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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화 (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화

배가 고팠다.

조그마한 위는 빨리 차고 빨리 소화돼서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팠다.

아기는 많은 삶을 살았고,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는 참지 않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특히 먹고 자는 것에 대해서는 더 그랬다.

“으앙으앙.”

하고 우니 서은혜가 따뜻한 물에 분유를 타서 가지고 왔다.

“우리 서준이. 배 많이 고파요?”

서은혜는 7개월 된 서준이에게 이유식과 분유를 번갈아가며 먹였다. 아기 개인 취향으로는 아직 분유가 맛있었다.

쯉쯉-

젖병을 들고 먹고 있으려니, 딴생각에 빠졌다.

아기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니, 배우를 넘어 슈퍼스타가 되기로 했다.

다행히 이 세상은 첫 생과 비슷한 곳이었다. 아직 활동범위가 조그마한 집 안이 전부인 아기의 눈으로 파악하기엔 그러했다.

아빠와 엄마가 보는 텔레비전에서는 뉴스와 예능 프로그램 등 첫 생과 같은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나오는 연예인들의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물론, 첫 생에 대해서는 책으로 읽은 것이 다였기에 첫 생과 같은 세계이지만 아기가 못 알아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뭐, 딱히 상관은 없지만.’

새하얗고 보송보송한 이불 위에 드러누운 아기는 쭙쭙, 분유를 빨아 먹었다.

맛있다. 작은 두 발이 쭉쭉 접혔다 펴졌다.

그게 아기가 만족할 때마다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아는 엄마, 서은혜는 작게 웃으며 아기의 조그마한 발을 매만졌다.

엄마의 손길에 발바닥이 간지러워 아기는 두 발을 허공에서 흔들었다.

다 먹었는지 젖병에서는 더 이상 분유가 나오지 않았다. 아기의 조그마한 위장은 금세 차버렸다.

아기의 몸이 덜렁 들렸다. 서은혜는 아기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서준은 엄마의 어깨에 볼을 대었다.

끄억!

“우리 서준이. 너무 잘 먹는 거 아니야? 아하하하.”

아기의 트림 소리에 서은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기도 꺄르르르 웃었다.

* * *

서준은 생각했다. 배우, 아니, 슈퍼스타가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는 지금의 ‘몸’으로는 슬라임 때 만들었던 개집만 한 파란색의 문밖에 열지 못했다.

이 문 안에는 슬라임으로 살 때의 기억과 어른 손바닥만 한 요정으로 살 때의 기억 등 자그마한 몬스터로 살 때의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 몬스터는 대개 수명이 짧아 일찍 죽거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금방 죽어버리고는 했다.

‘그런 게 도움이 될까?’

서준은 작은 슬라임일 때를 떠올렸다.

드래곤레어 근처에서 살았던 때였다. 먹이를 찾으려 드래곤레어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슬라임은 잠에서 덜 깬 드래곤의 브레스-아마 하품이었을 것이다-에 맞아 죽어버렸다. 태어난 지 3일 만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은 과거에 고개를 휘휘 젓던 서준은 일단 도서관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파란색 문을 손바닥으로 꾸욱 눌렀다. 천천히 문이 열렸다. 자그마한 2단 책장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책의 대부분은 아기들의 그림책처럼 얇고 작았다. 글자가 적혀 있는 책은 적었고 그림이 동화처럼 그려진 책들이 가득했다.

서준은 천천히 기어가며 책의 이름을 살폈다.

[슬라임 1][슬라임 1-2]…… [요정 1][요정 1-2][요정 2]…… [개미 1]…… [식물 1]…….

책장은 몬스터 종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슬라임으로도 여러 번 반복해서 환생했었고 요정으로도 여러 번 반복해서 태어났다. 종류가 같을 때도 있었고 다를 때도 있었다. 다 기억나지는 않았다.

아기는 제일 앞에 꽂혀 있던 [슬라임 1]을 바닥에 펴고 그 앞에 앉았다. 커다란 그림이 그려진 책이었다.

