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0화
서준과 엄마는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화면은 여전히 휙휙 지나가 서준은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 서은혜가 서준에게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서은혜는 서준이 알아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준이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주니 말할 맛이 났다.
“와. 20개월이 넘으면 효과가 없구나.”
영상을 찍은 본인이었지만 서은혜가 알지 못하는 영상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는 가득했다. 특히 개월 수에 따라 효과가 있고, 없다는 게시글에 깜짝 놀랐다.
“아부!”
‘[요정의 반짝이]가 최하급 능력이라서 그런가 보다.’
사람을 따라 하게 만드는 능력은 꽤 있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마나가 필요했다. 아직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서준이 사용하기에는 무리였다.
“다른 아기들 먹방도 많이 올라왔네?”
유행이라는 게 그랬다. 누가 시작하면 다들 따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서준의 영상과는 달리 다른 아기들의 먹방은 효과가 없었다. 우연처럼 한두 번은 먹었지만 이틀째가 되면 확실하게 드러났다.
“다들 서준이 영상만 본다고 하네. 우리 서준이 너무 대단해!”
엄마의 칭찬에 서준의 어깨가 으쓱했다.
서은혜는 얼마간 인터넷 서핑을 하다 고개를 들었다. 시계가 벌써 10시를 지났다. 7시면 돌아오는 이민준이 늦었다.
“아빠가 늦네.”
“아부부부.”
오늘 이민준은 회사에 반차를 내고 엘리펀트와 CF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러 갔다. 그리고 계약서를 받고 변호사인 친구를 만나 살펴보기로 했다.
“아빠 친구 만나는 김에, 술 마시고 오나 보다.”
“으부으부.”
서준은 옆에 있던 곰 인형을 깔고 엎어졌다. 벌써 10시. 잠이 왔다.
서은혜가 서준을 안았다. 등을 토닥토닥거리니 금세 눈이 무거워졌다. 서준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갔다.
띠디띠띠띠.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철컥-
하고 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서준이 번쩍 눈을 떴다. 서은혜가 한숨을 삼켰다.
“아빠 왔다!”
얼굴이 붉어진 아빠가 말했다. 서은혜는 서준을 안으려고 팔을 벌리는 이민준을 보고 손을 휘휘 저었다.
“일단 씻어.”
“……알았어.”
금세 씻고 나온 이민준이 서은혜와 마주 앉았다. 많이 마시지는 않았는지 눈빛은 멀쩡한 것 같았다. 잠에서 깬 서준은 부부의 옆에서 곰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이민준이 계약서를 꺼냈다.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었다.
어려운 단어나 말이 펜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밑에 주석이 달려 있었다. 이민준은 엘리펀트 팀장과 변호사 친구에게 들었던 내용대로 계약서를 설명했다.
“그래서 촬영시간은 서준이 밥 먹을 때, 30분 정도 촬영하고 더 필요하면 당일 추가 촬영한다고 해. 물론 서준이 소화 다 되고 난 다음에.”
서준의 밥 먹는 시간을 보면 적어도 한 번 촬영하고 나면 2~3시간은 기다렸다 다시 촬영해야 했다.
“서준이는 편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 그럼 최대한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건데……. 30분 안에 촬영이 가능할까?”
“너튜브에 올린 영상처럼만 나오면 된다고 하던데. 보정이나 자막, 내레이션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이민준의 말에 서은혜가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튜브 영상은 재촬영도 없이 그냥 막 찍고 막 올린 영상이었다. 이민준이 말을 이었다.
“서준이가 편하게 밥 먹는 곳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배경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보겠대.”
“와. 그 정도로 신경 써줘? 좋은데?”
“일단 너튜브 광고 같은 곳에 올라가고 나중에 TV 광고로 나온다고 하더라. 기간은 3개월쯤.”
생각보다 훨씬 좋은 내용에 서은혜가 반색했다. 서준이 힘들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 정도로 신경을 써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완전 좋은 것 같은데? 그 친구는 어떻대?”
“독소조항도 없고 괜찮대.”
“그럼 우리 광고 할까?”
