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
올리오스의 앨범이 세상에 공개되는 당일.
황이서 프로듀서는 마음을 졸이며 노래가 공개되길 기다렸다.
“후우, 엘븐 라비는 대체 왜 우리 앨범이 나오는 전날에 곡을 공개하는 건지.”
EP 앨범이었다.
무려 6곡이 수록되어 있는, EP급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있는 앨범.
작년에는 몬스터즈에게, 올해에는 올리오스에게.
‘이 정도면 우리 GH 엔터에 앙심을 품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던데.’
그를 직접 본 기억을 되짚어보면 앙심을 품은 것 같지는 않고.
황이서는 골든 콘서트에서 루케 크롬블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친구가 생각보다 경쟁심이 강하다네. 잘한다고 생각하는 가수들과의 순위 경쟁을 즐기지. 아마 올리오스를 좋게 본 거 같으니, 분명 자네들이 미국 활동을 시작할 때 같이 활동을 하려고 할 걸세.
분명 쉽지 않을 거라고 했던 그의 말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애들이 덕분에 의욕을 낸 거 같아서 다행이지만….”
만약 엘븐 라비라는 거대한 산을 만나서 의지가 무너지기라도 했다면.
황이서는 이를 악물었다.
“미국, 역시 힘드네.”
물론 엘븐 라비가 아니라도 만만하지 않은 시장임은 분명했다.
이미 빌보드 차트를 먹고 있는 기존 곡들의 파워도 무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이미 인지도가 높은 미국의 힙합 가수라던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디바, 요 몇 주 안에 데뷔한 신인 가수들, 라틴 쪽의 유명 가수 등.
엘븐 라비 말고도 쟁쟁한 가수들이 가득했다.
‘오히려 덕분에 다들 각오를 다지게 됐지.’
겁을 집어먹은 것보단 이게 훨씬 나았다.
한숨을 내쉰 황이서는 시계를 보며 몇 번이고 오픈 시간을 확인했다.
미국 뉴욕의 현지 시간으로 10시.
지금은 아침 9시 반.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스케줄이 없었기에, 멤버들은 각자 숙소에서 공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이서 역시 본인의 숙소에서 기다렸다.
음원이 공개되자마자 성적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들 마음을 추스르라고 아침에는 쉬게 냅뒀다.
어차피 저녁에는 여기저기 인터뷰를 하러 다녀야 할 테니까.
그는 최근 업무 연락으로 꽉 찼던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봤다.
올리오스의 성공을 위해 온갖 라디오 채널과 방송사에 전화를 돌리고 연락을 보냈다.
일종의 로비를 위해 소정의 선물도 보냈고, 이미 곡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이제 남은 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때, 문이 열리며 김예리가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아, 예리야.”
올리오스의 스타일리스트이자, 황이서 프로듀서의 여자친구.
일만 한 탓에 여자의 마음을 하나도 모르던 그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온 김예리 덕분에 이렇게 연인 사이가 되었다.
연인임과 동시에 믿을 수 있는 동료였다.
“뭘 그렇게 걱정하고 있어. 애들이 걱정 돼?”
“걱정 되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대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하아, 데뷔 전에 이렇게 걱정해 본 적은 처음이야.”
“미국이라서?”
“그렇지.”
만약 한국이었다면, 설사 올리오스가 처음 데뷔하는 신인 가수여도 이렇게 떨리지 않았을 거다.
올리오스만큼 황이서 본인도 미국에서 영업을 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루케 크롬블의 프로덕션과 최강훈 대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상당 부분 헤맸을 것이 분명했다.
“나도 모르니까.”
한숨을 내쉰 황이서가 마른세수를 했다.
“예리야.”
“응?”
“너는 어떻게 생각해? 올리오스가 잘 될 수 있을까?”
처음이었다.
이렇게 약해진 자신의 모습이.
적어도 애들 앞에선 절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프로듀서는 아이돌 멤버들에 비해서는 어른이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더라도 자신만큼은 중심을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당연히 잘되지. 이번에 무조건 미국을 놀라게 할걸? 오빠 앞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몬스터즈 그 친구들보다 분명 더 잘될 거야.”
“…….”
