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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32화 (232/236)

제232화>

한국에 돌아온 우리는 며칠간 인터뷰에 시달렸다.

“사람들 진짜 많더라.”

호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그러게. 깜짝 놀랐다니까? 우리 예전에 한국에서 1등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래미에 대한 질문이 절반 이상이었지?”

“응.”

“그래미 노미네이트가 역시 대단하긴 하구나.”

호진과 우주가 인터뷰 때를 떠올리며 서로 대화를 하는 동안 성훈은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성훈이 형, 뭐해?”

“응?”

나와 눈을 마주친 성훈이 액정 화면을 내밀었다.

“방 보고 있어.”

“바로 집 구하려고?”

“그래야지. 프로듀서님이 말했잖아. 숙소 생활 그만하고 나가도 좋다고.”

그의 말에 정민이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형은 어디 쪽으로 이사 가려고?”

“사무실이랑 가까운 곳, 차도 사서 운전해서 출퇴근하려면 면허도 따야겠네.”

성훈은 꽤 디테일하게 잡힌 계획을 나열했다.

“일반 가구는 중고시장에서 구해볼 거고, TV나 컴퓨터 같은 건 조금 새 제품으로 사야겠지. 지금 알아본 게 있는데 잘만 구하면 생각보다 절약할 수 있겠더라.”

그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계획한 듯 막힘없이 술술 말을 이어갔다.

“형! 바로 나가려고?”

우주가 허겁지겁 달려와 물었다.

“그래야지. 꾸물댈 필요도 없고,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기도 하고.”

“우, 우리가 싫어서 나가는 건 아니지?”

우주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성훈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야. 싫었으면 같이 그룹을 하지도 않았겠지.”

성훈은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그래. 개인의 시간.

숙소 생활은 공동체 생활이다.

비록 각자의 방이 있다지만, 사실상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중이었다.

2인 1실을 사용하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많았다.

아마 그런 게 답답했던 걸 거다.

사람의 성향은 다르니까.

어쩔 수 없지.

“성훈이 형 떠나면 아쉬울 거 같은데.”

“우주 너는 남아 있겠다고 마음먹은 거야?”

우주는 다소 아쉬운 듯한 얼굴로 입술을 내밀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 형들이 다 나간다면 나도 나가야지. 혼자 이 넓은 방을 혼자 쓸 수는 없으니까.”

호진이는 인터뷰가 끝나고 온전히 휴식기에 돌입하면 곧바로 짐을 뺄 거고.

“정민이 너는?”

“나는 카이 선배님이 괜찮은 곳이 있다고 소개해주셨어. 아마 직접 보고 결정할 거 같긴 한데. 거기 아니어도 마음은 나가는 걸로 정해졌어.”

정민이마저 나간다는 말에 우주의 입이 쩍 벌어졌다.

“건하 형은? 형은 안 나갈 거지?”

“나?”

“응!”

우주를 실망 시키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나도 활동 좀 잠잠해지면 알아보려고. 여기저기 자문은 구해뒀었어.”

“으으윽….”

내 말에 우주는 진심으로 실망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다 나가는 거네….”

목소리에 울적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이 숙소에서 3년이나 같이 지내서 정도 많이 들었는데.”

우주가 숙소의 거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다들 나간다니, 나 혼자만 여기 남아있기도 그렇고. 이후에 다른 후배들도 써야 하니까….”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민하던 우주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도 나가야겠네.”

그 목소리에 많은 미련이 남아 있었다.

아마 우주에게 숙소는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었을 거다.

엄한 아버지와 그를 비꼬는 형들 사이에서 외롭게 자랐던 우주에게 숙소와 올리오스는 집과 가족처럼 느껴졌을 거다.

다들 그곳을 떠난다니, 섭섭함을 가장 크게 느끼는 걸 테지.

나는 그런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족들이 다 같은 곳에 살지 않는다고 가족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잖아?”

“건하 형.”

“한 번 올리오스는 영원한 올리오스야. 우리가 따로 지낸다고 해도 우리는 같은 팀이고, 가족이야.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말아.”

“혀엉….”

눈물을 글썽이던 우주가 내게 안겼다.

“안 가면 안 돼?”

“그건 안 돼.”

“으으….”

조금은 급작스럽지만 그렇게 우리들의 숙소 생활의 마지막 방점을 찍게 되었다.

올리오스 3년 차.

이제 다들 숙소를 졸업하고 각자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떠났다.

이게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기를 바랐다.

* * *

“크흠, 흠, 어때요?”

“…….”

“아이 참, 빨리 말 좀 해줘요. 계속 대본만 보지 말고.”

“…….”

나는 오늘 박지혜 작가와 유명 영화감독인 정상준 감독을 만나기 위해, 박지혜 작가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녀에게서 메일로 대본을 건네받았고, 오늘 사무실에 도착해서 대본의 수정본을 받고 읽었다.

그런 내 모습을 박지혜 작가가 두 손 모은 채로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박 작가님. 건하 씨가 굉장히 좋은 가수이고 스타라는 건 알지만, 너무 매달리시는 거 아닌가요?”

박 작가의 옆에서 정 감독이 한 마디 거들었다.

아무래도 그는 내가 이번 대본의 주인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 감독님, 제가 저번에 보내드린 영상은 보셨나요?”

