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9화
이유식을 먹고 실컷 논 다음 브라운블랙은 서준이를 목욕시켰다.
목욕도 순조롭지는 않았다. 한바탕 소동이 있고 홀딱 젖은 김에 전부 씻고 나온 브라운블랙은 거실에 이부자리를 폈다.
최시윤과 케빈이 안방에 있던 서준의 아기 침대를 가져와 거실 한쪽에 두었다.
원래는 함께 같은 이불을 깔고 잘 계획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작은 서준의 모습에 최시윤이 반대했다.
“서준이가 깔리면 어떻게 해요?”
걱정이 가득 담긴 최시윤의 말에 브라운블랙과 서은찬이 미처 생각을 못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그렇게 서준은 사방이 나무 난간으로 막힌 아기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전 이만 가 볼게요. 언제든 급하면 전화 주세요.”
“예, 오늘 감사했습니다.”
“새벽에 전화하셔도 돼요. 생각보다 브라운블랙분들이 서준이랑 잘 놀아주시고 공부도 많이 하신 것 같아서 걱정은 안 되지만요.”
엘리베이터에 오른 김화련이 굳은 어깨를 주물렀다. 병원에 휴가를 내고 2박 3일 내내 촬영을 도와주는 것도 고된 일이었다.
진짜, 동생만 아니면……. 삼 일간 치킨에 피자에, 김화련의 수발을 들면서 부탁해 온 정성이 아니었다면 아까운 휴가를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뭐, 그래도 서준이도 착하고 브라운블랙도 공부를 많이 해온 것 같아서 일하긴 편하네.”
김화련이 웃으며 1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서준이 눈을 부릅떴다.
음. 어쩌지? 잠이 안 온다.
거실의 불은 꺼지고 약한 주황빛 조명만이 켜져 있었다. 브라운블랙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아기 침대의 난간에 턱을 받히고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은찬은 소리 없이 하품을 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서준이 안 자는데?”
“시윤아. 얼마나 지났어?”
박서진의 물음에 시윤이 일과표와 시계를 보며 말했다.
“30분이요.”
“잘 잘 줄 알았는데. 안 자네?”
케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밥 시간은 물론이고 낮잠 시간까지 확실하던 아기가 자지를 않았다.
“음. 그거 할까?”
“그럴까?”
서로를 뻘쭘하게 쳐다보던 브라운블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촬영하기 전, 삼 일 동안 준비한 것이 있었다. 생각보다 서준이가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서 괜히 연습했나 싶었지만.
“이럴 때 하려고 연습했잖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준이가 자지 않아서 보여줄 수 있었다. 박서진이 웃자 나머지 멤버들도 씨익 웃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평소와 다른 시끌벅적한 하루를 보낸 덕분에 서준은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자신도 열심히 자보려고 하는데 음. 형아들의 웃긴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히히히.
그런데 그 형아들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차분한 얼굴로 서준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대상자와의 유대감이 상승합니다.]
음음음--
케빈과 최시윤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낮지만 부드러운 허밍 소리가 서준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최하급-이 발동됩니다.]
지휘자인 서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결자들의 음악으로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 위에 황예준과 박서진의 목소리가 합쳐졌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노래를 부르고 음을 맞춰주는 브라운블랙의 머리 위가 빛났다. 두 개의 숫자가 반짝였다.
‘어라? 이게…….’
노래를 부르고 있던 박서진은 연습 때와는 너무 다른 자신의 노래에 몸을 움찔했다.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노래를 수십 번 연습을 하고 또 연습을 했는데.
평소와 달랐다.
어쩐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브라운블랙 멤버들의 감정이, 감각이,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들 자신의 마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서준은 아름다운 노래 소리와 함께 점점 올라가고 있는 ‘연결자 유대감’의 숫자를 넋을 놓고 빤히 바라보았다. 숫자는 반짝반짝 빛나며 점점 올라갔다.
스킬을 등록하기 전, 도서관에서 [지휘봉의 정령]의 책을 발견한 서준은 깜짝 놀랐다. 이게 여기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한 세계를 망칠 뻔한 스킬이었다. 원래는 선(빛) 성향이었다고 해도, 타락해 악(어둠) 성향의 스킬로 변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선 성향의 서준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런 책이 여기 도서관에 있었다. 서준이 배울 수 있는 책들만이 가득한 이 선 성향의 도서관에. 서준은 뒷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외전격으로 뒷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악 성향으로 타락하려던 순간, 겨우 숨만 이어가던 정령의 나무는 힘을 쥐어짜 냈다.
