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8화
서준은 번쩍 눈을 떴다. 꿈을 꾸지도 않고 아주 잘 잤다.
사방이 막힌 아기 침대에 누워 알록달록한 모빌인형들을 바라보던 서준은 두 팔과 다리를 흔들며 나름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고는 통통한 손목과 줄로 연결된, 엄마가 준 쪽쪽이를 입에 물었다.
쪽쪽-
다른 아기들 같으면 눈 뜨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을 테지만 서준은 달랐다. 느긋하게 쪽쪽이를 즐겼다.
[엘프의 기초호흡]
선(빛)의 존재가 마나를 품게 합니다.
다른 호흡법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악(어둠) 제외)
보유자의 신체를 조화롭게 만듭니다.
서준은 숨을 쉬었다.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이 세상은 마나가 적었지만 아주 없지는 않았다. 서준은 그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 순간부터 [엘프의 기초호흡]을 익혔다.
새로 태어나면 다른 것은 거의 다 잊지만 딱 2개.
[엘프의 기초호흡]과 [마인의 기초호흡]은 잊지 않도록 해두었다. [마인의 기초호흡]은 [엘프의 기초호흡]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악(어둠) 성향의 존재에게 도움이 되었다.
서준은 새로 태어난 ‘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면 2개의 성향 중 하나를 선택해 기초호흡법을 익혔다.
서준의 호흡이 점차 가라앉았다. 들숨 날숨이 반복되면서 서준의 몸속으로 아주 작은 마나들이 스며들었다.
많은 생을 살면서 서준이 이 두 가지의 호흡법을 최초의 능력으로 삼은 것은 한 가지 장점 때문이었다. [엘프의 기초호흡]과 [마인의 기초호흡]의 최대 장점은…….
“어이쿠, 벌써 일어났어?”
아빠가 얼굴을 아기 침대 위로 불쑥 내밀었다. 서준이 아빠를 보며 웃었다.
……바로, 안전성이었다. 호흡법 도중 누군가 접촉하거나 갑자기 호흡법을 그만둘 때도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약한 몬스터로 태어났을 때 유용했다.
“서준이 일어났어?”
“응. 근데 왜 그렇게 바톡이 많이 와?”
일요일 아침. 출근을 하지 않는 아빠가 서준을 안고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거실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치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알림으로 설정해 두었는지, 바톡-바톡- 울어댔다.
“아부아부.”
“서준이도 시끄럽대.”
“알았어, 알았어. 얼른 끌게.”
서은혜는 허둥지둥 알람을 껐다. 이민준은 서은혜의 옆으로 가 앉았다. 서준은 아빠 배에 등을 기대고 무릎 위에 앉았다.
“근데 무슨 일인데 바톡이 이렇게 와?”
“일단, 민지 언니랑 소영이 언니랑……. 서준이 아는 사람들은 다 보내는 것 같은데?”
서은혜가 질린 듯이 말했다. 대화 도중에도 바나나톡 메시지가 쏟아졌다.
서준은 고민했다. 배가 고프다. 울까? 말까?
“민지 언니가 너튜브에 들어가 보래. 완전 난리 났다고.”
겨우 메시지를 읽은 서은혜가 너튜브에 로그인했다. 이민준도 고개를 빼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서준은 일단 참고, 화면을 보았다.
너튜브라면 일전에 서준이 [요정의 반짝이]를 사용했던 영상을 올린 곳이었다.
너튜브.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영상을 올리는 사이트.
아빠가 종종 틀어놓는 뉴스에서도 너튜버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는 했다.
아주 자세한 것은 몰랐으나, 연예인이 아니라 너튜브를 통해서도 스타가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서준도 알고 있었다.
“와…… 이게 뭐야…….”
“워…… 무서운데…….”
서은혜와 이민준은 엄청난 조회 수와 댓글 수에 놀랐다. 서준도 화면에 나타난 숫자를 보았다.
‘엄청난데?’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진짜로 많이 볼 줄이야. 그것도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세 사람이 감탄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선배 너튜버, 미나 엄마였다.
서은혜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상상 이상의 조회 수와 댓글들에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무서워진 탓이었다.
“어. 민지 언니! 이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봤어?! 진짜! 대단해!
“아니, 정말, 이거 진짜야?”
-그래! 너 완전 스타야! 아, 아. 아니다. 서준이! 서준이, 완전 스타 됐어!
