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무대 위로 올라간 엘븐 라비가 우리를 보며 윙크를 날렸다.
눈도 좋아. 어떻게 바로 우리를 발견한 건지.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한 그는, 곧바로 신인상 후보자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신인상 첫 번째 후보는 전반기를 불태운 아티스트인 잭슨 알리입니다. 두 번째 후보는 엘슨 블랑카! 그리고….”
엘븐 라비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후보는 한국에서 온 아이돌 그룹, 올리오스입니다!”
타고난 방송인이었다.
적당한 간격을 두면서, 기대감을 조성하며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했다.
“대망의 신인상은 누가 받을지, 정말 기대됩니다. 지금 이 시상식을 보는 모든 분들도, 각자 마음속에 응원하는 분이 있을 텐데요.”
말을 마친 엘븐 라비가 봉투에 담긴 큐카드를 꺼냈다.
그곳엔 수상자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봉투 안에 있는 큐카드를 본 엘븐 라비가 잠시 관객들을 보며 미소를 유지했다.
아주 찰나의 정적.
그는 그 정적을 교묘하게 잘 이용했다.
모두의 시선이 주목된 그 순간.
“축하드립니다! 신인상의 수상자는 ‘Mini Fiction’을 부른 올리오스입니다!”
그는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사람들의 박수가 터졌고,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특히 우주의 반응이 대박이었다.
“정말? 정말 우리야? 우리가 받는 거야?”
우리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을 가렸다.
사방에서 우리를 축하하는 박수와 환호성이 들렸고, 우리는 상을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올라가자.”
“가자. 가자!”
우리는 우리를 축하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무대 위로 올라가자, 엘븐 라비가 가벼운 포옹과 함께.
“축하해!”
진심 어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는 과거 빌보드 차트에서 경쟁심을 불태웠지만, 지금만은 진심을 담아 축하해 주고 있었다.
“고마워.”
“나는 너희가 받을 줄 알았어. 하하하!”
그는 우리들에게 트로피와 꽃다발을 건넨 뒤에 한 명씩 다가가 가볍게 축하를 해줬다.
그에게 트로피를 건네받은 뒤, 가장 먼저 마이크 앞에 선 건 정민이었다.
이번 빌보드 1등과 그래미 수상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작곡가인 정민이었으니까.
모두의 동의 하에 그가 가장 먼저 감사 인사를 하기로 얘기해뒀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 어떤 상이든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기대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상을 받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하핫. 무대 아래에선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었는데, 생각나는 게 없네요. 그냥, 감사합니다. 저희를 도와준 많은 분들 황이서 프로듀서님, 이두현 매니저 형, 늘 작곡가 선배로서 도움이 되어준 몬스터즈의 카이 선배까지. 그리고 늘 저희의 뒤에서 응원을 해준 우리 올리오스의 팬클럽 ‘원스’, 정말 사랑합니다. 언제나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힘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민의 감사 인사가 끝나고 다음은 호진이 짧은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잘될 거라고 생각은 못했어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내 동생 현진아, 늘 고맙고. 엄마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관계자 분들 모두 정말 감사하고, 원스 여러분들도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도 절대 자만하지 않고 초심을 갖고 활동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우주였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너무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아서 사실 주머니에 감사한 사람들을 전부 적어뒀거든요. 시간이 없으니까 딱 3분만 뽑을게요.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전엔 못난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누구 앞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으면 해요. 한석원 홍보팀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올리오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거 같아요! 그리고 우리 첫 뮤직비디오 찍어주신 감독님 감사합니다. 어, 또…. 마지막으로 원스,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막간에 예능력을 살린 우주다운 소감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미 앞에 친구들이 얘기를 다 해줘서 저는 그냥 감사하다는 말만 할게요.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리더, 건하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성훈은 무척이나 짧은 소감을 마쳤다.
내게 고맙다고 얘기하다니, 이건 예상을 못했는데.
그리고 내 차례였다.
마지막으로 마이크 앞에 선 나는 내게 향하는 수많은 스타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내게 향했다.
나를 보는 시선들과 카메라, 그리고 조명.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올리오스의 윤건하.
그의 마지막 소감을 말이다.
그때였다.
[축하드립니다.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진엔딩의 최소 조건을 완수했습니다.]
[보상으로 진엔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미수령한 히든 퀘스트 보상이 존재합니다.]
[히든 퀘스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보상: 진엔딩 선택권.]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진엔딩을 선택할 수 있다고?
나는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이 수상에 감동한 것으로 보였던 걸까?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소감을 길게 할 수 없는 분위기였기에 짧게 멘트를 치고 내려갔다.
