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1화
“할아버지! 용사님 이야기해 주세요!”
꼬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마을 광장 분수대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허허 웃었다. 노인은 마을 촌장의 할아버지로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뭐어? 무슨 이야기이?”
노인이 귀에 손을 대고 되물었다. 아주 지혜롭고 선량하고, 친절하고 똑똑한 노인은 귀가 안 좋은 게 문제였다.
꼬마 아이들 중 대장 아이가 다시 크게 외쳤다.
“용사님! 이야기! 해주세요!”
“아아. 용사님 이야기이?”
“네에!”
꼬마 아이들은 노인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노인은 똑똑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아주 재미나게 하는 재주도 있었다.
“그건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란다.”
“할아버지 엄청 오래 살았잖아요! 엄마가 막 마법사님이라고 하던데!”
노인이 바로 엊그제 겪었던 일들이었지만 아이들은 이게 얼마나 오래된 이야긴지 알고 있었다.
노인은 못 들은 건지, 그런 척하는 건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너희보다 조금 어렸을 때, 마을은 아주 평화로웠단다. 몬스터는 몇 년 동안 나타나지도 않은 아주 평화로운 마을이었지.”
노인은 옛 추억에 잠겼다.
“내가 근처 숲속으로 놀러 갔을 때 어떤 조그마한 나무상자가 나무 아래에 있었단다. 나는 그게 아주 예뻐서 얼른 들고 마을로 내려왔지. 마을 사람들도 아주 예쁘고 신기한 상자라며 구경했단다. 그런데 그 상자가 갑자기 벌컥 뚜껑이 열리지 뭐냐.”
그건 몬스터, 미믹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게 뭔지 몰랐지. 뚜껑이 열린 상자에는 쪼그마한 이빨과 한 뼘 크기의 혓바닥이 있었고 뚜껑에는 동그란 눈이 2개 붙어 있었지. 사람들은 이게 뭘까? 하고 고민했단다. 그때 나무상자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지. 나는 얼른 가서 내 간식을 가지고 와 상자에게 주었단다.”
그 이후로 나무상자는 미밍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주었지만 곧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음식들을 땅에 묻는 대신 미믹에게 주게 되었다. 미믹은 아주 맛나게 먹었다.
“가끔 미밍이가 상자인 척하면, 그때는 어찌나 열고 싶은지.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참 궁금하고 갖고 싶었단다.”
“하지만 그건 미밍이죠!”
“그래, 뚜껑을 열면 언제나 미밍이가 되었지. 때때로 생일선물인 척 주기도 했지. 아주 재미있는 장난이었단다.”
노인은 아주 즐겁게 웃었다. 그러다 낮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주 무서운 몬스터가 나타났지.”
아직도 그 몬스터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노인이었다. 그 당시 그 일을 겪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노인 하나뿐이었다.
노인은 아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아주 고위급의 마족이었다.
어째서 이런 조그마한 마을에 그런 무시무시한 마족이 나타났는지, 고작 촌노인인 그가 알 수는 없었다.
킬킬 웃으며 날아오는 마족을 쫓아 온 용사는 피투성이였다. 그 대단한 용사도 마족을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다행히 날이 밝아 마족은 어둠 속으로 숨었고 용사는 마을 사람들의 치료를 받았다.
“무슨 몬스터예요? 오크? 트롤?”
“웨어울프!”
“글쎄. 아주 무시무시한 몬스터였단다.”
노인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몬스터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혹시라도 부정 탈까 봐 입을 열지 못했다. 아이들은 궁금해하면서도 금세 포기했다.
“용사님이 말했지. 도와주시오. 몬스터를 당장 없애야 하오.”
용사가 그렇게 말했지만 촌무지렁이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치료가 다였다. 그때였다.
‘미믹! 미미믹!’
미믹, 미밍이었다. 놀란 용사가 소리쳤다.
‘미믹?! 미믹이 왜 이런 곳에!’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에게 미밍은 그저 음식물 쓰레기 처리용, 나무상자였다. 성검을 빼 든 용사가 설명했다.
‘저건 몬스터요. 마족들의 던전, 아주 깊은 곳에서만 사는!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에?!’
‘아니에요! 미밍이는 아주 착해요!’
어렸던 노인이 소리쳤다. 얼른 두 팔로 미밍을 안았다. 용사가 소리쳤다.
‘어서 내려놓으렴! 그건 아주 위험한 몬스터란다!’
‘아니에요! 미밍이는! 미밍이는!’
용사와 아이의 실랑이를 보던 마을 사람들이 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그때의 촌장, 노인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용사님.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아이가 아닙니다.’
