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5화
수능이 끝난 고3은 무적이다!
양손에 플래카드와 응원봉을 든 이미연이 이히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웨스트윙의 1년 차 팬인 그녀는 처음 온 방송국이 신기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들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미사랑 님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음악방송 방청은 처음이라서 평소 SNS로 연락하던 3년 차 팬을 만나기로 했다. 너의하늘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자분이셨다. 너의하늘이 웃으면서 옆자리에 앉았다.
“웨스트윙은 마지막에 나올 거예요. 그때까지는 다른 가수들 노래도 잘 들어주세요. 호응도 잘해주시면 좋고요.”
“네. 알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목요일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더 뮤직쇼!]
[MC 리아입니다!]
[MC 민우입니다!]
“와아아아!”
스태프가 박수를 유도했다. 너의하늘이 능숙하게 손뼉을 치자 옆에 앉아 있던 이미연도 한 박자 늦게 손뼉을 쳤다.
“진짜 예쁘다.”
이래서 아이돌 아이돌 하는가 보다. 실물로 본 MC들은 더 예쁘고 잘생겼다. 감탄하고 있는 이미연의 앞자리에서 소곤소곤 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우리밖에 없는 거 같네요.”
“어쩔 수 없죠. 신생에 유명한 연습생도 없는걸요. 저희만 있는 것도 엄청난 거예요.”
누구지? 하고 슬쩍 보니 [브블아 사랑해!] [브라운블랙 화이팅!] [데뷔 축하해!] 같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데뷔라면 오늘 데뷔하는 건가? 브라운블랙? 이미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첫 무대부터 두근두근하네요.]
[네. 아주 멋진 신인분들이 데뷔하신대요.]
[오, 만나보셨어요, 리아 씨?]
[아뇨. 이제부터 봐야죠!]
MC들의 소개에 이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무대가 앞자리 사람들이 응원하는 그룹인가 보다.
“데뷔 무대니까 실수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웨스트윙도 데뷔 무대는…….”
너의하늘도 듣고 있었던 모양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길이길이 흑역사로 남을 데뷔 무대였다. 하지만 그 영상이 발판이 되어 유명해질 수 있어서 팬들에게는 애증의 데뷔 무대였다.
[오, 이분들 이름은 코코아처럼 달콤하네요!]
[더 뮤직쇼를 시청해 주시는 모든 분이 이분들의 노래처럼 멋진 ‘스타트!’가 되기를 바랍니다!]
[브라운블랙의 시작!]
이미연과 너의하늘은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데뷔 무대니까 응원해 주자는 생각으로 박수를 쳤다.
네 명의 남자가 무대 위에 섰다. 정장을 입은 브라운블랙은 이제 막 취직한 사회초년생처럼 보이기도 했고 대학의 새내기가 잘 차려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방청석이 일순 침묵에 잠겼다.
자기 가수를 기다리던 팬들이 나누던 잡담도 콜록거리던 기침 소리도 의자의 덜그럭거리는 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이 자리에 없는 서준만이 볼 수 있는 숫자들이, 브라운블랙의 머리 위에서 반짝였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됩니다.]
이미연은 인생 처음으로 직접 본 아이돌의 무대에 넋이 나가 버렸다. 눈도 깜빡하지 않고 무대 위만을 바라보았다. 입만 벙긋벙긋했다.
뭐라 반응을 하기도 전에 브라운블랙의 노래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랐고,
펑!
꽃가루가 터졌다. 소름이 돋았다.
“와…….”
무대를 끝낸 브라운블랙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방청석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미연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그녀를 시작으로 방청석에 박수 소리와 환호성만 울려 퍼졌다.
무대 뒤로 돌아가던 브라운블랙이 환호성을 듣고 꾸벅꾸벅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라졌다.
“와. 라이브라는 게 이런 거였어요? 전 공부만 하느라 맨날 텔레비전으로밖에 못 봤는데……. 콘서트도 못 가 봤어요! 와. 이제 데뷔하는 그룹이 이 정도면 웨스트윙 무대는 진짜 멋지겠네요!”
잔뜩 신이 난 이미연이 조잘조잘댔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무대가 엄청났다. 이제 겨우 데뷔한 그룹의 무대가 이럴진대, 5년 차이자 유명한 아이돌 그룹인 웨스트윙의 무대는 얼마나 대단할지, 가슴이 뛰었다.
눈을 반짝이는 이미연의 옆에서 넋을 놓고 박수를 치던 너의하늘이 정신을 차렸다.
“아.”
“왜 그러세요?”
너의하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보다는 눈으로 보는 게 낫지.
