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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화 (1/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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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 1화

프롤로그

그는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 역을 전전하다 죽었다. 사고였는지 자살이었는지는 모른다. 그건 아주 오래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 후로 그는 다시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났다. 어째서인지 그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모든 생의 기억이 그의 안에 쌓여갔다.

그는 생의 도서관을 만들었다.

어떤 생은 너무 길고 거대해 도서관 한구석에 꽂아두고 또 어떤 생은 너무 소중해 잘 꺼낼 수 있는 자리에 놓아두고 자주 꺼내 보기도 했다.

그는 인간으로 환생하지 못했다.

딱히 인간으로 태어나길 바란 건 아니었으나, 다른 생물들로는 반복해서 환생하기도 했는데 유독 인간으로는 환생한 적이 없었다. 신기했다.

점점 첫 생애도 잊혀져 간다 싶을 때, 그는 다시 태어났다.

인간으로.

* * *

“부부부.”

아기가 웃었다. 그 미소에 이제 갓 부부가 된 이민준과 서은혜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우리 아기지만 너무 귀여워…….”

서은혜의 앓는 소리에 이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7개월이 된 부부의 아기는 순해도 너무 순해서 정말 축복같은 아이였다. 잘 먹고 잘 싸고 아픈 곳도 없고.

또래의 아기를 가진 부부들은 이민준과 서은혜를 부러워했다.

“서준아! 이서준!”

“아빠야, 아빠!”

꺄아아악! 하고 아기가 웃었다. 아직 아기인데도 동그란 눈동자는 반짝반짝거리고 이목구비가 또렸했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마치 봄의 햇살 같았다. 엄마 아빠의 장점만 모은 듯 아주 귀여운 아기였다.

“하아아암.”

아기가 하품을 하자 부부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서은혜가 아기침대에 누워 있던 아기의 배를 가볍게 토닥였다. 이민준은 서랍 위에 올려져 있던 CD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렀다. 아기자기한 동요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 * *

아기, 이서준은 눈을 떴다.

‘음.’

이서준은 생각했다. 너무 크다.

눈 앞의 문이 너무 컸다. 이서준의 전생의 기억이 담긴, 도서관의 문이었다. 단풍잎만 한 아기 손이 커다란 도서관문을 찰싹 쳤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는 때때로 기준치 이하의 지능을 가진 생물로 태어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때에도 이 기억의 도서관에 들릴 때가 있었다.

기준치 이하의 지능, 그러니까 ‘바보’는 아무 생각도 없이 눈 앞에 보이는 능력을 흡수하고는 했는데, 그것은 ‘바깥의 몸’이 가지고 있는 한계 이상의 능력일 때가 있었고, 그럴 때는 십 중 십으로 몸이 망가져 버리고는 했다.

그렇게 죽은 생이 몇 번, 그는 이 도서관을 꽉 닫아놓았다. 그리고 ‘몸’에 맞는 문만 열리도록 만들어놓았다.

‘이 문은 포기.’

이 커다란 문도, 이서준의 능력이 성장하면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활짝 열릴 터였다.

이서준이 조막만 한 손을 휘저었다. 회전문처럼 커다란 문이 옆으로 사라지고 그보다 작은 문이 이서준의 앞에 나타났다.

도서관의 문은 아주 많았다. ‘바보’가 한 번씩 나타날 때마다 능력의 기준을 정하고 도서관을 만들다 보니……. 새삼 생각해 보니 정말 많은 ‘바보’가 죽은 것 같았다.

그는 눈에 보기 쉽게 만들어놓았다. 능력이 클수록 문의 크기도 컸고, 능력이 작을수록 문의 크기도 작았다.

삶의 기억이 담긴 책의 크기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오래되고 큰 몬스터의 삶이었다면 크고 두꺼운 책이 있었고, 작고 짧은 몬스터의 삶이었다면 작고 얇은 책이 있었다.

이서준은 계속 손을 휘저었다. 문은 점점 작아졌다. 아기인 그가 올려다볼 수도 없는 5층 빌딩, 3층 빌딩 크기의 문을 지나쳐, 끝내 개집만 한 크기의 파란색 문이 나왔다. 이곳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이었다.

‘슬라임일 때 만든 도서관이지.’

태어난 지 3일 만에 죽은 ‘바보’ 슬라임을 애도하고 이서준은 작은 문 앞의 바닥에 앉아 고민했다.

