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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5화 (1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5화

“와, 또 늘었어요.”

채널 [JUN]을 새로고침 하며 살펴보고 있던 최시윤이 말했다.

최신형 파인패드로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채널 [JUN]의 구독자가 열댓 개씩 쌓여갔다.

컴퓨터 앞에 자리 잡은 케빈과 황예준도 각자 미국과 한국의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채널 [JUN]과 엘리펀트 분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들의 매니저인 서은찬에게서 그들과 함께 육아 예능을 찍을 ‘이서준’이라는 아기가 엘리펀트 분유 광고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와, 광고 효과 엄청난데? 다들 못 구해서 안달이야. 이 쇼핑몰까지 품절이라는 말은 거의 전 세계에 나온 물건들이 다 팔렸다는 거 아니야? 와. 어떻게 이렇게 효과가 좋지? 난 그냥 평범한 광고 같은데……. 이렇게 부모들이 반응할 정도면 광고 속에 내가 모르는 메시지나 뭐가 있나?]”

“케빈이 또 영어 써! 박사님! 박서진 박사님!”

무서운 속도로-게다가 영어로- 중얼거리는 케빈을 보며 영어는커녕 멤버들에게 한국어도 부족하다는 놀림을 듣는 황예준이 소리쳤다.

따로 떨어져 앉아 [이것만 알면 육아고수!], [8~10개월 아기에게 필요한 것], [우리 아기 천재 만들기] 등등의 육아 책을 펼쳐놓고 요약 필기를 하던 박서진이 다크서클이 가득 내려온 얼굴로 황예준을 바라보았다.

“삼 일 후가 촬영이야. 그런 쓸데없는 거 살펴볼 시간에 이 책이나 읽어.”

반쯤 죽어버린 듯한 박서진의 눈빛에 오두방정 떨던 황예준이 조용히 컴퓨터를 끄고 책을 받아 들었다.

“나, 진짜 책만 보면 졸린데…….”

“괜찮아. 절반이 그림이야.”

황예준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주는 치밀함까지 갖춘 리더, 박서진이었다. 황예준은 책 제목을 보았다.

[12개월 미만 아기에게 들려주는 동화].

“끊기지 않고 잘 읽을 수 있게, 구연 동화할 수 있을 정도로 읽어둬.”

“옛썰.”

동화책을 읽기 시작한 황예준의 옆에 앉아 있던 최시윤이 파인패드를 내려놓고 박서진의 앞으로 향했다.

“서진이 형. 전 뭐 할까요?”

“넌……. [케빈. 카드 줘!]”

열심히 엘리펀트 분유 광고를 보며 분석하고 있던 케빈이 호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휙 던졌다. 익숙하게 카드를 받은 박서진이 최시윤에게 카드를 넘겨 주었다.

“넌 가까운 대형마트에 가서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사와. 나이는 8개월이고 남자아이야. 알지?”

“당연히 알죠. 한도는요?”

“없어.”

“오케이! 다녀올게요!”

“다만…….”

대형마트 전자제품코너에서 신상품을 둘러볼 생각에, 신나게 신발을 신던 최시윤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박서진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굳혔다.

“서준이가 장난감을 안 좋아하면, 네 소중한 전자제품들을 한동안 못 쓰게 되겠지.”

“……얼마나요?”

박서진이 살벌하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팬 앞에선 아이돌처럼 상큼하게 웃었다. 최시윤은 악마의 미소라도 본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망하면 평생?”

박서진. 아직 데뷔조차 하지 못한 그룹 [브라운 블랙]의 리더는 이번 촬영에 그룹의 사활을 걸고 있었다.

* * *

“좋아! 설치 끝!”

찬이 삼촌이 말했다. 아침 일찍 집에 온 삼촌이 거실과 방, 부엌까지 이곳저곳에 까만 카메라들을 설치했다.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도 설치했어.”

“어차피 우리는 없을 텐데. 안 알려줘도 되지 않아?”

“집주인도 알고는 있어야지.”

서은혜의 물음에 서은찬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어. 나. 준비됐어?”

-네! 잠시만요!

서은찬의 전화를 받은 박서진이 앞에 앉아 자신을 뚫어지라 보고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서준의 집, 아파트 주차장.

