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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17화 (217/236)

제217화>

미국으로 떠나기 전, 우리는 최대한 비밀리에 공항을 찾았다.

이번에는 미국 활동 전, 적응 기간을 갖기 위해 미국을 찾는 거다.

그러니 굳이 요란하게 공항에 사람을 부를 필요가 없었다.

소속사에서도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해서 최대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팬클럽은 물론이고, 기자들마저 극소수를 제외하면 모를 정도로 비밀리에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마쳤다.

“이렇게 배웅하는 사람들 없이 나가는 거 오랜만인 거 같다.”

우주가 팬들과 기자들이 없는 공황을 보며 말했다.

물론 각자 여행을 가기 위해 온 일반객들로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우리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은 없었다.

“가끔은 이렇게 우리들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막상 진짜 그러니 뭔가 조금 섭섭하기도 하네.”

정민이 시원섭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뭔가 옛날 느낌난다.”

“옛날?”

“그냥 우리 데뷔 직전에, 걱정 없이 생얼로 다닐 때 느낌도 조금 나서.”

내 말에 정민이 눈웃음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주랑 호진이는 어디갔어?”

성훈이 형은 옆에서 책을 보고 있고,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간 거 아니야? 아까 두현이 형이랑 경호 팀장님이랑 어디 가던 거 같던데.”

우리를 서포트 하기 위해 따라온 사람들의 수도 상당했다.

GH 엔터의 아이돌 2팀의 팀장 이두현을 시작으로 새롭게 우리에게 배치된 로드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김예리, 미국에서도 우리를 경호해줄 경호팀과 황룡 엔터의 프로듀서인 홍우선까지.

외에도 미국 현지에서 우리를 도와줄 현지 프로덕션 팀원까지 생각하면, GH 엔터가 이번 활동을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가 느껴졌다.

GH 엔터는 이두현과 로드 매니저를 제외하면, 전부 미국 출장을 최소 몇 번 이상 가본 사람들로 구성했다.

이두현도 일본과 아시아 출장을 몇 번 가봤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웅성웅성.

그런데 호진과 우주가 갔던 화장실 쪽이 소란스러웠다.

나와 정민이 거의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설마….”

“맞는 거 같은데.”

지나가다가 만난 사람들에게 사인해주고 사진 찍는다고 저기에 묶여 있는 거 같은데.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어렵게 인파 속을 헤치고 나온 우주와 호진이 진땀을 흘렸다.

“후우,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게….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몇 분이 우리를 알아보시더라고. 그래서 간단하게 셀카 찍어드렸는데, 그 후로 사람들이 엄청 몰려와서….”

“그래도 매너가 있는 분들이었어. 우리가 간다니까 쿨하게 보내주시더라.”

나는 두 사람의 옆에 서 있는 두현이 형이랑 경호 팀장을 보았다.

저 두 사람의 풍채 때문에 그냥 보내준 것 같지만, 굳이 그 말을 꺼내진 않았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들이 있은 후, 탑승 수속을 마친 우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우리가 받은 좌석은 비즈니스석.

넓은 좌석은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충분했다.

크롬블 측에서 전세기를 보내준다고 했으나, 우리가 거절했다.

거기까지 신세지는 건 미안하니까.

그래도 미국 현지에 도착해서 편하게 움직이려면 전세기가 필요할 거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우리는 미국 한정으로 전세기를 빌려 쓰기로 했다.

-적응 기간 마치면 우리 집에 찾아오게. 간단하게 파티라도 했으면 좋겠군.

적적한 걸까.

그는 꼭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진효원 선배에게서 온 문자도 있었다.

-나보다 더 먼저 미국에 도전하는구나. 힘내고,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빌게. 올리오스 파이팅!

그녀는 도전하러 떠나는 후배를 응원하기 위해 전력으로 응원했다.

그녀를 비롯해서 현장에서 연락했던 선후배들이 문자와 DM을 보냈다.

