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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2화 (1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2화

“촬영 감독님 오셨어요. 서준이 이제 밥 먹어도 되나요?”

자신을 마케팅팀 팀장이라고 소개한 강소라가 물었다. 서은혜가 아기 침대에 엎어져-어머, 서준아!- 있던 서준이를 안으며 시계를 보았다.

“네. 한 10분만 있으면 밥 먹을 시간이에요.”

“잘됐네요. 그럼 촬영장에서 기다릴까요?”

서은혜는 서준이를 안고 이민준은 곰 인형을 들었다.

강소라 팀장을 따라 대기실 밖으로 나오니 만들어지고 있던 거실이 완성된 것이 보였다.

집 거실과 비슷했지만 좀 더 따스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예쁘네요.”

“네, 감사합니다.”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맨들맨들한 턱이 어색한 듯 자꾸만 손으로 매만져댔다. 강소라 팀장이 남자를 소개했다.

“오늘 CF 촬영을 맡아주실 최대만 촬영 감독님이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굵은 목소리의 최대만 감독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서준과 눈을 마주쳤다. 단편 영화 촬영 때문에 항상 덥수룩하게 자라 있던 수염을 자르게 한 장본인이었다.

서준도 눈앞의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깨끗하고 선명한 눈동자를 보니,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꺄아악 웃었다.

“좋네요. 아기가 낯도 안 가리고.”

제법 험상궂게 생긴 최대만 감독은 아이들에게 꽤나 미움받는 타입이었다. 가까이에만 가도 쩌렁쩌렁 울어댔다. 아이들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게 울면 가까이 가기가 꺼려지고는 했다.

다행히 서준은 낯을 가리기는커녕 아주 방긋방긋 웃었다.

“촬영 준비는 다 됐습니다. 언제든 밥 먹이시면 됩니다. 카메라는 정면 1대, 우측좌측 2대, 뒤에 1대, 위에 1대, 총 5대를 사용할 겁니다. 최대한 한 번에 가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최대만 감독은 촬영 내용을 이야기했다.

“일단 서준이가 분유를 먹는 모습을 찍을 겁니다. 그리고 다 먹고 난 다음에 엘리펀트 분유 케이스를 인형처럼 껴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을 겁니다.”

서은혜는 잠시 생각했다. 분유 먹는 모습은 괜찮았다. 한데 엘리펀트 케이스를 안는 건, 게다가 환하게 웃는 얼굴이라니…….

“서준이가 똑똑하긴 해도 단번에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괜찮나요?”

“괜찮습니다. 다들 각오하고 왔을 겁니다.”

촬영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촬영이 그렇다. 더군다나 엄마 아빠도 하지 못하는 완전 아기였다.

최대만 감독도 길어질 촬영 시간을 각오하고 여기에 왔다. 그가 자비로 제작 중인 독립 영화에 들어갈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이 나이 때는……. 아직 혼자 젖병은 못 들지요?”

“아뇨. 보통 7, 8개월이면 다 들어요.”

“호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원래는 모델을 쓰려고 했는데 혼자 들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지요. 괜히 낯선 품에 불편할 수도 있고.”

“그럼 아기 의자 같은 게…….”

“여기 있습니다!”

어느새 대기실로 뛰어갔던 강소라 팀장이 45도쯤 기울어진, 푹신푹신한 아기 소파를 가지고 왔다. 의욕적인 모습에 서은혜와 이민준은 어색하게 웃었다.

“있네요.”

“네. 그럼 서준이 분유 좀 타 주시고, 팀장님은 의자를 이쪽으로.”

서은혜는 최대만 감독의 말에 대기실로 들어가 분유를 탔다. 강소라 팀장과 최대만 감독은 거실 중앙에 의자를 놓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카메라 화면에 비치는 곳에 따라 아주 조금씩 위치를 옮겼다.

서은혜가 분유를 타오자 최대만은 서준을 안고 있던 이민준을 거실로 안내했다. 이민준이 조심스럽게 아기 소파에 서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들고 있던 곰 인형도 옆에 내려놓았다. 곰 인형의 팔을 서준이 잡을 수 있게 놓았다.

“서준아, 맘마 먹자.”

서은혜가 젖병을 서준에게 건넸다. 서준이 조막만 한 손으로 젖병을 잡았다.

따뜻하고 맛있는 분유. 따뜻한 젖병의 온도가 손바닥으로 느껴져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마침 딱 배가 고팠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최대만 감독이 작게 소리쳤다. 촬영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최대만 감독과 강소라 팀장, 어느샌가 나타난 최현지 팀장과 부부의 시선이 커다란 화면으로 향했다.

젖병을 든 서준이 카메라에 찍히고 있었다. 서준이 젖꼭지을 물었다.

