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1화
맛있는 아침 식사로 입맛을 되찾은 브라운블랙은 얼른 냄비 안의 정체불명의 이유식을 잘 싸서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조금 있다가 밖에 나가볼까요?”
“1시간 정도면 괜찮아요.”
서준이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실컷 놀고 맛있는 이유식을 먹고 낮잠을 잤는데도 해가 중천이었다. 김화련과 함께 브라운블랙은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기로 했다.
“서준이 놀이터 가 봤어?”
“아붑!”
산책 겸 엄마와 함께 가 보았다. 걷지도 못하니 놀이기구는 하나도 타지 못했다. 최시윤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춤추는 거 보여줄게.”
어쩐지 어젯밤의 영향이 남아 있는 듯했다. 당장에라도 춤을 추고 싶어서 발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다들 서준을 먹일 분유와 기저귀, 두툼한 담요를 챙겨 놀이터로 향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놀이터는 씩씩한 아이들로 가득했다. 꺄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리저리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우리 서준이는 언제 뛰어다니려나?”
날뛰는 아이들을 보며 서은찬이 중얼거렸다. 가까이에서 그 말을 들은 김화련이 벤치 위의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금방 뛰어다닐 거예요.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버리니까요.”
“그렇겠죠.”
황예준의 품에 안겨 놀이터를 뚫어지라 바라보는 서준이 보였다. 토끼 털모자를 쓴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역시 내가 잘 고른다니까.”
황예준이 서준의 뺨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 뗐다. 그가 사온 토끼 모자가 너무 잘 어울렸다.
“너무 귀엽다. 서준이.”
케빈이 토끼 모자의 손잡이를 누르자 토끼의 귀가 뿅! 하고 섰다. 반대쪽도 번갈아가며 눌러대자 토끼 귀가 번쩍번쩍 섰다. 황예준과 케빈이 쫑긋 선 토끼 귀를 보고 웃었다.
“서준이 토끼네. 토끼야.”
“아하하하.”
“자, 서준이는 여기에 앉자.”
어느새 서준의 아기 의자를 벤치 의자 위에 안전하게 올려둔 박서진이 서준을 불렀다.
그들이 있는 곳은 놀이터에서도 사람이 많지 않은 구석진 곳이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그늘진 곳이라서 서준의 몸을 담요로 둘렀다.
“아부부!”
‘답답하긴 해도 따뜻하네!’
카메라를 든 서은찬과 김화련이 담요로 둘러싸여 눈사람이 된 서준의 양옆에 앉았다. 김화련은 서준을 찍었고 서은찬은 브라운블랙을 찍었다.
브라운블랙은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 섰다.
브라운블랙은 그들의 첫 무대가 화려한 곳이 아니라 아무도 오지 않는 놀이터의 한 구석진 곳이었는데도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너무 뛰어서 금방이라도 숨이 멈출 것 같았다.
항상 그들의 연습을 보던 회사 직원들이 아니라, 관객이 있었다. 아기 의자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형아들이 또 뭘 하려고?’
브라운블랙의 머리 위가 반짝였다. 반짝이던 숫자가 점점 높아졌다. 어젯밤과 같았다. 서은찬 또한 그런 기분을 느꼈다. 더 좋은 카메라와 녹음 기계가 있어야 했는데! 안타까웠다.
리더, 박서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안녕, 서준아!”
“꺄하하하!”
서준이 활짝 웃었다. 뭐가 어떻게 되든, 잘 해봐요! 형아들!
브라운블랙이 환하게 웃으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지금부터 브라운블랙의 공연이 있겠습니다. 모두 잘 들어주세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최시윤이 얼른 뛰어가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자 벤치 의자 양옆에 놓인 2개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여러 소음이 겹쳐 들렸다. 하지만,
-미약한 시작이지만
박서진이 입을 열자 한순간에 그들의 음악을 뺀 소음이 사라진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발동됩니다.]
‘그럴 줄 알았어.’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자주 발동되는 스킬이 아닌데, 이 형들은 너무 쉽게 사용했다.
서준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노래를 감상했다.
지금도 이 정도지만 계속 서로를 믿고 오랫동안 마음을 맞추어 음악을 공부해서 기본 실력이 상승한다면, 스킬의 능력까지 사용한 브라운블랙이 훗날 어떻게 될지, 기대되었다.
