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4화
서은혜는 텔레비전을 켰다. 너튜브를 연결해 채널 [JUN]에 들어갔다.
서은찬에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줘서 서은찬이 편집된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영상이 떴다. 서준과 놀고 있던 이민준이 서준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서준은 젖병을 꼭 쥐고 있었다. 쭙쭙.
“벌써 마지막 편이네.”
“그러게. 서준이가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알겠더라.”
12월 초, 첫 편이 올라오던 영상이 벌써 마지막 편이 되었다.
서은찬에게서 받은 영상을 시간이 날 때마다 봤지만 편집하고 자막이 있는 영상을 보는 건 또 색달랐다.
벌써 한 달이 지나서 서준은 9개월이 되었다.
“9개월의 서준은 더 귀여워지고 튼튼해졌지.”
“이제 엄마 아빠도 익숙해졌어. 처음에 들었을 땐 진짜 심장 찢어지는 줄 알았는데.”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던 서준이 입을 열었을 때가 엊그제 같았다.
처음 엄마 아빠를 말한 모습이 서은찬이 두고 간 카메라에 아주 확실히 찍혔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그 영상을 노트북에 저장하고 외장 하드 3곳에 저장하고 클라우드에 저장했다.
서준과 브라운블랙이 꾸민 크리스마스트리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금까지도 거실에 장식되어 있었다.
“자, 이제 볼까?”
서은혜와 이민준은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는 마지막 편을 보았다.
아빠의 무릎 위에 앉은 서준이 다 먹은 젖병을 아빠한테 주고 자신의 두 손바닥을 보았다. 1개월 자랐다고 손이 쪼끔 커졌다.
오른손 손바닥에 있던 지휘봉 문양이 아주 약간 흐릿해지면서 왼손 손바닥의 지휘봉 문양이 아주 조금 진해졌다.
점점 서준이 자라면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의 문양은 오롯이 왼손 손바닥에 남게 될 것이다.
‘왼손 손바닥 정도는 형아들에게 줘도 괜찮겠지.’
한 달이 지나도록 연습 도중 시간이 나면 연락하는 브라운블랙과 제법 친해진 부부였다. 이제는 친한 동생들 같았다. 서준이 이히히 웃었다.
[준에게 마지막으로 영상 편지를 보내자!]
자막이 깔리고 부부의 시선이 장식장 한곳에 있는 액자로 향했다. 브라운블랙의 편지와 사인지가 있었다.
꼭 유명한 아이돌이 될 테니까, 사인 2호는 서준이 거라고 황예준이 놓고 간 사인지였다.
“서준이 사인지가 2호면, 1호는 뭐지?”
“영상에는 안 나오던데.”
아마도 그때, 놀이터에서 사인을 받아갔던 아저씨일 거다. 그러고 보니 놀이터의 영상도, 밤에 자장가를 불러주던 영상도 그동안 나오지 않았다.
‘뭐, 삼촌이 알아서 하겠지.’
서준이 화면을 보았다. 한껏 빨개진 얼굴로 더듬더듬 영상 편지를 보내고 있는 형아들이 보였다.
아빠가 읽어줘서 편지의 내용을 알기는 했지만, 역시 형아들이 직접 말해주는 게 더 좋았다.
마지막 편이 끝나고 서은혜가 텔레비전을 껐다. 휴대폰을 들고 조회 수를 보았다. 음. 침음성이 흘렀다.
“1편부터 보는 사람은 쭉 보는 것 같은데…….”
“보는 사람이 별로 없네.”
“찬이는 이 정도로도 대만족이라고 하던데…….”
이민준도 고개를 들어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JUN]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채널 [JUN]과 비교하게 되었다. 이제 500만이 넘어가는 구독자에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다.
-그건 서준이 채널이라서 그런 거야! 이 정도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데! 얘넨 아직 데뷔도 못 한 애들이라고. 팬카페도 없어. 조회 수의 반의반만 팬이 돼도 대박이야!
서은혜의 아쉬움 섞인 말에 통화하던 서은찬이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말했다.
* * *
안녕하세요. 브라운블랙입니다.
…….
[브라운블랙과 준의 48시간]을 즐겁게 보셨길 바랍니다.
내일 오후 6시. WNET의 더 뮤직쇼에서 저희의 데뷔 무대가 있을 예정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저희 브라운블랙의 데뷔 무대를 꼭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
앞으로 감동을 주는 아이돌이 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라운블랙 일동 올림.
* * *
날이 밝았다. 브라운 블랙의 데뷔 날이었다.
서은혜와 이민준이 소파에 앉았다. 서준도 품에 오크 인형을 안고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았다.
“드디어 애들 데뷔네.”
“서준아. 조금 있으면 형아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노래 부른데.”
“잉아?”
이제는 제법 비슷하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형아.”
