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18화 (218/236)

제218화>

“개선이 필요할 거 같다.”

회의실에 모이자마자 황이서 프로듀서가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외로 호진이 유독 적극적이었다.

“안무를 바꿔야 할까요?”

“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니?”

“일단 소극장에서 공연이 유독 성적이 좋지 않았어서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흠…. 얼마나 바꿀 생각인데?”

“조금 더 리드미컬함을 중심으로 한 안무를 새로 짤까 생각중입니다. 이번에 소극장에서 공연하면서 유독 관객들이 좋아하는 파트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을 중점으로 생각해봤어요.”

호진이 자신감을 잃은 목소리로 말했다.

“흠…. 아니야. 그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지 반응에 맞춘다는 발상은 좋지만, 지금 호진이 네가 말하는 변경점은 잘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안무도 너무 크게 바뀔 것 같아서 말이야.”

황이서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호진의 표정을 보니, 당장이라도 팝 뮤직의 춤에 맞게 안무를 전부 뜯어고칠 기세였다.

일부 반응이 좋았던 부분이 있다고, 그것으로 가득 채우는 게 좋은 해결법은 아니었다.

결국 우리만의 특별한 점을 보여줘야만 했다.

올리오스만이 가진 매력 말이다.

“그렇게 많이 바꾸지는 않을 거예요. 조금만 바꿀게요. 믿어주세요.”

호진의 말에 황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호진이 유독 자신감을 잃은 이유는 간단했다.

6번의 공연.

소극장에서 했던 댄스 공연은 30프로 이하의 예매율을 기록했고, 볼룸에서 했던 노래 공연은 나름 호평을 받았지만, 역시 기대 이하였다. 그나마도 어떻게 알고 와준 해외 팬들의 지분이 컸다.

이렇게까지 안 될 거라는 것도 예상했다.

최악을 가정할 필요는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의욕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고, 한국에서 잘 나갔다고 해도 미국에서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들이 우리를 알 거라는 건 어찌보면 오만이었다.

실패가 걱정이 되었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그럴 거다.

멤버들 모두 우려 섞인 얼굴로 회의에 참여했지만, 우울한 분위기가 일어나지 않은 게 그 이유였다.

다만 문제는 호진.

평소와 조금 다른 댄스를 섞은 탓에 관객이 적다고 느끼는지, 자꾸만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사실상 그런 호진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지 않는 건지.

홍보 부족인가?

아니면 우리가 못해서일까?

우리가 찾지 못한 어떤 개선점이 필요한 거 아닐까?

가장 유력한 건 아무래도 홍보 부족.

안일한 것도 있었다.

해외 활동도 한 적이 있었으니, 어떻게 잘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이 없다고는 볼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루케 크롬블과 함께한다는 사실.

그게 조금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이런 기회가 있어서 더 좋았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우리를 점검할 수 있으니까.

활동을 시작한 뒤에 찾으면 이미 늦어버린다.

그때는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

나는 호진을 보았다.

“안무는 어떻게 수정할 건데?”

“머릿속에 러프한 이미지가 있으니까 지금 간단하게 보여줄게.”

호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본인이 생각하는 안무를 일부 보여줬다.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단순히 호진이 춤을 잘 춰서가 아니었다.

뭐랄까.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걸로는 너무 단순하다.

손님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파악한 천재 장사꾼이 그들 입맛에 맞게 기발한 메뉴를 개발했을 때의 그 맛이었다.

‘제대론데?’

염려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저는 호진이 형의 안무가 좋은 거 같아요.”

우주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성훈도 고개를 끄덕였고, 정민이도 엄지를 치켜올렸다.

“전 찬성! 바꾸는 거 찬성입니다!”

황이서도 놀란 듯 입술을 깨물었다.

“곤란하네. 이거 안무 바꾼다고 댄스팀에 말하면 뭐라고 할 텐데.”

그러나 곧 황이서도 패스 사인을 보냈다.

“바꾸자. 댄스팀한테 욕은 내가 먹지.”

“감사합니다!”

호진이 목청껏 소리쳤다.

방금 전까진 의욕을 잃어버린 것만 같더니.

뭐야, 이미 다 준비를 해놨잖아?

나는 대견한 동생을 바라보듯 호진을 보았다.

“크흠…. 나도 할 때는 한다고.”

황이서가 우리를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무대 내적인 문제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홍보가 많이 부족했어. 사실 이번 회의를 하자고 했던 것도 그 부분을 너희에게 말해주려고 했던 거야.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자신감을 잃지 말고. 앞으로 너희가 하던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황이서는 무대가 아닌, 본인과 프로덕션 쪽 문제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춤을 바꾸지 않겠다고 얘기했던 건가.

어쩐지.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아.

”현지 프로덕션과 얘기를 마쳐서 홍보를 조금 늘릴 생각이다. 공연의 규모도 더 키울 생각이야. 처음은 적응한다 생각하고 부담없이 소극장에서 시작하려던 건데, 오히려 내 판단미스였다.”

말을 마친 황이서가 우리를 보았다.

“나는 믿고 있다. 너희가 잘할 거라고. 지금 당장 생각만큼 안 풀리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알겠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팀은 강했다.

우주도 의외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고, 호진이도 나름의 해결책을 생각 중이었다.

성훈이와 정민이는 말할 것도 없었고.

‘너무 걱정했었나 보네.’

어쩌면 이제는 내 리드가 없어도 알아서 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마치고, 다음 공연 준비 잘 해보자. 힘내라. 7주만 버티면 된다! 그때 되면 더 큰 공연에서 하겠지만 말이야.”

황이서가 부드럽게 미소지었고, 우리는 목청껏 외쳤다.

“알겠습니다!”

황이서가 나가고 나는 호진을 보며 물었다.