까맣게 선팅된 차 안에 기대 반 걱정 반 어쩔 줄 몰라 하는 네 남자가 앉아 있었다.

휴대폰 너머 서은찬이 말했다.

-준비 다 됐으면 올라와. 카메라 있는 거 잊지 말고.

“네!”

전화가 끊겼다. 까맣게 변한 화면을 보던 박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네 사람은 제각기 오랜 연습생 생활을 보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코코아엔터에 정착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었다. 더 이상 받아줄 곳도 없어서 네 사람 모두 이번 데뷔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어. 이때까지 사기만 치고 데뷔를 미루던 다른 회사들과는 달라. 데뷔도 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이런 기회까지 만들어주는 곳은 거의 없을 거야.”

박서진은 멤버들에게 말하듯 다짐했다.

“모두, 힘내자!”

그는 굳게 잠긴 차 문을 활짝 열었다.

* * *

“안녕하세요! 브라운 블랙입니다!”

네 남자가 90도로 허리를 숙여 부부에게 인사했다.

아빠에게 안겨 있던 서준은 그 기백에 박수를 짝짝 쳤고 서은혜와 이민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한 발짝 물러섰다.

서은찬은 잘 자란 자식을 보는 눈빛으로 대견함을 표현했다.

“브, 브라운 블랙?”

“네, 매형. 이번에 그룹 이름 정했거든요. 줄이면 브블이에요. B. B라고 할 수도 있고. 괜찮죠?”

“그…… 그런가? 반가워요. 서준이 아빠, 이민준입니다.”

이민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네 사람을 반겼다. 서은혜도 인사했다.

“반가워요. 서준이 엄마, 서은혜에요.”

“우리 누나야.”

서은찬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했다. 우렁찼던 전화 속 주인공이었다. 살벌하게 생긴 서은찬과는 달리 평범한 미인이었다.

“안녕하세요! 브라운블랙의 리더, 박서진입니다.”

“래퍼, 케빈 킴입니다.”

“서브보컬, 황예준입니다.”

“댄서이자 막내, 최시윤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제는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민준은 얼른 자리로 안내했다. 소파의 자리가 부족해서 다들 거실 바닥에 모여 앉았다.

탁자에는 과일과 과자들이 있었는데 브라운블랙은 어려운 자리에라도 온 듯 굳어서 다과에는 시선도 주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 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은혜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없어?”

방송국 예능처럼 제작진이 오나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서은찬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 크게 할 생각은 없어. 그냥 소소하게. 카메라는 이미 설치해서 녹화되는 중이고 그 밖의 촬영은 나하고…… 잠시만…….”

서은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들의 매니저인 서은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브라운블랙은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일어나야 하나? 고민했다.

“네네, 12층입니다. 네, 5호요.”

누군가와 잠시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착하셨대.”

그와 동시에 띵동- 소리가 났다. 서은찬이 문을 열자, 커다란 가방을 든 단발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앉아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도 일어나 인사했다. 아빠에게 안겨 있던 서준도 아부! 인사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브라운블랙도 벌떡 일어나 새로 온 손님에게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쪽은 소아과 의사, 김화련 선생님. 우리 회사 홍보팀 팀장 언니분이셔.”

“김화련입니다.”

서은혜와 이민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아니, 무슨 촬영을 하는데 소아과 의사 선생님까지 데려와?”

“서준이가 48시간 동안 엄마 아빠도 없이 모르는 사람들이랑 촬영하는데 누나랑 매형이 안심하겠어? 삼촌인 나도 있겠지만 의사 선생님 정도는 있어야 걱정 안 하지.”

서은혜는 동생의 깊은 생각에 감탄했다.

“네가 이 정도로 생각이 깊을 줄이야. 몰랐어.”

“크크흠.”

헛기침을 하던 서은찬이 시선을 돌렸다. 브라운블랙의 멤버들이 있는 쪽이었다.

서은혜와 이민준, 서준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쏠리자 뻘쭘하게 서 있던 네 사람이 움찔거렸다.

“내가 아니라, 서진이가 한 거야.”

“그럼 그렇지.”

“아니, 누나!”

서은혜의 눈빛이 바뀌었다. 역시 자신의 동생은 덜떨어진 동생이었다.

