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우리가 선택한 건 엘븐 라비 이전에 미국 대륙을 흔들었던 팝 가수, 제임스 포터의 곡이었다.
최고의 R&B 가수라고 불리는 제임스 포터의 가창력과 피아노 하나만으로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던 노래.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노래를 아카펠라로 부를 생각이었다.
재거 쇼의 가장 트레이드 마크인 초청 라이브.
게스트로 온 스타들이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걸 듣는 것으로 이 쇼의 시작을 알렸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했던 게 바로 아카펠라.
올리오스의 노래가 아닌, 미국 대중에게 가장 익숙할 히트곡을 준비했다.
베이스를 맡은 호진과 바리톤을 맡은 우주가 허밍과 비트를 불렀다.
그 위로 나와 정민이 화음을 섞었다.
성훈을 제외한 4명이 멜로디를 만들었다.
메인 솔로인 성훈이 의 가사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부르는 .
우리는 노래에 집중했다.
재거의 반응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호흡을 100퍼센트 맞추며 합주를 해야 하는 것이 아카펠라의 특징.
다들 편안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아카펠라를 하자고?
미국행이 결정되었던 그 날.
미국에서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 무엇을 보여줘야 하느냐는 얘기를 나눴을 때, 멤버들에게 제안했던 방법이었다.
길게 본다면 결국 우리의 실력으로 대중을 매료할 자신이 있었다.
동시에 짧은 순간에 보여줄 수 있는 강렬한 임팩트.
쇼맨십이 필요했다.
단순히 노래가 좋다는 것만으로 승부하기엔, 미국은 넓으니까.
그래서 했던 제안이었다.
-괜찮을까?
-충분히 해볼 만하긴 하겠네.
-우리가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니까.
우리는 완벽한 아카펠라를 위해 몇 개월이나 연습했다.
원래라면 조금 더 늦게 보여줄 생각이었지만, 엘븐 라비가 주목을 끌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행동하지 않으면 묻힐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첫 무대로 모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가장 유명한 대중적인 곡을 선정했다.
나는 멤버들을 보며 화음을 자아냈다.
서로를 마주 보며 박자를 맞췄고, 성훈의 보컬을 받쳐줬다.
그의 보컬은 이제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을 _정도로 좋았으니까.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는 주인공인 호진을 보조하듯, 우리는 성훈의 보컬이 돋보일 수 있도록 화음을 더했다.
-♪♩♭♪~~.
우리는 서로를 응시하며 마지막까지 화음을 맞췄다.
그리고 다 끝난 뒤에야 재거와 다른 스태프들을 볼 수 있었다.
“오, 와….”
그는 입을 쩍 벌리며 우리를 보고 있었다.
미국 최고의 힙합 뮤지션이자, 현재 미국 최고의 음악 프로 MC인 그가 아무런 리액션도 하지 못했다.
라디오 방송에 2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그는 뒤늦게 정신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미쳤는데? 와, 솔직히 나 지금 이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았어. 근데 기대 이상인데? 제임스 포터가 이 노래 들었으면 분명 연락했을 거야. 와….”
그는 머리를 쥐어 싸매며 흔히 영화에서 자주 보던 미국식 제스쳐를 취했다.
“다들 들었어? 혹시 라이브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너희는 최고의 공연을 놓친 거야.”
미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선곡한 건, 확실하게 먹힌 것 같았다.
우리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며 성공을 확신했다.
통했다.
제대로 통했어.
“이건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오는데. 원래 질문 몇 개를 생각해 뒀는데, 방금 다 잊어버렸어. 이쯤 되니까 너희 노래가 진짜 기대되는데?”
“조금 이따가 바로 들려줄 수 있어.”
우주가 때맞춰 그의 멘트를 받았다.
“크으, 그럼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뻔한 인터뷰 시작하자고. 왜 여기 왔는지, 방송국에서 얘기하던 그런 것들 말이야. 솔직히 그런 것보다 노래를 몇 곡 더 듣고 싶지만…. 작가들 눈치가 보여서.”
재거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그와의 토크쇼를 이어갔다.
뜨겁게 예열된 현장의 분위기가 좋았다.