촌장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던 용사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 알겠소.’
성검을 집어넣은 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믹은 언제든 처리할 수 있었다. 지금은 후작급 마족이 문제였다.
그때, 아이의 품을 뛰쳐나온 미믹이 용사의 앞으로 통통 튀어왔다.
‘미믹! 미미믹!’
‘……뭐냐?’
미밍이 뚜껑을 닫고 나무상자로 변했다.
마왕을 물리치는 것이 삶의 이유인, 무뚝뚝한 용사는 느꼈다.
이거…… 왜 이렇게 예쁘지?
자그마한 상자는 아주 반들반들하고 윤이 났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런 아름다운 상자에 무얼 넣었을까? 궁금했다. 열어보고 싶었다.
넋을 놓고 상자를 보던 용사는 상자에 손을 뻗었다.
‘용사님!’
‘……!?’
촌장의 부름에 용사가 정신을 차렸다. 용사는 얼이 나갈 지경이었다.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면서 미믹을 가리켰다.
‘저건 도대체!’
많은 던전을 파괴하며 온갖 종류의 미믹을 없앴지만……. 용사를 이 정도로 유혹했던 미믹은 없었다.
용사의 마음을 알았는지, 미밍이는 뽐내듯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부산을 떨었다.
‘미믹! 미미믹!’
‘근데 아까부터 미밍이가 왜 저러지?’
‘그러게요. 평소엔 얌전한 앤데…….’
미밍이 펄쩍 뛰며 다시 용사 앞에서 상자로 변했다. 미믹의 유혹을 충분히 알고 있던 용사였지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 번이나 유혹당한 용사는 깨달았다.
‘그렇군. 이 미믹은…….’
“용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제안했단다. 미밍이를 이용해서 몬스터를 유혹하자고. 그리고 몬스터가 한눈을 판 사이 용사가 없애기로 했단다.”
“미밍이가 위험해요!”
“몬스터 무서워!”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으며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도 저럴 때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미밍이를 아주 좋아해서 그런 계획은 싫다고 했단다. 하지만 용감한 미밍이가 용사의 편을 들었지.”
결국 마을 사람들은 미밍이를 용사에게 맡겼다.
용사는 작은 상자를 탁자 위에 두고 말했다.
‘……내 말을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하지만 네가 나에게 온 이유가 이런 이유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후작을 이곳으로 데려오겠다. 그때 후작을 유혹할 정도의 스킬을 사용해 줬으면 한다. 그사이 내가 후작을 없애겠다.’
용사는 조금 주저하다 말을 이었다.
‘네가 위험하지 않게…… 얼른 해치우마. 너도 조심해라.’
‘미믹!’
“해가 지자 용사님이 숨어 있던 몬스터를 유인해 왔단다. 마을 중앙 탁자 위에 미밍이가 있었단다. 그때 용사님을 쫓아오던 몬스터가 미밍이를 봤지.”
“미밍아! 힘내!”
용사와 미믹의 예상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오호라. 이게 뭐지?’
후작급 마족이 넋을 놓고 미믹을 보았다. 몇백 년 동안 살면서 이런 상자는 처음이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당장에라도 열어보고 싶은 상자였다.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이 갖고 싶었다.
‘아하하하! 이 벌레들이 내게 이런 보물을 바치다니! 좋아! 너희들은 아주 편안하게 죽여주마!!’
마족이 소리쳤다. 사람들은 집안에서 벌벌 떨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마족이었다.
마족은 두 손으로 상자를 들었다. 커다랗고 날카로운 손으로 아주 조심히 상자를 열었다.
그때.
마족의 가슴에 무언가 튀어나왔다. 백색의 성검이었다. 가슴 정중앙에서 반짝이던 마족의 핵에 금이 갔다.
‘죽어라! 후작!’
용사가 성검에 힘을 주었다.
빠직.
금이 선명해졌다.
마족의 머리가 뒤로 돌아갔다. 날카로운 후작의 눈과 용사의 눈이 마주쳤다.
‘이…… 이런…… 함정이었나…….’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후작은 다시 머리를 바로 했다. 제 손에 있는 상자를 보았다.
‘이게…….’
후작은 죽어가면서도 상자 안에 든 것이 갖고 싶었다. 함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을 넣어 놨길래 자신이 이렇게까지 유혹당했는지.
후작은 손에 힘을 주었다. 상자는 상관없다. 안에 든 내용물이 중요했다.
빠직!
‘미이믹!’
