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4화
문이 열리고 찬이 삼촌이 들어왔다. 현관문 바로 앞에서 동생을 맞은 서은혜의 눈빛은 살벌했고 서준과 이민준은 숨을 죽이고 소파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서은찬의 손에 바리바리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한 달 만에 만나는 누나는 너무 무서웠다. 서은찬은 가까운 마트에 들러 공략 대상의 선물을 사 왔다.
“아하하하. 이거 서준이 선물.”
“뇌물이니?”
“……어.”
속셈이 바로 들통난 서은찬이 기죽은 얼굴로 대답했다. 서은혜가 한숨을 쉬며 몸을 비켰다.
서은찬이 조심스럽게 거실로 들어왔다. 소파 구석에 찌그러진 두 사람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매형. 안녕, 서준아.”
“오랜만이네.”
“오옹!”
이민준에게 서준의 선물을 건네주고 거실 한구석에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은 서은찬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폰이나 내놔봐.”
“저장했습니다!”
서은찬에게서 휴대폰을 받아 연락처 목록을 살펴본 서은혜가 다시금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서은혜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어떻게 자기 조카도 못 알아보니?”
“아니, 아기들은 생긴 게 다 비슷비슷하니까. 게다가 안 본 지도 벌써 한 달이 됐고. 서준이가 그렇게 유명해졌는지 알았겠어?”
어물쩡어물쩡 대답하는 동생의 모습에 서은혜가 이마를 짚었다.
“그래. 네 아들도 아니고. 못 알아볼 수도 있지.”
“아하하하.”
“전화번호는 재깍 등록하고.”
“넵!”
“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아, 그건…….”
서은찬이 잠시 머뭇거렸다. 서은혜의 눈꼬리가 하늘 높이 솟았다. 그 얼굴을 본 서은찬이 급하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했다.
“아니. 우리 회사가 신생이라서 내가 3주 전에 취직했는데 하도 직원이 없어서 벌써 실장이야. 그래서 빨리 아이돌 그룹 하나를 데뷔시켜야 하거든.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한 달 뒤에 음악방송에 나가게 됐는데 그거 준비하느라고 요즘 바빠서…….”
“바빠서?”
“……음악방송 나가기 전까지는 집에 잘 못 들어갈 것 같아.”
“어디서 지내는데?”
“우리 애들이 전부 남자애들이라서 회사에서 걔들한테 마련해 준 숙소에서 같이 지내. 딴 건 몰라도 우리 회사 복지는 좋아서 숙소도 좋아!”
당장에라도 숙소를 보여줄 것 같은 동생을 무시하고 서은혜가 물었다.
“음악방송 나가고 나면 집에 갈 수는 있고?”
“어……. 망하면?”
이야기를 듣던 이민준과 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망하면 안 되지. 서은혜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 멍청한 동생 놈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서은찬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안 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 사람의 눈빛을 느꼈는지 서은찬이 조용히 사과했다.
“안 망하고 잘되면?”
“잘되면……. 그 이후에 행사도 다녀야 하고 방송도 나가야 하고. 내가 이름만 실장이지 매니저도 겸해서 하고 있거든.”
“그럼 지금보다 더 바빠지겠네?”
“응. 그렇겠지?”
서은찬의 어중간한 수긍에 서은혜가 이내 포기한 듯 말했다.
“그래. 너도 내년이면 서른이고. 알아서 잘하겠지. 적어도 엄마한테 전화라도 자주 해.”
“어! 자주 할게.”
서은찬이 눈치를 보며 얼른 대답했다.
“일단 왔으니까 밥 먹고 가. 저녁은 먹었어?”
“먹었어!”
“그럼 커피나 한잔 마시고 가.”
서은혜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세 남자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났음을 느낀 이민준이 입을 열었다.
“근데 예능은 무슨 이야기야, 처남?”
“아, 그거요.”
서은찬이 우물쭈물했다. 너튜브 아기 스타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가나 했더니 그게 내 조카였어.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었다.
“그래. 무슨 이야기야?”
서은혜가 탁자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엄마, 아빠, 찬이 삼촌 거. 내 거는 없군.