쭙쭙-

촬영장에는 서준이 분유를 먹는 소리만 울렸다. 다행히 울지도 않고 소파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아주 잘 먹었다.

“저게 그 먹방입니까?”

서준의 너튜브 영상을 보지 못한 스태프 한 명이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기도 아주 귀엽고 잘 먹긴 하는데……. 평범한데요? 먹는 모습은.”

“저 또래 애들은 아주 정신을 못 차리더라.”

뮤직비디오 리뷰 영상처럼 서준의 먹방을 본 아기들의 리뷰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넋을 놓고 밥을 먹는 모습이었다.

“근데 아기는 진짜 귀엽네요. 카메라 의식도 안하는 것 같고.”

“저 나이에 카메라가 뭔지 알겠냐?”

“그래도 촬영장은 뭔가 무서운 분위기지 않아요? 조명은 쨍쨍하지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조용하지. 뭔가 이상한 게 잔뜩 있고…….”

스태프의 말대로였다. 다른 아기였다면 곧장 울음을 터뜨렸을 터였다.

“지금은 밥 먹고 있으니까.”

“그건 그렇네요.”

“지금 장면보다는 이다음 장면이 중요하지. 제발 한 번에 통과해라.”

선배의 말에 스태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끄억-

서준이 분유를 다 먹었다. 서은혜에게 안겨 트림을 했다. 옆에서 서준의 손을 흔들던 이민준이 고개를 꺄웃했다.

“어라?”

“왜 그래?”

“서준이가 팔을 안 흔들었어.”

“팔? 그러고 보니…….”

서은혜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카메라가 있는데도 서준은 팔을 흔들지 않았다. 얌전히 분유만 먹었다.

“음. 젖병을 들고 있어서 그런가?”

“그럴 수도. 뭐, 잘 찍혔으면 됐지.”

엄마 품에 안긴 서준이 히죽 웃었다.

아직 아기의 몸인 서준이 가질 수 있는 스킬은 한계가 있었다.

서준이 팔을 흔들게 만들었던 [요정의 반짝이-최하급]은 새로운 비밀 병기 때문에 다시 도서관으로 돌려보냈다. 아마 지금쯤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있을 터였다.

서준은 제가 발견한 스킬을 떠올렸다.

[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최상급]

포장된 물건을 어떤 존재라도 탐내게 만듭니다.

타깃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제한 : 사용자의 크기가 일정 이하여야 합니다.

사용자가 품에 안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제한이 있었지만 이 제한들 덕분에 마나가 부족한 아기의 몸이어도 최상급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스킬은 어른이 되어서는 사용하지 못하는 능력이었다. 일단 ‘작은 미믹’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작은 것들만 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 다음 장면 촬영하겠습니다.”

최대만 감독의 말에 이민준과 서은혜는 다시 거실에 서준을 내려놓았다. 아기 소파는 어느새 사라지고 엘리펀트 분유통이 3층으로 쌓여 있었다. 그 앞에 서준이 안을 엘리펀트 분유통이 있었다.

“서준아. 이거 어때?”

“자자. 예쁜 코끼리네.”

부부가 분유통을 흔들어댔다. 엄마 품에 안겨, 은근슬쩍 감독의 말을 들었던 서준은 제가 이 분유통을 안고 활짝 웃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행이야. 내가 분유통을 안는다는 내용이 없었으면 안겨줄 때까지 울어야 했을 테니까.’

[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은 사용자가 물건을 안고 있을 때만 효과가 있었다. 분유를 사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서준이었기에 분유통을 꼬옥 껴안아야 했다.

“꺄아아악!”

서준이 활짝 웃으며 분유통을 안았다. 부부는 감독의 말대로 얼른 카메라 화면에서 빠져나왔다.

[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최상급-으로 대상을 포장합니다.]

서준은 작은 나무상자 문양이 새겨진 배와 분유가 최대한 닿게 꼬옥 껴안았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서준의 눈에는 보였다. 그가 안고 있는 엘리펀트 분유통이 아주 아름다운 색으로 빛났다.

[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최상급]이 잘 발동된 것이었다.

‘타깃. 내 또래의 아기를 가진 부모.’

만약 타깃을 정하지 않으면 CF를 본 온 세상 사람들이 분유를 사려고 난리가 날 터였다.

‘뭐……. 아기를 가진 부모도 적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내가 CF로 나오는데 매진이 안 되면 말이 안 되지!’

완판을 꿈꾸며 서준이 꺄르르 웃었다.

최대만 감독은 카메라 화면을 확대시켰다.

아기는 귀엽고 잘생기기도 했지만 카메라 화면에도 아주 잘 잡혔다. 실물이 좋아도 화면에 잘 안 잡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기는 두 모습 다 만족할 정도로 잘 나왔다.

