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마지막 콘서트가 끝이 났다.
“즐거웠어요! 굿바이, 할리우드!”
우리는 현장 가득 모인 팬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팬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우리는 미국의 마지막 콘서트 촬영을 끝냈다.
백스테이지로 내려가자,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정민이는 그곳을 향해 V를 그리며 인사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재율 PD가 씨익 웃었다.
개인 일정 때문에 우리보다 며칠 뒤에 미국으로 날아온 영상제작팀의 기재율 PD.
과거 올리오스의 GH 콘서트 브이로그, 앨범 제작 비하인드 촬영, 우주의 너튜브 촬영 등. 올리오스의 영상 제작에 전부 참여했던 GH 엔터의 메인 PD였다.
‘나중에 올리오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방영할 다큐를 촬영하죠. 공중파에 올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너튜브 채널에 올려도 돼요. 그것만으로도 파급력이 충분할 겁니다. 우리의 성적이 좋을수록 더 좋겠죠.’
미국 활동의 브이로그를 찍어야 한다며 강력하게 주장했던 그였다.
방영은 우리의 미국 활동이 끝난 뒤.
왜 그 시점이냐고 물었을 때 기재율 PD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브이로그는 미국 활동을 위한 게 아닙니다. 미국 활동 이후의 올리오스의 미래를 위한 겁니다.”
기재율 PD가 두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었다.
“올리오스가 실패하면 그 실패를 딛고 미래를 나아갈 수 있는 드라마를, 성공하면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멋들어지게 만들 거거든요. 어떤 과정을 찍든 올리오스에게 인간미를 더해줄 거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줄 겁니다.”
브이로그의 메인 콘셉트는 공감.
올리오스가 모두에게 환호를 받는 동시에 인간미를 가진 아이돌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야 오래 갑니다. 불꽃처럼 화려하게 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굳고 두꺼운 심지가 남아서 은은하게 올리오스라는 그룹이 있었음을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그는 올리오스가 더 오랫동안 사랑받는 아이돌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 활동을 하는 내내 우리들을 찍었다.
처음 미국에 방문하고 작은 소극장에서 고생하는 모습은 기재율 PD가 아닌, 황이서 프로듀서, 김예리 스타일리스트가 찍어줬다.
그러나 그 이후엔 기재율 PD가 직접 거의 매일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찍었고, 어쩌면 소소한 일상까지도 전부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우리의 실패, 공연의 아쉬운 결과, 점점 높아지는 인지도와 대책 회의를 위해 모인 우리들.
그리고 점점 늘어나는 관객들과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즐거워하는 우리들의 모습.
미국 데뷔 직전까지 연습을 놓지 않던 우리와 데뷔 이후 활동하는 올리오스. 그리고 많은 일들을 보내며 일희일비했던 우리의 솔직한 모습들까지.
빌보드 차트 1위를 찍었을 때 우리를 찍던 기재율 PD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오로지 카메라에 비치는 올리오스를 보여주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 기재율 PD의 태도 때문일까.
몇몇 상황에선 우리는 그런 기재율 PD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연기를 하지 않은 솔직한 모습들이 카메라에 비쳤다.
그리고 그 브이로그 영상의 마지막이었다.
오늘부로 미국 활동이 끝이 났으니까.
“건하 씨!”
늘 카메라를 들었을 땐 침묵을 지키던 기재율 PD가 나를 불렀다.
“네, PD님.”
“오늘 미국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쳤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기분이요?”
“네. 솔직한 기분을 그냥 말해주시면 됩니다.”
“브이로그 마지막에 쓰시려는 거군요?”
“그렇죠.”
카메라 뒤편에 있던 기재율 PD가 크게 웃었다.
“음…. 좋았어요. 사실 그 한마디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기분이 좋았어요. 무대를 가득 채운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고, 조금 더 좋은 무대를 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있었고요. 하지만…. 후련하네요. 이번 활동도 무사히 끝났다는 게.”
내 말에 기재율 PD가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
나는 잠시 고민했다.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 오갔다.
함께여서 즐거웠다. 사랑해주셔서 고맙다. 미국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재밌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막상 한마디 하라고 하니 막상 뭐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어렵게 떠오른 한마디.
“팬 여러분들과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올리오스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기재율 PD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겪었던 일들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왔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고,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크흠, 괜히 눈물이….”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이 세계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울컥해졌다.
“건하 씨?”
그런 나를 보던 기재율 PD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정말 그만두는 거 아니죠?”
“아닙니다. 그만두다니요. 하핫.”
“아니, 방금 뭔가 이별을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었거든요.”
“이번 활동이 끝나면 한동안 휴식기에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건하 씨도 감정적인 사람이네요.”
“안 그래 보였습니까?”
“멤버들 중에선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기재율 PD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장 이성적이라니.
성훈이도 있는데.
“기 PD님도 한마디 하세요.”
“저요?”
“네, 저희랑 같이 계속 고생했잖아요. 조명도 안 되면 그렇지 않아요?”
