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오늘 스케줄은 미국 활동 초기에 한 번 나갔었던 웰먼 쇼 출연.
좋았던 방송 결과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가 1위를 했다는 상황 때문인지, 우리의 인터뷰가 방영된 지 한 달 정도 되고 나서 담당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더 출연해줄 수 있어요?
작지 않은 도움을 받았던 상대였다.
웰먼 쇼가 우리의 폭발적인 성장의 기점이 된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재거의 라디오쇼가 반응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라디오와 TV의 파급력은 확실히 달랐다.
빚을 졌으니, 갚아야지.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랐지만 말이다.
“최근 화제의 인물들이죠? 환영해주세요. 올리오스입니다!”
“화아아아!”
“꺄아아악!”
우리가 무대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현장 관객들의 환호가 가득했다.
일전에 왔을 때는 예의상의 박수가 전부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리를 보는 관객들의 눈빛이 달랐다.
슈퍼스타.
동경하는 스타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
그리고 환호.
저들의 반응을 보며 느꼈다.
우리가 정말 많은 것을 바꿨구나.
“어서 와요. 오랜만…은 아니죠? 얼마 전에 봤으니까요.”
웰먼이 직접 일어나 우리를 맞이했다.
대우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미국에 첫 발을 내딘 아시아의 아이돌 그룹에서, 몇 달 만에 빌보드를 점령한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되었네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실감이 잘 안 납니다.”
“미국 파파라치를 처음 겪었는데, 한국보다 더 심하더라고요.”
파파라치들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와 있었다.
한국에서 찍힌 사진들은 애교였다.
가끔은 대놓고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찍곤 했다.
눈에 보이는 위치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때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이게 미국인가 하고 생각하며 넘겼다.
“하하하, 미국의 파파라치들은 집요하죠.”
웰먼은 이해한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래미 수상 후보에 올라갈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솔직한 심정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에 우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후보에도 안 올라갔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요. 열심히 해야죠.”
“겸손하시네요. 하하.”
웰먼 쇼는 특별한 문제 없이 무사히 끝났다.
한국 관련 에피소드보단 대부분 미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인터뷰가 전부였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을 보여줬던 일들도 하나하나 썰로 풀어냈다.
약간의 MSG를 더하는 우주의 썰 솜씨가 나날이 늘어났다.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MC인 웰먼은 물론 현장을 찾은 객석의 손님들의 시선도 전부 뺏어버렸다.
이게 1류 예능돌의 힘이구나, 싶었다.
1시간이 넘는 생방송 촬영이 끝이 났고, 웰먼은 우리를 찾아와 연락처를 나눴다.
“이러면 올리오스가 인기스타가 돼서 연락처를 교환하는 그림처럼 보여서 곤란한데….”
그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이제 미국에서도 올리오스를 자주 볼 것 같네요.”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웰먼 쇼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니, 황이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현지 프로덕션이랑 콘서트 일정 때문에 조율한다고 하던데, 얘기가 다 끝난 모양이었다.
그의 표정이 밝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성훈의 질문에 황이서가 실실 미소를 지었다.
“픽스 났다.”
콘서트 일정까지 확정이 났다.
원래는 미국 활동 시작 전부터, 콘서트 일정을 잡으려고 노력했던 황이서였다.
미국 활동 일정에 맞춰 콘서트도 진행하려고 했으나, 현지 조율과 스테이지 대여 관련 문제로 인해 콘서트 날짜가 다소 뒤로 밀렸다.
그래서 지금, 황이서는 묵은 체증이 해소된 것 같은 얼굴로 우리에게 외쳤다.
콘서트 일정이 픽스됐다고.
“한동안은 TV 프로 쇼 활동을 조금 줄이고 콘서트 준비에 전념하자.”
“네, 알겠습니다!”
미국 활동의 대미를 장식할 콘서트는 총 5번.
이것만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벌써 미국에 온 지 4달 정도 됐네요.”
“그렇게 됐나?”
“김치가 그리워.”
“한국 돌아가고 싶어….”
오랜 타향살이 때문인지, 이제 미국 활동이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다들 조금은 풀어진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황이서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계속 숙소 생활을 할 거니?”
“숙소 생활이요?”
“그래. 이번에 번 돈만 해도 한국에서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 텐데. 만약 한국에서 기숙사 나가서 따로 살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이제 그럴 짬도 됐으니까.”
벌써 그렇게 됐구나.
이제 우리는 3년차 아이돌.
데뷔한 지 3년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1등을 해낸 성공적인 아이돌이 되었다.
GH 엔터의 손익 분기는 예전에 넘었고, 이제는 회사에 막대한 순이익을 넘겨주는 효자 아이돌이 되었다.
그 정도 되면 숙소에서 벗어나 자기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데뷔 초는 물론, 자리를 잡아가기까지의 아이돌은 관리해야 될 것 투성이었다.
어디를 가는지, 누굴 만나는지, 혹여나 잘못된 사진이 찍히는 건 아닐지 등.
손익 분기마저 넘기지 못한 데뷔 초반에 만약 관리 소홀로 사건이 터진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아이돌이 그대로 망해서 어쩔 도리가 없게 된다.
그래서 데뷔 초엔 대부분 아이돌을 한 숙소에 함께 재우며 관리했다.
그렇다고 100% 통제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사고를 줄일 수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멤버 개개인이 숙소를 나가 개인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면?
소속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
즉, 소속사에서 소속 아이돌의 숙소 생활을 끝내는 경우는 2가지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공했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컨트롤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서 잘할 거라는 기대가 있거나.
