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2화
놀이터에서 돌아온 브라운블랙과 서준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부터 씻었다.
열심히 구연동화를 연습해 온 황예준이 서준을 허벅지에 앉히고 같이 그림을 보며 읽어 내려갔다.
서준은 동화를 좋아했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인간이 아니라 돼지나 개, 호랑이처럼 동물이거나 때때론 식물로 나올 때가 있어서 왠지 추억에 잠기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꺄아아악!”
서준은 높게 소리를 지르면서 짝짝 손뼉을 쳤다. 서준의 대호응으로 구연동화 순서가 끝났다. 황예준이 책을 챙기며 환하게 웃었다.
“서준이가 좋아해 주니까 연습한 보람이 있네!”
딩동-
“아, 서준이 밥 먹이고 낮잠 자야 해요.”
알람이 울리자 소파에 앉아 졸고 있던 최시윤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열심히 춤추고 실컷 울고 씻고 조곤조곤 동화까지 들으니 점점 눈이 감겼다. 케빈도 크게 하품을 했다.
“음.”
멤버들의 상태를 본 박서진이 고민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준비한 딱 알맞은 온도의 분유를 담은 젖병이 있었다. 이틀 사이 베테랑이 다 되었다.
“서준이 밥 먹고 낮잠 자니까, 우리도 잘까?”
“좋아요!”
“찬성!”
“이불 펼게.”
케빈이 얼른 일어나 서준의 이불과 멤버들의 이불을 거실에 펼쳤다. 박서진이 서준의 입에 젖꼭지를 물려주었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들어오는 분유에 서준의 눈이 반달로 휘어졌다. 다른 멤버들도 서준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에헹헹.”
“아, 서준이 너무 귀엽다.”
“밥 먹을 때가 제일 귀여운 것 같아.”
서은찬이 얼른 카메라를 들고 와 가까이서 찍었다. 카메라 화면으로 서준과 눈이 마주친 서은찬이 심장을 붙잡았다. 헉! 이렇게 조카 바보가 되는 것인가!
낮잠은 짧았지만 달콤했다. 푹 자고 일어난 브라운블랙과 서준은 온몸에 힘이 넘쳤다.
박서진이 준비해 온 찹쌀가루와 미역 등으로 촉감 놀이도 하고, 놀이를 하고 엉망진창이 된 서준의 목욕도 밤새 너튜브 영상으로 공부한 브라운블랙의 눈부신 팀워크에 순식간에 끝났다.
즐거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벌써 형아들과 함께하는 두 번째 밤이었다.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까만 털 옷을 입은-”
음. 포근한 이불 위에 누운 서준은 생각했다. 이 형아들은 내 자장가를 핑계로 그냥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게 아닐까?
어제처럼 아기 침대 위로 얼굴을 들이밀고 자신을 보는 브라운블랙이 보였다.
하나같이 실실 웃으며 동요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제 생각이 틀린 것 같진 않았다.
“예쁜 아기곰.”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됩니다.]
‘하긴 노래 실력이 하루 이틀 사이에 0.3배는 늘었는데 노래 부르는 게 재미있겠지.’
하아암.
그래도 오늘은 어제처럼 브라운블랙의 앨범에 들어갈 6곡의 노래를 모두 부르지는 않았다. 브라운블랙이 연습해 온 잔잔한 동요가 계속 이어졌다.
서준이 스르르 잠에 빠졌다.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어디선가 들릴 노래만 기다리는 아래층 남자는 눈치채지도 못한 채 브라운블랙과 준의 48시간,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 * *
아침이 되었다. 활기찼던 어제와는 달리 조금 침울한 분위기였다.
브라운블랙은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도 맡은 일은 완벽히 처리했다.
서준은 평소처럼 분유를 먹고 놀다가 낮잠을 잤다. 그리고 이유식을 먹고 신나게 놀았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막막했던 시간이 빛처럼 지나갔다.
“분유 타는 것도 마지막이네요, 예준이 형.”
분유를 타던 최시윤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슬프잖아.”