-겨우 한걸음이지만
황예준의 입이 열리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시윤이 앞으로 나왔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은 음악적 능력만 상승시켰다. 춤의 실력에는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최시윤은 노래의 리듬과 박자를 평소보다 훨씬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그 점을 확실하게 느낀 최시윤이 평소보다 격렬하게 움직였다.
최시윤의 격렬한 안무에 맞추어 세 사람도 몸을 움직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춤에 서준의 눈동자가 커졌다. 텔레비전으로 보던 춤과는 달랐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무대는 특유의 생생함이 느껴졌다.
네 사람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신기했다. 어젯밤처럼 멤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몸에 익은 춤이었지만 오늘따라 더더욱 손끝이, 발끝이 딱딱 맞아 들어갔다.
너무 즐거워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춤을 추면서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네 사람의 춤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했다. 서은찬은 주먹을 쥐었다.
어젯밤이, 한 번이 아니었다.
어제의 실력 그대로가 오늘 여기서 펼쳐졌다.
‘이 정도면 성공하겠는데?!’
서은찬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서 촬영하는 게 아니라 이 멋진 아이돌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찍고 싶었다.
“와…….”
어젯밤 집에 돌아갔던 김화련은 저도 모르게 서준을 찍고 있던 카메라를 브라운블랙에게로 돌렸다.
신생 엔터의 첫 아이돌 그룹이라고 들어서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상상이상이었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 가사가 귀에 팍 꽂혔고 화려한 군무는 눈을 즐겁게 했다.
-이제 시작이야!
4분가량 이어지던 노래가 끝났다. 브라운블랙이 자신들을 찍는 카메라에 꾸벅 인사를 했다.
“헉- 헉- 감사합니다!”
확연히 지친 모습으로 브라운블랙은 서준이 있는 벤치 의자 앞에 주저앉았다. 서은찬이 의아한 얼굴로 그들에게 생수병을 나누어주었다.
“2곡 더 하기로 하지 않았어?”
“헥- 아, 아뇨. 헥헥- 진짜 힘들어서…….”
숨도 쉬지 않고 물을 들이마신 황예준이 손을 휘휘 저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서진이 완전히 지친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어제는 뭣 모르고 전곡을 다 불렀는데, 춤까지 추면서 부르니까 죽을 것 같아요.”
“그러게. 와, 어제는 어떻게 불렀지?”
‘나 때문이겠지?’
서준은 마나 공급차, 두 손을 뻗어 형아들을 토닥토닥 해주고 싶었지만 음, 담요에 팔이 감겨 있어서 옴짝달싹 못 했다. 손가락만 꼼지락꼼지락거렸다.
스킬도 아무 대가 없이 쓰는 게 아니었다. 마나가 기본으로 사용됐지만 마나가 없다면 체력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어제는 서준과 브라운블랙이 가까이 있어서 서준의 마나로 반쯤 대신했었지만 지금은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오늘도, 앞으로의 무대에서도 온전히 브라운블랙, 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흙바닥에 앉아서 몇 번 숨을 몰아쉬던 케빈이 웃었다.
“운동 좀 해야겠는데?”
“그래. 헬스 끊어줄게. 콘서트 하려면 체력 좀 늘려야겠다.”
서은찬의 말에 바닥에 앉아 있던 브라운블랙의 얼굴이 한 곳으로 향했다.
상상 속에서도 멀기만 했던 말이었다. 최시윤이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코, 콘서트요?”
“그래.”
서은찬이 환하게 웃었다.
“너희 완전 대박이야! 이렇게 데뷔하면 진짜 1년 내로 전국 콘서트를 할지도 몰라!”
“진짜요?”
브라운블랙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러 소속사에서 탈락한 그들이었다. 언제나 부족한 점이 있다며 데뷔가 무산되었고 일정이 엎어졌다.
그런데 콘서트라니.
그들도 방금 노래와 춤을 하면서 평소 연습보다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젯밤에 그들이 불렀던 가슴 벅찬 노래와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춤이었다. 음악 방송에서 이것처럼 한다면 아주 멋진 데뷔 무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김화련이었다. 방금 전까지 담담하던 얼굴과는 달리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와. 지금까지 왜 데뷔를 안 한 거예요? 진짜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멋졌는데! 여기, 봐봐요. 소름 돋았죠? 진짜 대단했어요.”
“아…….”
김화련의 칭찬에 브라운블랙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였다.
“저기요!”
