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5화>
그래미 어워드를 하루 앞두고 도착한 라스베가스.
우리는 엘븐 라비와 루케 크롬블과 함께 엘븐 라비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라스베가스 중심의 스튜디오로 향했다.
물론 불투명한 유리로 내부를 처리한 벤을 타고서 말이다.
“나도 후보에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엘븐 라비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참, 한국에서는 푹 쉬었어? 몬스터즈 그 친구들은 잘 지내나?”
오랜만에 만난 엘븐 라비는 상상 이상으로 수다스러워져 있었다.
예전보다 2배는 더 에너지가 넘친다고 해야 할까.
“선배들은 다음 활동 준비중이세요. 언제 복귀할지는 모르지만요.”
우주가 그런 엘븐 라비와 템포를 맞추며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쯤인지 대략적으로라도 알 수 없나?”
“글쎄요. 저희도 잘 몰라서요.”
우주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아마 엘븐 라비가 우리의 활동 날짜와 일부러 겹치게 복귀한 일 때문에 민감한 걸 테지.
“에이, 내가 또 그럴 거 같아? 절대 안 그래. 나도 매너가 있지. 2번이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부드럽게 회유하는 엘븐 라비의 말에도 우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장 수다스러운 우주가 침묵을 지키자, 다음 타켓으로 정민을 골랐지만, 그도 고개를 저었다.
“내부 정보라서요.”
“에잉 쯧. 다들 너무하네.”
“본인이 한 짓은 생각 못하는 거야?”
내 말에 엘븐 라비가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었다.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일부러 그렇게 일정을 맞춘 건 아니라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그럼에도 내가 대답하지 않자, 엘븐 라비가 목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알았어. 이제 안 물어볼게. 화 풀어.”
그가 당시에 우리와 비슷한 일정에 앨범을 발표한 의도는 알고 있었다.
대결을 펼치고 싶었던 걸 테지.
문제는 그런 그의 행동 때문에 멤버들이 꽤나 마음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지, 혹시 그 때문에 빌보드 차트인을 하지 못했다면 나 또한 진엔딩은 날아갔을 테니까.
그 상황만 생각하면 좋게 볼 수만은 없었다.
“크흠, 좀 어색해졌구만 그래. 하하하.”
루케 크롬블이 그런 우리를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올해 그래미는 볼 재미가 있겠구먼.”
그는 테이블에 놓인 간식을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과연 그 올리오스가 K-POP 아이돌로 최초로 그래미 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한국인 최초로 신인상을 받을 수 있느냐. 이런 부분들이 가장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으니까.”
“도박 사이트에도 올라왔다면서요?”
“그래.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자네들의 수상 결과로 도박을 하고 있더라고.”
“저희로요?”
성훈의 질문에 루케 크롬블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의 레코드 상이나 올해의 앨범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무려 4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니까 말이야. 음악계에선 작년 하반기를 올리오스의 시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네. 만약 한 달 정도만 데뷔가 빨랐다면 올해의 레코드 상도 노미네이트 됐을지 모르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그가 말을 이었다.
“올리오스가 몇 개의 상을 수상할지에 대한 도박도 있는데, 볼 텐가?”
“궁금하긴 하네요.”
“참고로 가장 낮은 배당률을 가진 건 1개를 받을 거 같다는 예측일세.”
“1개라…. 신인상 정도만 받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네요.”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지. 그래미에선 올해 미국에 데뷔한 가수에게 많은 상을 주지 않았으니까.”
루케 크롬블의 말에 엘븐 라비가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더했다.
“갓 데뷔했는데, 여러 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돼서 나오지를 않으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신인상을 받을 거라는 배당률이 가장 높다네. 다른 상들의 배당률은 비슷비슷하고 말이야.”
말을 마친 루케 크롬블이 도박사들의 배당률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네. 도박사들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나는 올리오스가 최소 3개는 탈 거라고 장담하네.”
“3개나요?”
“그래. 자네들 노미네이트 된 게 신인상, 베스트 댄스, 베스트 뮤직, 올해의 노래상 이렇게 4개지?”
“맞습니다.”
“베스트 댄스 제외하고 3개. 나는 이 세 부문에서 상을 타리라 확신하네.”
우리가 수상할 거라며 확신하는 루케 크롬블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한진성이 내게 가졌던 감정이 뭐였는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당시에 아직 데뷔도 못했던 내가 한진성에게 그런 말을 했으니, 얼마나 귀여워 보였을까.
그가 나를 아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나는 말 안 할래. 시상식에서 내가 예상한 건 항상 빗나갔거든.”
엘븐 라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기를 포기했다.
오랜만에 만난 미국에서의 인연과 함께 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들과 헤어진 우리는 그래미 어워드를 진행하는 스태프에게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호텔을 소개받았다.
“여기입니다. 올리오스 이름으로 예약했고, 각 1인 1실로 잡아놨으니, 편하게 쉬시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라스베가스의 야경은 화려했다.
“역시 멋있네. 진짜.”
오랜만에 보는 라스베가스의 야경이었다.
과거에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사업가 시절 때.
“이제는 이 몸으로도 익숙한 광경이 됐네.”
그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뜻이었다.
성공.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다.
원래 사업가일 때보다 훨씬 더.
그때보다 돈을 많이 버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라고 하겠지만, 앞으로 그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행복이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돈이 척도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어느 시점에 올라오면 돈의 액수보다 중요한 건 내가 뭘 하고 있느냐였다.
