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화>
홍 기자의 기사 이후, 나와 윤택수 회장의 거래 이야기가 잠깐 오고갔다.
그러나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짧은 이슈였다.
오히려 빠른 미국 활동을 이해한다는 한국 팬들과, 그 덕분에 을 들을 수 있었다는 외국 팬들의 훈훈한 말들이 오갔다.
아마 빌보드에서 1위를 차지했고, 아이돌을 계속 할 거라는 말 덕분인 것 같았다.
해당 기사가 올라간 뒤, 윤택수 회장은 황룡그룹의 재정적인 투자를 통해 본격적으로 황룡엔터를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내 활동과는 별개로 내가 성공한 모습을 보니, 엔터 사업에 큰 가능성을 느꼈다는 발표도 함께했다.
-직접적으로 올리오스를 도와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이미 아들이 나보다 대단한데, 뭘 돕습니까? 이젠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진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해당 기사를 썼던 홍 기자님은 미디어Y를 그만뒀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를 GH의 홍보팀으로 추천했고, 황이서는 홍찬식을 경력직 과장으로 스카우트했다.
그렇게 기사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미국에서 스케줄은 계속 이어졌다.
콘서트 날짜가 정해지면, 우리는 콘서트 며칠 전 스테이지를 찾아가 무대의 장비와 구조를 확인하는 과정을 꼭 거쳤다.
이렇게 한 번 확인을 해줘야 마음이 놓였다.
“형은 너무 깐깐하다니까.”
그런 우주도 나를 따라와서 무대 장비와 현장을 몇 번이고 살폈다.
“여기 동선을 잘 살리면 좋을 거 같은데요?”
콘서트 세트를 담당하는 현장 프로듀서와 함께 동선을 조정했다.
이렇게 큰 무대에선 카메라와 움직임을 같이 해야 했기에, 깐깐한 조정이 필요했다.
“음향은 이 정도로는 부족할 거 같아요. 저기 끝까지 안 들릴 거 같은데. 무대가 원형이라 조금 더 소리가 커야 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음향과 조명의 각도 그리고 기타 여러 무대 장비들에 대해 프로듀서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나름 3년 정도 했다고, 우리도 무대 장비의 세팅에 대해 꽤나 많이 익숙해졌다.
어디에서 어떤 조명을 쏘는 게 가장 이상적일지, 이런 둥그런 원형 형태의 무대에선 동선을 어떻게 짜야 할지에 대한 여러 요소들 말이다.
무대 장비 상, 360도 전체를 다 채우지는 못하지만 상당 부분이 관객들에게 열려 있는 무대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뜻이고, 3층까지 있는 실내 공연장 특성 상, 오디오를 가장 신경 써야만 했다.
“오늘 간단하게 리허설하면서 음향이랑 조명 맞춰보면 될 거 같습니다.”
한국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모든 의사소통을 영어로 한다는 것뿐 아니라, 일의 처리 방식도 조금 달랐다.
바쁜 일정임에도 퇴근 시간이 되면 모두가 당연하게 퇴근했고, 업무 중에는 더 체계적이고 정확한 업무 지시가 이루어졌다.
어디가 좋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한번 해볼게요.”
우리야 어차피 이들과 이번 무대에서 처음 만나는 거였으니까.
오히려 오래 맞춘 호흡 덕분에 한국의 무대 스태프들이 일하기는 더 편했다.
여기는 의사 전달이 어렵다고 해야 할까.
“이거 소리가 좀 많이 먹는데. 이러면 관중들이 환호 지를 때 소리가 다 묻혀.”
무대를 마친 우주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번에 랩 파트를 맡았다 보니, 유독 마이크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딕션이 중요하고 전달력이 중요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음향 한 번만 더 맞춰볼게요.”
우리는 다시 한번 리허설을 진행했다.
우주의 마이크가 자꾸만 문제를 일으켜 몇 번이고 다시 진행했다.
우주도 예전 같았다면 좋게 좋게 넘어갔을 테지만, 그도 확실히 프로다운 모습이었다.