진엔딩 선택권이라니.
설마 이게 끝이 아닌 건가?
상을 받고 돌아가던 나는 눈앞에 뜬 메시지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에서 멤버들이 신나서 떠드는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웅-. 웅-. 웅-.
마치 현기증이 일어난 것처럼 웅웅거린다.
세상이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엔딩 선택권]
[2가지 진엔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본래의 세계의 ‘윤건하’로 돌아갑니다. 그럴 경우 현 세계의 ‘윤건하’는 빙의 전 ‘윤건하’의 인격으로 남게 됩니다.]
[2. 현재의 세계의 ‘윤건하’에 남아 있습니다.]
[선택 조건: 올해의 노래상 수상]
[수상하지 못한다면 진엔딩 1번 루트로 강제 진행됩니다.]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러면 빙의 전 윤건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원래 내 세계의 나는?
생각이 거기까지 진행됐을 때.
“형, 괜찮아?”
“건하야, 왜 그래?”
나를 걱정하는 멤버들의 얼굴이 보였다.
“응?”
“방금 전에 우두커니 서서 있었잖아. 안색도 안 좋던데,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지?”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다들 나를 걱정하며 바라봤다.
나는 걱정하는 멤버들을 향해 웃음을 지어줬다.
“괜찮아. 잠깐 현기증이 났던 거야.”
“그래도 아까 무대 위에서도 말 못했었잖아.”
“조금 피곤했나 봐.”
나는 멤버들을 안심시키고는 함께 백스테이지를 지나 우리 자리로 향했다.
이렇게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후우…. 어렵네.”
물론 그건 우리가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할 때나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만약에 받지 못한다면?
나는 강제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다.
이런 좋은 사람들을 두고 말이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시상식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초조하게 상이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이전에 보였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아니어서일까?
나를 보는 멤버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형, 힘들면 얘기해. 지금이라도 잠시 나가서….”
우주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물었다.
이렇게나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고마워. 하지만 진짜 괜찮아. 그냥 상을 받지 못할 거 같아서 그런 거니까.”
“그래? 괜찮아. 우리는 무조건 하나 더 받을 수 있을 거야. 나는 믿어.”
“고맙다.”
도박사들은 우리들이 그래미상을 1개 받는 것이 정배라고 말했다.
루케 크롬블은 3개까지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지할 수는 없다.
신이 아니고선 말이다.
이제는 운명이 나를 점지해주길 바라야만 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과거에 차근차근 쌓아왔던 것들이 결과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조금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다.
그러니 따라올 좋은 결과를 그저 믿을 뿐.
기다린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올해의 노래상을 시상하기 위해 유명가수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멕시코쪽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수였다.
작년에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던 선배 가수.
그가 멕시코 억양이 강한 영어로 수상자를 발표했다.
“축하합니다. 올리오스의 ‘Mini Fiction’.”
됐다.
우리의 이름이 호명되는 그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됐어.’
적어도 강제로 내 운명이 결정되지는 않게 된 것이 기뻤다.
내 운명을 내가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 일인지.
“2관왕….”
멍하니 말하는 정민의 목소리가 들렸고, 성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보였다.
우주와 호진이 서로를 부둥켜안았고, 나는 성훈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다시 한번 우리를 향해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가는 내 눈에 마지막 시스템 메시지가 보였다.
[축하드립니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의 운명을 선택해주세요.]
[한 번 선택한 운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1. 본래의 세계의 ‘윤건하’로 돌아갑니다. 그럴 경우 현 세계의 ‘윤건하’는 빙의 전 ‘윤건하’의 인격으로 남게 됩니다.]
[2. 현재의 세계의 ‘윤건하’에 남아 있습니다.]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전대 수상자에게 그래미 트로피를 건네 받았다.
꽤나 무게가 있었다.
신인상 때 별다른 멘트를 치지 못했기 때문일까.
“형이 먼저 말해.”
“리더가 대표로 말해야지.”
“몸은 괜찮은 거지?”
“긴장하지 말고.”
멤버들의 배려 덕분에 트로피를 받고 마이크 앞에 가장 먼저 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마이크에 손을 올렸다.
자리에 있던 모든 스타들이 내 입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 저 카메라 너머에 있는 수많은 시청자도 나만을 보고 있을 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주목되는 가운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언젠가 ‘마이 아이돌’ 게임에서 들었던 수상 소감.
“시작부터 저와 함께해줬던 매니저 형, 올리오스 멤버들, 제게 재능이 있다고 격려해준 댄스 트레이너 형, 보컬 트레이너 누나….”
나는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말해가며 소감을 이어갔다.