“예, 봤습니다. 건하 씨가 놀랄 만큼 연기를 잘하더라고요. 하지만 조연의 연기와 주연의 연기는 다르다는 거, 아시잖아요.”

“맞다. 정 감독님은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못 보셨구나. 죄송해요. 정 감독님도 현장에 계셨다고 착각했네요.”

박 작가가 웃으며 정 감독을 보았다.

“조연급 연기자처럼 보인 건, 그때 드라마 CP였던 설승원 PD가 진짜 필사적으로 편집해서 그런 거예요. 그럼에도 모두의 뇌리에 남는 연기를 한 거라고요.”

“그렇습니까?”

“물론이죠!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쓴 대본이에요. 만약에 건하 씨가 하지 않는다면 저 이번 프로젝트에서 손 뗄 거예요.”

이 작가님이 부담을 엄청주네.

박지혜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이번 드라마를 하기 위해 글로벌급 OTT채널과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다.

전부 사전 제작으로 진행될 예정이고, 한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동시 개봉을 한다고도 했다.

거대한 자본이 들어갔다는 그녀의 말대로 대본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썼다는 게 느껴졌다.

“이 대본이 지금 완결까지 있는 겁니까?”

“맞아요! 전부 읽어볼래요?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건하 씨가 우리랑 하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어요.”

내가 읽은 건 10부작 드라마의 6화 부분까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최근, 결말을 망치는 드라마가 많았기에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는 게 사실이었다.

“조금만 더 읽어볼게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10화까지 대본을 전부 보여줬고.

그 대본을 끝까지 다 읽은 나는 마음을 정했다.

작가와 감독 모두 훌륭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낸 사람들.

대형 OTT 회사의 투자.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무대.

올리오스뿐 아니라 ‘윤건하’를 알릴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다.

“좋습니다. 같이 할게요. 내용이 너무 좋네요.”

“역시! 건하 씨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건 앞서 말한 요소들이 아니었다.

형사였던 주인공이 망나니로 유명한 재벌 3세의 몸에 빙의하면서, 수많은 비리를 쫓으며 온갖 부폐로 얼룩진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

다른 존재에 빙의했다는 소재가 유독 내 마음을 이끌었다.

지금의 나와 똑같았으니까.

“시작부터 결말까지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하나만 물어볼게요. 주인공을 다른 캐릭터에 빙의했다는 설정을 넣은 이유가 있나요?”

“우선 건하 씨의 지금 환경과 가장 잘 맞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저랑 잘 맞는다고요?”

박지혜 작가를 유심히 보았다.

혹시 들킨 걸까?

내가 다른 세계에서 빙의한 다른 윤건하라는 걸?

살짝 가슴이 철렁이는 걸 느끼며 그녀를 보았다.

“잘 나가는 재벌집 아들이자, 아이돌, 그리고 이제 연기까지 하는 연기자가 되잖아요? 사실상, 새로운 직업을 시도할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되니까요. 언제든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을 본 것이 아닌, 윤건하라는 아이돌이 가진 본질을 보았다는 사실에.

“아아.”

그랬기 때문일까, 드라마 대본 속 주인공은 지금의 나와 유사한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나는 대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본을 보았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끌림은 동질감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들어요. 정말 좋은 거 같습니다.”

나는 대본 속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끝내 자신의 본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지만, 바뀐 삶에 만족하며 더 밝은 미래를 추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설사 돌아가지 못했다고 해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꼭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많다고.

“계약금과 거래 조건에 대해서는 회사와 상의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좋아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주연 배우인 건하 씨에겐 업계 최고 대우를 약속할 테니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재밌는 작업이 되겠네요.”

정 감독도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우리는 악수를 나누며 빛나는 미래를 약속했다.

잘 될 거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잘될 거야.

* * *

미국 활동이 끝나고, 올리오스는 본격적으로 휴식기에 들어갔다.

이전처럼 빠르게 앨범을 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기 때문일까.

멤버들은 다들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정민이는 주기적으로 작업실에 출근하거나, 카이의 작업실에 가서 함께 작업을 하곤 했다.

유일하게 솔로 활동이 예정되어 있던 성훈은 짧은 휴식기를 가지며 앨범의 준비하기 바빴다. 거기다가 이사 문제 때문에 우리 중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호진이는 가장 먼저 숙소를 떠났다.

휴식 기간에는 최대한 가족들과 있을 거라고 했다.

현진이 다 나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고, 우리는 모두 그를 이해했다.

그 정성 때문일까, 오랜만에 만난 현진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아져 있었다.

우주는 본격적으로 예능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 촬영 때문에 중단했던 우주카페 시즌 3를 시작했다.

한 달 정도는 그 이상의 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나간 한국 예능에서 우주는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나는 드라마 촬영을 시작했다.

사전 제작이고 촬영 기간도 널널해서 생각보다 바쁘지는 않았다.

최성국 실장님이 알아봐준 집을 구매하고 나 역시 숙소를 떠났다.

우주가 정말 슬퍼하더라.

휴식기에도 주기적으로 만나서 떠들 시간을 만들면 되니까.

일적인 동료가 아닌, 가족처럼 느꼈던 사이라 더 애틋했던 모양이었다.

다들 각자의 방향을 향해 열심히 달려나갔다.

올리오스라는 그룹뿐만 아니라, 그 멤버들 개개인까지 더욱 부각시키는 것.

이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국 활동은 즐거웠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 와중에도 그래미 어워드의 시상식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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