던 ‘저 아기, 인형 이상하다’라는 어떤 사람의 말이 서은혜의 마음에 쿡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인형이 이상하다는 소리는 곧 아기가 이상하다는 소리로 바뀌어 서은혜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은혜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이민준도 조금 예민해졌다.

그들도 모르게 그들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다.

“우리라면 몰라도 서준이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 서준이가 아파하면 어떡해.”

그래서 부부는 집안에서는 서준이 좋아하는 몬스터 인형들로 놀아주었다.

아기 엄마들은 좋은 사람들이라서 숨기지 않았지만, 밖에서는 인형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평범하게 생긴 곰 인형만 챙겼다.

그 곰 인형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인형들을 세탁하다가 알아차렸지만 말이다.

부부의 마음을 알고 서준까지 생각한 김희상의 배려였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 상황이, 무언의 압박처럼 오히려 서준이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이 작은 아기가 신경 쓰게 만들어버렸다.

어떻게 하면 서준이 맘 편하게, 그리고 엄마 아빠 눈치 보지 않고 인형들과 잘 놀까 고민하던 찰나, 타이밍 좋게 이민준이 미국 지사로 발령이 났다.

미국.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있고 특이함조차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곳.

나아지고 있기는 했지만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한국보다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미국이 낫지 않을까.

주위 환경을 바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서은혜와 이민준의 트라우마도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서은혜와 이민준은 서준과 함께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

돈은 충분했다.

오랜만에 너튜브와 연결된 계좌를 본 서은혜와 이민준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숫자의 향연에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서준의 몫으로 얼마쯤 빼고 여러 기관에 기부했다.

“나도 미국에 간 김에 공부도 더 하고.”

“서준이도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엄마 아빠는 본인들을 위해서도 서준을 위해서도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

* * *

서준은 엄마와 함께 유모차를 타고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 나갔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두툼한 옷을 입어서 따뜻했다.

벤치에 앉아 엄마와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고 있으려니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렸다.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던 커플이었다.

“저 아기, 그 브라운블랙하고 같이 나온 아기 맞지? WNET에 나왔던.”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왜. 딱 보니까 알겠는데?”

“저 나이 때 애들은 다 비슷비슷하지 않나?”

고개를 갸웃하는 남자의 말에 여자도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기들 얼굴 구분하는 게 어렵긴 하지.

“근데, 48시간 봤어?”

“어. 재밌더라. 아기 보는 거 엄청 어렵겠던데.”

서은혜가 굳었던 몸을 조심히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대 피하는 티가 나지 않게 서준의 유모차의 앞을 가리고 천천히 벤치에서 벗어났다.

커플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조금 벗어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자 서은혜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옴마?”

“와. 밖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네?”

브라운블랙이 데뷔한 지, 벌써 한 달.

첫 데뷔 무대로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인상을 남긴 브라운블랙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방송과 행사에 불려 다니느라 바빴다.

전화도 할 시간이 없었고, 서은찬은 데뷔 전보다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서은혜와 어머니도 이미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브라운블랙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덩달아 너튜브 [48시간]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늘었다.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자, WNET에서 [48시간]을 재편집해서 내보내자는 제안을 서은찬 편으로 보냈다.

“어차피 늦은 시간에 하는 방송이라 보는 사람도 별로 없어. 거기다 곧 미국 가잖아. 애들은 이맘때 엄청나게 커서 미국 갔다 와서는 다들 못 알아볼걸?”

브라운블랙의 성공을 위해 조카까지 이용하는 삼촌, 서은찬의 말에 어차피 너튜브에도 올린 거, 상관없겠지 하고 부부는 승낙했다.

WNET에서는 서은혜와 이민준의 의견을 받아들여 텔레비전에 내보낼 영상을 편집했다. 이번에는 서준보다는 브라운블랙을 중심으로 편집되었다.

“이번에는 넣어도 괜찮을 것 같네요.”

너튜브에는 올리지 않았던 영상. 서은찬은 이번 방송에는 놀이터에서 만났던 남자의 영상을 올리기로 했다.

서은찬은 남자에게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서준의 아파트에 갔다가 남자에게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헐. 왜 몰랐지? 매니저, 서은찬은 반성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홍보도 됐고 괜찮습니다.”

“진짜 홍보는 아니었어요!”

남자의 허락을 받고 케이블 방송국에서는 남자가 올렸던 글과 게시판에 달린 댓글, 그리고 놀이터의 영상을 편집해 올렸다.

-진짜?

-진짜 홍보 아니었음?

-너튜브 버전에는 왜 안 올렸대?

-그러면 진짜 주작이라고 했겠지. 누가 노래가 좋다고 무명 아이돌 그룹이 공연하는데 그렇게 찾아가서 사인을 받냐고 난리가 났겠지.

-하긴.

화면 속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이게 1호 사인지입니다!”

방송으로도 인정받은 공식 1호 사인지였다.

-나중에 브블 유명해지면, 엄청 비싸지겠다.

-ㅇㅇ 사연도 좋고.

-부럽…….

…….

-근데 아기도 귀엽다.

-그러게. 다른 애들보다도 똑똑한 것 같은데? 낯도 잘 안 가리나 봐. 울지도 않아.

-이 애, 걔 아니야? 애들 먹방 영상으로 올라왔던 전설의 먹방.

-오. 그런 듯. 걔 요새 너튜브 광고에 뜨던데. 코끼리 나오는.

* * *

“더 알아보기 전에 얼른 집에 가야겠다.”

“으응!”

서준은 신이 났다. 형아들만큼은 아니지만 벌써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물론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받는 기분! 완전 좋아!

서은혜와 같이 돌아온 집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오직 잠자는 방만이 깔끔했다. 거실과 부엌은 반쯤 짐이 쌓인 박스로 가득했다.

“집은 은찬이가 쓰기로 했고. 필요한 것만 챙겨도 이 정도네.”

“으걍!”

서준이 리치왕 인형을 들어 올렸다. 서은혜가 웃었다.

“서준이 인형도 잘 챙겨뒀지.”

“으응!”

서준이 리치왕 인형을 꽉 안으며 환하게 웃었다. 인형을 보는 엄마 아빠의 시선이 전과 달랐다. 어쩐지 엄마 아빠의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서준도 기뻤다.

일주일 뒤, 서준은 미국으로 떠난다.

* * *

“서준아. 나라 이모 왔어!”

“이모!”

창문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양손을 힘껏 흔들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케빈의 누나, 나라 현관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서준이 우다다 뛰어가서 나라 킴과 짝! 하이파이브했다.

미국에 온 지 벌써 4년.

이서준, 58개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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