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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9화 (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9화

엘리펀트 시리즈의 기획팀장, 최현지는 고개를 숙였다.

“하아, 어쩌지…….”

댓글을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눈앞이 깜깜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보너스를 받을 생각에 기뻤는데, 보너스는커녕 시말서를 써야 할 것 같았다.

“설마, 해고…… 되진 않겠지?”

요 며칠 운이 좋았다.

금요일 기쁘게 일을 마치고 산 즉석복권이 5만 원 2장이 당첨되었다. 일도 잘 풀렸고, 인터넷으로 산 옷이 딱 어울렸다. 늦게 배달시킨 음식은 거의 15분 만에 따끈따끈하게 배달되어 왔고, 단골이 될 생각이 들 만큼 맛있었다.

꿈도 꾸지 않고 잘 잤고, 얼른 일어나 집 안 청소도 깔끔하게 끝내고, 재미있다는 평으로 자자한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바톡-바톡-.

바람이 불었다. 폭풍의 시작이었다.

강소라 마케팅팀장이 급히 보내온 바나나톡에 주말까지 일해야 되나 싶어 오만상을 썼던 그녀였지만……. 이제라도 안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지야! 큰일 났어ㅠㅠ

<왜? 무슨 일이야?

>그 CF 건으로 섭외하기로 했던 LALA 있잖아! 그 사람이 너튜브 영상을 하나 올렸는데!

LALA라면 최근 일주일 동안의 엘리펀트 시리즈 판매의 최대 공신이었다. LALA의 딸에게 먹이는 분유가 바로 엘리펀트 시리즈 중 하나였다.

그녀가 영상으로 엘리펀트 시리즈를 추천해 주어서 작은 분유 회사였던 그녀의 회사가 일주일 내내 매진행렬을 이루어 갈 수 있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 영국, 호주 등 LALA의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부모라면 적어도 한 통은 사는 듯했다.

해외배송을 하는 쇼핑몰부터 국내 마트까지, 매진됐다는 말과 함께 발주량을 늘리고 싶다는 주문이 쇄도했다.

“그래서 생산량을 늘렸는데…….”

분유 매진의 이유를 알자마자, 적어도 3개월은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하고 건의했다. 그래서 공장을 24시간 가동시키고 있었는데 그게 실수였다.

>분유가 원인이 아니라 아기 먹방 때문이었대!!

그 이후로 최현지는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단 LALA의 영상을 보고 다음에는 JUN의 영상을 보았다.

솔직히 아기, 작게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따르면 ‘서준이’가 귀엽기는 했다. 저렇게 예쁘게 생긴 아기가 있나? 신기할 정도긴 했다. 근데 이 영상이 원인이라고?

상황은 빠르게 변해갔다.

최현지는 너튜브의 댓글들을 읽고 친척 언니 아이디로 가입된 맘카페에도 들어가 보고 이리저리 가입된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그사이 아기 먹방은 끝내 대부분의 사이트에 적어도 하나의 게시글이 올라가게 되었다. 낮은 순위였지만 실시간 검색어까지 차지했다.

마지막으로 엄마들이 찍은 인증 사진을 훑어보던 최현지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진짜야?”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분유 때문이 아니라 이 작은 아기의 먹방 때문이었다니. 겨우 10분짜리 영상 2개가 효과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 재고 어쩌지?

주말이지만 지금도 공장은 열심히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산처럼 쌓일 분유 재고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그녀가 다니는 회사, 엘리펀트는 작지만 아기들을 위해 건강하고 좋은 분유를 만들자고 세워진, 좋은 회사였다.

이대로 회사가 휘청거리게 할 수는 없었다.

요즘은 유명한 연예인보다 제품의 타깃층에 맞는 너튜브 스타들을 CF에 섭외하기도 했다.

그래서 엘리펀트도 거기에 편승해 LALA와 그녀의 딸에게 제안을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 그들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있었다. 최현지는 결단을 내렸다.

<하자.

>뭘?

“서준아. 이모들 좀 도와줘.”

최현지는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했다. 작은 아기에게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 * *

“결국 올 게 왔군!”

미나 엄마가 신이 나서 말했다. 서은혜는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아니, 서준이 영상 올린 지 이제 겨우 3일 지났는데?”

“원래 이런 일은 유행할 때 편승해야 하는 거야.”

너튜브 채널[JUN]으로 제안이 쏟아졌다. 제일 많은 것은 분유 회사의 홍보 모델, CF 모델 제안. 그리고 그다음이 아기 옷과 신발 회사, 그리고 아기 관련 용품 회사들이었다.

도저히 혼자 결정할 수가 없어서 서은혜는 엄마들을 불렀다.

한편, 인형 놀이를 하면 따로따로 놀던 평소와 달리 서준은 아기들과 함께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기들 사이에 서준보다 2배나 큰 크기의 폭신폭신한 회색곰 인형이 있었다.

* * *

지난 주말 저녁. 서준이의 영상을 보고 급하게 신혼집으로 달려온 서은혜와 이민준의 망할 친구, 김희상이 서준에게 곰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아이고. 우리 먹방 스타. 서준이!”

