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215화 (215/236)

제215화>

“해금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GH 엔터 작곡가의 말에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수록곡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게 미국에서 통할지는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만의 색을 낼 수 있는 포인트를 주지 않을까 싶어요.”

“흠…. 홍우선 프로듀서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홍우선이 잠시 입을 다문 채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깊은 생각을 하는 듯 오랫동안 고심하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빌보드 순위를 노리는 올리오스의 목표와는 정반대의 느낌 같습니다. 이게 타이틀곡이라면 반대했을 거예요.”

진지하게 노래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노래는 좋습니다. 특징도 제대로 살아 있고, 이 곡만의 특별한 포인트가 존재하죠. 문제는 이게 미국의 대중에게 통할 거 같지는 않다는 거죠. 하지만 이미 대중이 좋아할 노래는 전부 있으니까, 하나는 특별함을 갖는 게 좋겠죠.”

말을 마친 그가 책상을 두드렸다.

“수록곡으로는 좋은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평가를 마친 홍우선이 미소를 지었다.

“가사는 생각해둔 게 있습니까?”

“아직이요. 이제 멤버들이랑 작사가님이랑 모여서 상의해야죠.”

정민이 나를 보았다.

“건하야, 너는 어떻게 들었어?”

“나?”

“응, 아무런 말도 없길래.”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도 여전히 불안한 걸까.

아니.

정민은 본인이 만든 노래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 묻는 건.

‘그만큼 나를 믿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믿어주는 만큼 나 역시 진심으로 말해야겠지.

노래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좋았어. 정말 좋은 곡이야.”

첫 소절을 듣고 생각했다.

좋은 노래라고.

균형이 잘 맞은 곡이었다.

잠재력은 충분했다.

오히려 지금 타이틀곡으로 쓰는 노래보다 좋았다.

한국에서 쓴다면 분명 잘될 것이 분명했다.

딱 하나 걸리는 건.

‘미국의 감성을 나도 잘 모른다는 거지.’

나는 잘 모르지만, 잘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미국 감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한 명 있어. 그분께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 말에 모두가 격양된 얼굴로 반응했다.

“설마….”

“루케 크롬블 씨한테 연락하려고?”

“맞아.”

그러려고 받은 연락처였다.

-언제든 연락하게.

미국 활동에 도움을 주겠다고 직접 말했던 그였다.

사실상 활동의 시작은 작곡부터 아니겠는가.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2시니까 미국 시간으로 아침 아닌가?”

“그렇지?”

“슬슬 일어나 계시겠네.”

우선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올리오스의 윤건하입니다. 지금 통화 되시나요?

문자를 보내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마침 일어나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네. 무슨 일인가?

-미국 활동에 쓸 노래의 가이드 버전을 완성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바로 보내주게나.

-알겠습니다.

오케이 하셨다는 말에 정민이 잔뜩 들뜬 얼굴로 나를 보았다.

“저, 정말이야?”

“응, 어서 음악 파일을 보내줘.”

“알았어. 잠시만.”

루케 크롬블에게 정민의 가이드 버전을 보냈다.

30분.

답장이 오기까지 30분 동안 모두가 숨을 죽인 채로 답을 기다렸다.

늦은 시간임에도 그 누구도 졸거나 떠나지 않았다.

-♬♩~♪♩.

내 핸드폰에서 우리 3집의 타이틀곡 ‘나비’의 전주가 들렸다.

루케 크롬블의 전화였다.

“건하 너도 우리 노래를 수신음으로 쓰는구나.”

“조금이라도 홍보해야지.”

루케 크롬블의 연락을 받았다.

-다 들었네.

“어떠셨습니까?”

-미국에서 통할 거 같냐고 묻는다면, 통할 거라 생각하네. 조금만 손본다면 충분히.

“타이틀로는 어떻습니까?”

-흠…. 대중성은 조금 덜할지 몰라도 평론가들은 좋아 죽으려고 할 걸세. 최근 심사위원들은 단순히 미국적인 것보단 보다 새로운 걸 원하는 트렌드니까 말이야.

“동양풍의 악기가 신선함을 준다는 뜻이군요.”

-그래. 기분 좋은 신선함이야. 다만 너무 독창적이라 타이틀로는 조금 부족할 테지. 나라면 이걸 두 번째 수록곡으로 넣을 거야.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타이틀곡과 함께 홍보를 넣으라는 말씀이시군요.”

-척하면 척이군. 허허허.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정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홍우선과 GH의 작곡가 역시 생각이 많아진 듯 입술을 다물었다.

크롬블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세 사람의 표정이 달라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네. 아주 좋은 노래라 내가 굳이 건드릴 곳이 없군. 누가 만든 건가? 그 민이라는 친구인가?

“맞습니다.”

-하하, 그 친구 혹시 옆에 있는가?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는데.

“네, 옆에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듣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는 크롬블의 말에 정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정민입니다!”

정민이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통역 스킬의 효과가 완전히 정착해, 유창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한 정민이었다.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자네 혼자만 듣고 대답해 주겠나?

“알겠습니다.”

소리를 낮춘 정민이 크롬블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시시각각 표정이 변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예’라는 말을 반복하던 정민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말씀대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핸드폰을 든 채로 고개를 숙인 정민이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이 아니구먼. 허허허.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게.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지막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전화를 끊었다.

