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홍찬식 기자.
올리오스가 데뷔하던 3년 전에는 미디어Y의 연예부의 막내였지만, 지금 그는 벌써 과장급의 기자가 되었다.
사실 과장도 허울 좋은 명패일 뿐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조회 수로 훌륭한 실적을 기록했지만, 사내 정치에 미숙했고, 라인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늘 소외받는 입장이었다.
실적은 좋지만, 그게 자신의 입지를 드라마틱하게 올려줄 정도는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기사를 썼다.
그런 자신에게 해외 파견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부장이 물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
미국에서 3년만 갔다 오면 곧바로 연예 3부 부장 시켜주겠다고.
말단 부서지만, 부장 자리도 큰 거라고 말했다.
“3년 금방이야. 대리에서 고작 3년 만에 과장. 물론 실적이 좋으면 부장도 노려볼 수 있다고? 승진이 빠르면 나중에 우리 홍 사원도 높은 자리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하하하.”
이제 막 대리를 달았기 때문에, 혹은 내 실력을 인정 받았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미국으로 가면 바로 과장 달아야지. 특파원 지부에서 핵심으로 일할 인력이 대리면 되겠어?”
진급을 부장이 직접 말했을 때, 눈치챘어야만 했다.
이제 막 3년차가 되어서 대리를 단 자신이 바로 과장이 되는, 그런 편한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야만 했다.
이제 막 대리를 단 사원에게 미국 출장을 권했다는 건.
그 곳이 이제 막 진출해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기에, 유배나 다름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그는 미디어Y의 뉴욕 지부로 떨어졌다.
사실상 이제 시작하는 해외 파견장에 말이다.
아무것도 없었다.
끈도 없었다.
직급만 과장이지, 그 외에 아무도 없었기에 실무도 전부 스스로 해야 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여기저기 발로 뛰어 다녔지만, 따낼 건 하나도 없었다.
이제 막 미국에 온 자신이 뭘 할 수 있을까?
어디에 끈도 하나 없는 내가 뭘?
그래서 기사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미디어Y는 미국의 소식을 대부분 한국에서 기사로 접하고 그걸 빠르게 번역하는 식으로 신문을 써왔다.
-홍 과장, 이렇게 소스가 느리면 우리도 보낸 이유가 없지 않겠어?
사실상 지부장이 되어버린 홍찬식 과장이 할 수 있는 건 죄송하다는 말밖에 없었다.
-이러다간 금방 돌아오겠어? 노력 좀 해.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상황에 올리오스가 미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쉽게도 별도의 개별 인터뷰는 없이, 대부분은 기자 회견, TV 프로 출연이 많아서 사실상 언론사 독점 인터뷰는 없었다.
실망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거라도 해야 했으니까.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 잘리지 않으려면.
그때 올리오스를 만났다.
그들은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홍 기자님이면 언제든 해드려야죠!”
“정말 고마워요.”
“뭘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과거에 받았던 그 작은 일을 기억해서 도와준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크흠, 고마워요. 그럼 바로 질문을 드릴 건데, 짧으니까 빨리 할게요. 혹시라도 곤란한 질문들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줘요.”
“알겠습니다.”
최근에 빌보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한국 가수의 단독 인터뷰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기자가 아니지.
나름 글자밥 먹던 나인데, 어떻게 놓칠까.
홍찬식은 미리 준비했던 질문들을 물었다.
최대한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찾으려고 애를 썼고, 그의 고민과 고뇌가 인터뷰 질문에 담겼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많이 활동하다 보니, 벌써 한국이 그립긴 한데요. 최대한 힘내고 있습니다.”
부담감 때문일까?
뭔가 빡 하고 오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홍찬식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미리 준비했던 질문들을 떠올리며 되새겼다.
어떤 기사가 가장 울림이 있을까.
“미국에서 빌보드 1등 했을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나요?”
아, 너무 뻔한 질문이었나?
차라리 다른 질문을 했어야 했나?