초록색의 슬라임이 먹이를 녹이는 그림과 촉수를 뻗어 나무를 때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슬라임의 지능으로는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 다였을 터였다.

‘슬라임은 산성액으로 녹이고 촉수를 길게 뻗고…….’

아기가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 슬라임은 물방울 모양처럼 생겨서 틀에 따라 이리저리 모양을 바꿀 수 있었다. 그 이외에는 쓸모가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어린아이도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요정 1]을 펼쳤다.

꽃이 한 송이 피어나면서 그 안에 꽃을 닮은 작은 요정이 그려져 있었다. 요정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그림과 꽃이 지면서 같이 잠든 듯한 그림이 마지막 페이지에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보니 이 요정에 대해 떠올랐다.

[요정 1]에서 요정은 장난꾸러기 꽃의 요정이었다. 이 요정은 꽃에서 태어나 꽃의 향기가 나고 꽃이 죽으면 함께 죽는 요정이었다.

꽃을 닮아 화려한 외모가 특징이었다. 특별한 기술은 없었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한 생을 즐겁게 살다 죽는 요정이었다.

‘외모가 도움이 되겠지만…….’

이 요정의 기술을 사용하려면 바탕이 되는 꽃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꽃을 찾아 이 기술을 등록하면 그 꽃의 생김새와 비슷한 외모를 갖게 된다.

문제는.

‘꽃이 죽으면 죽은 거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물이 부족해도 죽고 많아도 죽고, 바람이 불어 줄기가 꺾여도 죽고 밟혀도 죽는, 꽃은 연약한 생물이었다.

아기는 얼른 책을 덮었다.

천천히 책장에 꽂힌 책들을 살폈다.

‘슈퍼스타가 되기 위한 삶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네.’

확신이 없는 미래는 기대감을 불러왔다. 아기는 천천히 책장을 돌아다니며 책의 내용을 살폈다.

‘이건 별로고……. 이건 좋을 것 같다!’

서준은 일단 두 가지 능력을 골랐다.

[슬라임 3]에서 찾은 [슬라임의 소화 능력]과 [요정 15]에서 찾은 [요정의 반짝이]였다.

[슬라임의 소화 능력-최하급]

무엇이든 소화시킵니다. 소화시킨 물체의 과다한 영양분를 몸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바꿉니다.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성분을 전부 배출시킵니다.

최하급이라서 환골탈태와 같은 극적인 효과는 없겠지만 자라는 것이 일인 아기에게는 아주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게다가 [엘프의 기초 호흡]과 함께라면 더욱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요정의 반짝이-최하급]

요정의 날개에서 생산되는 반짝이입니다.

반짝이를 반짝이면 요정을 볼 수 있는 이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습니다.

반짝이를 흔들고 행동을 하면 요정을 볼 수 있는 이들 중 일부가 따라 합니다.

[요정의 반짝이]는 조금 모험이었는데, 또래에게 인기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골랐다.

‘또래 아기들에게 인기 있는 아들을 보면 부모님이 연예인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떡밥은 미리 뿌려놓는 거였다.

[슬라임의 소화 능력]은 초록색의 동그란 구슬 모양으로 나타났다. 서준은 그 구슬을 두 손으로 들어 배 위로 가져다 대었다.

반짝!

구슬, [슬라임의 소화 능력]은 배를 통과해, 아기의 조그마한 위장에 자리를 잡았다.

서준의 통통한 배 위로 파란색 무늬가 나타났다. 구슬처럼 생긴 문양은 이서준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요정의 반짝이]는 요정이 들고 다니는 작은 풀잎 지팡이 모양으로 나타났다. 서준은 그 지팡이를 오른손 검지 손가락에 가져다 대었다.

아기 몸인 지금 상태에서 흔들 수 있는 신체는 팔과 다리, 그리고 조그마한 손가락들뿐이었는데 반짝이를 사용할 때마다 다리와 팔을 흔드는 것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반짝!