거장의 통과 덕분인지, 세 사람의 얼굴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럼 이 포인트를 제대로 살리고 본격적으로 작업해보죠.”

벌써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데 그들의 눈엔 열정이 타올랐다.

아까 크롬블에게 연락받기 전보다 훨씬 더 힘이 난 거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저기 근데, 다들 퇴근은 안 하시나요?”

“내일 몰아서 자면 되죠.”

“건하 너는 들어가도 돼. 내일 아침에도 스케줄 있지 않아?”

“정민이 너는 없어?”

“진짜 필요한 일정 아니면 작곡에만 전념하려고.”

지금 정민은 예능이나 라디오에 나가는 것보단 작곡에 힘을 쏟고 싶을 테니까.

“그럼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 * *

미국 진출을 위한 준비가 차근차근 이어졌다.

호진과 채남영이 우리가 쓸 안무를 준비했고, 정민이는 노래를 제작했으며, 성훈과 나는 보컬의 창법을 살짝 바꿔보며 곡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향을 찾았다.

우주는 최근 미국 쪽 예능을 살펴보며 어떤 식으로 미국 토크쇼가 진행되는지 모니터링을 했다.

정민이 내게 곡을 보여준 지 며칠 만에 노래가 완성되었고, 녹음이 시작되었다.

“성훈아, 바로 들어갈게.”

“형이 부르던 식으로 불러주면 돼.”

황이서 프로듀서와 정민이 주도하는 녹음 작업이 시작되었다.

“조금 더 고음을 뻗어나가듯이!”

황이서가 보컬의 디테일을 잡아주면 정민은 노래에 맞는 소리를 냈는지 얘기해줬다.

“이 느낌 그대로 한 번 더 녹음해볼게.”

정민이도 확실히 흡수가 빨랐다.

루케 크롬블에게 전화로 무슨 얘기를 들은 걸까.

의욕은 물론이고 곡을 대하는 자세도 조금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노래를 만든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노래를 느끼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노래 자체를 즐긴다고 해야 할까.

긍정적인 변화였다.

“성훈이 형은 이 정도면 될 거 같아. 이번엔 건하 파트니까 바로 불러보자.”

“오케이.”

나는 정민이 직접 멜로디까지 허밍으로 흥얼거린 최종 가이드 버전을 들으며 마지막까지 곡을 숙지했다.

처음 정민이가 내게 들려줬던, 완벽하게 미국을 노리는 노래.

팝의 느낌이 흠뻑 느껴지는 R&B 비트와 어깨를 들썩거리는 박자의 흐름.

“건하 형, 파이팅!”

옆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우주의 응원을 들으며 나는 멜로디가 흐르길 기다렸다.

정민이 엘븐 라비와 루케 크롬블의 무대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는 노래.

-♬♪♩~~♩♪

전주가 들렸다.

나는 내 파트를 불렀다.

모든 가사가 영어였지만, 어려울 건 하나도 없었다.

최대한 쉬운 단어를 사용했고, 보컬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매력적으로 부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박자를 맞추며 최대한 그루브를 살렸다.

“좋았어. 한 번 더 갈게. 조금 더 리듬을 타면서.”

정민의 디테일한 디렉팅과 함께 다시 한번 녹음에 들어갔고.

“오케이!”

“한 번만 더.”

몇 번 정도 반복한 끝에 내 파트를 전부 녹음하는 데 성공했다.

“고생했어.”

내 다음으로 우주와 호진이 차례차례 녹음을 땄다.

몇 번이고 수정하면서 최적의 상태를 찾았다.

특히 유일하게 랩 파트까지 부르는 우주는 꽤나 여러 번 구간을 반복하며 녹음했다.

랩이 쉽지는 않지.

정민까지 타이틀 곡 의 녹음을 마친 후, 다음 곡인 의 녹음을 준비했다.

해금이 반주에 스며들었던 그 노래였다.

-♪♩~~♬♬

반주에 섞인 해금 소리를 듣자마자 애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녹음 전에 미리 전부 공개했던 ‘Lucky boom’과는 달리 ‘Mini Fiction’은 오늘이 될 때까지 정민이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의도했다고 했다.

곡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숨겨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멤버들의 감상이 전해지게끔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날것의 반응을 원했던 걸까.

“이게 뭐야?”

“이번에 두 번째 수록곡으로 들어갈 노래야.”

“정민이 형, 이 노래 진짜 좋은데?”

제대로 먹힌 모습이었다.

“좋다. 생각보다 괜찮아. 이거 좋다.”

“왜 이걸 타이틀로 안 쓴 거야?”

호진의 질문에 정민이 대답했다.

“타이틀은 미국 사람들에게 친숙한 노래를 쓰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다들 얘기했거든.”

“그건 그렇긴 하네.”

정민이 가사집을 내밀고는 가이드 버전을 들려줬다.

“이런 느낌이거든? 지금 느끼는 감각을 노래로 전해주면 좋을 거 같아.”

정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의 녹음을 위해 3시간 가까이 집중한 멤버들이지만, 여전히 의욕이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그럼 우선 첫 녹음은 느낌만 가면서 갈게. 알겠지?”

정민의 리드를 따르며 의 첫 녹음을 끝냈다.

“진짜 괜찮은데? 한 번만 더 해볼게.”

이상으로 녹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후우.”

정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녹음을 하면서 처음으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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