“이렇게 늦게 무슨 일이야?”

떨떠름한 얼굴로 문을 열어준 아빠가 아직 쌩쌩한 서준을 안았다. 낮잠을 푹 자서 그런지 눈빛이 또렷했다. 온종일 메시지와 전화에 시달린 엄마는 일찍 잠들었다.

“아부부부!”

‘오. 선물 삼촌.’

“이제 서준이도 나 알아보는 것 같지 않냐?”

파닥파닥- 자신을 보며 두 팔을 흔드는 서준을 보며 김희상이 환하게 웃었다. 이민준이 김희상이 등을 때렸다.

“무슨 일이냐고.”

“아, 이거.”

김희상에 현관문 뒤에서 서준의 두 배 크기 정도 되는 상자를 가지고 왔다.

“으우우우!!”

‘오!! 늑대인간 인간형 인형인가!?’

“너 이 자식, 또…….”

이번엔 어떤 괴상한 걸 가지고 왔나, 열이 뻗친 이민준이 한마디 하려던 찰나, 김희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이번 건 아님! 절대 아님!”

김희상이 상자를 열었다. 회색 털이 보였다. 인형은 하나였는데, 곰이었다.

서준은 실망했다. 텔레비전에서 아기들이 안고 나오는 인형들처럼 순하고 귀엽게 생긴 평범한 곰 인형이었다.

이빨이 뾰족뾰족하지도 않았고 눈매가 날카롭지도 않았다. 두 손끝에 날카로운 손톱도 없었다. 진짜, 곰 인형이었다.

‘아, 삼촌 실망에요.’

“으부.”

“……곰 인형?”

실망감 가득한 얼굴로 아빠 품 안에 축 늘어진 서준과는 달리 이민준은 이게 무슨 일이냐? 반쯤 화색을 띠며 나머지 손으로 상자에서 곰 인형을 들어 올렸다.

“진짜? 진짜 평범한 테디베어야?”

“그래. 평범한 테디베어다.”

김희상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서준이 영상을 보는데 의자 뒤에 살짝 트윈 헤드 트롤이 보이잖아.”

“……?!”

이민준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삼촌의 선물에 실망한 서준은 반항기의 아기처럼 반쯤 늘어진 포즈로 그런가? 갖고 놀다가 거기 둔 건가? 생각했다.

“아니…… 진짜? 그게 거기에 있었어?”

손에 들고 있던 곰 인형은 내팽개치고 이민준을 폰을 들었다.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는 서준이의 영상을 보았다.

“이유식 버전에 있더라.”

“이유식. 이유식.”

급하게 폰을 보고 있는 이민준에게서 김희상이 서준이를 받아 안아 들었다.

서준은 입술이 뾰로통하게 나온 상태였다. 그 기미를 김희상이 알아차렸다.

“설마 삼촌이 평범한 인형 들고 와서 실망했어?”

“아부아부아부!”

서준은 손으로 김희상의 팔을 찰싹찰싹 내려쳤다. 음. 김희상은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자기 친구의 아들은…… 벌써 취향이 확고한 것 같았다.

“이런. 서준이 실망인걸. 삼촌을 너무 띄엄띄엄 본 것 같은데?”

띄…… 엄……? 다는 못 알아듣겠지만 실망이라는 말은 알아들었다. 서준의 마음 상태가 그랬으니까.

이민준이 영상에서 녹색 인형을 찾고 있을 때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던 곰 인형을 살며시 가져온 김희상이 서준이를 보고 말했다.

“이건, 이렇게 지퍼를 열면…….”

김희상은 곰 인형의 털 속에 가려져 있던 배 쪽의 지퍼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검은색 인형이 있었다. 마치 그림자 같았다.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니, 저건!’

“아부?! 아부부부?”

“그래! 이게 바로 도플갱어야!”

도플갱어였다!

착한 곰 인형은 나쁜 도플갱어가 조종하는 것이었다. 서준은 반전에 놀라 아부부부 소리를 내며 두 팔을 휘둘렀다.

서준을 안고 있던 김희상이 서준의 팔에 뺨을 맞았지만 실실 웃으며 새까만 인형을 곰 인형의 뱃속에 넣었다.

“이건 서준이하고 삼촌만의 비밀이다. 약속!”

“아부!”

바닥으로 내려온 서준이 곰 인형을 안았다.

‘아니, 이런 반전 곰이! 삼촌은 역시 대단해!’

반전매력이 있는 인형을 받아 신이 난 아들과는 달리 이민준은 심각했다. 잘못하면 전 세계로, 부모의 취향이든, 아기의 취향이든……. 하여튼 희한한 취향의 인형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질지도 몰랐다.

“아니, 도대체 어디 있다고?”

그런데 찾지를 못하겠다. 영상만 두 배속으로 몇 번을 돌려보며 찾고 있지만 트윈 헤드 트롤은 보이지를 않았다.

“여기 밑에 있잖아. 녹색.”

“……이거?”

김희상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서준이 앉아 있는 아기 의자의 다리 한쪽에 진짜, 작은 픽셀……. 녹색의, 파프리카 조각 같은 것이 보였다. 그냥…… 네모난…… 녹색…….