남매의 싸움을 익숙하게 무시한 이민준이 자신을 박서진이라고 소개한 남자의 앞으로 향했다.

박서진의 아기와 부모를 생각하는 배려심과 섬세함에 이민준은 그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게다가 아이돌-아직 데뷔는 안 했지만-이면서도 아기를 배려해서 액세서리나 화장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현관 쪽에는 브라운블랙이 가져온 짐이 한가득이었다. 가방 위로 튀어나온 물건들을 보아하니 아기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서준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자. 우리 서준이 안아볼래요?”

이민준이 품 안에 있던 서준을 달랑 들어 박서진에게로 넘겨주었다.

이렇게 어린 아기를 주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박서진은 손을 벌벌 떨며 조심스럽게 서준을 안았다.

“아붑!”

‘조금 불편하긴 한데…….’

자신을 안고 있는 박서진과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을 보니, 여기서 울었다가는 다 울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그 정도로 브라운블랙의 표정이 안 좋았다.

이민준이 박서진의 자세를 고쳐주었다.

“그렇게 안으면 서준이가 불편해하니까, 이렇게 팔을 안쪽으로…….”

아빠의 코치로 자세가 편해진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매일 같은 사람들 품에만 안기다가 처음 본 사람에게 안기니 느낌이 색달랐다.

“꺄아아악!”

“김화련 선생님!”

“[의사! 의사!]”

“왜! 왜 그러지?!”

“으악으아악!”

아기 웃음 한 번에 브라운블랙이 초토화됐다.

박서진과 케빈은 연신 의사를 불러댔고 최시윤은 얼른 사 온 장난감을 꺼내 들었다. 황예준은 너무 당황해서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소리만 질렀다.

난장판이었다.

“이거…… 괜찮을까?”

“의사 선생님도 있으니까. 근데 이거 꽤 웃기지 않아?”

서은혜와 이민준이 조용히 대화했다. 이민준의 말대로 고작 몇 분 동안의 상황이었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서은찬이 거실에 설치된 카메라들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역시 미리 설치하길 잘했어.”

김화련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었다. 코코아엔터에서 춤을 연습할 때 사용하는 카메라였다.

“저도 들어올 때부터 찍고 있어서. 다 찍었어요.”

“잘됐네요! 편집할 때 쓸 수 있는 내용이 많으면 좋죠.”

서은찬이 웃으면서 김화련에게서 카메라를 받아 들려고 했다. 김화련이 한 발짝 물러서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 왜 그러시죠?”

“어…… 그게…… 죄송합니다.”

김화련은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29년 동안 험악한 얼굴로 살아온 서은찬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또 무섭게 생긴 자기 얼굴이 문제겠지.

그 생각 그대로 서은찬의 험악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물러선 김화련 선생님이었다.

“아니에요. 그럼 그 녹화분은 나중에 주시고…….”

꺄하하핳-

“선생님! 서, 서준이가 계속 웃는데요!”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실실 웃어?!]”

“케빈 영어! 한국어로 하라고! 못 알아듣겠잖아! 근데 서준이 진짜 너무 웃는 것 같은데요! 선생님!”

“이거요! 이거 줘 볼까요?”

서은찬은 난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브라운블랙이 발을 동동 굴러가며 서준이를 달래고 있었다. 최시윤은 커다란 짐가방에서 꺼낸 인형을 들고 이리저리 보이고 있었다.

서은찬이 이마를 짚었다.

“아니. 그건 너희들이 웃겨서 웃는 거잖아.”

“꺄하하하핳!”

서은찬의 말은 브라운블랙의 귀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서준은 이렇게 웃긴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

“서준이 눈물! 눈물!”

“서준이 울어요!”

“[의사! 의사! 애 웃으면서 우는데?! 병, 병인가?!]”

“저…… 저 대신 누가 서준이 좀 안아주실래요?”

눈물 한 방울의 위력이 아주 대단했다. 황예준과 최시윤은 허둥지둥거렸고 케빈는 ‘닥터!’를 외쳐댔다. 박서진은 덜덜 떨리는 팔로 서준을 안고 식은땀을 흘렸다.

발만 동동 구르는 브라운블랙을 보며, 아하하하! 엄마 아빠는 배를 잡고 웃고 있었고 끝내 의사 선생님과 찬이 삼촌도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즐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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