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30화 (230/236)

제230화>

그래미 노미네이트 발표.

그래미는 전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음반업계의 최고의 상.

가장 권위가 높은 상으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주목하는 상이었다.

음악계의 아카데미 상이라는 말을 듣는 그런 상.

물론 미국에서 잘 나가는 작품들만 수상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음반계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규모가 어마어마했기에 상이 주는 권위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동시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래미 수상이라는 원대한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그래미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닌 상이었다.

그건 우리에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 중 그래미상을 수상한 가수는 단 한 명이 유일했으니까.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명성을 떨친 대선배님.

그 이후로 그래미를 수상한 한국 가수는 없었다.

물론 여러 가수들이 그래미 어워드에 이름을 올리긴 했다.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래미 어워드의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올리오스, 올해는 한국 가수가 그래미를 정복할 수 있을까?

-여러 선배의 고배, 올리오스는 어떻게 될까?

-올리오스의 수상 가능성은?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표 아이돌이 된 올리오스, 그 열풍의 이유는?

한국의 언론사들은 전부 올리오스의 그래미 수상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한국 아이돌 이슈는 올리오스가 집어삼키고 있는 중이었다.

빌보드에서 1위라는 좋은 성적까지 따냈으니까.

올리오스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GH 엔터의 홍보팀이 전력을 다해 대중에 어필했고, 그 결과 콘서트를 하는 지금까지 온통 올리오스의 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연타석 홈런이야.’

GH 엔터의 홍보팀은 또다시 사무실에서 불이 날 정도로 뜨겁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동안 무대 뒤 그림자에서 쉬지 않고 뛰는 사람들이었다.

올리오스라는 그룹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모터를 돌려주는 엔진 같은 친구들.

홍보팀을 비롯한 아이돌 팀 전부가 이번 올리오스의 그래미 노미네이트 홍보에 열중하고 있었다.

‘세계 무대에서 1등을 차지하는 걸 좋아하니까.’

이건 아이돌 팬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이슈였다.

세계적인 스포츠 무대에서 뛰는 선수가 우승과 득점왕을 하는 것에 한국 팬들은 열광한다.

스포츠 팬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비주류 스포츠의 인기에 불을 지핀 것도 해당 종목에서 우승을 하는 전설적인 선수 덕분이었다.

그런 것처럼 타국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의 뉴스는 한국 국민들에게 최고의 관심사였다.

이렇게 이슈가 된다면 설사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올리오스라는 그룹의 이름이 더더욱 깊이 박힐 것이다.

아이돌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는 건 앞으로 올리오스의 활동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설사 올리오스 전원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들의 이목을 잡을 수 있겠지.’

최강훈 대표는 오늘도 전화기를 들었다.

“예, 국장님. 오랜만입니다. 저야 잘 지내죠. 뉴스 봤냐고요? 아, 잘 봤습니다. 아주 신경을 많이 써주셨더라고요? 하하하. 저희 애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출연 말씀입니까? 아, 그게 조금 스케줄을 봐야 알 거 같은데요.”

올리오스의 위상이 빠르게 올라갔다는 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 * *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야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키야! 우리가 올라갔어!”

“그래미! 우리가 간다!”

“끄아아아!”

멤버들이 환호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고생했어! 진짜로!”

퀘스트가 완료되어 우주의 춤 능력치가 소폭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미.

진엔딩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드디어 그 관문의 초입에 발을 올린 거다.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시, 후보에는 올라야지. 너, 너무 기뻐하지는 마. 아직 후보에 오른 거니까.”

하나로 모두 올라갔다는 말에 작곡가인 정민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심 엄청 기뻐하고 있다는 게 표정에서 드러났다.

흥분을 최대한 억누르며 진정을 유도하는 것이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웠다.

입꼬리가 씰룩씰룩거리고 코가 움찔움찔거렸다.

당장이라도 환호를 지르고 싶지만 참는 모습이었다.

뭐랄까.

한 명은 긴장감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솔직하게 기뻐해도 돼. 후보에 오른 것도 엄청 잘한 거잖아.”

“크, 크흠, 그, 그래도 될까?”

“당연하지! 정민이 네 노래로 된 건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두 팔을 쭈욱 뻗었다.

“됐다아아아아!”

많은 감정이 담긴 외침이었다.

빌보드 1위로도 해소하지 못한 어떠한 열정과 갈증을 해소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해금 때문이겠지? 그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심사위원한테 먹힌 게 아닐까?”

한참 환호한 정민이 냉정을 되찾으며 내게 물었다.

“어느 정도 먹혔을 거야. 하지만 그게 성공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기본적으로 노래와 가사가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좋아할 정도로.

파격적인 성공을 했고, 한순간에 1위에 등극했다.

그리고 1위를 무려 한 달 가까이 지켜냈다.

우리가 콘서트를 하는 이 순간에도 은 아직 순위권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그 정도였다.

정민이 만든 노래는.

노래가 가진 어떤 요소 하나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나 좋은 밸런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도 돼.”

“고마워. 사실 내 노래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정민의 작곡, 성훈의 가창력, 호진의 춤, 우주의 상큼한 매력과 예능력, 그리고 부끄럽지만 내 외모까지.