지팡이가 등록되었다.

‘아, 여긴…….’

검지 손가락에 등록시킬 생각이었는데, 손가락이 [요정의 반짝이-최하급]보다 용량이 작은 모양인지 손바닥에 무늬가 새겨졌다. 풀색의 무늬였다.

아기는 손을 쥐었다.

잼잼.

‘……상관없겠지.’

자그마한 손가락들을 접으면 풀색 지팡이 무늬가 사라지고 손가락을 펴면 나타났다.

잼잼.

아기의 본능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지팡이 무늬가 재밌었는지 조막만 한 두 손을 쥐었다 펴며 무아지경에 빠졌다.

잼잼.

* * *

“진짜 서준이는 잘 먹네.”

7개월 된 여자아기를 가진 지윤이 엄마가 말했다.

같은 3월생인 지윤이도 서준이처럼 이유식과 분유를 번갈아 먹고 있는데 요즘 그녀의 딸은 도무지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젖병을 들이밀어도 고개를 흔들고 이유식이 담기 숟가락을 입안에 넣어도 퉤- 하고 뱉어내 버리고는 했다.

서은혜가 부엌에서 과일을 가져왔다.

모두가 쉬는 토요일 오후, 일이 많은 서준이 아빠는 오늘도 출근을 했고 엄마는 친구들을 불렀다.

서준이 살고 있는 아파트 내의 또래 아기 엄마들의 모임이었다. 거실 한쪽에는 아기들이 다섯 모여 있었다.

방금 분유를 다 먹은 이서준과 밥을 안 먹는 김지윤, 쌍둥이 형 박지호와 쌍둥이 동생 박지우, 그리고 아버지가 미국인인 미나 오웬.

모두 7개월에서 9개월 사이의 아기들이었다.

아기들은 서준의 장난감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자신들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서준은 자신의 인형들을 꺼내 놀았다. 본능 반 이성 반 상태인 그에게 인형 놀이는 참 재미있는 놀이였다.

지윤이 엄마가 한숨을 포옥 쉬었다.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배가 고파 울 정도면 순순히 밥을 먹어주면 좋을 텐데, 아프지도 않은데 먹지를 않으니 속이 답답했다.

서은혜가 사과를 깎으며 말했다.

“천천히 나아지겠지. 아픈 곳도 없다면서.”

영 먹지를 않으니 걱정이 돼서 병원까지 다녀온 지윤이 엄마였다. 다들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그냥 지윤이가 안 먹는 거라고 했다.

“아기 때도 이런데 더 크면 얼마나 고생을 할지…….”

쌍둥이 엄마의 말에 다들 한숨을 쉬었다. 투정이라고는 모르는 서준이의 엄마, 서은혜만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이후로 엄마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유치원을 보내야 하는데 가까운 유치원은 너무 경쟁률이 세다던가 아이들의 몸에 좋은 이유식 재료를 추천한다든가 하는 아기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른 아기들과 같이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놀던 아기는 배가 고팠다. 먹성이 좋은 몸이라고 생각하며 서준이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으앙.”

“어머, 벌써 밥 먹을 시간이야?”

서은혜가 화들짝 놀라며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서준이 울자 다른 아기들도 차례차례 울기 시작했다.

으앙앙! 으앙!

거실이 아기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엄마들은 허둥지둥 가방에서 분유를 꺼냈다.

그 모습을 보고 서준은 언제 울었냐는 듯 금세 울음을 그쳤다. 조금 있으면 엄마가 분유를 가지고 오실 테니 괜히 울어서 힘을 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생각이라고는 먹고 싸고 자고 노는 것밖에 없는 보통의 아기들은 계속 울어댔다.

‘괜히 울었나?’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연약한 아기의 귀가 아팠다.

하지만 안 울면 밥을 못 먹지.

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작은 어깨에 큰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티는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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