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나는 <미친개 김 부장>의 종방연을 위해 술집을 찾았다.
김 부장이 방영되는 밤 10시 반에 시작된 파티였다.
사실상 10시부터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마지막 화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 화 최고 시청률 21퍼센트입니다!”
“됐어!”
조연출의 외침에 <미친개 김 부장>의 CP인 설승원 PD와 박지혜 작가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주먹을 쥐었다.
“성공적이구만!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드디어 마의 20을 넘겼네! 이제 걱정은 내려놓고 한잔합시다!”
설승원 PD가 잔을 들고 외쳤고, 그의 간결하고 힘찬 건배사에 모두 잔을 들었다.
“자, 작가님부터 한마디씩 하시죠.”
“다들 고생 많았어요. 좋은 PD, 좋은 배우, 그리고 성실하고 훌륭한 스태프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성과예요. 모두 수고했어요.”
다음은 구희성이었다.
“다들 즐겁고, 고마웠습니다. 오늘은 걱정 잊고 즐기는 날이 됐으면 합니다.”
그렇게 다들 한마디씩 건배사를 건넸고.
“우리 슈퍼스타 건하도 해야지?”
설승원 PD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무슨…. 까메오 수준으로 나온 단역인데요. 하하.”
“에이, 그래도 신 스틸러였잖아. 한마디만 해.”
“…음, 고생 많으셨습니다. 준비한 멘트가 없어서요. 음, 정말로 수고하셨고, 푹 쉬시면서 쉬시는 김에 저희 신보 3RD를 많이 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다들 한잔 들어간 덕일까.
별거 아닌 농담에도 다들 웃어줬다.
“건하야, 고생 많았어. 하하하! 아주 좋았어!”
건배사를 마치자 설승원 PD가 내 어깨에 팔을 감았다.
“정말 건하 덕분에 이렇게 성공하고 말이야! 희성이가 아주 물건을 데리고 왔어! 크하하하!”
이미 몇 잔 거나하게 걸친 걸까.
술 냄새를 잔뜩 묻힌 설 PD가 신나서 말했다.
“설 PD님, 그만 해요. 건하가 불편해하잖아요.”
박지혜 작가가 그런 설 PD를 막아세웠다.
“에이, 박 작가님 벌써 침 바르시는 겁니까? 다음 작품 캐스팅하려고?”
“당연하죠.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를 찾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그녀의 말을 듣던 구희성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번 드라마 주연 배우가 많이 속상해지는데요?”
“에이, 희성 씨가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잘하는 사람 또 한 명 만났으니, 새로운 사람과도 하고 싶다는 거죠. 후후.”
한 차례 희성을 칭찬한 그녀가 내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런데 올리오스, 미국 활동 간다는 거 진짜인가요?”
“네?”
“설마 계속 숨기려고 하는 거예요? 이 바닥 소문 엄청 빨라요. 올리오스가 미국 진출 준비하고 있다는 거 벌써 여기저기에 다 퍼졌는 걸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작가님이셔도 알려드릴 수 없어요.”
“쳇, 됐어요. 어차피 나도 원고 준비하고 대본 짜고 함께 할 PD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니까요.”
“진심으로 저를 주연으로 쓰시려는 겁니까?”
“설마 그때 제가 한 얘기, 빈말로 들은 건 아니죠? 난 분명히 말했어요. 건하 씨가 이 대본 책임져야 한다고.”
그녀의 눈에 열정이 피어올랐다.
여기서 못한다고 거절하면 당장이라도 대본을 찢어버릴 기세였다.
“지금 건하 씨의 스타일에 맞는 대본을 제작 중이에요. 그 약속 하나 믿고 가는 거거든요.”
“나중에 대본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후회하진 않을 거예요. 내 대본이 실패하는 일은 절대! 없으니까.”
자신 있게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웃으며 화답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미친개 김 부장>의 마지막 방영이 드디어 끝이 났고, 본격적인 종방연이 이어졌다.
다들 술을 마시고 얼굴이 붉어졌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내겐 그런 모습이 꽤 부러웠지만….
‘숙취는 싫으니까.’
술에 약한 만큼 숙취도 오래갔다.
한 잔 마시는 것도 버거운 내겐 딱 이 정도가 좋았다.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 벌써 가게?”
“할 일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인사를 마친 나는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구희성도 같이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는 주연이었기에 쉽게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선배님, 먼저 갈게요.”
“후우, 그래. 내일 보자.”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잠시 보던 구희성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덕분에 나는 손수 차를 몰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무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자, 시원하면서 습한 6월의 밤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어? 건하야.”
한진성이 사무실 입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진성이 형? 여기서 뭐하세요?”
“그냥, 건하 너 기다리고 있었어. 종방연은 다 끝난 거야?”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그래.”
왜 나를?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한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희성이는?”
“희성이 형은 아직 잡혀 있어요.”
“주연의 삶은 힘든 법이지. 걔도 술자리 엄청 싫어하는데 말이야.”
묘하게 허탈감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미국에 도전한다면서?”
“네.”
“그거 때문에 얘기를 좀 해주려고. 미리 경험한 선배의 조언이라고 해야 할까?”
미소를 지은 그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목표는 어느 정도로 잡았어?”
“최소 목표는 빌보드 10위권. 물론, 최종적인 목표는 여전히 그레미입니다.”
“그레미라…. 맞아. 그때 그 얘기를 했었지?”
“네.”
한진성을 처음 만난 날, 그렇게 얘기했다.
나와 당신은 그레미를 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가수라고.