도서관에서의 모습은 현재의 몸을 따라 변했다. 이제 7개월이 된 그는 혼자서 바닥에 앉아 있는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몇 주 전만 해도 그는 도서관 문 앞 바닥에 누워 굳게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때때로 뒤집기를 하기도 했다.

머리가 커서 그런지 앉아 있기가 조금 힘이 들어 이서준은 벌러덩 누웠다.

‘다른 때였다면 벌써 열고 들어갔을 텐데…….’

문을 여는 방법을 간단했다. 도서관 문을 건들기만 하면 되었다.

이서준은 두 발을 번쩍 들고 허공을 찼다.

읏차읏차.

‘인간 아기의 성장은 너무 느려.’

이 정도의 문으로 들어가 봤자 볼 수 있는 책은 팔딱팔딱 뛰기만 하는 무쓸모의 슬라임 책이나 반짝반짝 빛나면서 날아다니는 게 전부인 요정 책처럼 쓸모없는 책들뿐일 것이었다.

다시 태어나면 상황을 살피고 그 삶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기록했던 이서준이었다. 너무 많은 삶이라서 잊혀진 것들도 있을 터였다.

인간의 삶은 처음이라서 뭐가 적당한지 뭐가 꼭 필요한 능력인지 책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긴 했다.

‘아니, 뭐. 지금은 딱히 안 봐도 될 것 같기도 한데.’

먹고 자고 싸는 게 일인 아기였다.

물론 다시 태어날 때면 매번 하는-성향이 선(빛)일 때- [엘프의 기초 호흡법]은 단단히 기억해 두어 의식이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해왔다.

아기임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잘난 외모는 모두 엘프들의 기초 호흡법 덕분이었다.

이서준은 버둥버둥 허공을 차던 다리도 내리고 뒤집기를 했다. 이제 뒤집기는 아주 쉬웠다.

‘응?’

몸을 돌려서 바닥에 엎드리니 개집만 한 문 옆에 아주 작은 문이 있었다. 이서준의 얼굴만 한 문이었다.

작은 건 둘째치고 먼지가 끼고 아주 어두운, 검은색 문이어서 눈에 띄지 않은 듯했다. 지금 발견한 것도 대단했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손을 뻗어 문의 무늬를 눌렀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는 머리를 문 안으로 들이밀었다. 어깨에서 걸렸지만 괜찮았다. 그 안에는 하나의 책만 있었다.

이서준은 머리를 빼고 한 손을 집어넣어 책을 잡았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책이었다.

문밖으로 꺼낸 책은 아주 오래돼 보였다. 먼지가 잔뜩 끼고 후- 하고 불면 종이 하나하나가 먼지로 변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아기는 천천히 책을 열었다.

책은 한글로 적혀 있었다.

한글로 기록되던 생의 기억이 점점 몬스터의 글자들로 변하는 것을 이서준은 알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몬스터의 글자들이 더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건 모두 한글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삶이었다.

이서준이 기억하는 첫 생은 이름 없는 배우였다는 것뿐이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기는 바닥에 낡은 책을 펼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어색한 한글이었지만 천천히 기억을 떠올리면서 읽어갔다.

책은 재밌었다.

한 남자-이서준 본인이었지만 기억이 흐릿해 타인처럼 느껴졌다.-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끝끝내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촬영 중에 사고로 죽은 이야기였다.

‘음.’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짧은 말이 쓰여져 있었다. 이서준 본인이 죽기 전, 마지막의 마지막에 생각했던 기억일 터였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고 싶다. 다음 생엔 주인공을 해보고 싶어.

바닥에 낡은 책을 펼치고 그 앞에 앉은 아기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많은 생을 지나서 덤덤해진 마음이 조금 뛰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무언가가 되기 위해 이 남자처럼 열심히 살던 때가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없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바빴고 후에는 너무 삶이 너무 지루했다.

아기는 삐죽 웃었다.

어쩐지 책에 감화된 기분이었다.

‘좋아! 하자, 배우!’

아기는 눈앞의 책을 보았다.

‘아니지.’

허무하게 죽은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듯 책을 툭툭 두드렸다.

‘겨우 배우가 뭐야! 슈퍼스타 정도는 돼야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슈퍼스타가 되리라.

아기는 무명배우의 책 앞에서 그렇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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