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4화
띵동-
“아빠 왔다. 서준아!”
거실의 폭신한 매트 위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던 서준이 엄마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고 현관에 아빠가 나타났다.
서준은 파파팍 현관 앞으로 기어갔다. 아니, 기어가려고 했지만 통통한 배가 바닥을 닦듯이 문질러댔다.
아기의 팔다리가 노 젓듯 바닥을 찰박찰박 쳤다.
토요일 저녁까지 일을 하다가 겨우 퇴근한 이민준은 자신을 보고 기어오려고 노력하는 아들을 안아 올렸다.
“우리 아들!”
서준은 두 팔을 뻗어 아빠를 반겼다. 이민준은 아들을 품에 꼬옥 안고 옆에 서 있던 서은혜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서준의 발그레한 볼에도 입을 맞추었다.
“아들도 뽀뽀!”
“일단 씻고 해!”
서은혜의 말에 서준이 이민준의 볼을 두 손으로 밀었다. 이민준이 웃었다. 언제나 따뜻한 집이었다.
얼른 씻고 나온 이민준은 서은혜가 저녁을 준비할 동안 서준을 안고 놀아주었다. 서은혜는 반찬을 준비하며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서준이가 분유를 먹으니까 다들 따라 먹는 거 있지?”
“신기하네!”
“그러니깐 말이야. 미나 엄마가 브이로거인 건 알지?”
서은혜의 말에 이민준은 미나 엄마의 영상을 기억해 냈다. 미국의 가정식과 한국의 가정식을 섞은 퓨전 요리를 올리거나 소소한 인테리어 소품을 소개하는 영상들이 있었다.
“그래. 저번에 보여준 적 있잖아.”
“응. 그래서 미나 엄마가, 우리 서준이 보고 먹방이라고. 아기계의 먹방 스타래.”
서은혜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민준도 크게 웃으면서 인형들을 가지고 노는 아들을 보았다.
즐겁게 노는 아들을 보면 행복했지만 인형을 보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아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들은 5개월 때 그의 친구가 만들어 준 인형이었는데……. 사실 이민준은 이 인형들을 가지고 노는 아들이 신기했다.
아내와 자신은 이 인형들을 버리길 바랐지만, 고집 한 번 부린 적 없는 아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나 포기한 인형들이었다.
이민준의 친구는 게임을 좋아하는데 손재주가 좋아서 종종 피규어나 인형, 미니어처 등을 만들고는 했다. 그 친구가 손수 만들어준 인형들이었다.
일명, 몬스터 인형.$
못생긴 초록색의 오크와 오우거, 머리 2개 달린 트윈 헤드 트롤…….거기에 커다란 날개가 달린 드래곤까지.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비늘 하나하나까지 표현한 드래곤은 아주 무시무시해 보였고 그 이외의 다른 인형들도 그다지 귀여워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게 재능 낭비인가…….?’
아들은 종종 오크로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듯한 놀이를 많이 했는데 엄청 신이 나 보여서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조그마한 슬라임을 한 손에 들고 드래곤 인형을 내려치고 있었다.
“꺄아아아아!”
완전히 흥분한 모양이었다.
“저걸…….말려야 하나?”
이민준은 아들이 폭력적인 성향이 될까, 걱정했다. 저녁 준비를 끝낸 서은혜가 거실로 나왔다.
“괜찮아. 서준이 완전 착한걸.”
“그래?”
“오늘 잠깐 한눈판 사이에 아기들에게 깔렸거든. 그래도 다른 애들 안 때리고 가만히 있었어.”
“깔렸어?!”
이민준이 화들짝 놀랐다. 깔리다니? 그의 머릿속에 아기들에게 깔려 옴짝달싹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생각을 알아챈 서은혜는 서준을 안아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니라, 인기가 많아서 치대는 느낌이랄까?”
“아, 아하. 다행이다.”
이민준도 식탁으로 향했다. 맛있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등 멋진 한상이 차려져 있었다. 서준도 아기 의자에 앉혔다. 서준은 같이 앉아 있지만 지금 먹지 않고 부부가 다 먹고 난 다음 먹었다.