김예리는 올리오스 애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오빠, 내가 걔들이랑 매일 같이 다녔잖아. 스케줄 다닐 때마다 같은 차에서 타고, 이동 중에도 메이크업 고쳐주고.”
“그랬었지.”
“그때 그 애들이 항상 자기들끼리 하던 얘기를 들었거든. 나는 카메라 밖에서, 자기들끼리 있는 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딱 하나를 느꼈어.”
황이서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아, 얘들은 5명이 모여 있으면 절대 실패하지 않겠구나. 라고.”
“…….”
“그러니까 지금도 이렇게 부담 없이 있을 수 있는 거야.”
말을 마친 그녀가 가슴을 펴며 말했다.
꼭 자신을 보며 기운을 차리라는 듯이 말이다.
“오빠는 그런 생각 안 들었어?”
“나도 똑같았지.”
처음 다섯 명을 모았을 때도, 데뷔 앨범을 냈을 때도, 2집, 3집 앨범을 냈을 때도.
저 5명이 함께 있으면 절대 실패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섯을 묶어주는 연대와 그들의 자신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이면서 알 수 없는 확신을 불어넣었다.
“그러니까 올리오스 애들을 믿어.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노래도 잘 나왔어. 그런 말도 있잖아? 음악은 세계 공용어다.”
자신이 기운을 차리게끔 응원하는 예리의 모습에 황이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정말로.”
자신에게 과분한 여자였다.
그렇기에 이렇게 자신을 위로해주려고 찾아온 것이 고마웠다.
“열심히 해야겠다.”
김예리 덕분에 올리오스에 대한 확신이 섰다.
그녀는 황이서만큼이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올리오스와 함께한 사람이니까.
황이서는 그런 김예리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일하러 가야지. 애들이 일하기 쉽게끔 길을 닦아둬야지 않겠어?”
황이서가 손에 든 전화기를 흔들었다.
“좀 안 쉬고?”
“…방금 일하라고 그렇게 기운을 준 거 아니었어?”
“에휴, 기운 차렸으니 됐어.”
그녀가 왜 이렇게 한숨을 쉬는지 모르는 황이서였다.
“다녀와. 기다리고 있을게.”
* * *
“이거, 좋은 거 같은데?”
음원과 너튜브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 우리는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말했다.
한국 기준으로 본다면 분명 훌륭한 성적이었다.
문제는 이게 영문판이라는 것과 미국 시장을 노리기 위해 미국 시장의 음원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너튜브 채널에 올렸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의외로 정민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침착하네.”
내 말에 정민이 싱긋 웃었다.
“이제 우리 손을 떠났잖아. 이런 거에 일희일비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잠도 못 잘 거야.”
꽤 오래 생각하고 내린 결론인 듯했다.
말하는 정민은 얼굴에 후련한 미소를 띠었다.
“그 말이 맞아. 한국처럼 음방에서 우리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미국 사람들의 정서에 맞길 바라야지.”
호진이 정민의 말을 거들었다.
“이번 주 주말부터는 다시 무대에 서야 하니까 다들 빡세게 준비하자고. 다들 연습은 확실하게 했지?”
성훈은 여느 날과 같이 멤버들의 연습량을 체크했다.
똑같은 하루였다.
오늘 우리의 노래가 미국에 공개되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좋네.’
불안에 떠는 것보단.
성적에 영향을 받아 컨디션을 해치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나았다.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든든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엘븐 라비에게 영상 전화가 왔다.
그는 이전에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수염을 기른 채였다.
덥수룩한 수염 때문인지 그의 본래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오우, 올리오스! 방금 뮤직비디오 봤어. 진짜 멋지던데? 한국에서 보여준 무대보다 훨씬 더 멋졌어. 칼을 갈고 왔더라고.
선전 포고라도 하려는 건가.
“우리도 어제 영상 봤어. 마치 노렸다는 것처럼 우리들보다 하루 일찍 앨범을 냈더라?”
-하하, 우연의 일치지. 정말 나도 난처했다니까? 원래는 올리오스보다 일주일 뒤에 복귀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그 날짜를 알아야 말이지. 그래서 어림짐작으로 날짜를 잡았는데 이렇게 됐네.
엘븐 라비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다들 열심히 하려고 마음 먹었어.”