* * *
미국 필라델피아의 외곽에 거주하는 코디는 힙합을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가족들과 형제들의 소울이 담긴 흑인 힙합은 그의 가슴을 고동치게 했고, 자신이 한 단체에 소속되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그에게 있어 힙합은 단순히 노래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강렬한 비트, 힘찬 멜로디에 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힘에 대한 가사까지.
다른 어떤 노래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노래 장르였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발라드는 그저 유행을 따라가는 천박한 노래고, 락은 올드한 노인네들이나 듣는 유행이 지난 옛날 장르였다.
오로지 힙합.
그것이 최고였다.
그런 그가 가장 싫어하는 노래 장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K-POP.
여리여리한 동양인 남자들 여럿이 우르르 나와서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꼴불견이었다.
몇 년 전부터 스믈스믈 고개를 들던 K-POP은 지금 미국 안에서도 제법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자애들 사이엔 K-POP이 상당히 넓게 퍼져있는 듯 했다.
그런 상스러운 노래가 뭐가 좋다고.
동양인이 얼굴에 하얗게 분을 바르는 모습도 싫고, 간드러진 목소리도 싫었다.
코디에게 K-POP은 그냥 최악의 장르였다.
과거 랭스 티버처럼 하이틴 분위기의, 여자들을 중심 고객으로 생각하는 대중 노래 말이다.
그런 K-POP 가수가 자신의 최애 가수인 재거가 진행하는 라디오 쇼에 나왔다.
“재거가 미친 건가? 대체 왜…?”
분명 방송사의 압박이 있었을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 긍지 높은 래퍼가 천박한 장르의 가수를 불렀을 리 없지.
“그렇다고 안 들을 순 없으니.”
재거의 라디오쇼는 매일 똑같고 지루한 일상을 사는 코디에게 한 줄기 빛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걸 듣지 않는다고? 그럼 그날은 최악의 하루를 보낸 셈이다.
그랬기에 들었다.
올리오스라는 K-POP 그룹의 아카펠라를.
“음, 꽤 잘 하네.”
흑인 혼혈의 제임스 포터가 부른 를 상당히 잘 소화했다.
아카펠라로 부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라이브 실력은 상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장르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게 된 건 아니었다.
“쯧, 그래봤자 여자들과 너드들이나 좋아하는 노래지.”
혀를 차며 일에 집중했다.
미국 마트의 캐셔로 일하는 그는 고객들을 상대하며 오늘도 작위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응?’
재거쇼에 나온 올리오스라는 그룹이 자신들의 앨범 타이틀곡이라며 부르는 노래가 귀에 팍팍 꽂혔다.
분명 일하고 있는 중임에도 노래가 자꾸만 그의 뇌리를 자극했다.
“뭐야 이거?”
노래가 좋다.
음원 재생인가 싶기도 했지만, 중간에 들리는 호흡과 마이크 특유의 퍼지는 소리를 보면 분명 라이브였다.
펑크한 R&B 느낌의 댄스곡.
자꾸만 고개를 까딱거리게 하는 흥겨운 리듬에 코디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거렸다.
‘이상해.’
분명 K-POP은 너드들이나 듣는 노래인데.
왜 이렇게 좋은 거지?
이렇게 좋으면 안 되는 거잖아.
그는 핸드폰을 들어 재거쇼의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선 다섯 명의 동양인 가수들이 서로를 보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다.
꼭 자신이 형제들을 볼 때와 비슷한 유대감이 그들 사이에서 느껴졌다.
“…….”
코디는 입을 다물고 그들의 공연을 멍하니 지켜봤다.
“저기요. 이봐요!”
기다림에 지친 손님이 자신을 부를 때까지.
“아, 죄송합니다!”
손님의 물건을 계산해주던 코디는, 자기가 방금 들었던 올리오스의 신곡을 흥얼거리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K-POP이 싫었다.
* * *
“아주 좋았어! 정말 최고였어!”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쇼의 진행자 재거가 박수를 쳤다.
그는 연신 환호하며 우리의 노래를 극찬했다.
“청취자들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거 같아. 지금 분위기가 아주 좋아.”
실시간 반응도 좋았다.
우리들의 공연을 SNS에 올리는 이들도 꽤 보였다.