그는 방금 전, 슬라임으로 태어났을 때, 그를 죽인 드래곤에게 복수를 끝냈다. 뭐, 모형이지만. 오늘 저녁은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잔뜩 흥분한 서준이 두 팔을 휘둘렀다.
“흐흐흥!!”
“엄청 신났나 본데?”
이민준이 아기의 볼을 찔렀다. 방실방실 웃는 아기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서은혜가 밥을 가져오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분유 먹는 건 아까 찍었는데, 이유식 먹는 건 당신이 찍어줘야 할 것 같아. 서준이 먹이면서 찍으려니 손이 모자라서.”
“알았어. 금방 먹고 찍어줄게.”
이민준은 대답하며 밥을 한 술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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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기가 밥을 먹을 차례였다.
아기 의자에 앉은 서준은 서랍에서 카메라를 찾는 아빠를 보았다. 엄마는 이유식을 데워왔다.
‘반짝이를 써야 한다는 거지?’
낮에 있었던 일을 서준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기들이 밥을 먹지 않아서 서은혜에게 부탁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아기들에게 깔린 그 사이에도 들었다.
‘반짝이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는데…….’
피부나 머리카락이 반짝반짝거려서 아기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아기들의 입을 막기 위해 밥을 먹인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서준아, 밥 먹자!”
서준은 속으로 한숨을 포옥 쉬며 엄마를 보고 아빠를 보았다. 자신은 잘 먹고 잘 자서 걱정이 없는 부모였지만 다른 부모들은 다를 것이었다. 울음을 터뜨린 지윤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지.’
문제가 있다면 [요정의 반짝이]가 손바닥에 있다는 것이었다. 손가락에 있었다면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살짝 흔들면 될 일이었지만…….손바닥을 흔들려면 팔을 흔들어야 했다.
게다가 문양이 있는 오른팔만 흔들면 이상하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두 팔 다 드는 수밖에 없나? 밥 먹다가 두 팔을 들고 흔든 적은 없는데…….’
부디 엄마, 아빠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서준은 자신을 부르는 아빠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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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왔어요! 톡톡!
“왔나보다!”
“왔어?!”
지윤이 엄마 이소영은 아직도 저녁을 먹지 못했다. 퇴근한 지윤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부부의 소중한 외동딸이 또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낮에 한 번 먹었다니 다행이지…….”
남편의 말에 이소영은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눈을 부릎뜨고 눈물을 참으며 얼른 바나나톡을 열었다. 서준이 엄마가 단체방에 2개의 동영상을 올려 주었다.
-이건 분유버전이고
-이건 이유식버전이야. 늦어서 미안해!
이소영은 얼른 메세지를 입력했다.
-아냐! 정말 고마워!
그러고는 얼른 동영상을 재생했다. 두 동영상 중에 더 영양가가 있는 이유식 버전의 영상을 열었다. 이소영에게서 낮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도 영상을 보았다.
아기 의자에 앉아 있는 서준이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작게 ‘서준아, 이쪽 봐야지!’하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아빠인 것 같았다.
아빠의 목소리에 서준이의 눈이 카메라로 향했다. 꺄악 웃고 있는 서준의 앞에 작은 아기 밥 그릇이 올려졌다. 서은혜의 손에 작은 아기 숟가락이 들렸다.
-서준아, 맘마 먹자!
서은혜의 말에 서준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숟가락이 서준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합! 다문 입이 우물우물거렸다. 그때 서준의 두 손이 번쩍 들리고 흔들렸다.
-응? 신나서 그런가? 그렇게 맛있어?
서은혜의 말에 서준이 다시 입을 벌렸다. 이유식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서은혜가 다시 입속으로 이유식을 넣어주었다.
약 10분간 서준이의 밥 먹는 모습이 촬영되어 있었다.
잘 촬영된 동영상에 이소영이 말했다.
“좋아! 지윤아, 밥 먹자!”
아내의 말에 남편은 이유식을 데우기 위해 얼른 부엌으로 달려갔다.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일 준비를 하면서도 부부는 이 동영상이 효과가 있을지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부부는 얼른 딸에게로 향했다.