쩌렁쩌렁한 미나 엄마의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이민준과 서은혜는 미나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나 엄마가 급히 말을 이었다.
-얼른 수익 창출 신청해!
“수, 수익?”
“잠시만, 여보.”
당황하는 서은혜 대신, 전화를 받아 스피커 모드로 바꾼 이민준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미나 어머니. 저 서준이 아빱니다. 그런데 그거 조건이 있지 않습니까?”
침착하려고 했지만 당황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인지 바로 본론부터 말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하루 이틀로는 달성하기 힘들다고 하던데요.”
종종 김희상에 인형을 만드는 모습을 너튜브에 올리며 수익 창출 신청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서준이 채널은 벌써 달성하고도 조건을 한참 넘었는데요!
“그렇습니까?”
-네! 시청 시간 하고 구독자 수를 보는데, 서준이 채널은 애저녁에 넘었죠!
경악한 표정의 서은혜가 손가락으로 화면 한쪽의 구독자 수를 가리켰다. 미나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던 이민준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구독자 수, 20만.
이민준의 입도 벌어졌다. 서준은 고민했다. 배가 고팠다. 울까? 말까? 근데 울기에는 엄마 아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20만이에요! 20만!
-근데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어요!
미나 엄마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엄마 아빠의 표정이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뱃가죽이 등에 붙을 것 같아, 서준은 울기로 했다.
“으아아앙! 으아아앙!”
“……!”
“……깜짝이야!”
서준의 울음소리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민준이 서준을 안고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 그래. 밥 먹자. 우리 아들. 밥 먹어야지!”
“어…… 어……. 난 민지 언니랑 통화 좀 할게!”
서은혜는 미나 엄마와 통화하며 채널[JUN]의 수익 창출 신청을 했다.
이민준은 젖병에 따뜻한 물을 붓고 분유를 탔다. 금방 울음을 그친 서준이 이민준의 품에서 분유를 기다렸다.
“와…… 진짜…… 무슨 일이지?”
아빠는 넋이 나간 상태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분유를 탔다. 역시 아부지!
분유의 온도까지 체크하고 서준의 입으로 젖꼭지가 들어갔다.
쭙쭙-!
이민준은 얼른 서준을 안고 다시 거실로 향했다. 서은혜는 전화를 끊고 서준의 영상에 달린 댓글을 읽던 중이었다.
“신청했어?”
“응. 허가 나면 바로 광고가 달린대.”
“근데 어떻게 된 일이야?”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학원 선생님, 서은혜가 천천히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여러 나라말이 있었지만 그중 영어와 한글로 된 댓글을 읽었다.
“다들…… 애들이 밥을 안 먹었는데 이 영상 보고 먹을 수 있었대. 하루에 다섯 번 밥 먹인다고 치면, 다섯 번에 세 번은 실랑이로 30분쯤 걸리는데, 서준이 영상 보면 진짜 바로 밥 먹는다고…….”
이민준이 화면을 보려고 몸을 기울이자 분유를 맛나게 먹고 있던 서준은 자세가 불편해졌다. 젖꼭지를 물고 있어 소리는 내지 못하고 한 손으로 이민준의 팔을 찰싹찰싹 쳤다.
“아, 미안 미안.”
이민준은 다시 제대로 자세를 잡고 화면을 보았다. 서준도 곁눈질로 화면을 보았다.
아빠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어서 한글은 어느 정도 읽겠는데……. 댓글들은 영어와 다른 나라의 언어가 훨씬 많았다.
그래도 틈틈이 있는 한글을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엄마와 아빠가 댓글을 읽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쭉쭉 내려가는 글들에,
‘아, 눈 아파.’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서준은 눈을 감고 분유에 집중하기로 했다.
쭙쭙!
이민준과 서은혜는 댓글 읽는 데 푹 빠졌다. 감사하다는 댓글과 진짜 좋다고 친구들에게 추천했다는 댓글들이 보였다.
바톡-! 바톡-!
서은혜의 폰이었다. 메시지를 보낸 것은 쌍둥이 엄마였다.
서은혜가 메시지를 읽는 사이 서준은 분유를 다 먹고 젖병을 놓아버리듯 바닥에 떨어뜨렸다. 젖병 무거워.
“어이쿠.”
때마침 댓글 지옥에서 빠져나온 아빠가 얼른 젖병을 잡았다.
“이놈. 다 먹었으면 아빠를 불러야지!”
“아부아부!”
“그래. 그렇게 불러야지! 떨어뜨리면 어떻게 해?”