서은혜의 물음에 이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히 그 모습 본 엄마 아빠가 웃었다.
“서준이도 좋다네.”
“그럼 결정!”
이민준이 검은색 펜을 찾아왔다. 그러고는 계약서 원본을 꺼냈다.
“여기에 사인하면 돼.”
“알았어.”
서은혜가 이름을 적고 이민준도 이름을 적어 넣었다. 잠시 생각하던 서은혜가 서준의 장난감 창고 겸 부부의 옷방에서 붉은색 물감을 가지고 왔다.
“그건 왜?”
“서준이 CF니까 서준이 사인도 있어야지. 이거 천연 재료로 만든 물감이야. 나중에 좀 더 크면 촉감 놀이 같은 거 하려고 미리 세일할 때 사뒀어. 서준이는 사인 못 하니까 지장이라도 찍어야지.”
서은혜는 부엌에서 작은 종지를 가져와 붉은색 물감을 조금 덜어냈다. 그러고는 서준을 무릎에 앉혔다.
서은혜는 서준이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물감에 찍었다.
“잠깐, 잠깐만! 첫 계약서 기념으로 한 장만 찍자!”
이민준은 얼른 카메라를 들고 와 찰칵찰칵 찍어댔다. 그것도 아쉬웠는지 동영상을 촬영했다. 서은혜는 부부의 사인 밑에 아기의 엄지손가락을 찍었다.
CF 계약서에는 아빠와 엄마의 사인, 그리고 아기의 엄지손가락 도장이 붉게 찍혔다.
* * *
서준은 눈을 떴다. 어느새 잠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활짝 두 손을 펴서 손바닥을 보니 아직 엄지손가락엔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내일이면 없어질 거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서준은 잼잼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손만 보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는 파란색 문이 있었다. 그가 열었던 바로 그 문이었다.
“아직 여기뿐인가?”
서준은 손을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파란색 문보다 큰 문이 나타났다. 손바닥으로 문을 눌러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손을 휘저어 파란색 문을 열었다.
서준은 천천히 기어가며 책을 살폈다.
“여기까지 봤나?”
정리되지 않아, 책꽂이에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음. 자동 청소 마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려나?”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이런 식으로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 이런 아기 몸으로는 무엇을 하기도 힘들었다.
서준은 읽었던 책들 다음부터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뭐, 좋은 게 없을까?”
광고 촬영을 할 때 필요한 게 뭘까?
[요정의 반짝이-최하급]은 효과는 좋았지만 20개월까지의 아기들에게만 효과가 있었다.
아기들에게만 효과가 있으면 되는 먹방과는 달리, 엘리펀트 분유 광고는 구매력이 있는 부모들에게 어필을 해야 했다.
“어른들에게…… 음…… 뭐가 있지…….”
서준은 열심히 책을 읽어 내려갔다. 많은 삶이 담긴 책들이 순식간에 읽혀졌다.
확실히 현실의 몸과는 도서관의 몸은 차이가 있었다. 현실의 아기 몸과는 달리 도서관에서는 글자들을 빠르게 읽을 수 있었고 손이나 몸의 움직임도 편했다.
하지만 계속 글자를 읽으면 눈이 아픈 것은 똑같았다.
“아, 내 눈.”
눈이 아파 조막만 한 두 손바닥으로 눈을 매만지며 잠깐 쉬던 서준은 생각했다. 희상이 삼촌이 준 리치킹의 인형이 떠올랐다.
“리치의 최면 마법만 있으면 진짜 편할 텐데…….”
영상을 통해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최면 마법 한 번이면 매진 행렬도 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치 정도 되는 삶의 기억은 아주 아주 커다란 문을 지나야 했다. 지금 상태의 서준은 열지도 못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리치의 마법은 악(어둠) 성향뿐이니…… 무린가…….”
일찌감치 포기한, 선(빛) 성향의 [엘프의 기초호흡]을 익히고 있는 서준은 다시 책을 읽었다.
“이거, 밤새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에휴…….”
적당한 능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서준은 고민했다. 그냥 포기하고 쉴까? 조금만 더 찾아볼까?