그러나 이미 말은 뱉었고, 올리오스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저는 아무래도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여동생 건강이 많이 좋아졌거든요. 이제 오빠도 성공했으니까 너도 할 수 있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어서요.”
“카이 선배가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제가 이렇게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사람이라서요.”
멤버들이 각자의 사람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홍 기자의 질문을 윤건하가 대답할 차례였다.
* * *
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잠시 고민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게 이슈를 만들 수 있을까.
홍 기자가 좋은 기사를 써서 조금 더 좋은 입지를 가질 수 있는 그런 기사.
‘그런데도 내가 아직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이야기.’
좋은 게 하나 있었다.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면 가업을 이어 받았어야 했다는 이야기.
그게 내가 아이돌을 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다.
윤택수 회장도 봐줬던 조건이었고.
GH의 관계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멤버들에게도 넌지시 얘기했었다.
정확히는 빌보드 1위를 했을 때부터.
‘나 빌보드 1위 못하면 올리오스 그만뒀어야 했어.’
그 말을 했을 때 모두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보았던 게 생생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게 조건이었어. 내가 아이돌 활동 계속하는 조건.”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었어?”
“적어도 황이서 프로듀서님이랑 대표님은 알고 있었어.”
“와…. 우리한테는 왜 이제 말한 거야?”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말 안 했어.”
사실이었다.
내가 그만둔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을 갖길 원치 않았다.
그 부담은 나만 지면 되니까.
나 혼자만 짊어지면 되는 거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우주와 정민이 진심으로 화를 냈다.
“앞으로 그런 건 무조건 미리 얘기해. 우리는 팀이야. 네가 떠나면 남은 우리는 어떨 거 같았는지 생각 안 해본 거야?”
진지하게 나를 걱정하며 해주는 말에 나 역시 당황했었다.
“맞아. 형 혼자만 그런 거 알고 있다가 정작 우리 모두가 실패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리고…. 그런 얘기를 안 해줘서 미국 활동 못 할 뻔했잖아.”
미국 활동에 부정적이었던 생각 때문이었을까.
우주는 예상보다 더 충격을 먹은 듯했다.
내가 미국 활동에 집착한 이유를 드디어 깨달은 그의 눈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미안하다. 너희한테 상처를 주려고 숨겼던 건 아니야.”
그런 나를 가만히 보던 성훈이 조용히 한마디 했다.
“이런 일 있으면, 앞으로 꼭 상의해. 네 마음은 알지만, 우리는 너랑 같이 활동만 하는 어린애나 부하 직원이 아니니까. 우리는 팀이잖아. 안 그래?”
“…맞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팬들이 알면 건하 너 큰일날 수도 있었어.”
“알고 있어. 그래서 필사적으로 1위를 하려고 노력했던 거고.”
절박했다.
뭐든 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멤버들을 억지로 미국까지 이끌었다.
이렇게 될 걸 예상은 했다.
결과가 좋으니까 다 좋다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고생 많았다. 혼자서 그런 비밀 숨긴다고 힘들었을 텐데.”
성훈이 어깨를 두드렸고, 그 다음은 호진이 나를 껴안으며 물었다.
“그럼 이제 계속 올리오스로 활동하는 거지?”
“당연하지.”
그 대답을 들은 호진이 더욱 세게 나를 껴안았다.
“그럼 됐어.”
우주도 정민이도 나를 안았다.
내가 빌보드 차트 1위에 대한 비밀을 밝힌 그날, 우리는 다섯이 서로를 안았고 서로에게 조금 더 돈독해지는 날이 되었다.
미안하다고 백 번은 더 말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팬들에게도 알려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많이 떠올랐어요.”
“황룡그룹의 윤택수 회장님 말하신 거죠?”
“네, 아버지께서 미국에 갈 때 하신 말씀이 있거든요.”
말을 마친 나는 멤버들을 돌아봤다.
나와 윤택수 회장 사이의 일을 들은 멤버들은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하라는 신호.