‘우리의 경우는?’
둘 다일 거다.
이제 올리오스 멤버들 모두 숙소를 나가서 혼자 지낼 경제력이 있었고, 지금까지 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았다.
흔히 잘 나가는 연예인에게 다가오는 온갖 유혹들에도 철저하게 벽을 세우고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래야만 그룹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지를.
성공하지 못한 아이돌이 어떻게 되는지를.
특히 우주의 모습이 의외였다.
“죄송합니다. 관심이 없어서요.”
우리한테 보여주는 모습과 달리, 업무 외적인 외부의 유혹에 대해선 단칼에 잘라내서 의외였다.
아무튼 황이서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건.
“이제 진짜 따로 살아도 된다는 건가요?”
“그래. 몬스터즈도 3년 차부터 각자 숙소 나가고 각자 따로 집 구했어. 너희도 언제든 나가도 좋아. 물론 남아 있다고 해서 관리비 받지는 않을 거니까, 그대로 있어도 되고.”
황이서의 말에 멤버들 모두가 기뻐하면서도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개인의 자유가 생긴다는 건 좋았지만, 다들 떨어져서 생활해야 한다는 게 아쉬운 것이 분명했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도 돼.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한참 남았으니까.”
“알겠습니다.”
“아무튼 알려줄 건 다 알려줬으니까 난 이만 간다. 다들 푹 쉬고. 고생했다.”
황이서가 떠나고, 가만히 있던 우주가 물었다.
“형들은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집에 가야지. 엄마랑 현진이랑 같이 지내려고.”
호진이는 이미 답을 내린 듯했다.
평소부터 가족 사랑이 남달랐던 그였다.
현진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나 보다.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말에 바로 결정을 내린 걸 보면.
“나는 고민 좀 해보려고. 사무실을 작업실로 쓰는데 숙소랑 사무실이 가까워서 굳이 옮길 필요 있나 싶어.”
정민은 아직 고민 중이었고.
“나도 나갈 거다.”
성훈도 나갈 생각이 확실해 보였다.
“건하 형은?”
“나도 고민 중이야.”
정확히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진엔딩을 본 이후에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래서 집을 구하는 것도, 계속 숙소에서 지내는 것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우주 너는?”
“나는…. 나가고 싶지 않아. 혼자는 쓸쓸하거든. 하지만 형들이 다 나가면 나도 나가야지.”
목소리가 다소 쓸쓸해보였다.
지금처럼 같이 생활하지 못한다는 것에 오는 외로움이 섞여 있었다.
유독 사람과 정에 민감한 우주였으니까.
“천천히 얘기해보자. 지금은 이렇게 다 같이 넓은 집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그래! 우울한 생각은 하지 말자.”
억지로 우울함을 떨쳐낸 우주가 힘찬 목소리를 냈다.
올리오스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높아지는 우리의 위상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달라졌다.
* * *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일이면 콘서트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 전에 있을 마지막 TV 프로그램의 녹화.
콘서트가 있다고 홍보 아닌 홍보도 했다.
사실 이미 예매는 다 끝나서 큰 의미는 없지만, 굳이 얘기하는 건.
우리가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는 걸 대중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올리오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나요?”
묘하게 낯익은 얼굴.
하지만 그렇다고 친숙한 인상은 아닌 한 남자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국 사람이었다.
자세나 차림을 보아 하니, 기자 같았다.
그가 다가오자, 경호팀이 그를 밀어냈고.
“어쿠쿠!”
당황하며 뒷걸음질쳤다.
“누구시죠?”
내 질문에 남자가 말했다.
“아, 미디어Y의 연예부 홍찬식 기자입니다.”
“어? 홍찬식 기자님?”
본인의 이름을 소개한 기자의 말에 우주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누구지?
우주가 저런 반응을 보이면 분명 고마운 사람일 텐데?
“아.”
기억났다.
미디어Y의 연예부 홍찬식 기자.
우리의 첫 데뷔 무대였던 YBC 뮤직에어의 출근길을 찍어주고, 우리에 대한 좋은 기사를 많이 써줬던 기자님이었다.
그의 기사 덕분에 당시에 주목을 받지 못했던, 신인 올리오스는 조금씩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조명을 받지 못하던 신인에게 페이지 하나를 전부 할애할 정도로 정성을 쏟아줬던 기자였다.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올리오스를 취재하러 왔습니다. 이제 과장 달았거든요.”
처음 우리를 취재한 게 3년 전이었는데, 벌써 과장을 달다니.
“엄청나네요. 과장이라니. 축하드려요.”
“아닙니다. 미국 지부로 발령받으면서 과장으로 진급한 거라서요. 하하하.”
“그런데 기자님과 인터뷰는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는 거 같지는 않던데.”
“역시 안 되겠죠?”
울적해하는 그의 모습에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
미디어Y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건너서 들었는데.
이렇게 버선발로 달려올 정도로 급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 우릴 도와줬던 사람이었다.
이대로 돌려보내는 건 예의가 아닌데.
“우리, 다음 스케줄까지 15분 정도 여유가 있지?”
나는 말하면서 멤버들을 돌아봤다.
“15분이면 인터뷰 하나 정도는 뚝딱할 수 있겠네.”
“아, 누구 인터뷰 해주실 분 없나?”
눈치를 챈 애들이 어색한 발연기를 펼치며 홍찬식 기자를 보았다.
“마.침. 기.자.님.이. 계.시.네?”
그런 우리와 눈을 마주친 홍찬식 기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고마워요.”
“뭘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렇게 우리는 옛날에 받았던 은혜를 갚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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