이름을 말할 때마다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이렇게까지 감성적이었던 건 처음이었다.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담담하게 소감을 이어가던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를 찍고 있을 카메라를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당신.”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응원해줬던 사람들.
그건 단순히 카메라 너머에 있는 ‘원스’들에게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들 뿐 아니라 나를 응원해줬던, 당신.
내 이야기를 옆에서 지켜봐준 당신.
마이 아이돌 속 캐릭터에게 내가 몰입했던 것처럼 내 이야기에 몰입해줬던 당신.
“당신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고마워요.”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나는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눈이 부셨다.
[진엔딩 루트를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의 운명에 빛이 있기를]
-End-
<에필로그>
“후우, 전경이 좋네.”
나는 까마득히 높은 빌딩 위에서 서울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빌딩은 물론 그 너머의 주택들도 보일 정도로 높았다.
적어도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역시 보는 맛이 있었다.
하긴, 여길 임대한다고 돈을 얼마나 쓰는데 당연히 보는 맛이 있어야지.
나는 내 책상에 놓인 팻말을 보았다.
-대표 윤건하.
이제는 대표의 자리까지 올랐다.
진짜 악착같이 살았구나.
그래미 어워드에서 마지막 분기, 진엔딩을 선택한 이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대표라는 자리까지 올라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벽면에 붙은 선반엔 수많은 트로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래미 올해의 노래상, 올리오스
-그래미 신인상, 올리오스.
지금의 나를 만든 그래미 상은 물론, 한국에서 탔던 여러 음악 방송 및 시상식 트로피, 배우계에서 받은 조연상과 주연상 등.
한국, 미국, 일본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트로피가 선반에 가득 서 있었다.
말고도 여러 상패가 트로피 옆에 장식되어 있었다.
한국 최고의 아이돌, 올리오스의 리더 윤건하.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무척이나 많지만,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역시 ‘올리오스의 리더’였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이유였으니까.
“이제 새로운 선반을 하나 들여놔야겠다.”
결국 나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좋은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나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일이 좋으니까.’
그래서 돌아가지 않기로 선택했다.
원래 이 세계에 있던 윤건하에겐 미안하지만 이게 내 최선의 선택이었다.
빼앗기고 싶지 않았으니, 조금은 이기적인 선택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내게 마지막 문자가 왔었다.
[고생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내 꿈을 이뤄줘서. 내가 아닌 당신의 힘으로 이룬 거지만, 제 일인 것처럼 기뻤어요. 사실 당신이 돌아가면 어쩌나 고민했어요. 나는 그런 무대를 직접 서지도 못했고, 당신처럼 강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돌아가서 모든 걸 망치는 게 아닐까 걱정했어요.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당신이 내 삶을 살아줘서가 아니에요. 덕분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 고마웠어요. 내게도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원래의 윤건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존재하지 않는 번호였고, 역추적도 불가능했기에 이게 진짜 윤건하에게서 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시스템이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앞으로를 망치지는 않기로 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너무 오래 붙잡고 있다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스마트폰의 게임 하나를 실행했다.
‘마이 컴퍼니.’
내가 이전에 했던 ‘마이 아이돌’과 유사한, 사장이 되어 사업체를 운영하는 게임.
유료 재화를 이용해 사장과 사원, 스킬을 뽑는 시스템은 ‘마이 아이돌’ 이상의 과금 유도였지만, 나는 한 캐릭터를 위해 망설이지 않고 돈을 질렀다.
캐릭터의 이름은, 윤건하.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전혀 다르지만 동시에 똑같기도 한 ‘윤건하’를 게임 내 최대 규모 사업체의 대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성공한 윤건하와 그가 운영하는 사업체를 흐뭇하게 보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저 홍우선입니다.
황룡 엔터의 프로듀서 홍우선의 전화였다.
“무슨 일인가요?”
-지금 트레블리 애들 미국 활동 중인데, 이슈가 좀 생겨서요.
“무슨 일이죠?”
-그…. 분명 저희는 이번 공연장에 등록을 했었는데, 현장 관리자 쪽에서 모르는 일이라고 자꾸 뺀찌를 먹이네요.
“제가 바로 확인해볼게요. 금방 연락드리겠습니다.”
올리오스의 활동을 하면서 계속해서 트레블리를 비롯한 다양한 후배들을 양성하는데도 힘을 쏟았다.
아이돌이자, 배우이자, 프로듀서의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어느새 레프픽션과 합병한 황룡 엔터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GH 엔터의 최강훈 대표는 그런 내 사정을 봐주고, 올리오스 활동을 하면서 대표일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줬다.