서준을 안고 있던 황예준이 눈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황예준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최시윤이 분유를 타고 있는 모습을 뚫어지라 보던 서준이 꺄아악 소리를 질렀다.
딩동-
“칼 같네!”
서준의 알람과 휴대폰 알람이 울리자 최시윤이 얼른 온도를 체크하고 서준의 입에 젖꼭지를 물려주었다.
쭙쭙. 황예준은 서준이 먹기 좋게 서준을 안고 거실로 향했다.
“이제 크리스마스트리만 꾸미면 진짜 끝이네.”
박서진과 케빈이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할 물건들을 가지런히 진열해 놓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반짝이는 전구를 바닥에 놓고 한숨을 쉬고 장식할 조그마한 인형을 바닥에 놓고 포옥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다고 땅이 꺼지겠어?”
“형들도 아쉬워서 그렇죠.”
박서진이 맛나게 분유를 먹고 있는 서준을 보았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는데…….”
“응. 기저귀 가는 것도 엄청 힘들었고.”
“기저귀는 지금도 힘들죠.”
“부모님은 대단해.”
이히히히.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형아들의 시선에 쑥스러운지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그에 이제는 브라운블랙도 당황하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황예준이 이틀 전의 그들을 떠올렸다. 아기 웃음 한 번에 소란을 떨고, 눈물 한 방울에 의사를 찾았다.
“정말 48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아.”
사흘 내내 노래 연습, 춤 연습 틈틈히 육아에 대해 공부했던 박서진이 서준의 조그마한 손바닥 안에 검지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반사적으로 서준이 꼬옥 박서진의 검지손가락을 잡았다.
“처음에는 그냥, 우리 이름을 알릴 촬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았다.
최시윤이 물기 가득한 눈동자로 서준을 보았다. 이 작은 아기 덕분에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노래 실력도, 춤 실력도 일취월장한 것 같았다.
“정말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고 가는 것 같아요.”
케빈이 서준의 머리카락을 살살 쓸었다. 연습, 연습, 연습만 가득했던 일상에 찾아온 시끌벅적하고 행복한 비일상이었다.
“숙소 가면 허전할 것 같아.”
케빈의 말에 다들 웃었다. 모두 웃음소리로 케빈의 말에 동의했다.
“허전하긴 하겠지만, 바쁠 거야. 한 달 후면 음악방송에 나가야 하는걸.”
거실 한구석에서 종이 위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던 서은찬이 말했다. 그 말에 브라운블랙이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운블랙의 대화를 들으며 맛있게 분유를 먹고 있던 서준은 텅텅 빈 젖병을 잠시 들고 있다가 손에서 놓았다.
“엇차!”
빈 젖병이 거실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박서진이 단번에 잡아냈다.
“꺄하하하핳.”
“잘 잡는데, 리더?”
“하도 떨어뜨리는데 이제 못 잡으면 안 되지.”
그 모습이 48시간의 익숙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서준과 브라운블랙 모두 환하게 웃었다.
“자, 불 끈다.”
거실의 커튼을 모두 치고 어둡게 만들었다. 밝았던 거실이 밤처럼 어두워졌다. 박서진이 챙겨온 암막 커튼이 한몫했다.
황예준이 진심으로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무거운 암막 커튼을 들어 보였다.
“그런 건 왜 들고 왔어?”
“부족한 것보다는 넉넉한 게 낫지.”
훗날, 자신이 예능에 나올 때마다 ‘부족한 것보다 넉넉한 게 나은 박서진이 ‘또’ 이만큼 가져왔습니다!’ 라는 자막이 깔릴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는 박서진이었다.
“스위치는 서준이가 켜자!”
거실 한편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며 최시윤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서준의 작은 손이 알록달록한 전구의 스위치를 잡았다. 그 위에 최시윤의 손이 겹쳐져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때부터 이번엔 또 무슨 짓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무에 인형을 붙이고 별도 붙이고 구슬 같은 것도 붙이더니 이제는 꾸며진 나무를 구경할 새도 없이 불을 껐다. 게다가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빛까지 커튼으로 막아버렸다.
