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화>
녹음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미국 활동을 2달 정도 남기고, 마지막으로 얻은 휴가를 만끽하기 위해 나왔다.
왜 2달이나 남았는데 마지막 휴가냐면.
“다음 주부터 미국으로 간다. 미국에서 활동하기 전에 미국의 댄스 팀과 호흡도 맞춰야 하고 엔지니어들이 마무리 편곡도 해줘야 해. 그리고 그 지역을 미리 가서 조금이라도 느낄 필요가 있어. 그래야 현지인들도 공감하는 노래가 나오지.”
라는 이유로 황이서 프로듀서가 미국 합숙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리 현장에 가서 물갈이도 해야 되고, 시차도 적응해야지. 몇 번 해봤으면 모를까, 미국은 아예 처음이잖아?”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적응 기간도 필요했다.
단순히 가서 활동만 잘 한다고 잘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면 안 된다.
상당히 많은 준비를 한 활동이었고,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성공을 뒤로한 채 실패의 위험성을 안고 새 무대를 개척하는 거다.
여러 가지로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얻은 마지막 휴가.
“뭐하지?”
나는 바닥에 드러누운 멤버들에게 물었다.
“놀이공원 갈까? 아니, 안 되겠네. 사람들 엄청 몰린 곳에 가면….”
말하던 우주가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지.”
이제는 밖에 나갈 때도 마스크와 모자가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은 물론 인파도 함께 따라붙을 거다.
이제 젊은 사람들 중에선 올리오스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여러 TV 프로그램에 나오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는? 이번에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재밌는 거 하나 있던데.”
이번엔 정민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 말에 성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영화관은 괜찮을 거 같은데, 5명이 다 같이 하기엔 어렵지 않아?”
“…하긴, 한 번에 5명이 우르르 가면 분명 얘기 나오겠네.”
“5명이 다 같이 뭐 하기가 생각보다 어렵구나.”
우주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우리를 가만히 보고 있던 호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캠핑 가는 거 어때? 1박 2일로. 지금 당일치기로 가는 거야. 우리 차도 있으니까 시골에 있는 캠핑장 같은 곳 이용하면 괜찮지 않을까? 사람들도 없을 테고.”
캠핑장이라.
“괜찮은데?”
우리 다섯이서 즐겨도 주목을 덜 받을 거고, 혹여나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도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도 끌렸다.
“다들 어때?”
“나는 좋아! 캠핑 좋다. 가평에 유명한 캠핑장 많지 않나?”
“찬성.”
“지금 바로 가는 거야? 예약 안 해도 되나?”
“평일이고 아직 성수기도 아니라서 자리는 많을 거야.”
호진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미리 조사했던 거야?”
“아, 우리끼리 캠핑 한 번 가면 재밌을 것 같다고 늘 생각했거든. 예전에 우리 등산했을 때 기억 나? 그때 참 재밌었어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성공을 다짐했던 그때를 얘기했다.
처음으로 멤버들에게 내 목표를 말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레미 수상, 세계적인 성공, 빌보드 입성 등.
내 말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던 멤버들의 모습이 생생했다.
“어때? 캠핑 괜찮을 거 같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해돋이 보면서 다음 주에 있을 미국 활동에 대해 다짐도 해보고 말이야.”
말을 마친 호진이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그럼 바비큐는 내가 구울게!”
우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숯불로 고기 굽는 거 해보고 싶었거든.”
호진의 의견을 시작으로 우리는 캠핑으로 어디를 어떻게 갈 건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출발하자! 가는 길에 찾을 수 있으니까! 오늘 가는 거면 시간 없어!”
빨리 여행을 가고 싶었던 우주가 재촉했고, 우리는 고민 없이 차에 올라탔다.
우리가 가지고 가는 것은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뿐.
나머지는 현장에서 구하자는 무계획 여행이었다.
“가자!”
뒷자리에 앉은 우주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떠나요~ 둘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우주를 시작으로 성훈과 정민이 코러스로 화음을 넣어줬다.
가평을 향하는 차 안에서 작은 콘서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왜 그렇게 진심으로 부르는 건데?”
“매사에 진심모드로 덤벼야지.”
이제는 MR까지 틀기 시작하며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을 잠시 보던 호진이 핸드폰으로 뒷자리 멤버들의 영상을 찍었다.
“뭐 하려고?”
“이따가 SNS에 올리려고. 지금 모습, 재밌잖아.”
그러더니 이제는 운전하는 내 옆모습을 찍었다.
운전에 집중해야 해서 호응을 하지 못했다.
‘동생들 데리고 여행가는 거 같네.’
이 세계의 윤건하와 또래였지만, 전생의 삶까지 생각하면 저들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다.
조금 과장해서 삼촌 조카뻘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같이 지내니 내 정신 연령도 어려진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면 젊음이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생소한 경험이었다.
전생과 현생 모두 언제나 일하기 바빴으니까.
이렇게 멤버들과 여행을 가는 것도 굉장히 드물었다.
그래서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광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렸다.
나도 운전만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 저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흥이 났다.
‘좋네.’
뭐랄까.
전생에 못 즐겼던 청춘의 경험을 조금 뒤늦게 겪는 느낌이었다.
“우와우와우와!”
이번 여행을 한계까지 만끽하겠다는 듯, 우주와 정민이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내가 성훈이 형 파트까지 다 부르고 만다.”
그가 선곡한 노래는 였다.
* * *
캠핑장 근처 매점은 캠핑을 온 사람들을 위한 물건을 모두 팔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온 우리들도 문제없이 캠핑을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게다가 평일이라 다른 사람도 거의 없었다.