아마 아까 공항에서 있던 일이 기사가 된 걸까?

비밀로 했는데, 다들 어떻게 안 건지.

-조심히 갔다 와. 너희가 성공하는 거, 멀리서 보고 있을게.

몬스터즈의 한진성의 문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담담한 응원 메시지 속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느껴졌으니까.

-1등하고 금의환향하겠습니다.

나는 미국 출장 전, 아버지인 윤택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오늘 미국 갑니다.”

-그게 오늘이었던가?

“예.”

-성공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국내 성적이 조금 좋다고 자만하지 말고, 거기서 너희는 도전자야. 그 사실을 명심해.

엄한 윤택수 회장의 목소리가 들렸고.

-회장님, 솔직하게 응원해주시죠.

최정국 실장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아버지께서 유해지신 뒤, 자기 의견을 어필하는 횟수가 늘은 최 실장님이었다.

-조용히 하게. 아직 전화 안 꺼졌네.

-그래서 말씀드린 겁니다.

-…….

나는 침묵하는 윤 회장에게 물었다.

“아버지, 응원 안 해주실 겁니까?”

-…후우, 직원들이 없으니 하는 거다.

“예.”

-잘하고 오거라. 실력은 충분하니 자신감을 가지고.

“감사합니다. 아버지.”

담담한 말 속에 담긴 응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그리고 아버지.”

-응?

“사랑합니다.”

-…고맙다.

그리고 이어진 침묵.

“그게 끝입니까?”

-이놈이 이제는 아버지를 놀리고…. 후우, 그래. 나도 사랑한다. 잘하고 와라.

마지막 전화를 마친 나는 전화기를 꺼달라는 기장의 방송을 들으며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

비행기가 떠오르는 감각을 느낀 그 순간, 나는 그제야 미국으로 떠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잠깐 눈 좀 붙이자.’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성훈인 덕이었을까.

이번 미국행 비행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덕분에 기내식이 나올 때까지 한참 동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가끔은 이런 조용한 여행이 정신 집중에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미국에서 있을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을 수 있어서 더더욱.

‘조금은 떨리네.’

두려움 반, 기대 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기에, 이제 남은 건 적응 기간에 미국 생활과 문화를 최대한 이해하는 것.

‘할 수 있을 거야.’

나라도 떨리는 건 사실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미국으로 향하는 상공의 밤하늘을 보았다.

달빛이 비쳐 흐릿하게 보이는 구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리가 탄 비행기는 그런 구름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 * *

“올리오스가 비행기를 탔다고요? 생각보다 일찍 출발하네요? 적어도 몇 달 뒤에 도전할 줄 알았는데.”

선글라스를 쓴 채로 플로리다의 뜨거운 햇빛을 느끼던 엘븐 라비는 소속사 프로듀서에게 올리오스의 입국 소식을 듣자마자 콧노래를 불렀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몇 달 미국 전역에서 작은 공연을 할 생각인 모양이더라고.”

“작은 공연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현지 적응 한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히야, 좋네요. 그 나라에 가려면 현지 적응은 필수죠.”

“그래서 어쩔 셈이야. 정말 걔들 앨범 런칭 시기에 신보 발표하려고?”

“네! 그러려고 머나먼 한국까지 간 걸요?”

엘븐 라비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말했다.

올리오스가 엘븐 라비에게 영감을 얻었던 것처럼, 엘븐 라비 역시 올리오스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

다섯 아이돌이 만들어내는 파워풀한 공연.

대부분 솔로 가수가 댄서들과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것이 대부분인 미국 무대.

여러 가수가 각자의 파트를 나누며 무대를 만드는 건 밴드나 하이틴 그룹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밴드는 상대적으로 정적인 무대가 많았고, 하이틴 그룹은 엘븐 라비 기준으로 약간은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무대가 많았다.

그런데 올리오스는 달랐다.

소름이 돋았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무대 구성에 한 번 놀라고, 그 남다른 무대 장악력에 두 번 놀랐다.