죄인은 미워해도 죄인의 ‘음악’에 대한 재능은 사랑한다.
반역자인 지휘봉의 정령은 너무 싫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발전시킬 이 어마어마한 스킬을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안타까워 정령의 나무는 이를 갈았을 것이었다.
‘아마도 엄청 욕했을 거야.’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정령의 나무가 있는 힘 없는 힘을 다해 원흉인 스킬의 타락화를 막았다. 하지만 나무조차도 스킬 랭크의 하락은 막지 못했다.
나무는 통곡하면서 랭크가 낮아지는 스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최상급에서 최하급으로 낮아졌다.
10배였던 상승이 1.3배로 바뀌었고 30명이던 연결자의 수가 4명으로 줄었다.
또 손을 마주 잡으면 사용할 수 있었던 간단한 조건에서 양손으로 대상자의 뺨을 쳐야 하는 어려운 조건으로 변했다.
나무의 음악에 대한 무시무시한 사랑으로 스킬은 선 성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음악에 대한 나무의 집념……. 무서워.’
그렇게 살아남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이 여기서 발동되었다.
반역자의 스킬까지 아까워한, 음악에 대한 나무의 집념도 대단했지만 브라운블랙의 갈망도 대단했다.
브라운블랙은 갑작스럽게 상승한 실력에도 놀라지 않고 동요를 불렀다. 숫자는 더욱 반짝거렸다.
‘무서운 형아들.’
하지만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준은 따뜻한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은 단순한 친분으로 대상자의 음악적 실력을 상승시켜주는 스킬이 아니었다.
연결자들과 지휘자의 유대감을 기본으로 그들의 생각,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음악을 하면서 추구하려는 생각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음악적 실력이 상승하였다.
‘하지만 하락시키는 건 엄청 쉬워. 음악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시각이 다르면 아주 쉽지. 그때도 나 혼자만 생각을 바꿨는데 유대감이 마이너스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상승시키는 건 엄청 어렵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은 양날의 검이었다. 서준이 처음 만난 브라운블랙에게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준 것도 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스킬이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형아들이라도 공짜로 줄 순 없지!’
지금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미래에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서준이 찾아가 회수하지 않아도 망해버리게끔, 그렇게 생각하며 줬건만.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믿는 데에 몇 달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브라운블랙은 서로의 음악적 세계관에 대해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는지 겨우 한 번의 노래-그것도 동요!-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발동시켜 버렸다.
‘대단해…… 하암…….’
생각에 잠겨 있던 서준은 천천히 잠에 빠졌다.
브라운블랙은 자신들이 자장가를 부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동요가 끝나고 박서진은 저도 모르게 자신들의 신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황예준도 케빈도 최시윤도 자신의 파트를 열심히 불렀다.
진짜, 달랐다.
서은찬은 카메라를 겨우 붙잡고 있었다. 그들이 준비해 온 자장가를 부를 때부터 뭔가 다르긴 했다.
연습실에서, 숙소에서, 차 안에서 서준에게 들려준다며 열심히 연습했던 동요였다. 서은찬도 지겨울 정도로 들었다.
‘분명 그때는 평범한 동요였는데…….’
확 바뀌었다. 뭐가 바뀐 건지는 모르겠다. 목소리도, 박자도, 부르는 방법도 같은 것 같은데. 브라운블랙의 노래는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서은찬의 가슴이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와…….”
브라운블랙이 그들의 노래를 부르자 서은찬은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이거다. 이거였다. 그가 혼자서 아쉬워했던, 부족했던 부분.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카메라였다. 바닥만 계속 찍고 있던 카메라에 화들짝 놀란 서은찬이 얼른 카메라를 들어 환하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네 남자를 찍었다.
부디 이 아름다운 노래가, 카메라에 잘 녹화되기를 바랐다.
브라운블랙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실실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들이 쟤들도 내 마음과 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 났다.
즐거웠다.
행복했다.
상대방의 음악이 느껴지고 자신의 음악이 느껴졌다. 평소에 고민했던 것들이 모조리 해결된 것 같았다.