“하하, 괜찮습니다. 원래 PD는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역할이거든요. 앞으로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말을 마친 그가 낄낄 웃었다.
“생각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내 끝인사는 끝이 났다.
“이거 다큐는 언제 올라오나요?”
“한국 돌아가면 바로 올라올 겁니다. 올리오스의 활동을 바란 팬들에겐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는 소스가 될 거고, 신규 팬들에겐 올리오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소스가 될 겁니다. 총 6부작으로 진행되는데, 아마 브이로그가 끝날 때 쯤이면 그래미 상의 결과가 발표날 겁니다.”
“그렇군요.”
기재율 PD는 태연하게 카메라를 껐다.
“이제 다른 멤버들한테 물어보러 가시나요?”
“물론이죠. 같이 가시겠습니까?”
“아니에요. 이제 메이크업 지우러 가야죠.”
멤버들의 멘트는 나중에 방송으로 봐도 될 거다.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다들 이번 활동으로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할 테니까.
낯선 타국, 어려웠던 활동, 그리고 전에 없던 성공까지.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빨리 메이크업을 지우고 좀 쉬어야지.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비행기에서 볼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둬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박지혜 작가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자기 원고를 꼭 봐달라고 했다.
나를 위한 원고를 다 완성했다고.
미국 활동을 방해하진 않을 테니, 한국에 오면 꼭 보라고.
거절하면 배신자라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러니 연기 준비도 해야지.
영화를 보고 선배님들 연기도 살펴야 할 테니까.
“이제 돌아가는구나.”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오래 떠나 있던 건 전생에서도 몇 없었던 경험이었는데.
“한국 공기가 어색하면 어쩌지?”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분장실로 향했다.
* * *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전세기가 아닌,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갔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찾아갔던 루케 크롬블의 집에서 그가 자기 전세기를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거기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 해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허허, 이거 참…. 그렇게 단호하니 알겠네. 미국으로 다시 오면 꼭 방문하게. 그날은 지금보다 더 맛있는 저녁을 차려줄 테니.’
우리의 성공을 기념한다며 커다란 파티를 진행한 루케 크롬블이었다.
수많은 할리우드 셀럽들과 빌보드의 스타들과 함께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거기에 우리가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올라왔구나.
루케 크롬블의 파티를 즐기며 우리는 그런 생각을 했다.
다만.
‘사람 진짜 많네.’
연예인들로 북적북적한 곳은 조금 거북했다.
뭐랄까.
가면을 쓴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느낌이랄까.
그래서 조금 거북했다.
그렇다고 그냥 떠나버릴 수는 없어서 함께 즐겼다.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사업가 시절의 능력을 펼친 시간이었다.
다양한 직종의 스타들과 안면을 익히고 명함을 주고 받았다.
“엄청 많이 받았네.”
앞으로 이 명함과 전화번호들이 미래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줄 거다.
루케 크롬블 씨에겐 감사하다고 따로 연락을 해야겠다.
잠시 명함을 보며, 루케 크롬블과 보낸 파티를 떠올리던 나는 기재율 PD를 보며 물었다.
“기 PD님.”
“무슨 일인가요?”
“잘 찍혔나요?”
“여러분들 브이로그요?”
“네.”
“계획했던 것보다는 더 잘 나왔죠.”
기 PD가 씨익 웃었다.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예, 아주 장난 아니거든요. 서사가 좋아요. 인간 승리라고 해야 할까?”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마저 엿보였다.
“이렇게 성공적인 스토리를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네요.”
그는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이번 영상은 제가 작업한 영상들 중에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할 겁니다. 자신할 수 있어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으로 도착하고 공항에서 입국 인터뷰를 마친 뒤, 올리오스의 미국 활동 브이로그가 GH 엔터 너튜브에 올라갔다.
-올리오스 미국 도전기 Vol. 1, 도전 그리고 실패.
기재율의 장담대로 브이로그의 1화는 GH 엔터의 영상물 중에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했었던 소극장 공연.
사람들이 거의 없어 객석의 반도 채우지 못했던 그 공연들.
그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
거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에 불만이 가득한 우리들의 모습까지.
막연하게 성공하는 모습만 보였던 올리오스의 성과의 뒤편에 자리한 실패를 본 사람들은 당황하면서도 감탄했다.
그들은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올리오스가 끝내 빌보드 1위를 찍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성공했던 게 아니구나.
-미국 사람들도 냉정하네.
-저런 상황에서도 끝내 빌보드 1위를 찍은 거잖아.
-미쳤다.
영상의 마지막엔 우리들이 이번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가졌던 회의가 찍혀 있었고.
새로운 돌파구를 물색하는 우리들의 진지한 토론으로 끝이 났다.
총 조회 수는 300만.
15분짜리 브이로그, 아니 이건 다큐였다.
일종의 올리오스의 다큐멘터리.
활동을 잠시 쉬기로 했던 시기에도 우리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역시 기재율이라고 해야 할까.
대단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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