한 남자가 그들을 불렀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민원인가? 서은찬이 벌떡 일어나 얼른 남자의 앞으로 달려갔다. 시끄러웠나? 서은찬이 입술을 깨물었다. 데뷔 전부터 브라운블랙의 이미지를 망칠 수는 없었다.
“죄송…….”
“노래 제목이 뭐예요?”
“합……. 네?”
놓고 온 서류를 가지러 왔다가 그들의 노래를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검색해 봐도 노래 제목이랑 가수 이름이 안 떠서요. 어젯밤에는 여러 곡 부르시더니 오늘은 한 곡만 부르시네요.”
“어…… 어…….”
잔뜩 긴장한 채로 숨을 죽이고 있던 브라운블랙과 김화련의 눈동자가 커졌다. 서은찬도 브라운블랙도 갑작스러운 남자의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질문한 남자도 민망한지 더는 말이 없었다. 정적만 흘렀다.
다들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꺄하하핳!”
이럴 때 내가 나서야지. 분위기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아무것도 모를 때인 아기의 웃음소리가 정적을 깼다.
화들짝 놀란 서은찬이 얼른 대답했다.
“아, 네! 노래 제목은 ‘시작’입니다. 그리고 가수 이름은, 어. 잠시만요.”
서은찬이 뒤쪽을 보며 손짓했다. 몸을 움찔 떤 브라운블랙이 얼른 서은찬에게로 뛰어왔다. 인사. 인사. 서은찬이 속삭였다.
“아, 안녕하세요. 브라운블랙입니다!”
“아, 브라운블랙이구나. 잘 들었습니다. 노래 잘 하시던데요. 춤도 잘 추시고.”
“감사합니다.”
“근데 노래 검색이 안 되던데…….”
서은찬이 얼른 답했다.
“아직 데뷔를 안 했습니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아. 그래서. 밤새 음악 사이트를 뒤지고 질문까지 올렸던 남자는 답을 찾자 속이 시원해졌다.
“얼른 데뷔하셨으면 좋겠네요. 좋은 노래 많이 불러주세요.”
남자가 웃으면서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주머니에서 펜도 나왔다. 종이와 펜을 브라운블랙에게 내밀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브라운블랙이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서은찬이 케빈의 옆구리를 찔렀다.
“사인, 사인.”
“헉!”
황예준의 숨이 멈췄다. 박서진이 손을 덜덜 떨며 종이와 펜을 잡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부탁드립니다.”
“아뇨. 실례긴요.”
서은찬이 손을 저었다. 그사이 호흡곤란이 온 최시윤이 종이에 사인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김화련이 서준을 안고 그들에게로 향했다.
“꺄아아아.”
“어? 아기네요?”
“네. 저희가 너튜브에 올릴 육아 예능을 찍고 있어서요. 시간 되시면 시청 부탁드립니다. 이건 저희 너튜브 주소고요.”
서은찬과 남자가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사인이 끝났다. 남자가 사인지를 받고 환하게 웃었다.
“앨범 나오면 꼭 살게요.”
“감사합니다!”
브라운블랙과 서은찬이 꾸벅 인사를 했다. 남자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브라운블랙은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뒷모습이 흐려졌다.
“아…….”
눈물이었다.
케빈이 입술을 깨물었다. 속이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막내인 최시윤은 이미 울기 시작했다.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황예준과 박서진은 그런 멤버들을 보며 물기 가득한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도저히 말이 나오질 않아 다물었다.
“잘했어!”
그나마 말을 내뱉을 수 있었던 서은찬이 손에 얼굴을 묻은 브라운블랙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계속 ‘잘했어. 잘했어’만 반복했다.
서준을 능숙하게 한 손으로 안은 김화련이 카메라를 들었다. 그녀도 코를 훌쩍거렸다.
“꺄하하핳.”
자신까지 울 수는 없었던 서준이 활짝 웃었다. 브라운블랙의 시선이 아기에게로 향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으허허헝. 서준아!”
“형들 칭찬들었어!”
“[앨범 사신대! 더 많이 불러달래!]”
“으허헝. 형아 춤 잘 춘다고!”
황예준을 시작으로 다들 울음을 터뜨렸다. 조그마한 아기를 가운데 두고 서로 안아가며 울었다.
답답한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울고 싶어지잖아!’
“으에에에엥!”
서준도 울음을 터뜨렸다. 서은찬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김화련도 손수건을 꺼냈다.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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