덕분에 이렇게 올리오스의 활동이 휴지기에 들어가는 동안엔 프로듀서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고의 프로듀서 상, 윤건하.
이런 상도 받고 말이다.
나는 홍우선에게 전해들은 말을 엘븐 라비에게 전달했다. 마침 그 공연장은 엘븐 라비를 통해 계약한 곳이었으니까.
그라면 잘 처리해주겠지.
-OK.
딱 한 글자였지만, 무척이나 든든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러면서 정이 붙어서일까?
엘븐 라비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프로듀서로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왜 지금은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냐고?
그건.
“건하 형!!”
그때,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우주가 내게 폭 안겼다.
“뭐야? 너 휴가 나왔어?”
“응, 오늘 나왔어.”
나는 이제 꽤 길어진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더 바짝 깎아야 하는데.”
“형, 나 이제 상병이야. 이보다 더 짧게 깎으면 가오 안 살아.”
“짬 좀 먹었다 이거야?”
“당연하지.”
첫 그래미 수상 이후, 우리는 6년간 정규 앨범 2집, EP 앨범 3집, 싱글 앨범 2집을 내며 바쁘게 활동했다.
중간에 솔로 앨범이나 개인적인 활동들까지 있었으니, 그걸 생각하면 더 바쁘게 지냈지.
거의 1년에 1~2개 정도는 앨범을 낸 수준이니까.
그리고 성훈과 나를 시작으로 군대에 입대했다.
1년이 지나 호진과 정민이 우리를 따라 입대했고.
내가 제대할 즈음엔 우주가 마지막으로 입대했다.
그 때문에 올리오스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군인이 바로 우주였다.
“이제 진짜 대표님 다 됐네.”
“그래도 네가 전역하면 다시 아이돌에 집중해야지. 그간 완전체가 아니라 한눈 좀 팔고 있던 거니까.”
“진짜지?”
“한 번 올리오스는 끝까지 올리오스 아니겠어?”
“기대된다. 진짜 군대에선 혼자서 무대에 서니까 너무 심심해. 같이 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우주를 시작으로 정민과 호진, 성훈이까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일 아직 안 끝났어?”
“다 끝났어. 이거 마지막으로 처리하면 돼.”
나는 핸드폰을 흔들었다.
일의 마무리를 알리는 엘븐 라비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내 마지막 업무였다.
“빨리 왔으면 좋겠네.”
우주가 설레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오늘은 우주가 휴가 나온 김에 올리오스와 몬스터즈가 함께 회식을 갖는 자리였다.
“형은 술 좀 늘었어?”
우주가 나를 게슴츠레 보며 물었다.
“늘었지.”
“오, 얼마나?”
나는 애들에게 자랑스럽게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한 병?”
“아니, 한 잔.”
“…변한 게 없잖아.”
“이제 소주 한 잔 먹어도 안 취해. 2잔이 치사량이야.”
“주량은 여전하네.”
다른 건 다 변해도 주량만큼은 변하지 않더라.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싫지만은 않았다.
내 몸에 한 사람의 운명만이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증거였다.
내가 이번 삶을 더 열심히 살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되어줬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한진성에게 전화가 왔다.
-야, 형들 다 왔는데 너희 어디야?
“미안해. 트레블리 미국 활동 건에 일이 좀 생겨서. 현지 연락만 받으면 바로 끝내고 가려고. 조금만 기다려 주라.”
-너희 진짜 형들 기다리게 할래? 다른 애들은?
“지금 여기서 나 기다려주고 있어.”
-하여간 팀워크가 너무 좋아도 문제라니까. 늦어도 꼭 같이 늦더라.
한진성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금방 갈게.”
-알았다. 늘 가던 그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오케이!”
한진성과의 관계도 좋았다.
그들은 우리가 상을 받은 바로 이듬해, 2번째로 그래미에서 상을 탄 아이돌이 되었다.
역시 실력이 있는 가수들이었다.
믿고 있었다.
그들이 성공할 거라는 걸.
어쩌면 내가 보았던 진엔딩은 한진성의 그래미 수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게임 속 장면과 똑같이 재연해주지는 않더라.
이제는 현실이라 이건가.
더 이상 시스템 창이 내 앞에 나타나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시스템 창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이 없어도 내가 올리오스의 윤건하라는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solved it(해결했어)
해결했다는 엘븐 라비의 문자.
미국에서 고생하고 있을 홍우선 프로듀서에게 문자를 보낸 나는 웃으며 멤버들을 보았다.
“이제 가자. 밥 먹으러.”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멤버들이었다.
이 행복감이 오래가기를 빌었다.
올리오스가, 영원히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