미믹. 미믹이었다. 고통에 소리를 지르는 미믹을 보며 후작은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미믹 따위가. 귀족, 아니, 기사조차 되지 못하는 미천한 몬스터가 그를 유혹했다니. 후작은 수치심에 더욱 힘을 주었다.
너라도 죽이고 가겠다!
용사가 성검을 위로 쳐올렸다. 후작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후작의 손에 힘이 빠지고 미믹이 땅으로 떨어졌다.
어느새 집 밖으로 나온 어렸던 노인이 얼른 달려가 떨어지는 미밍이를 받았다.
‘미밍아!’
마을 사람들도 얼른 밖으로 나왔다.
미밍이의 몸체가 너덜너덜했다. 잘못 건드리면 바로 부서질 것 같았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후작을 완전히 처리한 용사가 뚜벅뚜벅 걸어와 어렸던 노인이 안고 있던 미믹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믹의 눈동자가 용사에게로 향했다. 나지막한 울음소리에 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 믹…….’
‘그래. 완전히 해치웠다. 확인사살은 물론이고 성력으로 재도 남기지 않고 아주 태워버렸다.’
미믹의 뚜껑이 덜그럭거렸다. 용사와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미밍이가 웃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밍이를 제일 먼저 만나 마을로 데려온 어렸던 노인은 계속 울어댔다.
‘수고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안전해졌다. 덕분에 나도 후작을 처리할 수 있었다. 고맙다.’
‘미믹…….’
용사는, 다른 몬스터들과는 달리 이 작은 몬스터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
용사의 평생에, 이런 착한 몬스터는 이 미믹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었다.
미믹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죽어버린 미믹의 몸통 틈새로 무언가 굴러 나왔다.
그것을 본 아이가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미믹에게 선물로 준 동글동글한 작은 돌멩이였다.
“그렇게 몬스터의 손에 미밍이가 죽었지. 용사와 마을 사람들은 미밍이가 놓여 있던 자리에 고마움을 뜻하는 분수대와 동상을 만들었단다.”
“미밍아. 고마워!”
“미밍이 불쌍해!”
아이들이 훌쩍훌쩍 울었다. 아주 오래전에 잃었던 단짝 친구를 떠올린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노인의 뒤, 아름답게 물을 뿜어내고 있는 분수대 위에 동상이 하나 있었다.
나무 뚜껑을 열고 환하게 웃고 있는 미밍이의 동상이었다.
조그맣던 마을은 그 후로 아주 커졌다.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고 이 마을에 정착했기 때문이었다.
용사는 작위를 받고 이 마을이 포함된 커다란 땅을 영지로 받았다. 그 이후로도 아주 평화롭게 영지를 다스렸다.
“엘리자베스 님이다!”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나무상자 모양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를 향해 뛰어갔다.
용사의 증손녀인 엘리자베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마차의 창문이 열리고 여자아이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여자아이의 얼굴에서 용사의 얼굴을 떠올린 노인이 허허 웃었다.
그때 노인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와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그렇군.”
“항상 오시는군요. 매년 오늘.”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살며시 웃었다. 그는 이 마을, 이 장소에 오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졌다.
“오늘이, 미밍이가 죽은 날이 아닌가?”
중년의 남자, 용사는 노인을 보았다. 조그맣던 아이가 벌써 이렇게 늙었다.
신의 힘으로 아주 천천히 늙어가는 용사는 정체를 숨기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매년 오늘이 되면 이 마을로 찾아왔다.
“그렇군요. 벌써 그렇게 됐군요. 나이가 드니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인이 웃었다. 용사의 시선이 증손녀의 마차로 향했다. 나무상자의 문양을 보니 왠지 뿌듯했다.
왕이 물었다. 문양은 무엇으로 하고 싶은가?
용사가 말했다. 나무상자로 하고 싶습니다.
차마 미믹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그 이후, 월계수로 감싼 나무상자는 용사의 문양이 되었다.
“그 녀석은 아주 특별한 녀석이었지.”
“네. 아주 착하고 좋은 친구였죠.”
용사는 하늘을 보았다. 아주 새파란 하늘에 기분이 좋아졌다.
“신께서 그 녀석에 다음 삶을 주셨을 텐데,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
“그렇군요. 다음 삶이라…….”
노인이 홀홀 웃었다.
“또 다른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겠지.”
짧은 만남이었지만 소중한 인연이었던 미믹을 떠올리며 용사가 웃었다.
* * *
용사도, 후작급 마족도 모두 유혹해 버린 미믹, 지금 유혹 준비 중입니다!
“서준이 촬영 준비할게요!”
서준은 조막만 한 두 손을 꽉 쥐며 완판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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