삐친 서준이 울음을 터뜨리려고 입을 여는데 무언가 들어왔다.
“자, 삼촌이 사온 아기 과자.”
아빠였다. 감사여.
“아뭄무뭅! 아붑!”
‘맛나네요! 바나나 맛!’
갉작갉작 아랫니로 갉아먹으니 맛있었다. 서준은 한 손으로 과자를 잡고 열심히 빨아먹었다.
서준의 울음을 막은 이민준에게 눈빛으로 칭찬해 준 서은혜는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은찬을 바라보았다. 서은찬이 침을 꼴깍 삼키고 입을 열었다.
“우리 애들이 아예 무명이라서 팬이 한 명도 없단 말이야. 팬이 뭐야.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게다가 음악방송도 딱 한 곳에 땜빵으로 나가는 거고. 그래도 이름이라도 알려야 하지 않나 싶어서 열심히 만든 뮤직비디오도 올리고 인터넷에 기사도 올리긴 했는데 조회 수도 별로라. 이러다간 그냥 묻힐 것 같아서.”
목이 탄 서은찬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떻게든 이름이라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멤버 중 한 명이 너튜브에 방송을 올리자고 제안을 하더라고. 단순히 인물 소개가 아니라 짧은 예능처럼 만들자고. 그래서 예능 중에서도 요새 육아 예능이 대세니까, 그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어.”
“그래서 서준이를?”
“서준이가 유명하니까 그 인기를……. 어…….”
“이용하자?”
“아니, 이용까지야…….”
“아니야?”
“아니요. 그렇습니다.”
다시금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 조카를 이용하다니, 단어 선택이 좀 그랬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서은혜는 생각에 잠겼다. 3년을 백수로 지내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던 동생이었다.
그런데 취직한 지금, 얼굴을 보니 집에 못 들어간 것치고는 혈색이 좋았다.
수염도 깨끗이 밀고 머리도 깔끔했다. 옷도 깨끗한 것이 제법 사람 구실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뭐, 회사가 망하면 다시 백수가 되려나?’
신생회사라고 하니 이번 아이돌의 데뷔에 운명이 걸렸을 것이 분명했다. 아주 망하진 않더라도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서은혜가 커피를 조금 마셨다.
‘동생을 도와주는 건 좋지만…….’
겨우 2개, 짤막하게 찍은 먹방 영상과는 달랐다.
텔레비전이 아니라 너튜브에서 내보낸다고는 해도 예능은 예능이었다.
서준을 많은 사람이 볼 테고 입에 오르락내리락할 터였다. 고민이 됐다.
“난 찬성.”
“아부!”
‘찬성!’
이민준이 손을 들었다. 과자를 다 먹은 서준도 손을 들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예능 출연이라니! 대찬성!
어쩐지 닮은 두 부자가 똑같은 포즈로 손을 들고 있었다. 서은혜가 저도 모르게 굳었던 얼굴을 풀고 풋- 하고 웃었다.
“봐. 서준이도 찬성이라고 하네!”
“하지만…….”
“괜찮아. 이런 것도 추억이지. 나는 출근하느라 바쁘고 당신은 서준이 돌보느라 바쁜데, 우리가 어떻게 온종일 서준이 모습을 찍을 수 있겠어? 나중에 아주 좋은 기억이 될 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분명 그녀와 서은찬을 위해서 찬성하는 것일 터였다.
고마움에 서은혜는 남편의 손을 꼭 쥐었다. 이민준도 아내의 손을 마주 잡았다. 부부의 눈빛에 찐해졌다.
어느새 아빠의 품에서 빠져나와 찬이 삼촌의 무릎에 앉은 서준이 삼촌의 배에 등을 기댔다. 서은찬도 조용히 분위기를 살폈다.
“아직도 신혼이네. 두 사람은.”
“아뭄.”
서은찬은 서준의 입에 아기 과자 하나를 물려주고 조용히 거실에서 나와 서준의 장난감 방으로 향했다.
문을 꼭 닫은 서은찬이.
“어휴. 누나.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몸서리를 쳤다. 그러고는 바닥에 덜렁 앉아 서준을 안고 부둥부둥 하며 이야기했다.