우리를 제외하고 3팀이 전부였다.
덕분에 좋은 자리를 잡았다.
우리를 알아봐주신 캠핑장 사장님이 직접 숯에 불도 붙여주신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바비큐를 먹을 수 있었다.
구워주시는 사장님과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드렸다.
지글지글.
“내가 할게!”
힘차게 나선 우주가 목살 귀퉁이를 다 태워 먹은 것만 제외하면 굉장히 완벽한 저녁이었다.
밥을 먹은 뒤, 불타는 숯불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가볍게 노래를 불렀다.
우리끼리 즐기는 작은 콘서트였다.
우리 말고 캠핑장을 찾은 다른 3팀이 우리를 알아본 듯 가까이서 사진을 찍었다.
밤이 점점 깊어졌고, 캠핑장의 분위기도 점점 고즈넉해졌다.
이제는 불이 다 꺼진 숯불 대신 전기램프를 키며 자연을 만끽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벌레만 빼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말이야.
“좋다.”
이제는 빨간 불씨만 남은 숯불을 바라보던 우주가 말했다.
“생각보다 엄청 좋았던 거 같아. 뭔가 매번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얻은 휴일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늘어진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최근 일정 사이에 주어진 막간의 휴식같은 느낌이었다.
몇 시간 제대로 자지도 못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호진아, 뭐해?”
나는 핸드폰을 보며 씨익 웃는 호진을 보며 물었다.
“지금 우리 차 안에서 노래 부른 거 올렸어.”
“형, 그거 진짜 올렸어?”
우주가 벌떡 일어나 호진의 별스타를 보았다.
“으아가갹! 이거 완전히 흑역산데.”
“괜찮아. 우주 너 말고 정민이랑 성훈이 형도 잘 찍혔어.”
“으으으으.”
우주가 얼굴을 푹 숙였다.
너무 흥에 겨워서, 정제되지 않고 나온 노래여서일까.
평소와는 다르게 부끄러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호진이 올린 SNS 게시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5명이 같이 여행이라니, 즐거워 보인다.
-라이브 틀어줘요.
-여름 휴가 마렵네.
그 중에 한진성이 올린 댓글도 있었다.
-뭐야? 너희 언제 갔어? 나도 부르지.
말고도 촬영하며 친해진 연예인들의 댓글도 상당히 달렸다.
다들 SNS를 많이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형들, 우리 있잖아.”
우주가 우수에 젖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겠지?”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으로 묻는 우주였다.
“미국 활동 말하는 거면 괜찮을 거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가장 큰 형인 성훈이 우주를 위로했다.
말투는 단호했다.
그만큼 멤버들을 믿었기에 나오는 말이었다.
“정말 괜찮겠지…? 사실 아직 자신이 없어서….”
우주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해서 꺼낸 말일 거다.
예전부터 미국 진출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고 있던 우주였으니까.
“괜찮아. 다들 열심히 했고, 너도 최선을 다했잖아. 우리가 가진 걸 다 보여줘야지. 그걸 대중들이 좋아해주길 바랄 수밖에.”
정민이 성훈의 말에 힘을 더했다.
깊은 밤, 여름 밤의 선선한 공기에 따뜻한 캠프파이어의 불씨 때문이었을까.
우리들의 대화에는 새벽 감성이 짙게 묻어 있었다.
“힘내야지. 응….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도 없으니까.”
불쏘시개로 불씨를 뒤적이던 우주가 말했다.
여전히 고민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적어도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은 갖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열심히 할게. 오늘 이 기분 좋은 경험을 가지고.”
굳은 결의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괜찮을 거야. 자신감을 가져.”
“힘내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호진과 나는 우주의 어깨를 주무르며 의지를 다졌다.
아마 다른 멤버들도 마음 속엔 각자의 불안감을 품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미 방아쇠는 당겨졌고, 모든 일정이 정해졌기에, 앓는 소리를 내지 않을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주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들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는 멤버들을 돌아봤다.
연습생 기간은 각자 다르지만, 다들 청소년 때부터 연습생 시절을 보내왔다.
그리고 데뷔한 지 이제 3년이 가까워지는 멤버들.
그러나 우리들의 나이는 고작 20대 초반이었다.
여러 부담이 있을 거고, 그에 따른 반동 역시 있을 테지.
애들이 아직 어린애라는 걸 명심해야만 했다.
그러니.
‘내가 중심이 되어줘야 해.’
저들이 흔들릴 때 옆에서 잡고 버틸 수 있는 기둥이 되어줘야만 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캠핑을 잘 왔네.’
의도치 않게 단합이 된 시간이었다.
“애들아, 나 고민이 있는데.”
밤이 깊어서일까.
우주를 시작으로 각자 고민을 말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를 보던 호진이 말했다.
“현진이가 남자 친구가 생긴 거 같더라고, 오빠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야.”
나는 보았다.
여동생이 혹여나 이상한 남자와 사귀지 않을가 걱정하는 오빠의 모습을.
“아, 나도 최근에 부모님과 조금 다툰 일이 있었는데.”
마치 수련회의 마지막 밤 때처럼,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밤은 점점 더 깊어졌다.
우리는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잘 수 있었다.
다음 날엔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의지를 다졌다.
“빌보드 차트 1위 한드아아아앗!!!”
목청껏 외치는 우주를 시작으로 우리는 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각오를 외쳤다.
“지미 캐런 쇼에 나갈 거다아악!”
“타임 스퀘어에서 공연 할거야야악!!”
우리는 그렇게 미국 출장 전 마지막 휴가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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