“으잉잉?”
“자자, 서준아. 잘 봐.”
찰싹찰싹 최시윤을 팔을 두 손바닥으로 치던 서준을 최시윤의 옆에 앉은 황예준이 말렸다. 박서진과 케빈도 최시윤의 옆에 앉았다.
빛 한점 없는 어두운 거실에 앉아 모두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았다.
“셋!”
“둘!”
“하나!”
최시윤이 스위치를 켰다. 서준의 손가락이 같이 움직였다.
딸깍!
반짝!
나무가 반짝였다.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불빛으로 반짝반짝거렸다.
서준은 깜짝 놀라 나무를 보았다. 나무 맨 꼭대기에 있는 노랑 별이 빙글빙글 돌며 빛났다!
하나도 보이지 않던 구슬들이 나무를 감싼 꼬마전구들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장식된 인형들도 아주 잘 보였다.
“으헹?”
‘이게 뭐야?’
딸깍하더니 불이 들어왔다. 그것도 거실 전등처럼 흰빛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색색의 불빛이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나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쁜데!? 엄청 예뻐!
“서준아,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역시 본토 발음!”
이른 크리스마스에 다들 만세를 하며 손뼉을 쳤다. 넋을 놓고 트리를 구경하던 서준도 형들이 모두 박수를 치니 함께 손뼉을 쳤다. 무슨 말인진 몰라도 엄청 멋져! 최고야!
“꺄아아하하앟.”
“예쁘지, 서준아?”
“으웅!”
번쩍이는 나무를 보며 엉덩이를 들썩이던 서준이 최시윤과 자신의 손 사이에 있는 신기한 스위치를 보았다.
그러니까, 이걸 딸깍하면. 서준이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최시윤이 어어 하는 사이에.
단번에 거실이 어두워졌다.
“뭐야, 뭐야?!”
“시윤아?”
“아니, 제가 아니라! 서준이가!”
“뭐?”
화들짝 놀라는 형아들의 모습에 장난기가 샘솟은 서준은 이히히히 웃으며 다시 손에 힘을 주었다.
번쩍!
트리에 불이 들어왔다. 다시 알록달록한 불빛들이 춤을 추었다.
브라운블랙의 시선이 모두 최시윤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서준을 향했다.
서준이 귀엽게 웃었다. 그에 브라운블랙도 저도 모르게 웃었다.
히죽, 이건 페이크다!
딸깍!
다시 어두워졌다.
딸깍!
번쩍번쩍 불이 들어왔다.
“아이고. 서준아. 그만하자.”
“이제 그만!”
“커튼! 커튼부터!”
케빈이 커튼을 활짝 열었다. 환한 햇빛이 들어왔다. 겨울이지만 한낮이라서 아주 쨍쨍했다. 딸깍딸깍 아무리 스위치를 움직여도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 밝아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으히히힝.”
울상을 지은 서준이 스위치를 들어 보였다. 이거 켜줘. 눈이 반짝반짝했다. 브라운블랙은 애써 시선을 돌렸다. 황예준과 케빈이 조용히 속삭였다.
“귀엽지만.”
“안 되지.”
황예준이 얼른 서준의 시선을 돌렸다.
“우리 이제 서준이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까?!”
선물이라는 소리에 서준이 스위치를 내려놓았다. 선물! 나 선물 짱 좋아! 서준이 두 팔을 벌려 만세했다.
“이히히히.”
“단순해서 다행이다.”
최시윤이 얼른 꼬마전구의 스위치를 서준이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브라운블랙은 자신들의 짐가방에서 각자 서준을 위해 사 온 선물을 찾았다.
그때, 열심히 촬영하고 있던 철없는 삼촌, 서은찬이 불을 질렀다. 이렇게 재미있는 건수를 놓칠 수는 없지!
“너희들 애정 순위 정한다며?”
멈칫.
선물을 찾아 사부작대던 거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든 네 남자가 시선을 교환했다. 다들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좋아.”
“하자.”