“호진아.”

“응?”

“수정안을 그렇게 다 생각해 뒀으면서, 왜 그렇게 우울한 얼굴로 있었던 거야?”

“아, 그거?”

호진이 지친 얼굴로 웃었다.

“밤새 구상하느라 한 시간도 못 잤거든. 하하핫.”

어색하게 미소지은 그가 머리를 긁었다.

그의 환한 미소를 본 사람이라면 생각할 거다.

이 정도는 용서할 수 있지.

“고생했는데, 그래도 수면은 충분히 해. 호진이 네가 우리 팀에서 얼마나 중요한데. 너 빠지면 큰일 나.”

“알았어. 오늘은 푹 잘 거야. 못 잔 만큼 푹 쉬어야지.”

호진이 멋쩍은 듯 웃었다.

* * *

바꾼 안무는 처음보다 반응이 좋았다.

공연을 본 사람들의 환호는 물론, 이후 평가에도 상당히 큰 역할을 해냈다.

아무래도 그들의 취향에 조금 더 맞는 모양이었다.

올리오스의 기존 댄스의 틀은 살린 채, 조금 더 리드미컬한 동작이 추가된 것만으로 반응이 바뀐다는 게 놀라웠다.

‘대단하네. 감각적이야.’

호진의 실력에 감탄했고, 놀랐다.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S급으로 올라가서 그런가.’

엄청난 변화였다.

[특별한 조건을 완수했습니다.]

[임기응변으로 안무를 바꾸어 관객들이 만족스러워하는 무대를 펼쳤습니다.]

[멤버 – 안호진이 스킬 – 안무가(A)를 획득합니다.]

호진이가 A급 스킬을 새로 얻었다는 메시지도 떴다.

확실히 이번 변화는 호진에게도 올리오스에게도 큰 발전의 기회였다.

호진의 안무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홍보 역시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홍보를 개선하겠다는 황이서의 다짐처럼,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바뀐 공연을 보고 호평을 남겼고, 이는 공연의 이름값을 올리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올리오스가 미국의 작은 극장과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올리오스의 팬뿐만 아니라 K-POP에 관심이 있는 다른 사람들도 상당수 찾아왔다.

이렇게 우리들의 공연이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두 개선점의 시너지가 확실하게 붙는 순간이었다.

공연은 점점 이름값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제 신곡을 하나씩 공연에 섞는 게 좋을 거 같다.”

입소문.

그건 어떠한 마케팅보다 더 큰 효과를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한 번 입소문이 인터넷을 타고 퍼지면, 인기 차트 밖에 있던 노래도 어느 순간부터 점점 치고 올라와 차트를 역주행하는 일.

어떤 광고보다 더 강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입소문이었다.

생각 외로 좋은 성적에 올리오스라는 이름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저 넓은 아메리카 대륙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공연을 하러 다니는 곳에, 점점 올리오스 팬들이 많아졌다.

-올리오스 사랑해!

-효진, 우주, 민, 성훈, 건하.

팬들이 들고오는 플랜카드도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한글로 우리 이름을 적은 팬도 있었다.

한글에 익숙하지 않아 삐뚤빼뚤한 글씨인 데다가 호진의 이름도 잘못 적었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우리의 이름을 쓰기 위해서 한글을 배우려고 노력해줬다는 모습에.

몬스터즈 팬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몬스터즈와 우리의 무대를 영상으로라도 본 사람이지 않을까.

그렇게 4주가 지났다.

200명 객석인 소극장을 반도 채우지 못한 우리의 공연이 어느새 매 객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큰 공연장은 갈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가 의도적인 계획이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올리오스라는 이름을 알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우리들의 공연에 대한 값어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단순히 금액적인 요소가 아닌, 아이돌의 공연을 보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부분의 값어치라고 얘기했다.

‘우리의 공연을 놓친 사람들이 아쉬워할 거고, 그럼 훗날 정식 앨범을 발매했을 때의 안타까움도 커지겠지? 그게 관심으로 이어질 거고, 자연스럽게 올리오스라는 그룹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게 될 거야.’

황이서가 말하길, 잘될 때를 생각하고 일부러 계획한 거라고 했다.

안 된다면 무대가 작고 홍보가 잘 안 돼서 실패한 거다. 무대의 잘못은 없다는 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했다.

‘물론 그 실패가 초반에 너무 커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걸로 방책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들의 공연은 계속 이어졌고.

[무대 등급 SS급을 달성했습니다.]

내 핸드폰에 뜨는 우리들의 공연 등급은 여전히 높았다.

호진이 안무를 바꾼 이후부터 SS급은 거의 상수로 나왔다.

간혹 SSS에 간신히 닿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이것도 조만간이었다.

‘미국 데뷔 전에 멤버들과 내 능력치를 올리면 충분히 가능해.’

그때 쓰기 위해서 아끼는 중이었다.

멤버들의 능력치를 올리는 건 다음 주.

데뷔까지 2주 남았을 때 올릴 생각이었다.

그게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으니까.

멤버들이 능력치에 적응되는 시기.

그리고 소극장에서 공연을 본 관객들이 TV 무대에서 우리들의 공연을 보고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였다.

‘사람들은 도전자가 더 높이 날기를 원하고, 더 발전하기를 원해.’

그 심리를 이용하려는 거다.

멀리서 도전을 위해 미국을 찾은 아이돌.

성공하지 못했던 그들이 노력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대중은 좋아했다.

스포츠에서 언더독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도전자가 챔피언이 되는 순간 안티가 생기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마지막 소극장 공연이 끝이 났다.

“고생했습니다!”

나는 연습실에서 이번 활동으로 얻은 포인트를 정리했다.

‘얼마나 모였으려나.’

그리고 얼마나 올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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