-아카펠라 좋네.
-얘들 라이브 실력 진짜 괜찮은데?
-한국에서도 실력 좋기로 유명했었음.
-탄탄하네. 지금 전곡이 다 라이브라는 거잖아?
-아까 중간에 음원 하나 있었어.
└음원이 있었다고? 뭐였는데?
-그래도 빌보드에 비비긴 어렵지.
-노래 좋은데, 이거 다른 가수 꺼랑 비슷한데.
긍정적인 댓글이 많았다.
물론 SNS가 반응의 전부는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보고 저런 말을 했을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면 재거가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겠지.
“아주 좋았어! 특히 너희가 한 곡 할 때마다 시청률이 오르더라고.”
그 말은, 우리의 노래를 다들 마음에 들어했다는 뜻이었다.
‘이게 당장 어떤 영향을 미치진 않을 거야.’
갑자기 우리가 빌보드 차트 인에 들어간다던가.
갑자기 1위를 찍는다던가.
이번 무대로 우리가 엘븐 라비를 당장 넘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올리오스라는 이름은 다들 알았겠지.’
사람들은 여러 방송에서 나온 우리의 노래를 들었겠지.
그중 우리에게 빠진 사람들이 음원을 사고, 스트리밍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순위가 올라갈 것이다.
“참, 올리오스 너희 연락처 좀 주겠어? 개인 번호가 불편하면 SNS라도 교환하고 싶은데.”
재거가 우리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우리 연락처를?”
“그래. 진짜 마음에 들었거든. 너희 라이브 실력도 그렇고, 말하는 센스라던가, 방송에 임하는 자세 같은 것들 말이야.”
인터뷰를 하는 내내 우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던 재거였다.
우리의 데뷔 이야기, 데뷔 이후 한국에서 보낸 서사들을 쭈욱 들었던 그는 계속해서 우리들에 대해 물어봤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뭐냐, 존경하는 가수가 있느냐, 미국에 오게 된 계기가 뭐냐 같은, 어쩌면 사소한 질문들까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물었다.
그 덕분에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너희 다음 달에, 아니 다음 주에 시간 되나? 만약 일정이 널널하면 우리 공연에 게스트로 나와주지 않을래? 같이 무대에 서고 싶기도 하고, 라이브를 제대로 보고 싶기도 해서 말이야.”
우리의 연락처를 받은 재거가 웃으며 제안했다.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재거와 한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물론 크롬블과 엘븐 라비와 함께 무대를 꾸며봤던 우리였지만, 그렇다고 이 제안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물론 좋지! 하지만 스케쥴은 한번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
“아, 맞네. 지금 너희 한창 활동 중이겠구나.”
“나중에 알려줄게.”
“오케이. 그거 잡히면 연락 줘. 무조건 줘야 해.”
재거와 헤어진 우리는 서로를 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환호했다.
“이거 대박 맞지?”
“재거가 우리 연락처 받아갔어!”
“같이 무대도 뛰자는데, 저거 그냥 예의상 한 말은 아니겠지?”
“그랬다면 다음 주라고 굳이 콕 집어서 말하지 않았겠지.”
“와와, 진짜…. 이야….”
다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이서 프로듀서가 박수를 쳤다.
“진짜 고생했다. 지금 SNS 반응 확인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는 것 같더라.”
“지금 한국은 아침 시간 아닌가요?”
뉴욕은 이제 해가 진 지 오래였다.
“그러니까 난리지.”
그는 우리들에게 한국 기사들이 올린 뉴스를 보여줬다.
그곳에는 재거쇼에서 노래를 부르는 우리와, 그런 우리를 황홀한 얼굴로 보는 재거가 함께 찍혀 있었다.
“이거 그림 좋네요.”
미국 최고의 힙합 래퍼가 K-POP스타에게 홀린 이유. 올리오스가 없는 세상은 지옥이다.
왜 어그로 쩌는 국뽕튜브의 썸네일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거지?
* * *
우리가 미국에 데뷔한 지 사흘이 지나고.
“벌써?”
우리는 빌보드 차트 끝자락에 올라간 올리오스의 노래를 보았다.
[업적 - 빌보드 차트인.]
벌써 이렇게 올라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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