이민준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게…… 뭐라고?”

“트윈 헤드 트롤의 발이지.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민준은 결심했다.

“넌 오늘 죽을 줄 알아!”

“아니! 알려줬는데?! 네가 이런 인형 싫어해서, 서준이 영상에 나왔길래 보자마자 와서 알려줬는데?!”

“시끄러워! 밤이니까 조용히 해! 그리고 네가 이런 인형을 안 주면 되잖아!”

“서준이는 엄청 좋아하는데?”

아빠와 삼촌이 조용히 한바탕하는 사이 서준은 폭신폭신한 곰 인형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 * *

그렇게 서준이의 집 거실에 처음으로 겉으로는, 평범한 곰 인형이 나타났다.

도플갱어가 조종하는 곰 인형은 아기들의 미적 감각에도 합격한 것인지 인기가 많았다.

서준이와 아기들은 거의 처음으로 인형과 같이 놀았다. 다들 커다란 곰 인형의 사지를 붙잡고 이리저리 조물락거렸다.

“일단 우리 미나는 엘리펀트 분유를 제일 좋아하지. 거긴 다 유기농에 몸에 좋은 재료를 쓰거든.”

“우리 지윤이는 아이마마 분유. 다른 분유는 잘 안 맞더라.”

“쌍둥이도 엘리펀트. 양이 많아서 먹여봤는데 변도 잘 나오고 좋더라고.”

엄마들이 날아온 제안서를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냈다. 서은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광고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것도 한철이야. 돈 많이 벌어서 서준이 줘.”

몇 번 인터넷 광고에 섭외돼 본 미나 엄마가 눈에 불을 켜며 제안서들을 살폈다.

“일단 엄마들 사이에서 안 좋은 평이 있는 분유는 빼고.”

“그래. 서준이 이미지도 있으니까.”

쌍둥이 엄마가 거들었다.

“기업 이미지 안 좋은 곳도 걸러.”

“그럼 여기랑. 여기는 빼고.”

“돈보다는 서준이가 잘 먹을 수 있는 분유로 선택해야지. 먹는 아기 표정이 일그러지면 화면에 잘 안 나와서 몇 번이고 먹일걸? 딱 한 번에 맛있게 먹고 잘 찍어야지 서준이가 고생을 안 하지.”

미나 엄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우유를 몇 번이고 먹던 CF 촬영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서은혜는 벌써 여러 장을 골라내며 그녀를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들의 모습에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서준이는 엘리펀트 분유 좋아해. 다른 분유도 없으면 먹기는 하는데 엘리펀트랑 다른 분유 있으면 엘리펀트 달라고 어찌나 난린지.”

입을 꾹 다물고 손가락으로 노란색 코끼리가 그려진 분유통을 가리키는 서준의 모습이 떠올라 서은혜가 작게 웃었다.

“그래?”

지윤이 엄마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엘리펀트가 그렇게 좋아?”

그녀 혼자 다른 브랜드의 분유를 먹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와 친한 사람들이 다들 엘리펀트 분유를 먹이니, 그녀도 바꿔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엘리펀트 분유는 다른 회사들보다 작은 회사라서 믿음이 안 가 지윤이에게 먹여본 적이 없었다.

미나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거기 사장님이 아기 엄마였는데 도저히 아기에게 맞는 분유가 없어서 고생했었대. 그때부터 건강하고 좋은 분유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하더라고.”

“나는 회사는 잘 모르는데, 재료는 다른 분유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가격에 비해 양이 많더라고. 쌍둥이 먹는 양을 생각하면…….”

쌍둥이 엄마가 이마를 짚었다. 서은혜도 말을 받았다.

“나는 맘카페에서 추천하는 분유들을 하나씩 사서 서준이에게 먹였어. 제일 좋아하던 게 엘리펀트 분유였어.”

“그렇구나. 나도 먹여볼까?”

벌써 입소문의 효과가 나타났다. 그 모습에 미나 엄마가 웃었다.

“아니, 벌써 광고 효과가!”

“그러게. 이러다 서준이 완판시키는 거 아니야?!”

“그럼 엘리펀트로 할까?”

서은혜가 말했다. 고민과 달리 결정은 빨랐다. 미나 엄마의 말대로 이런 유행도 한철이었다. 광고에 나왔더라도 제품과 달리 모델은 금방 잊혀지고는 했다.

게다가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엘리펀트라면 서준이도 좋아하는 분유였다. 이런 것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돈 벌어서 서준이에게 도움이 되면 더 좋고.’

“서준이 아빠는? 뭐라고 해?”

“광고 제안이 온 건 아는데…… 아직 할지 말지 고민 중이지.”

“그럼, 나중에 서준이 아빠한테도 물어봐. 이런 일은 부부가 같이해야지. 아기 일인데 부모 중에 한 사람만 결정하고 그러면 나중에 난리나.”

미나 아빠의 적극 찬성으로 너튜브를 하고 있는 미나 엄마가 말했다.

“알았어.”

서은혜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빠의 대찬성으로 미래의 슈퍼스타, 서준의 첫 CF 촬영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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