심장은 쉴 새 없이 빠르게 뛰었고 숨이 차올랐지만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초조해졌다.
“헉- 헉-!”
이번 앨범에 들어갈 6곡의 노래를 전부 부른 후에야 한밤중의 작은 콘서트가 끝났다.
있는 힘껏 노래를 부른 브라운블랙은 지쳐 거실 바닥에 쓰러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와, 씨. 미쳤어.”
대자로 뻗은 황예준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꿈에서나 불렀을 법한, 완벽한 노래였다. 몇 분 전, 자신이 부른 노래인데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떨렸다.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가수가 되었다. 황예준은 찔끔 눈물을 내보였다.
“저 소름 돋았어요.”
보컬보다는 노래가 부족한 댄서, 최시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 어떤 보컬보다도 벅찬 노래를 불렀다.
항상 춤이 더 좋았는데……. 와……. 이런 노래를 내가 부를 수 있었다니……. 감정이 솟구쳐 소름이 돋았다.
“[미쳤어. 진짜.]”
케빈이 숨을 몰아쉬었다. 6곡을 부르면서 모든 랩 부분을 바꿔 불러버렸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 썼던 가사였지만, 지금 노래를 부른, 30분 동안 바꾼 가사가 훨씬 더 그들의 노래에 어울렸다.
LA의 많은 래퍼 사이에서 항상 재능에 고민하던 그였지만, 오늘에서야 확신을 얻었다. 난 더 할 수 있어!
“이게 우리의 음악이야.”
리드보컬인 박서진은 제일 많은 파트를 맡은 만큼 멤버들의 감정을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아이돌 가수가 될까 고민했다. 많은 노래의 장르들 속에서 고심했다. 그리고 지금 브라운블랙의 리더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지금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음악을 하자.”
“와, 씨. 이런 걸 또 하자고?”
황예준이 벌떡 일어나 앉아 박서진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건 두 번은 못할 것 같은데요. 서진이 형.”
최시윤도 한바탕 춤을 춘 것처럼 늘어진 몸을 바로 했다.
“나도. 아직도 심장이 뛰는데…….”
떨려오는 심장 근처를 손으로 주무르며 케빈이 말했다.
“한 번 해봤으니까 또 할 수 있을 거야.”
말은 다정한데, 박서진의 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그제야 멤버들은 저희의 리더가 꽤 스파르타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펼쳐질 연습의 하루하루가 머릿속에 새겨졌다.
“어, 어. 서준이 잔다!”
아득해지는 머릿속에 황예준은 겨우 서준을 떠올렸다.
아 참. 우리 자장가 부르던 중이었지!?
황예준의 말에 브라운블랙이 뒤늦게, 조용히 아기 침대로 몰려들었다.
“……우리 노래. 댄스 음악이지 않아?”
“엄청 시끄러웠을 텐데.”
“잘도 자네요.”
“서준이 귀여워.”
시끌벅적한 아이돌 노래 사이에서 잘도 잠이 든 서준이었다.
* * *
“와……. 누구지?”
서준의 아랫집의 남자가 감탄했다.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어디선가 처음 듣는 노래가 들렸다. 빠른 음악에 랩까지 있는 걸 보니 아이돌 노래인 것 같았다.
내일 아침부터 일찍 출근해야 해서 가뜩이나 짜증이 나 조용히 하라며 소리를 지를까 했는데.
“올라가서 물어볼까?”
노래가 너무 좋았다. 한겨울에, 쌩쌩 부는 찬바람에도 거의 30분이나 창문을 열고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 노래를 듣고 있을 정도였다.
“휴대폰에 노래 검색에도 안 나오던데……. 인디가수인가?”
‘찾을 수 없음’이라고 떠 있는 검색창을 바라보던 남자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에취! 아,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
또 노랫소리가 들릴까 봐 10분쯤 더 열어뒀는데, 더 이상은 안 부를 모양이었다.
“으아아아! 얼른 자야지.”
얼어버린 몸 때문에 엉거주춤 일어난 남자가 창문을 굳게 닫았다.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서준의 집과 맞닿아 있는 집들은 모두 30분 동안 어디선가 들려온 노래에 감탄하며 가수를 알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아직 데뷔도 안 한 브라운블랙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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