-정말? 내가 도움이 된 건가?
“그런 셈이지.”
-후후, 선의의 대결을 하자고 연락했어. 물론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무대는 특별했으면 하거든.
그가 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정민이 끼어들었다.
“우리는 절대 지지 않을 거니까 그리 알고 계세요. 선배들의 복수도 할 겁니다.”
-선배? 아아, 몬스터즈 말하는 거지?
음악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에 복수가 어디 있겠느냐만, 말하는 정민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아마 엘븐 라비에게 밀려 1등을 차지하지 못한 카이가 계속 걸렸던 거겠지.
‘알겠다.’
정민이가 결과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했던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정민의 말엔 단순히 자신의 각오만을 담았던 게 아니었다.
결국 정상의 문턱에서 미끄러진 자신의 선배, 카이의 염원을 풀어주기 위한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 후련한 미소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고민을 했던 것이 분명했다.
“반드시 이길 겁니다. 엘븐 라비 씨한테 지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 전혀 없어요.”
정민의 선언에 엘븐 라비가 놀란 듯 휘파람을 불었다.
-그 말을 정민이가 할 줄 몰랐는데. 아무튼 좋아. 그만큼 각오가 됐다는 뜻이겠지.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해보자고.
그렇게 짧은 선전 포고를 위한 전화가 끝이 났다.
* * *
앨범이 세상에 공개되고 우리는 여러 음악 방송의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했다.
TV 방송의 인터뷰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다.
전용기를 타고 이동하며, 미국의 땅덩어리를 다시금 실감했다.
무려 4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날았다.
한국에선 서울 안에서 대부분 해결되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땅이 워낙 넓었고, 그랬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닐 곳이 많았다.
미국 라디오 방송의 인터뷰를 다니면서 느낀 건데, 확실히 이곳은 한국과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 한국 방송보다 자유로운 거 같으면서도, 그들만의 묘한 룰을 넘지 않는 적절한 센스도 필요했다.
“친구들, 오늘은 특별 게스트가 있어. 너희도 몇 명은 이름을 들어봤을 거야. 최근 K-POP이 많이 유명해졌으니까.”
가장 놀랐던 건, 역시 마치 친구들에게 말하듯 진행하는 라디오였다.
모든 곳이 그런 건 아니었는데, 흑인 래퍼들이 진행하는 라디오 쇼는 대부분 이런 느낌이었다.
“멀리 한국에서 온 올리오스를 환영해줘!”
우리를 향해 환호하는 MC와 스태프들.
우리를 찍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실시간으로 시청자 채팅이 있어 우리의 등장을 반기는 채팅이 주르륵 올라갔다.
-이 듣보 뭐임?
-올리오스, 얼마 전에 앨범을 낸 K-POP 아이돌이잖아.
-대체 왜 이 채널에서 K-POP을 들어야 하는데?
-재거스 채널도 맛이 갔네.
우리의 등장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들과.
-올리오스! 저번에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거 봤어!
-얘들 실력파임. 한국에서도 잘 나가.
-엘븐 라비도 얘들 실력은 인정했어.
-끄아아아아! 왔다아아아!
-라이브를 들을 수 있다니, 진짜 행복하다.
우리들을 좋게 봐주는 팬들의 반응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이 상당했다.
지금껏 나왔던 라디오 쇼 중에서 가장 반응이 격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에는 우리가 출연했던 음악 채널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고 청취자의 수도 많은 채널이었다.
AM-TV의 가장 유명하고, 미국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라디오 채널.
세계적인 래퍼 재거가 직접 진행하는 재거 쇼.
성공을 위해선 이곳에서 우리를 제대로 증명해야만 했다.
“이곳에 오면 꼭 해야 하는 우리들의 신고식이 있지? 너희도 알고 왔지?”
“그럼, 라이브잖아?”
우주가 넉살 좋게 말하자, 재거가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자신이 있나본데?”
“연습을 많이 했거든.”
라이브야말로 우리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한 방이었다.
“바로 신곡을 부르는 것보단, 조금 유명한 노래로 워밍업을 하는 게 좋겠지?”
우주가 말했고, 우리는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잠깐 MR 없어도 돼?”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오우, 아카펠라?”
재거가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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