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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0화 (2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0화

해가 떴다. 아침부터 부엌이 시끌벅적했다.

“아니, 좀 더 익히라고!”

“그건 너무 큰 거 같은데?”

“선생님, 서준이 이거 먹어도 돼요?”

최시윤과 함께 블록을 쌓던 서준의 고개가 자꾸만 부엌을 향했다.

찬이 삼촌은 소파 근처에 있었고 나머지 세 멤버와 김화련 의사 선생님이 부엌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서준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나만 빼고 뭐 하는 거야? 재밌는 거?

“서준아! 이거 봐라. 엄청 높지!”

최시윤이 열심히 서준의 시선을 돌렸다. 준비가 다 될 때까지 서준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

최시윤이 특유의 균형감으로 나무 블록을 쌓았다. 서준의 고개가 최시윤이 쌓은 블록 쪽으로 돌아갔다.

“으헹!”

‘엄청 높아!’

서준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나무 블록이 타워처럼 서 있었다.

서준이 뽈뽈뽈 기어가자 최시윤이 얼른 앞을 막았다.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잘 쌓긴 했지만 혹시라도 무너져 서준이 맞는다면 대형사고였다.

“서, 서준아. 여기서 보자. 만지지는 말고!”

“으우우웅!”

서준이 왼쪽으로 가자 최시윤이 얼른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서준이 오른쪽으로 가자 얼른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어라? 이거 노는 건가? 까꿍인가?

“아아앙!”

‘도전을 받아주지!’

서준이 왼쪽으로 가려다 오른쪽으로 기어갔다. 서준의 페이크에 최시윤이 한 박자 늦었다.

“서준아?!”

오른쪽으로 열심히 기어가던 서준이 최시윤의 외침에 멈췄다.

고개를 돌려 최시윤을 보고 활짝 웃은 다음에 블록 옆에 있던 서랍을 잡고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엉덩이와 다리, 발에 힘을 주고 응차!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아아아!”

나무 블록 탑은 일어선 서준보다 컸다. 서준이 고개를 들어서 쳐다볼 정도였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최시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어난 서준을 안아 들었다.

“일어서고 싶었어?”

“으으웅!”

“그럼, 말을 하지!”

서준은 고개를 돌려 짠한 눈빛으로 최시윤을 보았다. 최시윤이 헛기침을 했다.

아 참, 아직 엄마 아빠도 못하지?

“자, 서준아. 좀 더 높게 쌓아볼까?”

“아아아!”

최시윤이 먼저 나무 블록 위에 블록을 올렸다. 나무 블록이 안정적으로 꼭대기에 안착했다.

“다음은 서준이가 해보자.”

최시윤이 서준의 손에 가장 작은 네모모양의 블록을 건네주었다.

서준이 빤히 작은 블록을 보다가 블록 탑 쪽으로 손을 뻗었다. 서준을 안고 있던 최시윤이 천천히 블록 탑 앞으로 걸어갔다.

“으우.”

서준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나무 블록 위에 조막만 한 손을 올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펼쳤다.

손바닥에서 덜렁 나무 블록이 떨어졌다. 그 반동에 나무 블록이 탑 위에서 덜컹덜컹거렸다.

서준과 최시윤은 숨을 죽이고 블록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와! 서준이가 제일 높이 쌓았네!”

“와아앙앙!”

떨어질 듯 말 듯 했던 블록이 멈추었다. 최기윤이 멋지게 각을 맞춰 쌓은 탑 꼭대기에 반쯤 삐져나와 있어서 멋은 없었지만, 여기에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서준이 천재!”

“으헤헹!”

최시윤이 둥기둥기 서준을 들어 올렸다. 서준이 이히히히 웃자, 부엌에서 황예준과 케빈이 나왔다.

황예준은 땀을 조금씩 흘리고 있었고 케빈은 한 손에 칼을.

“형! 칼! 칼!”

“오, Sorry!”

기겁한 최시윤이 서준의 시선을 휙 돌리며 외치자, 케빈이 얼른 다시 들어갔다.

최시윤의 외침을 들은 것인지 박서진이 케빈에게 잔소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예준은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황예준이 다가오려고 하자 최시윤이 서준을 안고 뒷걸음질 쳤다. 황예준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왜 피해?”

“서준아. 저 형아는 지지야. 지지.”

“다 닦았어. 손수건도 깨끗한 거야!”

“이이! 이잉!”

“그래. 지지!”

황예준의 애절한 표정에 서준이 꺄하하핫 웃었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형아였다.

“얼른 씻고 와요.”

“알았어.”

황예준은 얼른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나왔다.

케빈도 칼을 잘 놓아두라는 박서진의 잔소리를 다 들은 모양인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거실로 나왔다.

“그래서 뭐야? 뭐 때문에 그렇게 웃었어, 서준아?”

“오아앙! 우옹!”

서준이 손으로 나무 블록 탑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고개가 탑으로 향했다. 황예준이 말했다.