그때, 하나의 책이 서준의 눈에 들어왔다. 스쳐 지나가듯 제목을 읽자, 서준의 머릿속으로 희미해진 기억이 스며들었다. 어라?
“이게 여기 있었어?”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서준은 얼른 책을 펼쳐 읽었다. 책을 읽으니 그때의 삶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이게 좋겠다!”
마음에 드는 능력을 찾았는지 서준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 * *
“안녕하세요!”
최현지 팀장이 얼른 달려와 인사했다. 카시트에서 서준을 내리고 있던 서은혜도 반갑게 인사했다. 이민준도 조수석에 두었던 서준의 짐이 든 가방을 가지고 내렸다.
“엘리펀트 기획팀 팀장, 최현지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서준이 엄마 서은혜예요.”
최현지 팀장은 가족을 촬영장으로 안내했다.
“촬영 시간이 좀 남았는데 빨리 오셨네요!”
“서준이가 잘 촬영하려면 낯선 촬영장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저희야 고맙죠!”
촬영장은 탁 트여 있고 넓었는데, 한쪽은 가정집 거실처럼 꾸며져 있었고 한쪽은 카메라와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거실에 가구를 옮기고 조명의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구경하던 서은혜의 눈에 가정집 거실 세트장이 들어왔다. 서은혜가 감탄했다.
“정말 똑같네요.”
“네. 최대한 비슷하게 꾸몄어요.”
서준도 집과 거의 비슷하게 꾸며진 거실을 보며 우옹! 소리를 뱉었다.
“이쪽은 대기실이에요. 서준이가 불편해하면 언제든지 들어오셔서 편하게 쉬세요.”
문을 여니 제법 따뜻한 느낌으로 꾸며진 방이 있었다.
아기들이 좋아할 법한 인형들과 작은 아기 침대, 위에 달린 모빌. 한편에 놓아둔 커피포트와 노란 코끼리가 그려진 엘리펀트 분유와 젖병 소독기. 여러 브랜드의 기저귀까지.
게다가 부부가 먹을 만한 샌드위치와 커피스틱, 과자 등 준비가 아주 잘 되어 있어 서은혜와 이민준이 탄성을 뱉을 정도였다.
“정말 좋네요.”
“네. 촬영장은 언제든 구경하시면 되시고요. 아니면 여기서 촬영 시간까지 쉬셔도 괜찮습니다. 아직 촬영 감독님이 안 오셔서……. 아, 촬영장 구경하실 때 발밑에 여러 가지 전선이 많으니까 주의해 주세요. 위험한 물건을 만질 수도 있으니 서준이도 꼭 안고 계시고요.”
최현지 팀장의 말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지 팀장은 촬영 준비를 하기 위해 대기실을 나섰다.
이민준이 서준의 짐을 풀면서 말했다.
“이렇게 준비해 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러게. 근데 이 인형들 진짜 귀엽다.”
서준을 안은 서은혜가 한쪽에 모여 있는 인형들을 보며 감탄했다.
폭신폭신하고 노란 병아리 인형, 눈이 똥그란 판다 인형, 옹기종기 모여 있는 참새 인형 등. 집에 있는 인형들과는 천지 차이였다.
이민준이 반쯤 체념한 듯 웃었다. 그의 손에는 가방에서 꺼낸, 집 안에서 유일하게 평범한 곰 인형이 들려 있었다.
“서준이는 싫어할걸.”
아빠의 말에 엄마는 아들을 보았다. 서준은 제 앞에 있는 인형에 관심이 없었다. 아빠가 꺼낸 곰 인형을 보며 두 팔을 뻗고 있었다. 이민준은 서준에게 곰 인형을 주었다.
계속 안고 있기에는 버거워 서준은 준비된 아기 침대에 곰 인형과 함께 넣어졌다.
“아부부붑.”
‘역시 인형은 삼촌 인형이 짱이지!’
도플갱어 인형이 있는 곰 인형의 배를 만지작거리던 서준은 생의 도서관에서 찾은 광고용 필살기가 담긴 자신의 배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응? 머리가 자꾸 내려가는데……?’
서준은 머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앞에 있던 곰 인형의 배에 이마를 박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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