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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7화 (1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7화

거실은 침묵에 잠겼다. 서준은 손에 들고 있던 빈 젖병을 바닥에 떨궜다.

단번에 낚아챘던 베테랑 아빠와는 달리 브라운블랙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데굴데굴 빈 젖병이 굴러가다 멈추었다.

음. 애들한테는 이러면 안 되겠구나.

넋이 나간 브라운블랙과 깜짝 카메라로 분량을 확보했다며 실실 웃고 있는 서은찬을 보며 서준은 어젯밤을 떠올렸다.

* * *

“제일 첫 장은 서준이 일과를 적어놓자.”

“밥 먹는 시간은 확실하게 적어야 해. 1분이라도 늦으면 울어댈걸.”

서은혜와 이민준은 A4용지를 꺼내 계획표처럼 하루 일정을 적었다. 일어나서 밥 먹고 놀고 낮잠 자고.

“이렇게 보니 엄청 단순하게 사는구나. 서준이.”

이민준의 말에 서은혜가 웃었다.

“단순한 일정이라도 매번 새로운 놀이를 찾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인데. 게다가 요새는 서준이도 지겨운지 나랑 노는 것도 좀 건성인 것 같고.”

서은혜가 흘깃 트윈 헤드오우거의 양쪽 머리를 잡고 반대 방향으로 당기며 놀고 있는 서준을 보았다.

서준의 몸이 움찔했지만, 부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요새, 좀 지루해지긴 했지.’

보통의 아기라면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전생을 가지고 있는 서준은 매번 하는 인형 놀이가 점점 질려갔다. 게다가 아직 아기라서 만나는 사람들도 한정적이었다.

‘아기들이랑 엄마들이랑, 삼촌이랑…….’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일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고 했다.

서준도 신이 났다. 꺄아악! 트윈 헤드 오우거의 머리를 비틀었다.

아기의 힘이 약한지 김희상이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인형은 실밥 하나 터지지 않았다.

서준을 돌보며 주의할 점을 써 내려가던 이민준이 말했다.

“아이돌이면 노래 잘하겠네.”

“음. 찬이 말 들어보면 연습생 생활을 오래 해서 나름 한다던데…….”

서은혜는 서은찬의 말을 떠올렸다.

서은찬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들 좋은 아이들이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랩도 잘하는데, 뭔가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든대. 그 애들도 열심히 하고 있고 다른 직원들도 잘한다고 말하니까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직원들과 아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진심을 누나에게 전부 말한 서은찬이었다.

“자기 혼자만 애들이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괜한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은 안 했대. 근데 찬이는 그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면 정말 좋겠다고 하더라.”

코코아엔터 직원들은 아주 좋다고 했다. 오직 서은찬만이 약간의 찝찝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민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실전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건 데뷔하고 나서 무대 위에서 쌓을 수 있겠지.”

“그럴까?”

“아, 이 이유식 레시피 틀린 것 같은데?”

“어머. 정말이네!”

서은혜가 얼른 펜을 들었다.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던 서준은 생각했다.

‘부족하다라…….’

찬이 삼촌만의 의견이었지만 왠지 삼촌의 의견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4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뭐가 부족한 걸까?

‘찬이 삼촌을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잘 됐으면 좋겠다.’

엄마와 아빠가 밤늦게까지 준비하던 모습을 보다가 서준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생의 도서관 앞이었다. 지금 열린 도서관 문은 파란색 문, 하나뿐이었다.

“이건 내년쯤에 열리려나?”

파란색 문 옆의 문은 어떤 책이 있을까? 하도 많은 책이라 기억도 하지 못했다. 서준은 파란색 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도서관 안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서준은 펼쳐진 책들과 엎어진 책들 열심히 기어 통과했다.

“분명히 읽은 것 같은데…….”

[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을 찾기 위해 책을 뒤지다가 음악에 관련된 삶의 책들도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서준이 책 하나하나 뒤집으며 제목을 읽었다. 내일 찾아올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딱 좋은 스킬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작곡 요정] 아니야.

[악기 슬라임] 아니고.

[노래 벌레] 이건 절대 아니고.

“아, 여기 있다.”

서준이 하나의 책을 펼쳤다. 쓰인 삶을 읽으니 이것보다 좋은 스킬은 없을 것 같았다.

“딱 좋아!”

책이 반짝이고 동그란 구슬이 서준의 양쪽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서준은 양 손바닥을 폈다. 두 개의 손바닥에는 기다란 지휘봉이 새겨져 있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최하급]

지휘자와 연결된 존재들의 유대감에 따라 음악 실력이 최대 1.3배까지 증감합니다.

지휘자와의 유대감과 연결자들의 유대감이 숫자로 표현됩니다.