“이건 왜 이렇게 삐뚤어? 잘못 놓은 건가?”

“그러게. 이것만 그러네?”

황예준이 손을 뻗어 혼자 멋없이 삐뚤어져 쌓여 있는 나무 블록을 똑바로 놓으려고 했다.

“안 돼요! 형!”

“아아앙앙!!”

최시윤과 서준이 소리쳤다. 아까보다 큰 소리라 부엌에 있던 박서진과 김화련까지 밖으로 나왔다. 줄곧 거실에서 촬영하고 있던 서은찬은 킬킬 웃어대고 있었다.

큰 소리에 놀란 황예준이 손을 멈추었다. 맨 위에 있던 나무 블록과 닿기 바로 직전이었다.

황예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렀다. 박서진과 김화련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했다. 눈치 빠른 케빈은 한 걸음 물러섰다.

“왜? 왜? 나 뭐 잘못했어?”

“그거 서준이가 쌓은 거예요! 서준이가 얼마나 힘들게 올렸는데!”

“아부부! 아부부부붑!”

서준의 말이 많아졌다. 동글동글했던 눈이 날카롭게 황예준을 쳐다보았다.

내가 쌓았는데! 멋지게 쌓았는데!

최시윤의 말에 황예준이 화들짝 놀라 뻗었던 손을 등 뒤로 숨겼다. 박서진과 김화련이 ‘저런 못된!’이라는 눈빛으로 황예준을 쳐다보았다.

“아이고. 서준아. 형아가 몰랐어. 미안해!”

“아부붑! 아부부부!”

‘내가 이렇게 서서, 이렇게 손으로 올렸는데!’

“그래. 형아가 잘못했어!”

지금까지 중, 제일 격한 서준의 반응에 황예준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케빈은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았다. 잘못하면 자신이 황예준 꼴이 될 뻔했다.

“자, 서준아. 예준이 형아도 미안해하니까 용서해 주자. 다행히 블록은 안 건드렸잖아?”

박서진의 말에 서준이 자신의 앞에서 싹싹 빌고 있는 황예준을 쳐다보았다. 황예준이 손바닥에 열이 날 정도로 빌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봐줬다!

“우옹!”

“아이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서준이 두 팔을 벌렸다. 황예준이 반색하며 서준을 안아 들었다.

안긴 서준을 둥기둥기 흔들며 황예준이 우하하하 웃어댔다. 서준도 재미나게 움직이는 황예준의 품에 안겨 꺄르르르 웃었다.

“자, 적당히 하고. 서준이 멀미할라.”

서은찬이 끼어들었다. 열심히 서준을 흔들고 있던 황예준이 정신을 차리고 멈추었다. 서준이 또 해달라며 황예준의 팔을 쳐댔다.

“서준아. 밥 먹자. 밥.”

박서진의 말에 서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오, 그러고 보니 좀 있으면 밥 먹을 시간이었다. 배가 조금 고파왔다.

“우옹!”

“우리가 서준이를 위해서 특별식을 준비했지!”

모두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잘게 썰린 재료들이 담긴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박서진이 조사해 온 재료에 김화련 의사 선생님의 의견을 첨가했다.

쇠고기 육수와 쇠고기를 곱게 간 것, 시금치, 파래, 팽이버섯, 감자, 노른자, 버섯, 고구마, 단호박, 황태까지 온갖 재료들이 곱게 잘려 있었다.

아기 의자에 서준을 앉힌 황예준은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소고기 육수 내는 거 힘들었어. 고구마랑 단호박도 삶고 채소들도 데쳐야 했고.”

“자르는 것도 힘들었어.”

박서진의 말에 케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와 놀아주느라 상황을 몰랐던 최시윤이 식탁 위의 재료들을 보고 놀랐다.

“이걸 다 쓸 거예요? 며칠 분을 만들 생각이에요?”

“아냐. 여기서 서준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골라서 만들 거야. 냄비에 끓여서 죽으로 만들려면 얼른 정해야 해.”

브라운 블랙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점점 다가오는 이유식을 먹일 시간에 다들 초조해졌다.

황예준이 서은찬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지금부터 준과 함께 만드는 이유식! 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이유식은 여기 식탁 위에 있는 재료로 만들 텐데요. 방식은 랜덤입니다!”

브라운블랙이 짝짝 박수를 치자 서준도 짝짝! 손뼉을 쳤다.

“얼마나 맛있는 이유식이 탄생할지 기대가 되는데요! 참고로 일단 저희가 먹어보고 재료의 조합을 보신 의사 선생님께서 허락하시면 서준이에게 먹일 겁니다. 서준이의 입맛은 안전합니다!”

“부디 맛있는 이유식이 되기를.”

황예준의 마지막 말에 케빈이 기도했다. 서준의 입맛은 안전하겠지만 우리의 입은 위험하겠지? 브라운블랙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볼까요?”

박서진이 아기 의자에 앉아 있는 서준을 조심히 들어 품에 안고 눈을 맞추었다.