“잉아. 으옹옹!”
서준이 휴대폰을 쳤다. 형아, 보고 싶어! 제스쳐를 알아차린 서은혜가 서은찬에게 바톡을 보냈다. 1초의 기다림도 없이 메시지가 날아왔다.
>서준이가 애들 보고 싶대. 통화 돼?
<잘됐어! 데뷔라고 애들 긴장해서 제정신이 아니야!
서은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준아. 형아들이야.”
“잉아!”
-서준아!
-잠깐만요! 밀지 마요!
-황예준! 진정해!
-으허헝. 서준아!
화면 가득 브라운블랙의 얼굴이 보였다. 화려한 화장으로 얼굴색은 가려졌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긴장한 듯 초조한 듯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휘자 유대감은 괜찮았다. 떨어져 있는 것치고는 높았다. 하지만.
‘연결자 유대감. 왜 저래?’
높았던 숫자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20은 낮아졌다. 서준은 당황했다.
“잉아? 이이잉?”
-서준아. 우리 잘할 수 있을까?
무어라무어라 말하는 브라운블랙의 시끄러운 말 사이로, 단 하나의 말이 들려왔다.
그 말에 휴대폰을 들고 있던 서은찬은 물론이고 부부와 서준까지 행동을 멈추었다.
산만하던 브라운블랙도 조용해졌다.
그래.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다른 애들은 다 잘 할거야. 하지만 나는. 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 믿음이 유대감에 영향을 주었다.
침울해진 브라운블랙의 모습에 서준이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하늘로 번쩍 들었다.
“하이잉!”
‘화이팅!’
‘연결자 유대감’이 낮으면 뭐 어때? ‘지휘자 유대감’을 높이면 되겠지. 이렇게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힘내!
서은혜와 이민준이 번쩍번쩍 두 팔을 들어 올리는 서준의 모습을 보고 얼른 말했다.
“봐봐. 서준이도 화이팅이라고 하잖아! 힘내. 잘할 수 있어!”
“연습도 열심히 하고, 녹음도 새로 했잖아!”
-그래. 너희들이 얼마나 밤낮없이 연습했는데! 서준이랑 촬영하면서 실력도 엄청나게 늘었잖아!
서준은 계속 화이팅을 외쳤다. 서준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들썩들썩 움직이자.
-아하하.
굳었던 황예준의 얼굴이 풀렸다. 황예준의 웃음을 시작으로 멤버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저 작은 아기가, 뭣도 모를 아기가 힘내라며 응원을 보냈다.
-서준이가 형아들을 이렇게 응원하는데!
-이렇게 죽는소리만 할 수는 없지.
-티비 잘 봐!
-서준아, 고마워!
“꺄하하핳!”
서준의 눈에 조금씩 높아지는 ‘연결자 유대감’이 보였다. 다행이다. 서준이 한숨을 내쉬고는 꺄르르르 웃었다.
영상통화가 끝나고 서은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고마워. 애들 기운 차렸어!
<서준이랑 볼 테니까! 힘내!
휴대폰을 내려놓은 서은혜가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채널은 WNET이었다. 서은혜가 깊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우리 미국 가는 거 오늘 말할까?”
“음. 오늘 저녁먹기로 했으니까 그때 말하자.”
이민준이 서준의 배를 토닥이며 말했다.
* * *
12월 마지막 주 목요일. WNET 방송국에서는 한창 리허설 중이었다.
더 뮤직쇼의 PD 이상천이 모니터 화면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신인 아이돌을 보고 있었다.
“노래는 좋은 것 같은데 신생 엔터 첫 그룹답게 불안불안하네요.”
후배, 김민혁이 커피를 한 잔 건네며 말했다. 이상천이 어깨를 으쓱이며 잔을 받았다.
“저기에 걔가 있죠?”
“응.”
김민혁은 커피를 잘 타서 이상천 PD가 꽤 좋아하는 후배였다. 커피를 공기처럼 들이마시는 곳에서 커피를 잘 타는 것은 사소하지만 아주 좋은 장점이었다.
김민혁 본인도 제 커피 타는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걸 아는지 윗사람들에게 열심히 타 나르고 있었다.
“부잣집 아들이 이런 일을 하네요.”
“뭐. 돈 많은 분들 아들딸들 꽤 있잖아?”
“그래도 걔들은 배우나 그런 거 하죠. 아니면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거나.”
무대 위로 올라왔던 신인 아이돌그룹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무대를 떠났다. 이상천 PD의 시선이 그들의 뒷모습을 쫓았다.
“킹즈마켓 막내아들이면, 그냥 평생 놀아도 될 텐데 말이에요.”
킹즈마켓.
LA의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미국 곳곳에서 마켓을 운영하는 한인 마켓의 탑 3에 드는 마켓이었다.