최대 연결 : 4

* * *

어느새 정신을 차린 브라운블랙은 서준에게 유일하게 남은 곰 인형을 안겨주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아무리 소소하게 만드는 너튜브용 예능이라고 해도 큰 줄기는 있어야 했다.

브라운블랙은 서은찬과 함께 마치 대본처럼 대강의 진행순서를 만들었다.

촬영을 막 시작한 지금은 시청자들에게, 그리고 서준에게 브라운블랙을 소개할 차례였다.

MC를 맡은 황예준이 장난감 마이크를 짐가방에서 꺼냈다.

“자. 지금부터 자기소개가 있겠습니다!”

짝짝-!

서준도 함께 손뼉을 쳤다. 지루하던 일상에 새로운 얼굴들이 찾아왔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까아아악!

“우리 서준이는 벌써 즐거운 것 같네요! 자, 제일 먼저. 이번 방송의 주인공! 서준이의 소개가 있겠습니다!”

박서진이 서은혜가 준 종이를 읽었다. 나중에 편집할 때는 서은혜와 이민준의 목소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름, 이서준. 3월 10일에 태어났습니다. 벌써 8개월이네요. 아랫니가 두 개 났고 좋아하는 놀이는 인형놀이입니다.”

“와! 8개월이라니! 진짜 어리네요! 완전 신생아! 그럼 다음은 서준이에게 앞으로 48시간 동안 함께할 브라운블랙 형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황예준이 마이크를 박서진에게 넘겼다. 박서진이 마이크를 잡고 서준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영상은 나중에 따로 촬영할 예정이었다.

“안녕. 서준아. 나는 박서진 형이라고 해. 브라운블랙의 리더고…….”

“서준이가 리더라는 말을 알까?”

최시윤의 말에 박서진이 멈칫했다. 그러게. 알려나? 황예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 소개도 못 알아들을 것 같은데!”

“그렇네. 그럼 그냥 해.”

“브라운블랙의 리…… 더고 메인…… 보컬이야.”

아무리 생각을 해도 8개월 아기에게 리더니, 메인보컬이니.

뭐라고 설명할지 막막했다. 예상대로 박서진의 말을 듣고 있던 서준의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갸웃?

황예준과 최시윤, 케빈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나도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너희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박서진의 말에 황예준이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서준아! 나는 황예준 형아고 브라운블랙에서 2번째로 노래를 잘 불러!”

“오!”

서브 보컬. 황예준이 활기차게 이야기하자,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서준이 짝짝 손뼉을 쳤다. 케빈과 최시윤도 박수를 쳤다.

“똑똑한데!”

“센스 있어요! 예준이 형!”

박서진도 입을 다물고 박수를 쳤다. 에헴. 황예준의 마이크가 케빈에게로 향했다.

“안녕! 나는 케빈 킴이고 말을 빠르게 할 수 있어. 고향은 미국 LA고 부모님은 두 분 다 한국인이지. 좋아하는 가수는 D. 레이. 좋아하는 음식은 갈비찜…….”

래퍼가 다다다 말을 이어갔다. 서준의 귀에 들린 단어는 처음 시작의 세 마디뿐이었다. 안녕! 나는 케빈!

“아부부부!”

“땡!”

서준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탁탁! 쳤다.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지. 형아!

서준의 반응을 본 황예준이 두 팔을 교차하며 엑스자를 만들었다. 다음 차례는 최시윤이었다.

“안녕! 형아 이름은 최시윤이라고 해. 내 특기는 춤이고 어, 보여주고 싶은데…….”

“안 돼. 여기서 추면…….”

최시윤이 춤을 추면 이리저리 크게 움직이며 출 게 분명했다. 탁자가 중앙에 놓인 거실에서 춘다면 물건이 하나 정도는 부서질 터였다. 최시윤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다음에 보여줄게!”

짝짝-!

서준이 박수를 쳤다. 춤이라니. 텔레비전을 통해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면 어떨까, 기대가 됐다. 서준의 박수에 황예준이 합격! 소리쳤다.

딩동.

“어, 알람이에요.”

최시윤이 휴대폰을 꺼냈다. 전자제품을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최시윤은 서준의 하루 일과표를 보자마자 휴대폰에 시간별로 알람을 지정해 두었다.

“서준이 낮잠 잘 시간이네요.”

“이불 어딨지?”

박서진이 방에서 이불을 찾아왔다. 서준의 이불이 거실 한쪽에 깔렸다.

그나마 서준을 안는 것이 2번째인 케빈이 곰 인형과 함께 앉아 있던 서준을 조심히 들어 이불에 눕혔다.

다리부터 천천히. 손이 조금 떨렸지만 안전하게 서준의 머리를 베개에 올려두었다.