‘이젠 자신만의 기준이 확고해졌네.’
좋은 변화였다.
너무 엄해서 스스로를 망치지만 않는다면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킬 원동력이 될 테니까.
“고생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진땀을 흘렸다.
우리가 이렇게 깐깐하게 일일이 다 지시하고 얘기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TV에서 비춰지는 모습은 순한 남자애들로 보였을 테니까.
“후우, 무대 세팅은 언제든 힘겹네.”
정민이 축 늘어진 채로 한숨을 내뱉었다.
“고생 많았어. 이제 곧이네.”
“으으, 예매는 꽉 찼다면서.”
“맞아. 아까 우리가 봤던 무대 공연장이 전부 사람들로 가득 찰 거야.”
차에 올라탄 멤버들이 앞으로 있을 무대 공연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이야기를 했다.
“빌보드 1위 하고 첫 콘서트인데, 잘할 수 있겠지? 우리 막 망신당하는 거 아니지?”
“하던 대로만 하면 그럴 일 없어.”
덜덜 떠는 우주에게 성훈이 똑부러지게 말해줬다.
물론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후우, 내일도 연습하러 나가야겠네.”
“당연하지.”
“왜 우리는 더 유명해졌는데, 데뷔하기 전이랑 똑같은 걸까? 연습, 스케줄, 연습, 스케줄, 연습, 연습, 스케줄.”
우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말도 맞았다.
다른 그룹보다 유독 빠르게 달려왔던 우리였다.
내 고집 때문에 다들 내 템포를 따라와주느라 고생했다.
애들의 목표는 빌보드도 그래미도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하곤 했다.
내가 억지로 이 친구들을 여기까지 이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 위안을 가졌다.
나는 옳은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정이 모두 끝이 났을 때, 그때가 되면 이제 조금씩 쉬면서 여유를 찾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놀고 싶은 거 놀고.
사람들 만나고 싶은 거 만나고 말이다.
“이번 스케줄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한동안 푹 쉬자고 얘기하자. 각자 여유 가지고 쉬면서, 프로그램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하고.”
“그럴까? 그것도 좋겠다. 나는 요즘 너튜브 중에서도 스케치 코미디를 하는 채널들이 재밌어 보이던데, 한번 해보려고. 건하 형처럼 연기를 잘하지는 않지만, 연기력이 엄청 필요하지 않을 거 같아서 말이야. 재밌을 거 같아.”
우주도 나름대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나는 개인 앨범 활동을 하면서 노래 커버 채널을 만들 거야. 선배님들 노래들 다 직접 부르면서 라이브 방송도 하는 거지. 아니면 미국에서 복면 쓰고 노래 부르는 히든 싱어 컨셉의 채널에 나가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성훈이도.
“나는 세계적인 작곡가들이랑 작업하는 게 꿈이라서, 한동안에는 미국에서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날 생각이야.”
정민이 역시 목표가 확고했다.
“난 집에서 현진이랑 엄마랑 같이 여행을 좀 가려고. 한 달 정도 제주도 살이를 생각하고 있어. 다 끝나면…. 춤을 좀 더 배우고 싶어.”
호진이까지.
멤버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 보였다.
젊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건하는?”
“형은 뭘 할 생각이야?”
“나는 엔터 사업을 하고 싶어. 트레블리 애들을 키워봤잖아. 아이돌을 희망하는 애들 중에서 재능 있는 애들을 육성하는 게 목표야. 바로 당장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진엔딩을 보고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다.
어떤 세계에 남든 내 결정은 하나였다.
엔터 사업을 해보는 것.
즐거운 일이 될 거다.
‘프로듀서 엔딩이랑 뭐가 다르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다르다.
이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전부 이룬 뒤에 새로운 목표를 만드는 것이니까.
“잘 어울린다.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정민이 무한 긍정으로 내 말에 힘을 더했다.
“그때 새 그룹 만들면 정민이 너한테 곡 몇 곡 의뢰할 거니까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
“하하하, 알았어. 그럼 준비하고 있을게.”