그러니 고민이 되었다.
정말 내가 진엔딩을 봤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메인 퀘스트 – 그래미 수상 도전]
[올리오스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상하세요.]
[달성 시: 진엔딩]
[히든 퀘스트 보상: ???]
[보상을 오픈하기 위해선 메인 퀘스트 – 그레미 수상 도전을 성공해야만 합니다.]
나는 내심 히든 퀘스트의 보상이 이 세계에 남는 것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미래를 내가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차라리 상을 받지 않는 것도….’
스스로 생각하고도 놀랐다.
처음이었다.
나 자신의 실패를 바라는 건.
애초에 늘 성공만을 바라보고, 좇았던 삶이었으니까.
이런 생각 자체가 놀라웠다.
그 정도로 이 삶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잠이 안 오네.”
졸리지가 않았다.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래미상이.
원래 살던 윤건하의 삶이.
히든 퀘스트의 보상이.
그리고 그 이후, 앞으로의 내 삶이.
“하아.”
그래미 어워드 전날의 밤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나는 라스베가스의 야경을 보며 물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이럴 땐 와인이 딱인데.
* * *
그래미 어워드가 펼쳐지는 라스베가스의 CMC 아레나 홀.
그곳에는 수많은 슈퍼 스타와 그들을 찍으려는 기자와 파파라치들, 그리고 팬들로 가득했다.
“후우, 심장 떨리네.”
우리는 커다란 벤에 올라탄 채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레나 홀 앞을 보았다.
다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그래미라는 거대한 무대에 위압된 탓일까.
수다스러운 우주마저도 심장이 떨린다는 말을 하며 가슴을 두드릴 뿐, 다들 별말이 없었다.
“다들 왜 그렇게 긴장했어.”
운전대를 잡은 황이서가 물었다.
능청스럽게 물었지만, 그 역시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역시 밤을 꼴딱 샌 모양이었다.
“프로듀서님도 긴장하신 거 아니에요?”
“기, 긴장은 무슨. 나는 멀쩡해.”
전혀 멀쩡하지 않은데 뭘.
다 황이서와 비슷한 상태였다.
아직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차 안에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앞으로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긴장감이 역력한 차 안의 분위기.
그러는 사이 우리의 차가 레드카펫 앞에서 멈췄다.
“잘 갔다 와라. 긴장하지 말고, 상 못 받았다고 기죽지도 마. 너희는 이미 최고니까.”
황이서 프로듀서의 담담한 말과 함께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차 안에서 있었던 긴장감 가득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레드카펫을 걸어가는 우리 다섯의 걸음걸이는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사진 찍어드릴게요!”
우주는 심지어 카펫 옆에서 사진을 찍던 팬의 핸드폰을 들고 셀카를 찍어줬다.
다들 프로였다.
이제는 카메라 앞에 서는 모습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데뷔도 하기 이전, 첫 무대에 섰을 때 기자들 사이에서 어리버리하던 그때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잘하네.’
나는 기자들을 향해 웃어주며 내 이름이 적힌 판넬을 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줬다.
포토존에서 사진까지 찍은 우리는,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시상식이 있는 아레나 홀로 들어갔다.
이제 우리의 여정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물론.
‘상을 받고 못받고가 이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이 시스템은 결론을 지으려고 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익숙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처음 본 사람들과 새롭게 안면을 트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 시상식은 시작하지 않았고, 정장을 빼입은 음악계 각종 인사들이 안을 가득 메웠다.
“올리오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세계적인 디바인 클라라, 최근 몇 년간 힙합 쪽에서 알아주는 가수 립 서머, 우리를 스타덤으로 올려준 재거, 그 외에도 이름만 대도 전 세계인들이 아는 유명 프로듀서와 가수들.
“상 받으실 겁니다. 하핫.”
“올해 데뷔한 신인이 기세가 무섭네.”
“앞으로도 자주 봐요.”
“매니저 통해서 연락드릴게요. 협업합시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하다 보니, 어느새 식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올리오스를 위해 마련된 가장 세 번째 열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래미 어워드를 진행하는 MC의 오프닝 멘트와 함께 그래미 어워드의 막이 올랐다.
이제 이곳에서 상을 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후우….”
가슴이 떨린다.
뭐가 이렇게 떨릴 일이라고.
“역시 미국인가. 규모가 엄청나네.”
정민을 비롯한 우리는 그래미 초청 공연의 규모에 놀라고, 가수들의 실력에 놀랐다.
배울 점이 많았다.
한국보다 미국이 낫다.
이런 느낌보단 뭐랄까,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오프닝 공연이 끝이 나고.
여러 상들이 발표되었다.
흔히 제너럴 필드라고 부르는, 시상식 내에서도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 상들은 조금 늦게 발표되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
우리가 후보로 올랐던 상 중에서는 ‘베스트 댄스 어워드’가 가장 먼저 발표가 되었다.
그리고.
“베스트 댄스 어워드는 미구엘의 ‘Lost time’입니다.”
아쉽게도 첫 번째 상은 우리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부문이었던 ‘베스트 뮤직 비디오’도.
“존 입스의 ‘Feeling’!”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못 받는 거 아니야?”
우주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라면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베스트 뮤직 비디오에서마저 고배를 마시자 초조해진 듯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기다리자. 아직 2개 부문이나 남았으니까.”
그렇게 신인상의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시상자인, 엘븐 라비가 무대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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