이불에 누운 서준은 이때다 싶어, 두 팔을 뻗어 자신을 눕히려고 상체를 숙인 케빈의 양 뺨을 붙잡았다.

짝-!

아니, 쳤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사용합니다.(1/4)]

“어?”

브라운블랙의 시선이 케빈에게 향했다. 케빈은 조금 붉어진 양 볼을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자그맣고 보드라운 아기의 손바닥이 볼에 닿았다. 케빈이 볼을 잠시 매만지더니 씨익 웃었다.

“서준이가 날 엄청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모습에 짐을 풀고 있던 황예준이 얼른 서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서준아. 형아. 형아도 짝 해줘!”

황예준이 얼굴을 들이밀자 서준이 다시 양손을 들어 황예준의 뺨을 쳤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사용합니다.(2/4)]

음. 케빈 형보다 더 세게 때려 버린 것 같은데. 서준이 살짝 뜨거운 양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잼잼.

서준의 생각과는 달리 황예준은 마냥 좋은지 실실 웃어댔다.

“나를 더 좋아하는데? 봐봐. 완전 빨갛지?”

최시윤과 박서진도 서준의 이불 옆으로 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건 마치 새끼 고양이의 꾹꾹이를 바라는 집사들의 모습 같았다.

잔뜩 기대한 눈빛에 누구를 먼저 해줄까 고민하던 서준은 춤을 보여준다고 했던 최시윤의 뺨을 먼저 쳤다. 그다음 박서진의 뺨을 쳤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사용합니다.(3/4)]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사용합니다.(4/4)]

“서준이의 애정 순위가 나왔네요!”

황예준이 서은찬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서은찬에게 자랑하는지 미래의 시청자들에게 자랑하는지 으하하하 웃으며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촬영 담당이라 화면에 나올 수 없는 서은찬과 김화련이 아쉬운 눈빛으로 이불에 누워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1위는 저, 황예준!”

“내가 제일 먼저 맞았는데?”

케빈의 말에 황예준이 훗 하고 코웃음을 쳤다. 붉은 기가 가셔 거의 보이지 않는 볼을 탁자에 설치된 카메라 렌즈에 들이밀었다.

“자자, 보이시죠? 이 빨간 볼! 서준이의 사랑이 담겨서 내가 너보다 더 빨갛잖아?”

“NO! 내가 처음이라고.”

마지막으로 맞은 박서진은 좌절한 듯 말이 없었고 막내인 최시윤은 박서진보다 자신을 먼저 골라준 기특한 서준의 배를 토닥였다.

케빈과 황예준은 왕왕대며 다투었다. 그러다 두 사람은 극적으로 타협했다. 황예준과 케빈이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럼 공동 1위! 황예준, 케빈 킴! 3위 최시윤! 4위 박서진!”

두 손을 들고 방방 뛰는 두 멤버를 보며 반전을 꿈꾸는 박서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첫인상일 뿐이야.”

박서진의 말에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박서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진정한 애정 순위는 마지막 날 확인해야지.”

“그때도 내가 1위일걸?!”

“좋아요. 대결이에요!”

“지금도 나중에도 넘버 원은 당연히 나지!”

박서진의 결투 신청에 모두 의지를 불태웠다.

이불을 덮고 누운 서준이 눈이 천천히 감겼다. 실실 웃음이 나왔다. 겨우 몇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참 재미있는 형들이었다. 낮잠 자고 일어난 저녁 시간도 내일도 모레도 기대됐다. 아주 신나는 이틀이 되겠지!

“아, 서준이 잔다.”

의욕을 불태우던 브라운블랙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발소리도 없이 모두 서준의 이불을 둘러싸고 앉았다.

“우리가 재밌나 봐요. 계속 웃어요.”

“그러게. 진짜 귀엽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브라운 블랙의 얼굴들이 보였다. 이불의 동서남북 사방을 차지한 브라운블랙의 위로 숫자가 떠올라 있었다.

두 개의 숫자는 높았다.

서준과 브라운블랙 사이의 유대감의 나타내는 ‘지휘자 유대감’의 숫자도 높았고, 브라운블랙 사이의 유대감을 나타내는 ‘연결자 유대감’의 숫자도 높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브라운블랙이 서준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브라운블랙 사이도 엄청 좋은 것 같았다.

두 유대감이 모두 높으니 이 상태라면 1.3배인 스킬의 한계치까지 실력 향상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좋은 일이야. 눈으로 그들의 애정을 확인한 서준이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이 감긴 서준을 보고 브라운블랙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딱 낮잠 시간이었다.

“진짜 정확하네.”

서준의 신체 시계와 일과표의 정확성에 멤버들은 다시 일과표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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