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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33화 (233/236)

제233화>

“오케이! 좋았습니다.”

정상준 감독의 컷 사인과 함께 촬영장의 스타일리스트들이 서둘러 나와서 화장을 고쳐주고 땀을 닦아줬다.

“감독님, 방금 씬 어땠나요?”

“표정 연기가 너무 강렬해서 다른 포인트가 약간 묻히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은 앵글 자체가 클로즈업 한 상태라 괜찮지만, 전신 샷을 들어가면 표정 연기를 너무 디테일하게 가져가지는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정산준 감독의 디렉팅은 상당히 꼼꼼하고 디테일했다.

표정 연기부터 동작, 다른 배우와의 호흡까지.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카메라 안에 비치는 모든 걸 컨트롤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정산준 감독의 작업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박지혜 작가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지만, 나는 엄연한 연기 신인이었다.

그녀가 좋게 봐준 연기도 과거의 나를 투영한 것일 뿐, 연기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주연을 받아들인 건,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였다.

솔직히 처음으로 연기자들끼지 모이는 대본 리딩장에서도 잘 못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괜찮은데요?’

‘요즘 아이돌들은 연기력도 갖추고 있네.’

‘윤건하가 대단한 거 아닌가?’

선배 배우들, 스태프들 모두 좋은 평가를 내줬다.

나를 추천했던 박지혜 작가도 마찬가지였고.

그럼에도 이 바닥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기에 정상준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 잡아내는 감독이 내게는 더 잘 맞았다.

내 연기의 단점과 장점을 빠르게 캐치해서 다시 한번 연기의 방향을 제시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럼 다른 앵글로 한 번 더 찍겠습니다! 스태프들 현장 정리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현장이 정리되는 동안 내 자리에 앉아 대본집을 들었다.

“건하 씨, 아주 좋아요!”

드라마 촬영 현장을 찾은 박지혜 작가가 그런 나를 향해 박수치며 환호했다.

“작가님, 보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죠. 오늘은 드라마에 가장 중요한 촬영인걸요.”

대본을 다 쓰고 촬영을 시작한 덕인지,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촬영장을 찾았다.

그녀는 따로 드라마 촬영에 대해 간섭을 하진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캐릭터에 몰입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가끔 캐릭터에 맞는 방향으로 대본을 수정하겠다며, 이후 대본을 바꿔오는 경우가 있었다.

방향 자체가 좋아서일까.

정상준 감독도 그런 그녀를 굳이 말리지를 않았다.

“우리 윤 후배가 연기를 잘해.”

“아, 선생님. 오셨습니까?”

연기 경력 50년에 다다르는 베테랑 배우의 방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게 숙였다.

“허허, 됐네. 뭘 그리 요란하게 맞이하나. 옆에 작가님도 계시는데.”

“선생님, 오셨어요?”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조력자이자 최후의 빌런인, 주인공의 할아버지 배역을 맡은 분이었다.

내 연기에 대해 진심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은 분이기도 했다.

“아까 준비하면서 봤네. 역시나 잘하던데.”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연기를 준비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예 연기 쪽으로로 전념할 생각인가?”

그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뭐랄까.

원하는 정답이 정해진 질문 같았다.

“아니요. 연기를 도전한다고 해서 아이돌의 길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혹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나?”

“아이돌로서의 활동들을 전부 좋아하니까요.”

“활동을 좋아한다?”

“예. 아이돌로 무대 위에 오르는 것도, 우리를 보며 좋아하는 팬들의 함성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전부 좋아합니다.”

내 말에 선생님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연기는 그러지 않은 겐가?”

“재미를 붙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내 대답이 의외였던 걸까?

“허허허, 재미를 붙이려고 노력한다라. 이거 다른 젊은 배우들은 긴장해야겠구먼. 건하 군이 제대로 활동하면 설 자리를 잃을 테니까.”

선생님이 크게 웃었다.

나를 보는 눈에는 대견함이 보였다.

떡잎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기대주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눈빛이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메이크업을 하러 가야겠네. 오늘도 잘 부탁하네.”

“네,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던 박지혜 작가가 입술을 오므리며 감탄사를 냈다.

“드문 일이네요.”

“네?”

“선생님 말이에요. 젊은 배우들에게 칭찬을 잘 안 하시는 분이거든요. 젊을 때는 칭찬보단 따끔한 한마디가 더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서요.”

“방금 게 칭찬인가요?”

“네, 저 선생님껜 엄청난 극찬이에요. 건하 씨의 연기가 굉장히 맘에 들으셨나 봐요.”

“아아.”

참 신기한 분이었다.

“참, 건하 씨.”

“네?”

현장을 보던 정상준 감독이 물었다.

“세계적인 시상식에 초대받았잖아요. 기분이 어때요?”

“아, 그래미 어워드 말씀하시는 거죠?”

“네.”

“어…. 얼떨떨하죠. 하하.”

“부럽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게 말이에요.”

그는 촬영장을 새롭게 세팅하고 있는 스태프들을 보았다.

“저도 언젠가 그런 작품을 찍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같이 눈물을 흘리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작품 말입니다.”

그는 감독으로서의 야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많은 걸 이룬 감독임에도, 그는 큰 꿈을 품고 카메라를 들었던 거였다.

“저 친구들이 저를 따라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적어도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건 높은 연봉밖에 없거든요. 그러려면 더 성공해야 하고요.”

감독으로서 가진 책임감이 엿보였다.

익숙한 감정이었다.

나 역시 한때 많은 사람들을 이끌던 사업가였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활동에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려 있다.

소속사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연결된 방송계의 사람들, 멤버들의 가족, 거기에 다른 멤버들과 함께 방송을 찍는 스태프들.