“당신은 8개월 아기한테 뭘 바라는 거야?”
이민준의 말에 서은혜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민준은 웃으며 서준의 등을 토닥였다. 꺼억.
“우리 서준이는 천재라서 다 알아들어.”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은 천재라고 생각하지.”
“우리 서준이는 진짜 천재야.”
“네. 네.”
팔불출 아빠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면서 서은혜는 쌍둥이 엄마가 보내준 링크를 열었다.
기사였다.
자그마한 인터넷 기사였지만, 그건 누가 봐도 확실한 기사였다.
“…….”
이민준도 그 기사를 보았다. 두 사람 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만 벙긋벙긋대던 두 사람이 겨우 말을 내뱉었다.
“와. 심장 멈추는 줄 알았어.”
“하루아침에 무슨 일이래…….”
그 이후로 친정, 시댁 할 것 없이 서준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서준이의 영상에 대해 쓰인 게시글이나 기사의 링크가 서은혜와 이민준의 바나나톡으로 보내졌다.
>야! 이거 저번에 보여준 서준이 영상 아니야?!
>미친! 와! 진짜!!!
결혼도 하지 않은 김희상까지 서준이의 영상을 봤다고 연락이 올 정도였다.
[제목 : 추천합니다! 밥 안 먹는 아기들에게 직방이에요!]
[내용 : 채널명부터 알려드릴게요.
너튜브 [JUN]입니다! 얼른 보고 오세요!
아기들에게 보여주면 금방 밥 먹어요!]
맘카페의 겨우 3줄짜리 게시글에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초반에는 저게 무슨 글인가 싶은 댓글이 많았지만 곧, 찬양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댓글(1,293)
…….
-오! 저희 딸 다 먹었어요!
-진짜 효과 있네요! 원리가 뭐죠?
-와. 세 번째 보면서 먹이고 있는데, 진짜 투정 한 번 없이 먹네요! 서준이 최고!!!
…….
-아, 저희 아들은 효과가 없네요. 안 먹어요.
-몇몇 분 있더라구요. 효과 없는 분이…….
-저희 아들은 4살입니다. 효과가 없네요.
-제 딸은 3살이에요. 효과 무!
그 이외에도 게시글과 기사가 계속 나타났다.
처음에는 엄마들 사이에서 보던 영상이었지만 이제는 아이가 없는 부부나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제목 : 이거 보니까 나이에 따라서 효과가 있고 없고 그런 것 같네요!]
[내용 : 첫째는 4살이고 둘째는 이제 10개월입니다!
둘째는 동영상을 보고 잘 먹는데 첫째는 안 먹네요!
다른 댓글들도 보면 3살이나 4살부터는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와, 진짜 그런 것 같네요.
-나이 제한이 있나 봐요ㅋㅋ
-2살 여자아이 효과 없습니다ㅠㅠ
-28개월 여자아이 효과ㅠㅠㅠ무ㅜㅜㅜ
[제목 : 우리 통계 내볼까요?]
[내용 : 다들 아기들 나이와 효과 유무를 적어주시면 제가 통계를 낼게요!]
-좋은 생각이네요!
-23개월 효과 무.
-5살 효과 무.
-10개월 효과 유.
…….
부모들의 단합력은 대단했다. 어느새 영상의 효과 범위까지 알아내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누군가 분석을 하고 통계를 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떴다.
아기들과는 상관없는 사이트들에 [20개월까지 효과 있는, 신기한 아기 먹방!]이라는 제목으로 게시글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준이의 영상이 몇 장 캡쳐되어 있고 맘카페의 댓글과 스마트폰을 보며 먹고 있는 아기들의 사진, 즉 인증샷이 올라와 있었다.
-와. 진짜로 먹나?
-ㅋㅋ신기하네ㅋㅋㅋ
-21개월부터는 안 된다며, 26개월 아기 엄마는 웁니다ㅠㅠㅠ
-아니, 진짜 딱 잘라서 21개월부터는 안 돼?
-ㅇㅇ 안 됨. 우리 딸 21개월ㅜㅜㅜ 밥 안 먹음ㅠㅠㅠ
-이유가 뭐지?
-난 밥 먹는다는 게 더 신기함ㅋㅋㅋ
어느새 실시간 검색어에 [JUN]이 떴다. 낮은 순위였지만 다들 한 번씩 클릭해 보고는 했다.
그리고 여기 한 사람.
심각한 표정으로 게시글들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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