‘게다가 카메라도 신경 안 쓰는 걸보니, 커서 딱 배우하면 좋을 상이군.’

서준의 오동통한 볼이 분유통의 뚜껑을 눌렀다. 살짝 삐져나온 볼살에 강소라 팀장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윽.”

“왜 그래?”

“너무 귀여워.”

최현지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표현은 안 했지만 그녀도 아파트 두세 개를 부수고 싶었다.

“진짜, 저렇게 귀여운 아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러게. 이대로 잘 커주면 아주 엄청난 스타가 되지 않을까?”

“내 아들이었으면 진짜 연예인하라고 밀어주겠다.”

팀장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도 소곤소곤댔다.

서준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귀여워 보일까 궁리라도 하는 것처럼 연신 자세를 바꿔댔다.

그러는 중에도 결코 웃는 얼굴과 분유통을 껴안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서준과 촬영장 안 사람들을 번갈아 보던 서은혜와 이민준이 생각에 잠겼다. 진짜 연예인 시켜야 하나?

“서준아! 이쪽 볼래?”

최대만 감독이 말했다. 겨우 8개월짜리 아기가 너무 잘했다. 촬영에 푹 빠진 최대만 감독은 저도 모르게 지시를 내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서준이 고개를 돌려 최대만 감독이 잡고 있는 카메라를 보았다.

“활짝 웃어!”

꺄아아악!

서준이의 웃음으로 촬영이 끝났다.

* * *

“천잽니다.”

최대만 감독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서은혜와 이민준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서준은 아기 침대에 곰 인형과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겨우 20분. CF 촬영이 끝났다.

“이 아이는 꼭 배우를 해야 합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본능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최대만 감독은 서준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운명, 체질, 본능.

배우가 될 자질이 서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꼭 지금부터 TV나 영화에 출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주 잠깐 나오는 역이 아니면 저렇게 어린 아기를 내보낼 감독들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부터 고민하시고 말을 하거나 알아들을 때쯤 학원에 보내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네.”

“제가 아직 이 세계에서는 초짜긴 하지만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최대만 감독이 메모지에 자신의 연락처와 이름을 적어 이민준에게 건넸다.

최대만 감독이 자리를 뜨고 최현지 팀장과 강소라 팀장이 들어왔다. 강소라 팀장이 커다란 상자를 수레에 올려 끌고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잘했어요. 서준이.”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두 분 다.”

“아하하하. 서준이가 고생했죠. 아. 이건 엘리펀트 분유하고 아까 앉았던 아기 소파인데 서준이 선물이에요.”

“감사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일정이 끝났다.

분유 광고 촬영을 준비하면서 아기에게 하루 온종일 시달릴 것을 각오했던 스태프들도 1시간도 안 돼서 끝난 촬영에 반색했다.

“서준아! 잘 가!”

“우리 조카한테 분유 꼭 사 줄게.”

“엘리펀트 매진! 화이팅!”

스태프들의 응원을 받으며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다.

* * *

아들의 식사 시간.

에릭은 너튜브 영상을 틀었다. 하루에 5번은 보는 듯한 [JUN]의 영상이었다.

너무 봐서 이제는 서준이 어느 타이밍에 웃고 어느 각도로 팔을 흔들고 얼마만큼 이유식을 씹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자, 잭. 네가 좋아하는 JUN이다.”

“라이크! 라잌!”

파리 출장에서 돌아온 마리아도 잭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그녀도 어느새 JUN의 영상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마리아는 동영상을 꾸욱 눌렀다.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평소라면 JUN의 아빠 목소리가 들릴 타이밍이었다.

“오, 광고가 뜨는데?”

“하긴. 조회 수가 얼만데…….”

에릭과 마리아도 조회 수에 한몫한 구독자였지만 지금도 파바박! 올라가고 있는 조회 수와 구독자 수를 보면 질릴 정도였다.

“무슨 광고지?”

“오, 엘리펀트 분유 아니야?”

노란색 코끼리가 나타났다. 노란 코끼리가 코를 위로 드는 모습이 영상에서 그림으로 변하고 분유통에 붙여졌다. 그리고.

“오! JUN 아니야?”

“그러게! 광고 찍었나 봐! 귀엽다!”

서준이 싱글생글 웃으며 분유를 쭙쭙- 먹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서준이 엘리펀트 분유통을 안고 꺄르르 웃는 모습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

조용했다.

에릭과 마리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폰을 들었다. 그리고 해외배송 사이트에 들어가 엘리펀트를 검색했다.

“뎀! 품절이야!”

“안 돼! 나 지금 꼭 이거 사고 싶단 말이야!”

[작은 미믹의 탐나는 포장-최상급-]의 효과가 아주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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