브라운블랙은 얼른 거실을 깨끗하게 치웠다. 그리고 서준을 소파 앞에 앉혔다. 서준과 반대쪽에 나란히 앉은 브라운블랙은 각자 등 뒤로 준비해 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숨겼다. 박서진이 입을 열었다.
“제일 먼저 서준이가 가는 사람이 일등. 선물은 어떻게 활용해도 상관없어.”
“이런 거 안 해도 내가 일등이야!”
“내가 최고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네 남자가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 서준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무……. 재미있었는데……. 완전 번쩍거려! 형아들이랑 있으니까 너무 즐겁고, 완전 새로워!
“서준아!”
크리스마스트리의 여운이 가시질 않은 서준을 브라운블랙이 불렀다. 일단 순서대로 자신의 선물을 서준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으양?”
어라? 형아들 거기서 뭐 해? 나 선물 준다며?
“여기, 엄청 귀여운 토끼 인형이야!”
처음은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황예준이었다. 황예준은 환호하며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인형이었다.
안타깝게도 황예준의 인형은 이미 5개월 때 서준이에게서 버림받은 애착 인형, 토돌이와 완벽히 똑같이 생겼다. 서준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거 지겨워.
서준의 반응이 좋지 않자 황예준은 좌절했다. 아니, 인형 가게 아저씨! 이게 제일 잘 나간다면서요!
다음은 최시윤의 차례였다.
“서준아, 이거! 정말 신기하지.”
최시윤이 꺼낸 것은 스노우볼이었다. 뒤집었다가 놓으면 눈이 내렸다. 어, 그거…… 서준의 고개가 장식장으로 향했다. 스노우볼이 10개 정도 있었다. 화들짝 놀란 최시윤의 뒤에서 서은찬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 내가 올 때마다 선물로 사와. 스노우볼.”
“아, 혀엉!”
다음은 박서진의 차례였다.
박서진의 등 뒤에서 봉지가 나타났다. 과자였다. 아기 과자. 박서진은 일등을 확신하며 과자 봉지를 흔들었다.
“서준아, 배고프지? 여기 맛있는 과자야. 바나나 맛도 있고 사과 맛도 있어.”
사박사박, 봉지 소리가 들렸지만 서준은 그다지 반응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박서진이 왜? 왜? 하며 가방에서 가져온 과자 봉지들을 꺼내 과자 봉지 산을 만드는 사이 원인을 찾아낸 최시윤이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서준이의 취향을 완벽히 저격한 좋은 선물이었지만, 시간이 좋지 않아요. 서진이 형. 아직 간식 시간은 멀었어요.”
“망ㅎ……. 나쁜 생체 시계!”
욕은 자제하고. 다음은 케빈의 차례였다.
3명 모두 실패하자 케빈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음. 이거 큰일인데?
“나는 give up.”
“기권? 왜?”
박서진의 물음에 케빈은 등 뒤에 있던 선물을 들어 보였다. 황예준의 토끼 인형과 최시윤의 스노우볼, 박서진의 과자가 거기에 있었다. 케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나만 사 오라고는 안 했잖아.”
“이 뻔뻔한…….”
황예준이 손가락질을 했다. 서준이 있고 촬영 중이라서 입으로는 뱉지 못했지만, 얼굴이 욕을 하고 있었다. 최시윤과 박서진도 같은 표정이었다.
한참을 표정으로 욕하던 박서진이 정신을 차렸다.
“그럼 뭐. 아주 순수한 의미에서의 애정 순위가 되겠네.”
“그래. 선물 같은 거로 꼬셔봤자 그건 선물 발이지!”
다시 의기양양해진 브라운블랙은 선물을 모두 치우고 다시 나란히 앉았다.
“자, 다시-”
딩동.
시작하려고 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브라운블랙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시계로 향했다.
오후 2시 정각.
브라운블랙과 준의 48시간이 지금 끝났다.
이보시오. 형아들. 오후 2시라고 뭐 까먹은 거 없어?
“으아앙!!”
“아! 서준이 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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