“서준아. 너희 엄마. 엄청 무섭다. 그치?”
“아부붑!”
“나중에 혼 안 나게 잘해. 이건 약과야, 약과. 매형 아니면 누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을 거야. 매형 완전 부처님인 듯.”
서은찬이 투덜거리다가 서준을 보았다. 한 손에 과자를 잡고 줍줍 빨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건 네가 내 조카라서 귀여워 보이는 거야? 아니면 원래 귀여운 거야?”
“원래 귀여운 거야.”
“히익!”
문이 열렸다. 서은혜가 서 있었다. 서은찬이 더듬더듬 말했다.
“드, 들었어?”
“뭘?”
“아니. 못 들었으면 됐어.”
“매형이 부처님이라는 거?”
“다 들었네!”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나와.”
“서준이가 다 들어. 배운다고 나쁜 말!”
서은혜가 서준을 안으며 코웃음을 쳤다.
“우리 서준이는 똑똑해서 나쁜 말 안 써.”
“아부!”
‘맞아!’
“봐. 그렇다네.”
팔불출 누나의 말에 서은찬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출연할 거야?”
“일단 계획부터 들어보고. 어떤 내용으로 찍을지는 이야기 안 했잖아. 그리고 출연료도 얼마나 줄지 들어봐야지.”
단호한 서은혜의 말에 서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야 누나지.”
“뭐?”
“아닙니다! 일단 이거. 기획서부터 볼까?”
서은찬이 얼른 폰을 꺼내 파일을 열었다.
이 파일은 코코아엔터의 사장의 허가 아래, 멤버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만든 기획서였다.
다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는지 조금 조잡해 보이기도 했다.
서은찬이 입을 열었다.
“일단 촬영 시간은 48시간으로 정했어.”
“너무 긴 거 아니야?”
첫 말부터 태클이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의 서은찬이 말을 이었다.
“24시간은 너무 짧잖아, 누나. 서로 얼굴 익히자마자 끝나겠다.”
“좋아. 일단 넘어가자.”
“일단……. 알았어. 그리고 너튜브에 올린 편 수는 찍히는 분량에 따라서 다를 것 같은데 우리는 15분씩 8편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일단 너튜브는 텔레비전과 다르게 짧게 짧게 보는 사람들이 많잖아? 그리고 일주일에 2편씩 올리면 4주 뒤 음악방송 전까지 내보낼 수 있고.”
이민준과 서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을 얻은 서은찬이 이야기했다.
“채널은 우리 그룹 채널에 올릴 건데, 나중에 서준이 채널에서도 우리 채널 홍보 좀 해줬으면 좋겠어.”
“아!”
“물론 홍보비는 따로 줄게.”
서은혜가 손을 들자, 누나의 속내를 파악한 서은찬이 얼른 말했다. 서은혜는 만족한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중간에 크리스마스가 있으니까 그걸로 컨셉으로 한두 편 찍고 나머지는 그냥 일상생활을 찍을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48시간으로는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분량이 부족하면 어떡해?”
“음. 10분씩 8편도 생각하고 있어. 아니면 10분씩 4편 정도…….”
말끝을 얼버무린 서은찬이 한숨을 쉬었다.
“그 정도도 안 나오려나?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서준이, 예능감이 좀 있는 것 같아?”
“넌 8개월짜리 아기한테 뭘 바라? 너희 멤버 애들 예능감은 어떤데?”
“어…….”
서은혜의 물음에 서은찬이 기억을 더듬었다.
똑똑한 박서진, 급할 땐 영어를 내뱉는 케빈 킴. 까불이 황예준. 막내 최시윤.
이제 겨우 3주를 만났지만 캐릭터성은 확실한 애들이었다. 근데 예능감이라…….
“……모르겠어.”
“어휴.”
“잘 될 거야. 서준이는 이미 너튜브 스타잖아. 50만 구독자들이 한 번씩 다 보면 엄청날걸?”
이민준이 침울한 남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붑!”
그랬다. 채널 [JUN]의 구독자가 벌써 50만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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