다섯의 호흡이 좋은 균형을 유지했고, 그 결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정민이 말한 것처럼 누구 한 명이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헛기침을 하던 정민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고,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어. 특히 건하…. 네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옛날에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를 떠올린 정민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때 기억 나? 우리 처음 봤을 때. 초면인 네가 내 노래를 따끔하고 속 시원하게 피드백 해준 날. 그때부터 많은 게 바뀌었던 거 같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야, 상 받은 것도 아닌데 벌써 수상 소감을 말하면 어떻게 해.”

“그냥. 수상 소감이 아니라, 즐겁고 기뻐서. 이 얘기는 하고 싶었어.”

나는 정민의 어깨를 토닥였다.

갑자기 울기 시작한 정민의 모습을 보던 멤버들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미국에 온 뒤로 유독 감성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 정민이었다.

이전까진 엄마처럼 다른 멤버들을 토닥이던 그였지만, 아마 내심 마음의 고민이 많았던 걸 거다.

빌보드 1위를 했을 때도, 지금도.

자신의 노래였기에, 혹여나 실패하면 자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부담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앞으로는 부담 갖지 말고 차분하게 작업해도 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잖아? 안 그래?”

“고마워.”

이런 모습을 보면 아직 어린애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애늙은이인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늙은이가 맞지.

영혼은 30대 후반이니까.

“자, 그럼 다들 퇴근 준비하자. 이제 다 끝났으니까. 노미네이트 됐다고 해도 할 일은 해야지.”

콘서트 말고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어차피 그래미 수상작이 발표되는 건 콘서트가 다 끝난 이후.

아직 시간은 한참 남았고,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였다.

올리오스의 미국 첫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 * *

그래미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여기저기서 말이 오갔다.

우리를 인터뷰하기 위해 다양한 언론사가 우리를 찾아왔고, 올리오스라는 이름이 한국과 미국에 널리 퍼졌다.

특히 미국 기자들보다 한국 기자들이 더 많이 오는 걸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에서 어떤 상황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난리 났나 봐.”

“만약에 우리, 진짜로 그래미 수상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한국 공항에서 나가지 못할 정도로 인파가 몰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약간 과장 섞어서 우리를 찍으려는 미국 파파라치보다 한국 기자들이 더 많았다.

여러 TV 프로그램과 원격 인터뷰도 진행했다.

활동할 때만큼이나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우리는 미국에서 있을 마지막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전세기에 올라탔다.

마지막 콘서트가 있는 곳은 미국 LA, 할리우드.

동부 끝 뉴욕에서 시작해서 서부 끝 LA에서 끝이 나는 콘서트 일정이었다.

루케 크롬블이 빌려준 전세기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럭셔리 여행의 끝판왕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에서 잘 나가는 스타들은 다 전세기를 탄다던데.”

전세기에서 제공하는 과자를 집어든 우주가 말했다.

“우리도 이제 슈퍼스타가 된 건가?”

우쭐거리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하는 우주였다.

“슈퍼스타는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가능하겠어?”

“당연하지. 나는 올리오스 까들까지 전부 미치게 만들 준비가 됐는데?”

그는 과자를 한 입 베어 물며 어깨를 씰룩거렸다.

과자를 입에 문 채로 장난스럽게 웃는 표정이 무척이나 얄미웠다.

마을의 악동으로 유명한 아이가 익살스럽게 놀리는 거 같다랄까.

“어때? 다들 미칠 거 같지 않아?”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카메라로 찍었으면 분명 쇼츠로 500만은 찍었을 거 같은데.”

“나중에 비행기에서 내리면 한 번 더 보여줄게.”

우주가 윙크를 하며 씨익 웃었다.

“으으, 심심하다.”

우주가 발을 쭉 뻗은 채로 휘휘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와 나를 제외하면 다들 자기 세계에 푹 빠졌거든.

정민은 내 앞자리에서 이어폰을 낀 채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감상하느라 바쁘고.

호진은 이제는 익숙해진 듯 비행기에서도 목베개를 하고 안대까지 쓴 채로 잠에 들었고.

그리고 성훈이는 비행기에 오른 채로 이제는 유명 영미 소설의 원서를 읽었다.

다들 이제 긴장이 풀린 듯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주 역시 그러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수다를 즐기는 우주에겐 다소 심심한 모양이었다.

“형.”

“응?”

“나랑 가위바위보 할래?”

“갑자기? 왜?”

“이기는 사람이 공항에 가서 아까 내가 지었던 표정을 짓고 춤 추기하자.”

“너 그러려고 나한테 그 춤 췄던 거지?”

“헤헤헤.”

부정하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주다운 제안이었다.

“그래. 좋아. 그런데 나, 태어나서 가위바위보 한 번도 진 적 없는데 괜찮겠어?”

“나도 동네에서 잘하기로 유명했거든?”

우주가 자신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 보!”

* * *

“너 뭐해?”

성훈은 공항 앞에서 춤을 추는 우주를 보며 물었다.

“몰라. 묻지 마….”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는 표정은 그 누구보다 익살스러웠지만, 목소리엔 쓸쓸함이 가득했다.

카메라 앞에선 프로네. 프로야.

눈짓으로 이유를 묻는 성훈에게 나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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