심지어 이제는 해외 쪽 사람들까지.

혹여나 내가 잘못한다면 영향을 미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그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감독님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작품으로요.”

“그래야죠. 그러려고 세계적인 스타를 캐스팅한걸요?”

처음에는 의문이었던 감독의 얼굴에 이제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제가 말했죠? 우리 건하 씨 엄청 잘한다고.”

박지혜의 말에 정 감독이 껄껄 웃었다.

“그러네요. 하하핫, 이제야 눈이 트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세트장이 다시 세팅되었고.

“자, 그럼 촬영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다음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내가 드라마를 찍는 동안, 다른 멤버들도 바쁘게 다녔다.

우리 중에 가장 바쁜 사람은 역시 성훈이 형이었다.

가장 짧은 휴식기를 가진 후, 2개월 만에 낸 솔로 앨범.

이렇게 빨리 내도 괜찮냐는 황이서 프로듀서의 말에 성훈은 오히려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얘기했다.

“우리 올리오스에게 가장 관심이 쏠렸을 때, 솔로곡을 내면 시너지가 일어날 테니까요.”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된 이후에 올리오스에 대한 시선이 훨씬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에 대한 기준 역시 엄격해졌다.

올리오스니까 더 잘하겠지?

다음 앨범 기대해봐도 될 듯?

이제 앨범 올리면 미국 차트엔 무조건 올라가지.

이런 류의 글들이 인터넷에 많이 늘었다.

그런 상황에서 발매되는 성훈의 솔로 앨범.

-유성훈이 솔로로 나와?

-가창력은 대단하니까.

-솔직히 인정해야지.

-우리나라에서 아이돌 중에는 1황 아님?

올라간 기준에 부담감이 심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에 걸맞은 성적을 얻었다.

한국 레몬 차트 1위.

심지어 한국어 노래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도 차트인을 했다.

한국 감성에 맞는 순수 발라드라서 먹히지 않을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한 순위까지 올라갔다.

정민의 자작곡과 성훈의 보컬 조합.

솔직히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성훈이 형, 솔로 활동 끝났다면서? 고생 많았어.”

휴식기에 들어간 뒤, 숙소에서 나와 각자의 집에 살기 시작한 우리는 이제 1주일마다 한 번씩 저녁 식사 모임을 가졌다.

“하아, 죽는 줄 알았다.”

성훈이 몸이 축 늘어진 채로 눈을 감았다.

이제 막 활동을 끝냈으니, 힘들 법도 하지.

“건하 너는 드라마 촬영 어떻게 됐어?”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정민이 물었다.

“다음 주면 끝날 거야. 그래미 시상식 일정에 맞춰주시기로 했어.”

“추가 촬영은 없는 거야?”

“아마 편집 중에 모자란 곳이 있으면 추가 일정을 잡을 수 있다고는 들었어.”

“아아.”

호진이 말없이 고기를 집어 먹었다.

“맛있어?”

“좋네.”

“현진이는 좀 어때?”

“몇 달 지내서 그런가, 이제는 무리 없이 학교도 다니고 있어. 병원 입원한 것 때문에 1년 유급해서 같은 반 친구들이 1살 동생들이라고 하더라고.”

“오빠 자랑은 안 해?”

“안 해. 나 닮아서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런가.”

아마 오빠가 연예인이라는 걸 알면 친구들이 현진이를 귀찮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현진이가 의외로 그런 쪽으로 신경을 많이 쓰니까.

“그나저나 우주는 아직 안 온 거야?”

“촬영 끝나고 온다고 했는데, 조금 늦네.”

“짜식, 형들 다 왔는데 막내가 가장 늦다니. 한 번 혼내야겠어.”

“그러니까.”

오늘 갑자기 촬영 일정이 생겨서, 늦을 수 있다고 얘기를 듣기는 했다.

“죄송함다!”

우주가 헐레벌떡 개인실로 들어왔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우주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앉았다.

“너도 양반은 아니다.”

“무슨 말이야?”

“방금 네 얘기 하고 있었거든.”

“아, 역시 본 거야? 오늘 우주카페 시즌 3 마지막 화 올라오는 날인데.”

“말고.”

우주가 눈을 끔뻑였다.

“너 지각하는 거 때문에 한 번 혼내야겠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엑. 나 일하다 온 건데?”

우주가 난처한 얼굴로 우리를 보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농담이야. 막내를 어떻게 괴롭히겠어?”

“으으, 진짜 너무해.”

“대신 벌금은 내. 앞으로 지각하는 사람들은 지각비 내야겠어. 저번에 정민이도 그렇고 스케줄 때문에 늦는다고 해도 말이야. 다들 어떻게 생각해?”

“나는 찬성이야.”

“나도.”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정민과 호진은 즉각 찬성표를 던졌다.

“나도 그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성훈도 찬성표를 냈다.

솔로 활동 중에 참여하지 못했을 때, 대신 저녁값을 계산했었으니까.

“우주 너는?”

“찬성이긴 한데…. 오늘부터 받는 건 아니지?”

그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물었다.

“한 번은 봐줄게.”

“고마워. 다음엔 절대 안 늦을 거야.”

“지각비를 얼마 낼지는 천천히 정하고,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빨리 먹자고.”

내 말에 다들 잔을 들었다.

숙소를 나오면서 우리의 생활엔 변화가 생겼지만, 애들은 여전하다는 걸 느꼈다.

우주는 여전히 활발했고, 성훈이는 여전히 무뚝뚝한 정을 가졌고, 호진이는 웃음이 많았고, 정민이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설사 올리오스의 여정이 끝이 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이는 영원할 거라는 걸.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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