너의하늘은 앞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보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훌륭한 무대에 기뻐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팬일 터였다.
그녀의 예상대로 한껏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의하늘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브라운블랙]
대단한 신인의 등장이었다.
더 뮤직쇼의 무대는 계속됐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방청석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라서 호응은 하는데, 약했다. 다들 첫 무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탓이었다.
저도 모르게 첫 무대와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비교하고 있었다.
웨스트윙의 무대를 끝으로 더 뮤직쇼가 끝났다. 이미연은 실망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뭐랄까. 잔뜩 기대했는데 별로인 것 같아요. 노래도 반쯤 립싱크였던 것 같고 춤도 안 맞는 부분도 많고.”
“처음 나왔던 그룹이 대단했던 거예요.”
너의하늘이 기운 없는 이미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미연은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서도 계속 생각나던, 다시 떠올려도 가슴이 뛰는 더 뮤직쇼의 첫 무대를 떠올렸다.
“그 그룹 이름이 뭐였죠?”
“브라운블랙이요.”
브라운블랙의 팬이 되기로 한 너의하늘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 * *
더 뮤직쇼가 끝났다. 마지막에 터졌던 예비용 꽃가루를 치우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김민혁이 실실 웃으며 커피 한 잔을 가지고 왔다.
이상천 PD가 잔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이 자식은 커피 때문이라도 같이 일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멋지던데요?”
“음? 뭐가?”
“브라운블랙? 그 부잣집 막내아들 있던 그룹이요.”
“망했어.”
“네?!”
이상천의 말에 실실 웃던 김민혁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그렇게 무대가 좋았는데 망했다고?
“선배도 좋아서 마지막에 터뜨릴 꽃가루까지 걔들 무대에서 터뜨린 거 아니었어요?”
“그건 진짜 쪽팔리긴 하는데…….”
이상천 PD가 이마를 짚었다. 아니, 쓸데없이 그때 딱 장인정신이란 게 나타날 게 뭐람? 제 속에 그런 장인정신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저도 모르게 꽃가루를 터뜨리고 수습한다고 장난이 아니었다. 다음 가수를 위해 무대에 가득한 꽃가루도 청소해야지, 1위를 발표할 때 쓰일 꽃가루도 챙겨야지.
이상천 PD는 한 시간 전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득했다. 그나마 예비용 꽃가루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김민혁이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오늘 시청률도 장난 아닐 것 같은데요? 무대 끝나고 장난 아니라고 SNS에 엄청나게 떴던데…….”
“녹화방송이면 대박이겠지. 근데 우리는 생방이잖아. 첫 무대가 그렇게 멋졌다고 들어서 채널 돌렸는데 평상시랑 똑같아 봐. 아마 지금쯤 게시판 터졌을걸.”
김민혁이 그런가? 하고 휴대폰을 켰다.
“게다가, 너 아까부터 걔들 이야기밖에 안 하는 거 알아? 걔들 무대에 뒷무대가 다 묻혔다는 거야. 망했어. 걔들을 뒷무대로 순서를 바꿨어야 했는데. 리허설 때는 그렇게 불안 불안하더니!”
이상천의 한탄에도 김민혁은 멍하니 휴대폰을 볼 뿐이었다.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상천 PD가 물었다.
“왜 그래?”
“걔네 실검 떴어요…….”
김민혁이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1. 더 뮤직쇼 첫 무대
2. 브라운블랙 더 뮤직쇼
3. 브라운블랙
4. 브라운블랙 시작
5. 더 뮤직쇼 방청 후기
…….
NEW! 브라운블랙과 준의 48시간
* * *
“실검 떴어!”
이민준의 말에 서은혜가 얼른 휴대폰을 보았다.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서준도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브라운블랙, 방청 후기, 첫 무대……!”
“멋지다. 진짜!”
서은혜와 이민준은 얼떨떨했다. 영상통화를 할 때까지만 해도 덜덜 떨던 아이들이었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훌륭한 무대였다.
게다가 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는 듯 사람들이 모두 첫 무대를 한 그룹의 정체를 알고 싶어 했다.
“서준아. 형아들 진짜 대단하지! 와! 진짜, 그냥 열심히 하는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멋진 무대를 할 줄이야!”
“이걸 눈앞에서 봐야 했는데! 아쉽다, 정말.”
이민준과 서은혜가 연신 브라운블랙을 칭찬하는 동안 까맣게 꺼진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서준은 뭔가 가슴이 따가운 것을 느꼈다.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불타는 것 같았다.
서준이 본 브라운블랙의 무대는 확실히 대단했다. 그건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노력과 실력, 재능이 모두 합쳐진 결과일 것이었다.