“나도! 나도! 나는 랩이랑 예능 가르쳐줄게!”
“춤은 내가 가르쳐도 될까? 채남영 트레이너 형만큼 잘할 수 있어.”
“노래 필요하면 연락해. 페이는 확실하게 받을 거다.”
이제 점점 미래에 대한 얘기의 빈도가 높아진 우리였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가 그릴 청사진을 이야기하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보다 더 좋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 * *
[콘서트에서 무대 등급 SSS급을 맞으세요.]
[성공 시: 올리오스 인지도 상승, 올리오스 멤버의 랜덤한 스탯 상승]
이제는 마일리지 포인트가 필요 없을 거라는 걸까.
성공에 대한 보상에 마일리지와 포인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제까지는 콘서트가 끝나면 마일리지 포인트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는 인지도 상승과 랜덤한 스탯을 올려준다는 메시지가 함께 떴다.
‘바뀌었어.’
히든 조건을 성공한 뒤부터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빌보드 1등을 했기 때문일까.
퀘스트를 완료할 때의 보상이 달라졌다.
“열심히 해보자.”
“콘서트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여기까지 찾아온 팬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고로 열심히 하는 거다.”
“오케이!”
“후회하지 않게끔 하자.”
우리는 손을 모으며 의지를 다졌다.
멤버들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간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어?’
보이지 않았다.
늘 내 눈에 흐릿하게 보였던 무대 등급.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보여주던 객관적인 지표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제 더는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이.
보여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왜? 대체?’
나도 모르게 관객들이 있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봤다.
의도치 않았던 정보의 부재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노래는 시작되었고, 내 몸은 수없이 연습한 대로 아무런 문제 없이 움직였다.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를 따라 이동하는 조명.
따라오는 카메라.
콘서트의 등급을 신경 쓸 때는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아닐 때는 춤을 추며 관객들을 보았다.
우리를 보기 위해 와준 사람들.
무대 등급의 수치가 아닌, 사람들이 보였다.
신기했다.
분명 몇백 번이고 본 광경인데, 등급표 하나 없다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재밌네.’
사람들과 호흡하는 느낌이 좋았다.
등급표가 있을 때도 나를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끽했었는데, 그게 없이 무대에 서니 뭐랄까.
‘시원하네.’
산 정상에 올라 주변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확 트인 시야가 기분이 좋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치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처럼,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내 파트가 다가왔고.
-♩♬♪~~!
나는 정확한 타이밍에 앞으로 나가 가사를 뱉었다.
일상을 잊고 우리만의 환상으로 잠시 근심을 잊어버리자는 가사의 후렴구를 부르자마자.
와아아아!
환호성이 들렸다.
등급표가 없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무대는 무조건 SSS급이라고.
* * *
GH 엔터의 본사.
홍보팀 한석원 팀장과 GH 엔터의 최강훈 대표가 그래미 어워드의 메인 사이트를 보고 있었다.
“저, 저는 못 보겠습니다. 대표님, 떴습니까?”
한석원 팀장이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최강훈 대표에게 물었다.
“하아.”
“대표님? 설마 노미네이트도 안 된 겁니까?”
“이거 참….”
“대표님?”
오늘은 올해 그래미 어워드의 후보자를 발표하는 날.
최강훈 대표는 올리오스가 혹시 후보에 올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사이트에 들어갔다.
한 팀장과 함께 말이다.
가슴을 졸이며 후보 발표를 기다렸는데, 눈앞에 펼쳐진 건.
-올해의 노래상 노미네이트 : 올리오스 .
올해의 노래 상에 올리오스가 이름을 올렸다는 거다.
그리고.
-신인상 : 올리오스.
-베스트 댄스 어워드 : 올리오스 .
-베스트 뮤직 비디오 : 올리오스 .
1곡으로 무려 4개에 부문에 올리오스의 이름이 올라갔다.
“됐네요.”
최강훈 대표는 긴장이 확 풀리며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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