그래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거라고.
그 말에 얼마나 당황을 하던지.
“그 목표는 여전하구나.”
“물론이죠. 성공할 거라고 자신하니까요.”
“만약에 말이야. 그 목표에 다다르지 못하고 도전이 끝나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실패를 가정한 질문이라.
한진성답지 않은 얘기였다.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
“예.”
“…….”
그는 여태껏 후배들 앞에서 보인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거운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한 청년의 모습.
그는 아이돌 한진성이 아닌, 인간 한진성이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한 번은 생각할 필요가 있더라. 혹시라도 실패했을 때를.”
“미국에서 도전했던 게 힘드셨습니까?”
“힘들었냐고? 아니, 즐거웠지. 매 순간 즐거움의 연속이었어.”
한진성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도 막상 2등에서 멈추고 포기했을 때, 기분이 썩 좋진 않더라. 끝까지 넘지 못한 어떤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거든.”
그는 아직도 그 벽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빌보드에서 끝내 엘븐 라비를 넘지 못한 경험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했다.
빌보드 2등.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하지만 늘 성공만 해왔던 몬스터즈였기 때문일까.
그는 아직 미국에서 1등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에 발목이 잡힌 듯한 모습이었다.
“미안하다. 못난 모습만 보여줬네.”
“아닙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건지, 잘 알 거 같아요.”
“정말이야?”
“네. 추락할 때를 미리 대비해서, 그때의 상처를 최소화하라는 말씀이잖아요.”
“비슷하지.”
한진성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두 번이나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 선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야.”
그의 조언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많이 힘들 거야. 실패도 할 거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을 거다.
오히려 보여줄 생각이다.
한진성에게.
우리가 1등을 하는 모습을.
당신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마워요. 형.”
“미안하다. 괜히 힘 빠지는 얘기를 해서.”
내게 볼일을 마친 그는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저렇게 약해진 모습을 보여주다니.’
평소의 그였다면 절대 보여주지 않을 얼굴이었다.
그럴수록 미국이 더 크고 어려운 무대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자극했다.
“후우, 이거 좋네.”
[메인 퀘스트: 미국 진출]
[올리오스를 미국에 데뷔시키세요.]
[성공 시: 100 마일리지 포인트]
나는 핸드폰에 보이는 메인 퀘스트를 보며 의지를 다졌다.
넘지 못할 것만 같은 벽일수록 도전의식을 더욱 불태웠다.
“반드시 넘고 만다.”
미국에 있는 수많은 가수들, 아티스트들.
전부 다 박살 내고 정상을 차지할 거다.
각오를 다진 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12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정민의 작업실에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큰 변주 없이 이대로 가는 거로 하시죠.”
나는 홍우선과 GH의 대표 작곡가와 함께 작업하고 있는 정민을 찾아갔다.
“이번 앨범에 ‘For you’는 따로 추가 작업해서 넣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희가 작업했던 노래 중에 가장 잘 나온 노래이기도 해서요.”
정민은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편곡을 지휘하고 있었다.
사실상 지금까지 올리오스의 모든 곡을 작곡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는, 나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두 사람을 리드하고 있었다.
경력은 짧아도 그 동안 굉장히 밀도 있는 경험을 했으니 당연한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작업실 입구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아,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 건하야.”
“건하 씨, 오셨어요?”
정민과 홍우선이 나를 보고 놀란 눈을 했다.
“무슨 일이야? 종방연 있던 거 아니었어?”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
“술은… 안 마신 거 같네.”
“마시면 큰일 나지. 멤버들도 없는데.”
나는 웃으며 정민과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저는 그냥 보고 있을 테니까 계속해주세요. 정민아, 잠깐 구경해도 되지?”
“물론이지.”
세 사람은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신곡은 새로 작업하실 겁니까? 미국 데뷔까지 약 2달 정도 남았으니까 아직 시간은 있는데요.”
“네. 3RD의 앨범 노래는 다 괜찮은 노래지만, 사실 ‘나비’를 제외하면 미국에서 통한다 싶은 것들이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아이디어 떠오른 것들은 몇 개를 벌써 러프하게 그려놨거든요.”
정민이 폴더를 열어 작업된 음원 파일을 클릭했다.
-♬♪♩~~♩♪
멜로디와 비트가 하모니로 어우러진 노래가 작업실에 퍼졌다.
“엘븐 라비 님과 루케 크롬블 님의 무대를 보고 작업한 건데 영감이 막 떠오르더라고요.”
정민이 신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서 함께 회의 중이던 두 사람이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했다.
나 역시 감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거….’
드럼의 비트, 그 위에 이어지는 베이스와 둘이 만들어낸 비트 위로 피아노와 신디사이저로 만든 하모니가 이어졌고, 통통 튀는 마림바의 소리가 맛을 더했다.
한국보단 정말 미국 본토에 딱 맞는 느낌의 곡이었다.
“이거 좋다.”
된다.
이건 된다고 확신했다.
제대로 미국을 노린 팝송이었다.
발라드 R&B의 느낌이 강한 엘븐 라비보단 팝한 노래와 댄스로 유명한 가수 ‘브랜 로마드’의 느낌이 강한 노래였다.
“이건 수록곡으로 생각하는 노래예요.”
정민이 다음으로 튼 노래 역시 미국의 느낌이 제대로 나는 곡이었다.
그리고.
‘해금?’
전주가 끝나고 흐르는 해금의 하이톤 멜로디.
마치 바이올린을 켜듯 흐르는 해금의 소리가 작업실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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