‘무대를 즐기는 법을 아는 애들이었어.’

그래서 영감을 얻었다.

물론 자신은 그들처럼 하지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도 관객들의 혼을 빼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무대는 늘 짜릿한 감각을 줬다.

그렇게 떠오른 영감을 작곡과 작사에 쓰는데 여념이 없었다.

“흐으응~.”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은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곡을 이어갔다.

그의 손에는 최신 폰이 하나 들려있을 뿐이었다.

전문 장비는 없지만, 러프하게 작곡하기엔 썩 나쁘지 않은 퀄리티의 물건이었다.

“세상 많이 좋아졌죠? 선배님들은 전혀 상상도 못하실 텐데요. 플로리다의 해변에서 작곡을 하는 거 말이에요.”

“애초에 6~7월에 플로리다 해변을 찾는 놈은 너밖에 없어.”

“그러니까 유니크한 거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걸 해내는! 키야, 멋있다. 가사에 한 줄 쓸까요? 콧대 높고 아름다운 당신 같은 미인을 차지하는 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걸 해내는 나 같은 사람이다. 흠, 너무 구구절절한가?”

“그래서 2달 뒤에 바로 활동 시작하겠다고?”

“네. EP앨범으로 할 거예요.”

“싱글이 아니라?”

“당연하죠. 걔들은 완전 정규 앨범이라면서요? 그런 올리오스 상대로 최소한 EP로 내줘야 싸움이 되죠.”

“괜찮겠냐? 아무리 그래도….”

엘븐 라비가 실실 웃었다.

“이미 노래 다 나왔어요. 작업만 하면 돼요. 아마 프로듀서 형도 마음에 들어 할걸요?”

“제대로 안 나오면 바로 반려할 거야.”

“크크, 첫 번째에 바로 오케이 사인 나온다에 100달라 걸게요.”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두 번째 곡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흐음음, 흐음~.”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바뀌었다.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동양에서 온다는 그 친구들만 불쌍하게 됐군.’

저 상태로 곡을 만드는 엘븐 라비는 빌보드를 놓친 적이 없으니까.

뙤약볕을 내리쬐는 플로리다 하늘을 바라보던 프로듀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 덥네.’

* * *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빠르게 짐을 싸고 현지 프로덕션에서 잡아둔 숙소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다.

휴식은 짧았다.

놀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현지 적응, 미국 관객들이 어떤 분위기인지.

그들의 취향은 어떤지.

현지 반응을 직접 살피기 위한 시도였고, 쉽지 않은 일일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많이, 빨리 움직여야지.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조금은 있는 거 같은데, 현지 무대 기획자들 반응은 살짝 애매하네요.”

볼룸(Ballroom).

약 200명 정도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소공연장.

아무래도 밴드들 공연이 대부분이라 무대는 협소하고 댄스를 추는 우리들에겐 친절하지 않은 무대였다.

굳이 좁은 무대에 올라선 건, 우리들의 댄스 무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우리식의 락 발라드가 잘 먹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만족스럽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소극장 공연도 여럿 했다.

마찬가지로 200에서 300명 사이의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무대였지만, 상대적으로 무대가 넓어서 간단한 댄스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다.

‘만석은 아니네.’

직접 돌아다니며 홍보도 하고 다녔다.

그러나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현지 적응의 과정에선 크롬블의 유명세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게 황이서 프로듀서의 생각이었다.

-현재 우리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어.

자만하지 않도록 경계한 듯 싶었다.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특히 우주가.

그러나 그런 내 걱정과는 별개로 우주의 두 눈엔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기우인가.’

에너지를 잃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이대로는 안 돼.’

홍보가 되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를 돋보이게 만들 무기가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됐는데, 미국에서는 잘 안 되는 이유가 뭔지를 찾아야만 했다.

세 번째 소극장 공연이 끝난 저녁.

황이서 프로듀서와 우리는 현지 프로덕션의 회의실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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