스마트폰을 앞에 고정시키고 지윤이도 의자에 앉혔다.
“으으응.”
지윤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지윤이 아빠는 얼른 탁자 위에 이유식을 올려놓았다. 이소영은 적당히 식은 이유식을 숟가락으로 푸며 동영상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서준아, 이쪽 봐야지!
서준이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지윤이 아빠도 말했다.
“지윤아, 이쪽 봐야지!”
지윤이가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윤이의 시야에 스마트폰이 들어왔다. 서준이 그안에 있었다.
이소영이 얼른 숟가락의 지윤의 입 앞으로 들이밀었다.
지윤은 보았다. 두 팔을 치켜든 서준이 또 빛났다. 그리고 왠지 서준을 따라하고 싶어졌다. 단순한 아기는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따라했다.
서준이 입을 벌리자 지윤이도 입을 벌렸다. 서준이 숟가락을 물고 우물우물거리자 지윤이도 숟가락을 물었다. 숟가락 위에 이유식이 있었다. 입속에 이유식이 들어오자 지윤이는 우물우물거리다 꿀꺽 삼켰다.
먹었다!
이소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먹었다!”
딸이 드디어 밥을 먹었다는 기쁨에 큰소리를 지르려던 지윤이 아빠가 허벅지에 느껴지는 아내의 손맛에 힘들게 소리를 삼켰다. 아내가 눈에 불을 키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거의 입술을 열지 않고 나즈막히 속삭였다.
“조용히 해! 한 그릇은 다 먹어야 해!”
“알았어.”
부부는 조용히 딸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였다. 그동안의 고생이 거짓말인 것처럼 지윤이는 순식간에 이유식 한 그릇을 해치웠다. 이렇게 순순하게 밥을 먹었던 적인 있는지…….두 사람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소영은 지윤이의 등을 토닥였다. 배부르게 먹은 지윤이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새근새근 잠이든 딸아이를 보고 있으려니 부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도 밥을 안먹어서 큰일이 난 줄 알고 병원에도 가봤다. 아기들이 좋아한다는 분유, 맛있다는 이유식은 전부 만들거나 사서 먹여보기도 했다. 다 실패했다. 실패하면 할수록 우리는 부모가 될 자격이 없나 자괴감이 들었다.
이제 웃을 수 있게 된 이소영이 남편에게 말했다.
“서준이 선물이라도 사줘야겠어.”
“그러자! 그리고 얼른 톡도 보내! 지윤이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아참. 그렇지.”
지윤이를 침대에 눕히고 이소영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미 단체방에는 톡이 가득했다. 미나 엄마와 쌍둥이 엄마였다.
- 진짜! 무슨 일이래! 미나 싹 다 먹었어! 진짜 밥 투정도 안하고!
- 쌍둥이도 다 먹었어! 순식간에!
이소영, 지윤이 엄마도 메세지를 남겼다.
-지윤이도 밥 먹었어. 오늘 겨우 2번째 먹는 거야. 정말…….정말 고마워!
톡을 읽은 서은혜가 아들을 재우고 있는 이민준에게 말했다. 밥을 실컷 먹은 아들은 반쯤 졸다가 폭신폭신한 이불 위에서 잠이 들었다. 통통한 볼이 아주 귀여웠다.
“다들 효과가 있대.”
“음…….그냥 배가 고파서 먹은 게 아닐까?”
밥 잘 먹는 아들만 보아온 이민준에게 밥을 안 먹는 아기는 조금 낯선 존재였다. 서은혜는 아기 엄마 친구들이 있어서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이지만 알았다.
“안 먹는 애는 진짜 안 먹어. 지윤이 엄마는 병원까지 가봤대.”
“병원까지?”
그제야 심각성을 안 이민준이 서준이의 배를 토닥였다. 이민준과 서은혜의 아들은 정말, 순하고 착한 아이였구나하고 생각했다.
“내일도 모레도 효과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게.”
부부의 바람대로 서준의 분유 먹방과 이유식 먹방은 내일도 모레도 효과가 짱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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