브라운블랙의 무대가 끝나고 텔레비전 너머 들려오는 박수 소리와 함성. 서준은 그 안에 들어 있는 감탄과 환호를 느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나랑 놀던 형아들이었는데.’
“SNS에 애들 사진까지 뜨고 있네?”
“서준이랑 찍은 영상도 검색어에 떴어!”
엄마와 아빠는 답답한 서준의 마음도 모른 채 들떠 있었다. 엄마의 품속에서 서준은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형들의 퇴근길 사진.
울었는지 눈가가 빨간 형아들.
어떤 사람은 브라운블랙의 출근길 사진과 퇴근길 사진을 비교해 올려놓았다.
인생역전.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던, 유명 가수의 사진 뒤에 희미하게 찍힌 브라운블랙의 출근길 사진과, 온갖 카메라에 둘러싸여 활짝 웃고 있는 브라운블랙의 퇴근길 사진.
멍하게 사진을 보던 서준은 문뜩 첫 생에서 바라던 삶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브라운블랙은 첫 생의 그와 비슷했다. 무명이었고 무명으로 죽었던 첫 생과는 달리 무명이었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스타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가는 첫 생이 바라던 모습이었다.
슈퍼스타가 되겠다. 장난처럼 했던 다짐이, 순간 커다랗게 다가왔다.
멍하게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던 서준의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서준도 깨닫지 못한 눈물이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이 놀라 허둥지둥거리는 것도 몰랐다.
서준의 눈이 화면 속 사진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무명이라는 것이 안타까워 형들을 도왔다. 과거의 나처럼 그렇게 절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곁에서 지내던 이들이 저기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니.
서준은 첫 생과는 상관없이 정말로, 슈퍼스타가 되고 싶었다.
* * *
제목 : 이 노래 아는 사람?
글쓴이 : 망해라회사
이 노래 아는 사람! 녹음은 못 했고……. 윗층에서 들려오던 노래임.
뚜르르뚜뚜 따라라란 따라라란 뚜르르뚜릅
대충 이런 느낌!
-?
-이걸 어떻게 알아?
-웨스트윙의 투게더 아니에요?
-여기에 또 치킨윙이…….
-가사라도 적어봐
-ㄱㅆ : 작은 소리라서 잘 안 들렸음. 대충 날 밟고 일어나 높아져 죽겠다?
-엄청난 가사네…….
-임련의 고발!
-브라이언의 티키타카!
-ㄱㅆ : 둘다 ㄴㄴ
…….
그렇게 인터넷의 한 대중가요 게시판이 불타올랐다. 올리는 댓글마다 ㄴㄴ를 외치는 글쓴이가 사라지고도 한동안 추측이 난무했다. 결국 베스트까지 올라갔다.
제목 : 어제 노래 찾아달라던 글쓴인데!
글쓴이 : 망해라회사
찾았음.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서 공연하더라!
아직 데뷔는 안 했고 브라운블랙이라는 그룹임. 제목은 시작! 엄청 좋음!
사인도 받음!
-?
-??
-???
-뭐조? 이 엄청난 어그로는?
-데뷔도 안 했는데 찾아달라고?
-요새 신인들은 이렇게 홍보를 하나? 대. 단.
-??? : 하루 만에 1만 안티를 만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망해라회사’가 쓴 두 개의 게시글은 순식간에 여러 사이트에 퍼졌다.
[흔한 신인 아이돌 홍보 방법]
아래층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너튜브에 올라온 브라운블랙의 예능에 나온 자신의 영상을 찾아 올리려고 해도, 어쩐지 편집되어 보이질 않았다.
서은찬이 미리, 섭외한 사람이 출연한 게 아니냐는 조작설을 막기 위해 편집한 것이었다.
남자는 몇 주 뒤 글을 올렸다.
제목 : 이거 봐라.
글쓴이 : 망해라회사
내 글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 홍보 아니고 진짜임.
WNET 더 뮤직쇼에서 데뷔함. 6시 첫 무대임. 진짜 홍보 아니고! 욕하려면 무대나 보고 욕하라고!
-네. 다음 홍보.
-진짜 신박하긴 했다.
-열심히 노래 찾았는데!
…….
-와씨. 첫 무대……. 완전 전설의 레전드!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했더니, X나 잘하네. 꽃가루 터질 때 소름.
-뒤에 가수들 노래 완전 못 하더라.
-착각임. 첫 무대가 너무 잘해서. 뭐, 치킨윙은 확실히 못 했지만.
-데뷔 무대라며. 진짜 대. 단.
-홍보였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노래는 좋았음.
…….
-근데 얘네 너튜브에 예능 있던데…….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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