이제는 일종의 헤프닝이 된 둘 사이의 내기를, 홍 기자를 통해 내보낼 생각이었다.
“어떤 비밀이죠? 궁금한데요.”
홍 기자가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보았고, 나는 그 기대에 응답했다.
“빌보드 1등을 하지 못하면 저는 황룡그룹의 후계자가 되어 경영을 하기로 했었습니다.”
“억? 저, 정말입니까?”
“네.”
“이, 이거 기사로 써도 돼요?”
저 순진한 감탄과 당황을 봐라.
다른 기자들과 달리, 바로 손익을 생각치 않고 때묻지 않는 모습이 유독 인상 깊은 사람이었다.
“네. 이제 1등을 했으니까요. 저는 올리오스로 계속 남아있을 수 있으니, 숨길 필요는 없죠.”
“오…. 그러네요. 그럼 이젠 황룡그룹에 돌아가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이돌을 은퇴하면 갈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나는 양옆에 있는 우주와 성훈이 형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저는 멤버들이 진짜 좋거든요. 죽어도 아이돌로 죽을 겁니다. 하하하.”
“그럼 이것도 편집 없이 가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홍 기자가 숨을 깊게 삼키더니 우리를 잠시 바라봤다.
“그 느낌으로 사진 한 장 찍을까요?”
“어떤 느낌으로요?”
“멤버들끼리 어깨동무하는 느낌이요. 진부하기도 한데, 약간 멤버들간의 신뢰와 우정이 느껴져서요.”
나는 눈짓으로 동의를 구했고, 멤버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홍 기자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찍었고, 곧 엄지를 치켜들었다.
“최고입니다!”
그날 저녁, 홍 기자의 기사가 올라갔다.
-독점, 올리오스 인터뷰.
그리고 그 기사의 마지막엔 나와 윤택수 회장의 내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1등을 하지 못한다면 아이돌을 그만둬야만 했던 건하의 고군분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홍 기자님, 기사 잘 쓰네.”
혹여나 올리오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길 텐데.’
무조건 생길 거다.
이렇게 올리도록 미디어Y 데스크에서 허락하진 않았을 거고, 홍 기자의 독단이었을 테지.
명목뿐이라지만, 미국 지부의 책임자니까 그 정도의 권한은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게 문제가 돼서 불이익을 받는다면….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좋은 곳을 소개시켜 드려야겠다.’
GH 엔터의 홍보팀도 괜찮지 않을까.
* * *
-야, 이렇게 좋은 소스를 고작 이렇게밖에 못 써? 양념 좀 치면 되잖아!
홍 기자는 이를 갈았다.
이런 식으로 유배를 보내는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이 따낸 단독 특종에 대해 왈가왈부 소리쳤다.
분명 이대로 데스크에 올렸다면 자기들이 멋대로 고치고는 자신의 이름을 쏙 빼놓았을 놈들이.
화가 났다.
짜증도 났다.
이대로는 못 한다.
적어도 자신을 이렇게 막 대하는 곳엔 절대 못 있는다.
‘홍 기자님, 혹시라도 저희랑 인터뷰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 도와드릴게요. 말만 하세요.’
홍 기자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올리오스를 떠올렸다.
사람의 호의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자신이 과거에 도와준 작은 일 하나로 이렇게까지 해주는 착한 애들.
분명 인터뷰를 더 주겠다며 시간을 마련할 애들이었다.
그런 애들의 시간과 이슈, 그리고 소식을 이런 사람들을 위해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만에 미디어Y에서 과장까지 달았다.
줄은 없지만, 나름대로 실력은 있다고 인정도 받았다.
자신의 기사가 곧 자기 PR을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니 그만둬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다.
기자가 안 되면?
할 건 많아.
“부장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홍 기자는 사직서를 내밀었다.
-야, 그게 무슨 소리….
“사직서는 서면으로 곧 내겠습니다. 인수인계 해줄 사람 보내주세요.”
-야, 야 인마!
그는 전화를 끊었다.
어디든 취직할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