“서준아.”

“으웅?”

“여기서 맛있어 보이는 거 골라봐. 어떤 게 맛있어 보여?”

서준의 시선이 박서진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알록달록한 것들이 그릇 위에 있었다.

“으응?”

‘글쎄?’

뭐가 맛있을까? 서준은 고민했다. 일단 자주 먹는 이유식에 들어 있는 재료를 골랐다. 서준은 간 소고기를 가리켰다.

“첫 번째로 소고기를 골랐네요!”

“고기는 맛있죠.”

어? 최시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케빈과 함께 실시간 중계를 하던 황예준이 속삭였다. 왜 그래?

‘이게 첫 번째면 서준이가 몇 번째까지 고르는 거예요?’

‘어……. 그러게?’

그건 안 정했다.

최시윤과 황예준이 당황할 새도 없이 서준이 착착 손가락으로 그릇을 가리켰다.

이건 노란색이라서 맛있겠다. 이건 초록색이라서 맛날 것 같고! 이건 하얘. 맛있어 보여! 이거, 이거, 이거!

너무 잘게 썰려 있어서 원재료가 뭔지도 몰라 서준은 고민도 없이 맛있어 보이는 재료들을 선택했다.

“노른자를 골랐, 시금치도 고르, 버섯도, 아니, 잠깐 얼마나 고르는 거야? 서준아!”

“꺄아아앙!”

‘다 골랐어!’

오. 브라운블랙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서준이 의기양양 웃었다. 다 골랐어!

“진짜 전부 골랐네…….”

식탁 위의 재료들을 모두 선택해 버린 서준의 만행에 브라운블랙이 말을 잇지 못했다.

“으헹헤헹.”

“서준이 너, 솔직히 말해봐. 우리가 먹을 거 알고 일부러 그런 거지? 전부 고른 거지?”

“이건 맛있을 수가 없는데요, 형들.”

황예준이 박서진의 품에 안긴 서준의 앞에서 징징거렸다.

대충 재료를 확인하던 최시윤이 이마를 짚었다. 멀리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김화련도 팔로 엑스자를 그렸다.

“네. 그렇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반대한 이유식!”

“저희가 먹어야겠죠?”

“벌칙 음식인가요?”

브라운블랙은 낙담하면서도 서준이를 아기 의자에 앉히고 냄비를 가져왔다.

“남은 건 서준이 이유식 재료로 쓸 수 있으니까, 적당히 넣자.”

“응.”

기운 없는 목소리로 다들 숟가락을 하나씩 들고 재료들을 한 숟가락씩 냄비에 넣었다.

“으. 나 버섯은 싫은데…….”

“잘됐네. 이 기회에 편식 고쳐.”

“육수는 이 정도 넣을까?”

“간만 잘 맞으면 맛있지 않을까요?”

황예준이 질색한 얼굴로 버섯을 한 숟가락 넣었다. 그렇게 모든 재료가 냄비 안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끓입니다.”

“우리가 먹을 거니까 소금은 넣어도…….”

최시윤의 말에 서은찬이 팔을 휘저었다. 그건 안 되지! 이유식인걸!

“……안 되겠죠?”

“안 됩니다아…….”

황예준이 가스를 켰다. 보글보글. 그동안 박서진이 서은혜가 준비해 놓은 이유식을 데웠다.

“서준이는 안전하게 맛있는 이유식 먹자.”

“으으으웅?”

‘저거 먹는 거 아니었어? 예뻐서 골랐는데? 나는 안 먹어?’

딩동- 언제나처럼 알람이 울리고 서준의 입에 이유식이 들어갔다.

음! 맛있어! 서준이 맛나게 엄마표 이유식을 먹고 있을 때, 가스레인지의 스위치가 꺼졌다. 이서준 표 랜덤 이유식이 완성됐다.

“다 됐어.”

“이게 서준이 픽 이유식인가요?”

“픽이랄 게 있어. 전부 들어갔잖아.”

“오. 알록달록한 색이, 참…….”

냄비 속을 들여다보는 브라운블랙의 안색이 나빴다.

서은찬이 냄비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음. 나중에 모자이크해야겠네.

“뭐지? 멀쩡한 재료가 들어갔는데 왜 이런 색이지?”

“다 들어가서 그렇죠.”

“진짜 먹는 거야?”

“아깝잖아.”

브라운블랙이 다들 숟가락을 들었다. 황예준이 참새눈물만큼 먹으려고 시도했으나 박서진이 친절하게 대신 숟가락 가득 퍼주었다.

“하나, 둘, 셋 하면 먹는 거다?”

“네.”

“좋아.”

브라운블랙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아기 숟가락을 물고 있던 서준도 형아들을 보았다. 뭐지? 저 이상한 색은? 그런 거 먹으면 지지인데!

“하나.”

“둘.”

“셋!”

브라운블랙의 입으로 본인도 인정한 이상한 색의 이서준 표 랜덤 이유식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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