한국의 식자재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식자재까지 모두 있어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아주 큰 마켓이었다.
요즘 공격적인 운영으로 다른 마켓을 제치고 선두에 서지 않을까 하는 추측들이 나돌고 있었다.
“거기도 많이 치열하겠지.”
이상천 PD의 말에 김민혁이 말했다.
“근데 왜 쟤들한테 빈자리를 준 거예요? 펑크가 났어도 한 달이나 남았으니 특별 무대라고 유명한 애들 아무나 넣어도 됐을 텐데? 혹시 선배…….”
김민혁이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이상천이 김민혁의 뒤통수를 때렸다. 악!
“선배! 농담이에요! 농담!”
진짜 세게 때렸어! 김민혁이 뒷통수를 매만졌다.
“우리가 내년부터 해외에서도 더 뮤직쇼를 하잖냐.”
“네. 뭐, 글로벌 한류? 였죠? 윗분들은 말하면 다 되는 줄 아는가 봐요. 외국인들이 한국 아이돌 그룹을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그러니까 관객을 많이 모으려면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해야지. 가령 LA 같은 곳이나…….”
김민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LA면 킹즈마켓!”
“그래. 이번 기회에 펑크난 무대 하나 주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두면 좋겠지. 잘 되면 후원사가 될 수도 있고 못 해도 뭐, 상관없으니까.”
“그럼 인사 안 가도 돼요? 얼굴 보고 악수라도 해야, ‘아, 이 PD님이 나를 꽂아준 PD님이구나’ 하죠.”
이상천 PD의 눈빛에 김민혁이 쭈그러들었다.
“그렇게 온몸으로 한심하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도 선배뿐일 거예요.”
“넌 여기 들어온 게 몇 년인데…….”
“예, 예. 죄송합니다.”
-눈부시잖아요!
차례차례로 올라오던 가수 중 하나가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음악이 멈추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김민혁과 이상천이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을 얼굴을 보고 김민혁이 한숨을 푹 쉬고, 이상천 PD가 이마를 짚었다.
이제 5년 차 남자아이돌 그룹, 웨스트 윙의 리더였다. 그래, 왜 조용하나 싶었다.
“아, 또 저 진상…….”
“입조심 해.”
“예예.”
이상천이 마이크로 지시를 내리고 조명이 밝아졌다. 다시 리허설이 시작됐다.
웨스트윙은 대충대충 움직이다가 리허설을 끝내고 내려갔다.
탐탁지 않은 눈으로 화면을 보던 김민혁이 남은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아,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인사 안 가는 거?”
“예. 왜 안 가는 거예요?”
다음 무대 위로 남자와 여자가 올라왔다. 커플이라는 컨셉으로 남자아이돌 그룹 중 한 멤버와 여자 아이돌 그룹 중 한 멤버가 모여 만든 유닛이었다.
이 유닛을 만든다는 회의가 있은 직후부터 사귄다고 루머가 돌았다. 두 사람과 기획사는 부인했지만 그 이후, 두 그룹의 팬들 사이가 나빠졌다는 건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했다.
“연예계는 눈만 사귄다, 결혼한다는 루머가 떠도는 곳이야. 서로 어깨만 스쳐도 사이가 나쁘다, 원수라는 소문이 돌고 조금만 냉랭해도 왕따설이 도는 곳이지.”
이상천 PD가 종이컵을 구겼다.
“그런데 데뷔도 못 한 애들 대기실에 가서 나 여기 PD인데 라고 인사를 해봐라. 어떻겠냐?”
“아…….”
“보통은 뒷돈 준 거 아니냐고 하겠지.”
이상천 PD가 남은 커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렇게 되면 쟤들 이미지도 안 좋고 내 이미지도 안 좋아져. 걔들은 그냥 더 뮤직쇼 PD님이 무대를 주셨다고 생각하면 돼.”
“그럼 선배가 딴 곳으로 가면 새로 온 PD에게 좋은 일이잖아요?”
“쟤들도 지금 PD 이름 정도는 알겠지.”
하지만 브라운블랙은 PD 이름을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커다란 대기실에 여섯 그룹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자리가 좁아서 구석에 쭈그려 앉은 네 사람의 손에는 휴대폰이 있었다. 서은찬이 조용히 말했다.
“애들아. 정신 좀 차려봐.”
다들 휴대폰을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케빈의 휴대폰에는 랩 가사가, 최시윤의 휴대폰에는 안무 영상이, 박서진과 황예준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다들 리허설 무대에서 실수를 연발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섭게 중얼중얼하고 있는 모습에 서은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계속 말을 걸었지만, 대답도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나 하는지.
다들 눈가가 빨갰다. 화장해서 울면 안 된다고 말하니, 엄청 참고 있는지 울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한숨을 쉬려던 서은찬의 휴대폰이 울렸다.
구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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